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52화 (53/202)

52. 예상 못 한 성과

후르릅.

“……!”

제대로 된 묵은지로 끓인 김치찌개 맛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김치도 충분히 익은 데다가 고기도 듬뿍 들어갔고, 게다가 무쇠솥에다가 균일한 화력에서 끓여 냈다.

이런 고깃국은 세계 어디에 가져다 놔도 좋아할 만한 음식이었다.

“어떠세요?”

“잠시만요.”

어떠냐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김치찌개를 맛보는 주인아주머니였다. 숟가락만으론 답답했는지 어느새 국그릇에 김치찌개를 담아 흡입하고 있었다.

“김치찌개라는 음식이 원래 이런 맛이었군요.”

“저번에 직접 만들어 보신 김치찌개랑 맛이 비슷한가요?”

내 물음에 주인아줌마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정말 충격이네요. 김치찌개라는 음식이 내 기대보다 훨씬 맛있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만드는 방법입니다.”

오늘 끓인 김치찌개는 그 흔한 채소로 끓인 육수 하나도 쓰지 않고 만들었다.

물을 제외하고 넣은 재료는 딱 두 개.

돼지고기와 김치뿐이었다.

“어떻게 소금이나 다른 조미료, 아니 심지어 그 흔한 양파 한 조각도 넣지 않고 이런 맛을 낼 수 있는거죠?”

김치찌개가 한국 대표 음식이라 해서 생각보다 어려운 요리일 거라 생각했었다는 주인아줌마.

사실 김치찌개는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요리가 맞다. 하지만 오늘처럼 맛있는 김치를 만들고 숙성하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그 어떤 요리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김치라는 것만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김치찌개 자체는 굉장히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조미료를 첨가할 필요도 없고, 겉멋을 부릴 필요도 없죠. 이렇게 무쇠솥에 끓여 낸 찌개의 건더기를 듬뿍 건져서 밥과 함께 먹으면 최고의 음식이 되는 거죠. 신선한 고기엔 소금 몇 톨만 뿌리는 게 전부인 것처럼요.”

“진정한 요리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군요.”

진정한 요리의 의미라.

누군가는 짜고, 달고, 신맛이 균형 있게 자리 잡은 복합적인 맛을 내는 게 요리사의 역할이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날것 그대로 먹어도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재료를 찾아 상 위에 올리는 사람을 진정한 요리사라고 한다.

그 어떤 것도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요리사로서 경력이 많이 쌓일수록 후자에 좀 더 맘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킬이 어느 경지에 오르고 나면 웬만한 재료로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신선한 재료는 같은 땅에서 재배된 채소라도 서로 다른 모양과 다른 맛을 내기 때문에 매번 그 맛이 궁금해진다.

비록 김치는 많은 양념이 합쳐진 복합적인 맛을 가진 음식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김치만 있으면 아무런 조미료도 없이 훌륭한 김치찌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김치를 만들 때는 사용하는 물, 소금, 배추 등등 모든 것을 따져서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들만 충족이 되면 정작 요리하는 과정은 수월합니다. 그냥 양념만 채워 넣으면 되니까….”

나의 말이 윤아의 입을 통해 통역이 되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아줌마였다.

“그래서 전 음식이 맛있게 만들어지는 진정한 시간은 이 불과 팬 안에서가 아니라 훨씬 이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아주 동의합니다. 훌륭한 재료가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거죠. 그런 의미로 저도 파나르 음식을 하나 알려 드려도 될까요?”

“정말요?”

어쩌다 보니 내 요리에 대한 철학 아닌 철학을 설파해 버렸다. 너무 나이 든 사람처럼 말한 건 아닌지 괜히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다들 김치찌개에 집중하느라 큰 관심 없는 것 같았다.

“요리사님은 혹시 양고기 좋아하세요?”

“양고기요? 솔직히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주인아줌마는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리 즐겨 먹지 않았다. 허브나 쯔란을 듬뿍 뿌려서 요리해도 100%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양고기를 손질하는 것 자체도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양고기는 세계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고기인데 유독 한국에선 많이 안 팔린다더라구요.”

“맞습니다. 저처럼 양고기 냄새에 거부감을 느끼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양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수프를 알려 드릴게요.”

“양고기 냄새가 전혀 나질 않는 수프요? 더군다나 수프 요리로요?”

한국에선 양고기가 과하게 비싸기도 했고, 양 특유의 냄새는 어떻게 요리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향신료를 뿌리고, 온갖 전처리를 해도 내 혀에선 항상 양고기 특유의 맛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혀 냄새가 나질 않는 양고기라니.

그런 방법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알고 싶었다.

“자, 똑같이 카잔에다가 물을 채우고, 뼈가 붙은 양고기와 토마토, 양파, 감자를 넣어 주고 끓여 주면 끝입니다.”

“엥? 이게 다예요?”

내가 말을 꺼내고도, 내가 놀랐다.

아까 주인아줌마가 김치찌개 만드는 법을 보고 했던 말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저는 적어도 소금은 넣습니다.”

“하하하 다행이네요.”

김치는 간이 되어 있어서 소금도 필요 없었는데 그래도 이 양고기 수프는 소금이라도 넣으니 요리를 하는 느낌이라도 났다.

불이 세서 그런지 그렇게 한 30분 정도 끓으니 금세 걸쭉하고, 진한 양고기 수프가 탄생했다.

“한번 드셔 보세요.”

“음….”

자신 있게 권하는 주인아줌마였지만 그럼에도 썩 내키지 않았다. 내 눈앞에서 양고기가 뼈째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는데….

이 수프 한 숟가락을 먹으면 입 안에서 양고기 냄새가 자리를 잡을 것 같았다.

“저를 믿고 한번 드셔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후루룹.

주인아줌마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양고기 수프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

“어때요? 맛있죠? 아무 냄새도 안 나고?”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한 숟갈을 퍼서 입에 넣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믿으라고 했잖아요. 양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수프라고요.”

“진짜 안 나네….”

“계속 먹어 봐도 냄새 안 날 거예요. 내가 몇 번이나 확인해 봤거든요.”

내 혀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저기 저 뼈째로 있는 고기가 양고기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리 스킬, 적합한 향신료, 좋은 주방 도구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면 특유의 냄새를 최대한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 100%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각각의 고기들은 식감이나 색, 냄새 등 자기들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란 게 있다. 그것들은 절대로 어떠한 방법으로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어떻게 냄새를 없앴는지 궁금하시죠?”

“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 비법만 알 수 있다면 나도 양고기를 지금보다 좀 더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파나르에서 가장 많이 먹는 고기인데, 나 스스로 손질에 자신이 없으니 자꾸 만찬을 할 때 피하게 된 양고기였다.

“아까 진정한 요리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아….”

들뜬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진정한 요리의 의미라는 말이 또다시 나오자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비법이라는 것이 뭔지.

“사육해서 도축된 양고기로는 절대 이 수프를 만들 수 없습니다.”

“도축된 양고기라면?”

“저는 여기서 몇 년간 자유롭게 양 몇 마리를 풀어놓고 키웠어요. 밥이나 물도 따로 주지 않고, 그냥 조금 멀리 도망가면 다시 데려오는 정도로만 관리를 하면서 양을 키웠어요.”

“그런데요?”

“그렇게 키운 양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줌마가 왜 이런 시골에서 요리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단순히 볶고 지지고, 삶는 것만이 요리가 아니란 걸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이었다.

“저는 몇 년간 이곳에 지내면서 직접 확인했어요. 양고기뿐만아니라 소, 말, 닭, 돼지 모든 동물들이 똑같았어요.”

“대단하시네요.”

“요리라는 건 공부하면 할수록 참 어려운 것 같고, 또 한편으론 엄청 간단한 거 같기도 합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하하하 너무 공감됩니다.”

결국엔 잘 모르겠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 주인아줌마의 말에 나 역시 너무나도 공감했다.

할 때마다 맛이 달라지는 요리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졌다가도, 또 소금만 뿌렸을 뿐인데 너무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걸 보고 요리가 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 한평생을 주방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요리가 쉬운지 어려운지 정답을 찾지 못했다.

“덕분에 오늘 제대로 배우고 갑니다.”

“저야말로요. 오랜만에 이렇게 말이 통하는 분과 만나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짧았지만 꽤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부담 없이 놀러 온 이곳에서 내 요리 인생을 뒤돌아볼 수 있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정답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할 게 없어서 밤새 심심할 줄 알았는데….

음식에 대한 철학을 나누고, 뒷정리를 하고 나니 어느새 깊은 밤이었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가서 잘 사람은 자고, 한잔 더 할 사람은 하도록 하시죠.”

“아주 자알 먹었습니다!”

정리가 끝나고 들어가려는 찰나 김준우 서기관의 괴성이 들려왔다.

“아악! 깜빡했네요.”

“뭘요?”

“카메라를 켜 놓은 걸요.”

“아 그렇네요. 저희도 완전 잊고 있었네요.”

“몇 시간 동안 저렇게 세워 두기만 했네요. 중간중간에 확인이라도 좀 해 뒀어야 하는데.”

맘 편히 놀라는 김용수 대사의 말에 너무나도 맘을 편히 놓아 버린 김준우 서기관이었다. 카메라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나와 주인아줌마의 뒷모습을 찍고 있었다.

“허허허 연습이라고 생각하라 했잖아요. 신경 쓰지 마요 김 서기관. 이제 카메라도 우리도 들어가서 좀 쉽시다.”

“네 알겠습니다.”

아무리 연습이라 해도 김준우 서기관 성격상 조금은 맘에 걸린 모양이었다. 내일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찍어 보고, 편집을 잘해 보겠단 말로 카메라를 꺼 버렸다.

* * *

다음 날.

“1박 2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요.”

“그러니까요! 오고 가는 데만 거의 반나절인데, 와서 밥만 먹고 가는 게 전부네요.”

“아니에요. 오늘은 돌아가기 전에 여기저기 관광지도 들렀다 갈 겁니다. 제가 짠 일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워크샵을 계획할 때부터 내내 자신만만하던 윤아의 태도는 여전했다. 아직 보여 줄 게 많이 남았다며 아쉬워하는 직원들을 달랬다.

나는 이 숙소에서 있었던 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또 다른 일정도 기대가 되었다.

“잘 쉬다 갑니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잠시만요!”

작별 인사를 하고 일찌감치 숙소를 떠나려던 찰나 주인아주머니는 뒤뜰에서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괜찮으시면 이거 받으세요. 선물입니다. 어제 너무 좋은 이야기를 나눠서 드리는 감사의 의미예요.”

“네? 이걸요?”

주인아주머니의 선물은 나에게 향해 있었지만 나는 곧바로 김용수 대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선물을 받는 건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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