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40화 (41/202)
  • 40. 한국 좀 다녀올게요

    “대사님 그리고 요리사님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도 오랜만에 왁자지껄한 분위기라서 좋았어요.”

    “저도 재밌었습니다.”

    “스승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셨는데 찜닭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사실 그럴 줄 알고 있었다.

    요리는 주입식 교육이 통하는 과목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지만 준우라면 제대로 망칠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긴 했었다.

    “어차피 저는 서기관님을 제자로 인정한 적 없으니깐 제 명성에 금이 가진 않을 겁니다.”

    “하하하 그럼 다행이구요.”

    나는 농담으로 준우를 안심시켰다.

    김용수 대사도 오늘 만찬의 성과(?)에 대한 보고를 받길 원했다.

    “그러면 김준우 서기관은 가족과 같이 살기로 한 거죠?”

    “네 다음 달에 싹 정리해서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오늘은 만찬은 아주 성공적인 만찬이었군요.”

    준우의 아내는 아들이 어렸을 땐 안정적인 한국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아빠의 역할이 필요한 일이 자주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들이니깐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종종 생겼다. 처음부터 아빠가 없으면 모르겠지만 버젓이 있는 사람을 없는 셈 칠 순 없으니까.

    “그래서 일단 파나르가 어떤지 한번 보고 당장 눈앞에 포탄이 떨어질 정도가 아니라면 웬만해서 같이 살 생각 하고 온 거래요.”

    “다행이네요. 저희 몇 주 동안 괜히 헛고생했네요.”

    “그러게요.”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헛수고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요리 실력이 전혀 늘지 않은 준우를 보면 요리 수업 자체는 헛고생이 맞았다.

    “그래도 진짜로 매일 저녁은 제가 만들어 보려구요. 아무리 저라도 하다 보면 결국엔 늘지 않을까요?”

    “그… 그렇겠죠?”

    준우의 음식을 가족의 힘으로 어디까지 참아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입이 귀에 걸려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진우랑 와이프 있는 동안 두 분 다 저희 집에 한번 놀러 오세요. 진우도 할… 아버지랑 요리사 삼촌 좋다고 했고, 저희 아내는 워낙 사람들을 좋아해서 같이 노는 거 좋아해요.”

    “손자 얼굴 한번 보러 가겠습니다.”

    “네 저도 시간 나면 한번 가겠습니다.”

    나도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정리를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거리 곳곳에는 회귀한 나와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의 여느 밤거리처럼 술에 취한 무리의 남자들도 보였고, 서로를 바라보며 걷다 넘어질 뻔한 연인들도 보였다.

    저마다 즐거운 이유는 다르겠지만 몇 달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밤거리였다.

    밤거리에 사람이 많다는 건 안전하다는 의미였으니까.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순 없어도 파나르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나도 괜히 그들의 사이에 끼어 거리를 걷다가 늦게서야 집으로 향했다.

    * * *

    월요일 아침.

    “주말 잘 보냈어요 장 셰프?”

    “네 대사님도 주말 잘 보내셨어요?”

    “좀 심심했던 거 빼고 다 괜찮아요. 금요일에 워낙 열을 올려서 그런가.”

    김용수 대사도 나도 금요일 이후엔 아무 의욕 없는 사람처럼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주말 내내.

    “주말엔 저도 좀 심심하긴 했습니다. 평소보다 좀 더 허전하더라구요.”

    “그래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놀거리가 좀 많지 않나? 장 셰프는 파나르인 친구 같은 거는 안 사귀어요?”

    “현지 친구요?”

    처음부터 친구를 사귈 거란 생각은 전혀 해 본 적 없었다. 회귀한 나이와 윤아의 나이가 우연히 똑같아서 맛집 친구가 되었지만 일부러 친구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도 할 일이 많았으니까.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아직 파나르어도 제대로 못 하구요.”

    “하긴. 파나르어가 워낙 어려워야지요. 또 영어라도 잘하면 몰라. 파나르 사람들 영어도 거의 못 하죠?”

    샤샤나 알렉스처럼 특별한 직업이나 계층이 아닌 보통 파나르 사람들은 영어로 거의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처음 시장에 갔을 때 원, 투, 쓰리도 못 알아듣는 상인들 덕에 온몸으로 체조를 하고 올 정도였으니.

    “그러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좀 그립겠네요. 주말에 심심할 때면.”

    “심심하면 가끔 생각나긴 한데 사실 한국에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여기 오기 전에 만나는 여자는 없었어요?”

    “여자 친구요?”

    한국에 있을 때도 일에만 집중하느라 업장 사람들 빼곤 만날 시간도 없었다.

    호텔 선배들과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그게 내 놀이였으니까.

    한국에 보고 싶은 친구가 있냐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호텔 주방장님과 와이프였다.

    같은 호텔에서 근무했던 와이프. 지금은 회귀해서 아직 와이프가 아니지만.

    사실 파나르에 와서 가장 맘에 걸리는 것 중 하나였다. 와이프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온 거.

    너무 한곳만 바라보느라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데 사귀는 사이까진 아닙니다.”

    “그렇군요. 역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지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가 봐요. 장 셰프는 겨우 20대 중반에 이런 요리 실력을 가졌으니 너무 아쉬워 마요.”

    “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람 보고 싶지 않아요?”

    “네?”

    김용수 대사는 뭔가 추억에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김준우 서기관 가족들을 보고 나니깐 몇 년 전 떠난 와이프가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제 맘 정리는 확실히 되었는데 오랜만에 보고 싶네요. 우리도 종종 마당에서 모닥불 피우고 차 마시는 거 즐겨 했었는데….”

    “그러셨구나.”

    “장 셰프는 그 좋아한다는 여자 보고 싶지 않아요?”

    당연히 보고 싶다. 아직은 서로의 맘을 표현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번 삶에서도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내 사랑하는 딸도 또 만날 수 있을 테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오기 전에 한 번을 못 만나고 왔을까.

    후회되는 맘에 진심으로 보고 싶다고 대답을 하려는 찰나 김용수 대사가 말을 끊었다.

    “나는 있잖아요. 만약에 와이프를 처음 만났던 4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 와이프를 맨날 보러 갈 거 같아요. 내가 어떤 모습에 반했는지, 그땐 또 얼마나 이뻤는지 아직도 기억은 생생하지만 다시 한번 눈으로 보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나는 남들이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할 엄청난 기회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 개인적인 욕심도 물론 중요했지만 나도 김용수 대사와 같은 생각이었다.

    반평생을 함께한 내 아내의 젊었을 적 모습.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모습을 기억이 아닌 생생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겐 생긴 거였다. 이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기회다.

    “그러면 대사님.”

    “네 말씀하세요.”

    “저 한국에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한국에요? 갑자기요?”

    “네.”

    조금 당황한 눈치였지만 김용수 대사는 내가 뭐 때문에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아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유도를 한 걸 수도.

    주어진 시간을 너무 달리는 데만 쓰지 말라고.

    “긴말 안 할 테니 조심히 다녀와요.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오고요.”

    “다녀와서 제대로 달려 보시죠 대사님.”

    “알겠어요. 나도 만찬 하나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오자마자 그것부터 할 테니깐 푹 쉬다가 와요.”

    “네 알겠습니다.”

    “그 후로도 쉬지 않고 줄줄이 만찬 약속 잡을 테니 각오하세요!”

    그래도 갑자기 한국에 간다니깐 조금 섭섭하긴 한 모양이다.

    만찬 약속을 줄줄이 잡아 놓겠다는 말이 나에게 하는 섭섭함의 표시였다. 만찬은 얼마든지 계획해도 좋다.

    나는 사랑스러운 준우의 가족 덕분에 갑자기 마음이 붕 하고 들떠 버렸다.

    부모님 두 분은 일찍 돌아가셨고, 가장 사랑하는 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아 나에게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만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더도 말고 딱 일주일만 갔다 오자.

    더 길어지면 돌아와서 후유증이 생길 것만 같고, 그것보다 짧으면 피곤하기만 할 것 같았다.

    * * *

    며칠 후.

    대사님에게 말한 그 날 곧바로 티켓을 구매했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한국행 직항 비행기로.

    사무실엔 갑자기 휴가계를 제출한 거지만 공관장과 합의가 된 내용이라 별문제 없이 처리가 되었다.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파나르에서 출발해 인천까지 오는 저희 비행기는 방금 안전하게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남은 시간도 안전한 여행 되십시오.”

    회귀하고도 한국에선 직원 기숙사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다른 곳을 둘러볼 생각은 하지 못했고, 대사관 요리사에 지원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만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도착하니 뭔가 새로운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0년 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추억 속으로 직접 들어온 것 같아 감회가 남달랐다.

    “서울 H호텔로 가 주세요.”

    나는 공항에서 나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돈이 엄청 궁한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선물 받았는데 조금이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손님은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저요? 파나르에서 왔습니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주로 이 질문을 자주한다. 공항을 벗어나 제일 가까운 인천을 가더라도 꽤 시간이 걸리니깐 기사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시도한다.

    “파나르요? 거기 얼마 전에 전쟁 났던 곳 아닙니까?”

    “전쟁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내전이 있긴 했습니다.”

    “그게 그거지요. 내전이 전쟁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상황이 악화될 땐 금세 소문이 나더니, 상황이 좋아진 건 아직 아무런 소문이 안 난 모양이었다.

    평소엔 별로 관심도 없더니.

    “거기서 뭘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고생했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 때문에 갔다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평소였다면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을 택시 기사의 잡담이었지만 파나르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말해 주고 싶었다.

    나도 스스로 자부심이 생겼다랄까?

    “파나르 대사관에서 일합니다.”

    “와 정말요? 그럼 외교관이신 겁니까?”

    “아니요. 외교관은 아니고 대사관 요리사입니다.”

    “와아 더 대단하네. 대사관 요리사는 외국어도 잘하고, 요리도 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 뭐. 외국어는 그냥 조금 합니다.”

    파나르어는 그냥 인사나 물건을 살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만 굳이 강하게 부정하진 않았다.

    그냥 호텔 요리사라고 말할 땐 사람들의 반응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대사관 요리사라는 타이틀이 확실히 다르긴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H호텔 같은 고급 호텔에 묵으시나 봅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이라.”

    “아니요. 거긴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서비스의 일종으로 날 과하게 띄워 주는 기사였다. 뿌듯했지만 더 이상의 허세는 부리고 싶지 않았다.

    “자 H호텔 도착했습니다. 남은 시간도 한국에서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기사님의 친절한 서비스와 말솜씨 덕분에 기분 좋게 택시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내가 평생을 몸담았던 서울 H호텔.

    레스토랑도 경험해 보겠다며 잠시 나갔다가 온 2년을 제외하곤 30년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이곳 기숙사에서 살았으니, 이곳이 나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택시에서 내린 나는 로비가 아니라 호텔 뒤편 통로로 향했다.

    “알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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