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알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직원용 통로로 들어오니 보안 직원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렇지만 알바라고 말하면 이 직원 통로는 대부분 별 탈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일일 알바가 오가는 호텔이었으니까.
조금 의심하긴 했지만 주방장님이 출입구 근처로 마중을 나와 줘서 쉽게 해결되었다.
“주방장님!”
“덕수야. 몇 달 만이냐 이게.”
아무리 반가워도 시꺼먼 남자 둘이 끌어안는 일은 쉽지 않았다. 포옹을 할 뻔했지만 서둘러 손을 뻗어 격한 악수를 했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넌 건강하냐?”
건강하냐?
이 말 한마디를 듣자 단번에 마음이 흔들렸다. 진심이 담긴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한국까지 찾아온 건데 벌써 잘 찾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네 저는 건강합니다. 주방장님은요?”
“나? 이거 봐라.”
그러면서 자신의 휑한 정수리를 보여 주는 주방장이었다. 원래도 숱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면서 뭘 새삼스레 자기 머리를 보여 주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거 같았다.
“오자마자 이렇게 칭찬해 주고 싶진 않은데 덕수 너만 한 사람이 잘 없다 진짜.”
“하하하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니야. 처음엔 조금 원망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잊었다. 어쩌겠냐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건데.”
말은 그렇게 해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주방장님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25살의 나는 솔직히 대체 불가한 인물까지는 아니었다. 조금 빠릿빠릿한 알바 한두 명이면 내 공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주방장님이 저렇게 표현해 주니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찾아올 수밖에.
“주방장님 오늘 몇 시 퇴근이십니까?”
“내가 언제 퇴근 시간 정해 놓고 일하는 거 봤냐?”
“하긴 그렇죠.”
호텔의 주방장이라고 하면 거의 일도 하지 않고, 음식 맛이나 보고 주방을 어슬렁거리고 다닐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예약이라도 많은 날엔 기약도 없이 일을 하는 경우도 흔했다.
“오늘 저녁에 단체 손님 있어서 몇 시에 마칠지 모르겠다. 끝나고 한잔하려고 온 거지?”
“당연하죠. 제가 갈 곳이 어딨겠습니까.”
“숙소 예약 안 했어? 집은?”
“갈 곳 없는데요.”
“이런 대책 없는 새끼.”
내가 자리를 뺀 기숙사엔 다른 직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한국에 직계 가족이라고 할 만한 연고도 없었다. 휴가 기간 동안 숙소를 구해서 지내야 했다.
“그러면 꽤 오래 기다릴 수도 있는데 미리 숙소 잡고 기다리는 게 어때?”
“음… 그럴까요?”
“다른 약속 있으면 갔다가 마칠 시간에 맞춰 오든지.”
주방장님 말고 만날 사람이 있긴 있다. 가장 보고 싶고, 그 사람 때문에 한국에 온 거긴 했다.
근데 오늘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주방장님, 이렇게 하면 어때요?”
“뭘?”
“저 오늘 알바 시켜 주세요.”
“알바? 너 휴가라며. 휴가 때 무슨 일을 하려고.”
“그냥 이참에 선배들 얼굴 보고 그러는 거죠. 저한테 뭐 책임질 일 시키거나 하실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하면 또 제대로 할 거지만 책임이 없는 일은 나에게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반가운 주방에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사실 주방장님이랑 나의 아내 말고는 딱히 볼 사람도 없었다.
“단체 손님 준비는 언제부터 해요?”
“음… 지금부터 한 한 시간 정도 후부터 해도 충분할 거야.”
“그러면 저 잠시 누구 좀 만나고 올게요. 그리고 주방 들어가도 되죠?”
“오 여자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짝 웃어 주고 한 시간 후에 돌아오겠다며 호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곤 반 바퀴를 둘러 다시 호텔 로비로 들어왔다. 1층 로비에 있는 카페로 가기 위해.
아마 지금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엔 단체 손님이 오는 한식당으로 지원을 올 테고.
아내를 처음 봤던 곳이 이 카페였다. 호텔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고 들어갔다가 쫓겨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내가 카페에서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단체 손님이 있을 때마다 한식당이나 양식당으로 지원을 왔다. 덕분에 나는 남들이 다 싫어하는 단체 손님을 반가워했고.
“어서 오세요. 카페 H입니다.”
다소 한가한 카페에 들어서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어 버렸다가 서둘러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제일 처음 반했던 그 모습.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한국까지 온 거였다.
“안녕하세요?”
“어? 맞죠?”
“뭐가요?”
“맞잖아요. 한식당에서 일하시는 분.”
“아… 기억하시네요 안녕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8시간은 같은 공간에 있잖아요 우린.”
같이 일은 했어도 아직은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날 보자마자 알은체를 해 주니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지치지도 않은 내가 휴가를 내서 꼭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준우네 가족 덕분에 그 시간이 조금 더 앞당겨졌다.
호텔 주방장님과 함께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
이름은 이한샘.
나중에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하하 그렇긴 하죠. 저도 낯이 익긴 하네요. 그러고 보니.”
“이쪽으로 앉으세요. 혼자 오셨죠?”
“네? 네 혼자예요.”
“오늘도 일하다가 오신 거예요? 요즘 한식당에 잘 안 보이시던데 다른 업장으로 옮기신 거예요?”
한샘은 내가 카페에 들어서고, 창가 쪽 의자에 앉을 때까지 수십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 줬다.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뭔가 당황스러웠다.
25년을 넘게 같이 살았는데도 젊었을 적 아내를 보니 괜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저 사실 일 그만뒀어요. 오늘은 그냥 사람들 보러 왔어요.”
“정말요?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니 아예 그만두신 거구나. 이 좋은 호텔을 왜요. 다른 사람들은 정직원 되려고 용을 써도 안 되는데.”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정직원 되려고 용을 써도 안 되는 좋은 호텔.
내 아내가 귀에 딱지가 생길 만큼 반복하던 말이었다. 덕분에 내가 호텔에서 30년을 근무할 수 있었고.
오랜만엔 그 말을 듣자 반가워서인지 이때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는 것이 어이없어서인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요? 제가 웃겨요?”
“그냥 말투가 재밌어서요.”
“그래요? 웃기다니 다행이네요. 남들이 저 때문에 웃는 건 좋거든요.”
“종종 웃겨 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이제 요리사 일 안 하세요?”
모두에게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의 한샘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예전 말로는 나한테만 그랬다는데 믿기질 않는다. 워낙 낯가림이 없고, 사람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상관은 없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이 좋아서 사귀게 된 거였으니까.
“지금은 대사관 요리사로 근무합니다.”
“와 대박! 대사관이요?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예상보다 과한 리액션에 어깨가 으쓱 올라감과 동시에 주변 눈치까지 보게 되었다.
한샘 역시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진짜 대단해요. 항상 열심히 일하시더니 더 좋은 곳으로 가셨네요.”
“제… 제가 일하는 걸 보셨어요?”
평소에도 날 몰래 지켜봤던 건가?
젊고 건강한 한샘을 보니 반갑고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 또 한편으론 심장이 뛰며 설레는 맘이 들었다.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한샘을 향한 내 맘은 똑같구나.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시는데 어떻게 못 보겠어요?”
“아 제가 좀 그렇죠?”
위험한데 주방에서 뛴다고 자주 혼이 났었다. 그렇지만 뛰지 않으면 내가 답답해서 안 되겠는 걸 어쩌겠는가.
불 옆에서만 조심조심하며 뛰어다니는 걸로 스스로 타협했다.
“그러면 이제 아예 한국에 안 돌아오세요?”
“아니에요. 3년만 있다가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렇구나.”
한국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표정이 살짝 밝아진 것을 느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난 아내도 나에게 호감을 느꼈겠지. 나처럼.
그렇게 믿고 싶었다.
“더 큰 목표가 있거든요. 대사관보다.”
“대사관보다 더요?”
“네 저는 나중에 청와대에서 요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호강시켜 주겠다는 사람처럼 나의 포부를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한샘은 내 기억 속에서만 나의 아내였지 한샘의 머릿속엔 아직 난 그냥 직장 동료일 뿐이다. 아직 몇 번 마주쳐 본 적도 없는 그냥 직원.
너무 한 번에 훅 다가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고 파나르에 오기 전에 얼굴이라도 비치고 왔어야 하는데.
“아… 대단하시네요. 멋있어요.”
역시나 눈에 띄게 볼륨이 줄어든 목소리였다. 청와대에 가고 싶다는 말이 신기하긴 했지만 갑자기 이런 말을 왜 나에게? 라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근데 한샘 씨. 주문 안 받으세요?”
“아! 주문이요? 해야죠 해야죠. 뭐로 드릴까요?”
“아메리카노로 한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젊고 건강했던 한샘을 만나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차근히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져야 했다. 예전처럼 똑같이.
확실한 건 이번 삶에도 이 사람이 나의 아내가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려면 예전처럼 똑같이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아니 조금 늦었으니 이전보다 훨씬 더 잘해야지.
“잘 마실게요. 한샘 씨도 나중에 한식당에 지원 가시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오늘 알바하거든요.”
“호호 날 잘못 고르신 거 같은데.”
“왜요?”
“오늘 예약 인원이 800명이래요 800명.”
“헉.”
당황해하는 내 표정이 우스꽝스러운지 한샘은 아까보다 경계를 푼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얻어야겠다. 한국에 있는 동안이라도 나를 최대한 각인시켜야지.
“저는 노예가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유를 즐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릅.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려 잔을 든 다음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그 모습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웃는 한샘.
나도 그런 한샘을 바라보며 한참을 같이 웃었다.
* * *
H호텔 한식당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오랜만입니다.”
“어 왔다. 드디어 쓸 만한 노예 왔습니다 주방장님.”
“자 오랜만에 봤지만 그건 그거고 이거부터 합시다.”
이게 주방에서 보여 주는 반가움의 표시였다.
오랜만에 봤다고 끌어안고 악수하고 그럴 틈이 어딨나? 그냥 오자마자 곧바로 일거리를 주는 게 여전히 날 신뢰하고, 반갑다는 인사의 일종인 거다.
나도 자연스럽게 건넨 칼을 집어 들었다.
“당근 50개는 잡채용이고, 남은 거는 갈비찜용이다. 덕수가 알바들 데리고 다 마무리해 알았지?”
“오자마자 너무 일 시키시는 거 아닙니까?”
“네가 자처해서 온 거라며. 우린 잘못 없다? 모든 알바에게 평등해야지 안 그래?”
“예예 알겠습니다.”
별도의 지시 사항도 없이 그냥 무슨 용이라고만 말해 주면 끝이었다. 몇 센티의 길이, 몇 센티의 두께로 썰어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선배들의 표정은 시원해 보였다.
“손님들 다 왔고, 준비되는 대로 바로바로 플레이팅 시작한다.”
“네 알겠습니다.”
800명이 넘는 단체 손님을 받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기다란 작업대에 각자 재료 하나씩을 맡아 지나가는 접시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직원들은 각각 요리 하나씩을 맡아 관리를 하면 된다. 음식이 제 모양을 갖추고 나가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소스 양이 많지는 않은지.
빠른 시간 동안 그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한다.
“덕수는 갈비찜 맡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오늘 이 주방에 들어온 지 두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다른 정직원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일을 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대사관 요리사도 재밌지만 이렇게 소속감을 느끼며 하는 호텔도 조금 그리웠던 건 사실이다.
미친놈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일하는 상황이 즐거웠다.
“자 마지막 후식이다. 좀만 힘내자!”
“예 알겠습니다.”
지치고 힘들어도 주방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대답하면 잠시 동안 아드레날린이 도는 것 같다. 나는 그리 힘든 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그냥 맘껏 소리쳐 봤다.
주방장도 자처해서 일을 해 주는 내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오늘도 고생 많았다. 알바들 전부 맛있는 거라도 사 주고 싶은데 시간이 좀 늦었네. 알바비에 포함해서 조금 더 넣으라고 할테니깐 오늘은 이만 해산!”
전쟁 같은 단체 손님이었지만 아무런 컴플레인 없이 끝이 났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지금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직원들은 끝나고 맥주 한잔하자. 덕수도 오랜만에 왔으니깐 비싼 거 쏜다.”
“오예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저 주방장님.”
“응?”
모두가 신나 있는데 본의 아니게 분위기에 살짝 스크래치를 내 버렸다.
“저 회식 조금만 늦게 가면 안 됩니까?”
“응? 널 위한 회식인데 네가 늦으면 어떡해?”
“잠시면 됩니다. 아주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