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60화 (61/202)
  • 60. 뇌물

    “안녕하세요. 한국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장덕수라고 합니다.”

    그냥 자기소개만 한 것뿐이었는데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예상 못 했던 격한 반응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교수님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뭐예요?”

    “김치가 면역력 향상에 좋다는데 사실인가요?”

    “저는 불고기를 좋아하는데, 불고기는 꼭 소고기만 써야 하나요?”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수십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미리 준비를 했는지 꽤나 심도 있는 질문도 있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강의실 분위기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강의를 할 땐 질문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내 수업이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일단 분위기가 자유롭지 못하다. 몰라서 묻는 게 질문인데 그 질문조차 틀린 질문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반면 파나르의 학생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질문을 던졌다. 설령 헛소리와 같은 질문을 해도 아무도 면박을 주지 않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물어봐 주세요. 오늘 시간 많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을 했지만 강의 내내 크고 작은 질문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나도 점점 흥이 나서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무슨 말만 하면 크게 놀라고, 매번 그에 따른 질문이 딸려 오는데 그게 얼마나 재밌는지 겪어 보지 않곤 알 수 없다. 억지로 수업을 진행하던 예전과 달리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를 진행했다.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김치의 원래 이름이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침채 아닌가요?”

    “오! 방금 누가 대답했나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질문을 던지고, 집중도가 유독 높았던 학생.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김치라는 단어의 어원까지 알고 있었다.

    “맞습니다. 채소를 절여서 먹는다는 의미의 침채가 변형되어 지금의 김치라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단어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도 지금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설명해 주세요, 교수님.”

    “그것까지 알고 있어요?”

    “책에서 읽은 적 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김치 아니 한국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 학생이 말한 것처럼 본래 김치는 채소를 그냥 절여 먹는 걸 의미했습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으니,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두고 먹는 거죠.”

    학생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나 역시 한국 음식을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 신이나 말을 이어 갔다.

    “훗날 임진왜란 때 고추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마늘, 쪽파를 넣어 양념해 먹는 김치가 나타났고, 중국에서 지금의 배추와 비슷한 배추가 들어와 현재 우리가 아는 김치의 형태가 완성이 됩니다.”

    그렇게 간단한 한국 음식의 대한 강의를 마친 후 나는 교탁 앞에 섰다. 김장 김치처럼 제대로 만들 수는 없지만 수업에 최선을 다해 준 학생들이 맛이라도 볼 수 있게 겉절이를 만들었다.

    미리 양념해 온 불고기도 익혀 작은 시식회까지 열 수 있었다.

    “와 이거 진짜 존맛탱.”

    “뭐예요. 그런 말은 어떻게 배웠어요?”

    “우리도 이런 거 다 알아요.”

    “하하하 대단하네요.”

    “교수님. 이 곳저리(?) 만드는 방법 좀 알려 주실 수 있어요?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어요.”

    그리 많은 숫자의 학생들은 아니지만 엘리트들이 모인 소수 정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같이 한국어 실력은 출중했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계속 눈에 띄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학생은 수업이 끝이 나고도 한참 동안 강의실에 남아 뒷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교수님 저는 다나라고 합니다.”

    “아! 다나 학생. 수업 너무 잘 들어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또 이렇게 뒷정리도 도와줘서 고맙고요.”

    자신을 다나라고 소개한 이 학생은 김치의 어원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제가 더 감사하죠.”

    “하하 파나르 사람들은 진짜 외국어를 잘하네요.”

    “네 맞아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노래를 잘하듯이 파나르 사람들은 외국어에 재능이 있어요.”

    “그런 것도 알아요? 대단하시네요.”

    “저도 언젠간 꼭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거든요.”

    그렇기에 한국어 수업을 듣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거겠지. 오늘 수업에 왔던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다.

    다나 역시 한국에서 공부하고 취직을 하는 것이 꿈이라 했다.

    “우리 한국 대사관에서 초청하는 장학생 같은 거 있다는데 다나 씨도 그거 신청하면 되겠네요. 한국어 실력도 충분히 될 것 같은데.”

    “아 그거요? 안 돼요. 저는 돈 없거든요.”

    “돈이 없으니깐 장학생 신청하라는 거죠.”

    “그 돈이 없다니깐요?”

    “장학금이라는 건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 주는 거예요.”

    혹시나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까 봐 바디랭귀지까지 동원해 설명을 해 주었다.

    학비가 부족하니 장학생을 신청해서 공부를 하라는 말이었는데, 자꾸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다나였다.

    내가 생각한 만큼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은 어쩔 수 없구나.

    “대사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학비는 물론이고, 기숙사도 제공해 주고, 생활비도 나와서 따로 아르바이트도 할 필요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요. 졸업하고 나면 취업도 큰 문제 없을 거구요.”

    “알아요. 근데 그 장학생을 신청할 돈이 없다는 말이었어요.”

    “네? 서류를 보낼 돈도 없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다나의 행색을 살펴봤지만 그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고작 배송료 몇천 원을 내지 못할 사람 같진 않은데….

    다나도 우리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눈치챘는지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전부 강의실을 빠져나간 후였다.

    “대사관 초청 장학생은 한국 교수님들이 전부 명단을 결정해서 대사관에 보내 줘요.”

    “그렇군요.”

    “근데 그 명단에 들어가기 위해선 교수님들에게 돈을 줘야 해요.”

    “돈이라면 뇌물을 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하며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들킨다면 그나마 잘 받던 성적도 깎일까 봐 조심하는 눈치였다.

    “파나르에선 흔한 일이에요. 산유국이지만 빈부 격차는 아주 심해요. 그리고 파나르에선 교수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니에요. 월급도 적어서 이런 걸로 돈을 버는 교수들이 많아요.”

    “근데 그 명단을 보내는 분들은 한국인 교수들 아닌가요?”

    “맞아요 근데 그분들도 아마 주변 분위기에 전염이 되었을 거예요. 이것도 흔한 일이에요.”

    한국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직업이 교수지만 파나르에선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파견을 나와 있는 한국인 교수님들의 대우는 나쁘지 않겠지만 뇌물을 받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학교의 분위기 탓에 한국인 교수들도 뇌물을 요구한다 했다.

    “그러면 여태까지 장학생으로 뽑혔던 학생들도 전부 뇌물을 주고 뽑힌 거예요?”

    “글쎄요. 아닌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아마 뇌물을 주고 뽑힌 사람이 훨씬 많을 거예요.”

    파나르 국립 대학에서 성적 우수생의 명단을 넘겨주면 한국 대사관에서는 별다른 검토 없이 그 학생들을 대사관 장학생으로 선발하게 된다.

    몇 년 동안 학생들을 지켜본 교수들의 선택이니 대사관 측에선 믿고 따라가기 마련이다.

    여태까지 딱히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 오늘처럼 학생들과 대화를 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러면 시험 같은 걸로 경쟁을 해서 뽑았던 적은 없어요?”

    “그런 걸 했다면 저는 다 이길 자신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당연히 테스트라든가 성적으로 장학생을 결정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나의 말을 들으니 대사관에선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 * *

    “안녕하세요 대사님.”

    “네 장 셰프. 파나르 국립 대학에서 다음번에도 비슷한 강의를 해 달라고 하네요. 학생들이 되게 재밌었대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도 재밌었습니다. 그나저나 대사님.”

    강의가 성공적으로 끝난 건 기뻤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가 있었다.

    다나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실력이 있지만 뇌물을 주지 못해 장학생으로 선발되지 못한 경우가 제법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추후에 그 사실이 들통나 대사관 측이 곤란해지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대사관에 근무하는 동안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마치 고자질을 하는 학생처럼 다나에게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김용수 대사에게 전했다.

    “그 학생이 그런 말을 하던가요?”

    “네 지금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 들통나게 되면 우리 대사관 측도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장 셰프의 말이 맞아요. 설령 모르고 통과시켰다 해도 그런 불법적인 악습을 만든 공범이 될 수 있어요.”

    한국 대사관과 파나르 국립 대학과의 관계는 항상 좋았다. 그래서 이 일은 몇 년간 아무런 의심 없이 진행했었다. 설마 장학생 선발에 비리가 있을 거란 상상을 해 본 적 없었다.

    파나르 대학교의 교수들을 아직 관저에 초대를 하진 않았지만 외부에선 몇 번 만난 적이 있을 정도로 김용수 대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근데 그 다나라는 학생 믿을 수 있는 학생인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반대로 다나라는 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요.”

    김용수 대사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100% 믿지는 않았다.

    “자신의 점수가 부족해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근거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요.”

    “거짓말을 할 거같이 생기진 않았던데… 수업도 열심히 듣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장 셰프라면 사람 보는 눈도 남들보다 특별하겠지만 이건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김용수 대사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다나라는 학생이 수업 내내 태도가 좋고, 뒷정리까지 도와줬다지만 그날 한 번 본 게 전부였다.

    내가 대사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걸 알고 이용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넘어갈까요?”

    “아니요.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충분히 의심이 가는 상황이니 일단 확인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확인하죠? 교수들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순순히 대답할 리는 없을 테고.”

    관련된 교수들은 전부 입을 맞춰서 똑같이 대답할 테니 알아낼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대학교에 아는 직원이라도 있으면 증거가 될 만한 걸 찾아보라 할 텐데 그걸 부탁할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화를 하며 말실수라도 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사소해도 그런 것에 기대 봐야 했다.

    “일단 관련된 교수들을 관저로 초대할게요.”

    “관저에 초대를 하신다구요?”

    “네 일단 한자리에 모아 두고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죠. 슬슬 유도를 하면서.”

    불가능해 보였지만 김용수 대사의 말처럼 실수를 유도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장 셰프.”

    “네 대사님.”

    “술안주도 자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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