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38화 (39/202)
  • 38. 요리 교실

    며칠 후 저녁 준우네 집.

    “하아….”

    “죄송합니다.”

    “서기관님 이게 뭐예요 도대체. 재능이 넘쳐서 제 자리를 뺏을 수도 있다면서요.”

    “그냥… 농담이었죠 당연히.”

    여태 몰랐던 요리 재능이 폭발할 거란 기대는 1도 하지 않았다. 아들과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그 태도. 그거 하나만 믿고 준우를 가르치기 시작한 거였는데.

    그런 태도면 금방 늘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그것 아주 큰 오산.

    “서기관님. 양파의 껍질을 까고 요리를 한다는 건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뭐 양파 껍질이 막 수박처럼 딱딱하지 않으니깐 익으면 먹어도 되는 줄 알았죠.”

    “그리고 아무리 센 불에 익히라고 해도 탈 것 같으면 불을 좀 줄여 볼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줄 알고….”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무작정 그 많은 음식을 먹었던 거야?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달다는 것 말고는 아예 요리에 대한 상식이 없는 준우였다.

    “하….”

    너무 막막했다. 하지만 일단은 해 보기로 했으니 해 봐야지.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전략을 조금 바꿔 봐야겠다.

    “이래선 안 되겠어요 서기관님. 아예 기초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칼질부터 연습하시죠.”

    “칼질이요? 그런 것부터 하면 너무 늦는데….”

    “먹지도 못하는 요리를 주는 것보다 그냥 생당근이라도 이쁘게 썰어 주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내 핀잔 덕에 시무룩해진 김준우 서기관을 달래 가며 칼질 연습부터 시작했다.

    비법 양념이고, 뭐고 그런 걸 가르칠 정도가 아니었다.

    “제가 돌아가고 나서도 적어도 무 한 통, 당근 5개씩은 매일 썰어 보시고 주무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하니 더 이상 불만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준우였다. 본인도 느꼈겠지. 아들에게 이런 음식을 먹였다간 다신 같이 못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적어도 2~3일은 기초를 다진 뒤 뭐라도 가르쳐야 했다.

    * * *

    며칠 후.

    탁탁탁탁.

    “어때요?”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좀 나아지셨네요.”

    “정말요?”

    썰어 놓은 채소들이 울퉁불퉁하긴 해도 영 보기 싫을 정돈 아니었다.

    겉모양을 이쁘게 다듬는 건 더 알려 줘 봤자 이제 의미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준우의 아들이 원하는 음식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도록 알려 줘야 했다.

    “서기관님. 기초는 이 정도면 됐고, 아드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우리 아들이요?”

    “네 이것저것 다 하는 것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 딱 하나를 정해서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녁 한 끼 정도만 준우가 차리면 되는 거니깐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필살기로 정해서 만드는 것.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닭고기 요리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닭고기요? 닭이면 다 좋아해요?”

    “그렇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쭈뼛거리는 준우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 건가?

    뭔가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사실은 요즘 저희 아들이 꽂힌 음식이 하나 있대요.”

    “뭔데요? 말해 보세요. 알려 드릴게요.”

    5살짜리 준우의 아들이 꽂힌 음식이라고 해 봤자 뭐 얼마나 어려운 음식이겠는가. 며칠 그것만 죽도록 연습시키면 될 일이었다.

    “얼마 전에 유치원에서 캠핑을 갔다 왔다는데 거기서 먹은 치킨이 너무 맛있었대요.”

    “치킨이요? 튀기는 게 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근데 그게 그냥 치킨이 아니라서… 애 엄마가 아빠 만나면 아빠가 해 줄 수 있다면서 겨우 달래 놨다는데….”

    치킨이야 다 비슷비슷하지. 정확한 레시피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비슷하게는 만들 자신이 있었다. 호텔에서도 그런 부분은 벤치마킹을 열심히 했었으니깐.

    그걸 준우가 얼마나 따라 할 수 있냐가 문제였지.

    “혹시 비어캔 치킨이라고 아세요?”

    “비어캔 치킨이요? 그거 통으로 바비큐 하는 거 그거요?”

    “네 비어캔 치킨이라고 양념한 닭 엉덩이에 맥주캔을 꽂아서 통으로 훈제를 하는 건데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캠핑 요리래요. 아들놈이 그거에 꽂혀서 저 만나면 그거 만들어 달라고 한다고 벼르고 있대요.”

    “아… 맥주캔을 꽂아서… 통으로 훈제?”

    “아무래도 제가 하기엔 힘들겠죠?”

    비어캔 치킨이라는 음식은 딱히 어려운 요리는 아니었다. 튀기는 닭보다 만드는 게 어렵진 않은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냥 닭을 염지하고, 겉에는 양념을 한 뒤 맥주캔 하나를 꽂아서 바비큐 통에 넣으면 끝이다.

    하지만 그 바비큐 통이랑 장작을 태울 공간이 문제였다.

    준우의 집은 그냥 일반 아파트였고, 이곳 베란다로 어찌어찌 바비큐 통을 가져와 요리를 한다 해도 연기 때문에 주변이 난리가 날 것이다.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라… 서기관님 댁이 아파트라서요.”

    “그렇겠네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다른 요리를 더 열심히 배우는 수밖에요.”

    준우는 급격하게 시무룩해졌다. 아들이 파나르에 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아빠랑 캠핑하며 비어캔 치킨을 먹는 거랬다는데. 조금이라도 아들을 실망시키면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났다.

    “그러면 서기관님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요?”

    준우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기대하는 듯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사님한테 말해서 하루 정도 관저에 초대해 달라고 해 보세요. 가족들 전부를요.”

    “저희 가족을요?”

    “네 딱 하루만요.”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이 그 나라를 방문하면 공관장 재량으로 관저에 초대를 해 식사도 함께하고, 대사관을 구경시켜 주기도 한다.

    우리 아들, 딸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아빠, 엄마, 남편, 아내가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일종의 기를 살려 주는 이벤트라고 해야 할까? 공식적이진 않지만 관례처럼 내려오는 일이었다.

    “관저는 마당도 넓고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되어 있으니깐 비어캔 치킨도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아빠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고 자랑도 좀 하시고.”

    “정말요? 그래도 돼요?”

    “네 아직 만찬 행사 잡힌 것도 없어서 하루 정도는 충분히 시간 내 주실 거 같은데요?”

    “음… 그거 괜찮네요. 근데 관저에 가더라도 하루 정도는 제가 음식을 만들긴 해야 할 것 같아요. 와이프한테도 큰소리를 쳐 놓아서.”

    “그건 걱정 마세요. 쉬운 걸로 하나 알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 *

    다음 날 관저.

    “다음 주에 김준우 서기관 가족들이 온대요?”

    “네 이번에 아들하고 와이프분한테 제대로 점수를 따서 같이 살자는 말을 들어야 한대요. 그래서 꽤 심각한 상황입니다.”

    나는 김용수 대사님이 쉽게 허락해 줄 거란 걸 예상했다. 그래서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말투로 가볍게 얘기를 꺼냈는데 내 말에 더욱 신이 난 김용수 대사였다.

    “그래요? 그럼 내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겠구만. 오늘 당장 관저 마당 잔디 손질하는 사람도 좀 부르고, 테이블보는 세탁 맡기고, 테이블 가운데 놓을 수 있는 꽃도 이쁜 거 구해 놓으라고 할게요.”

    “그… 그렇게까지요?”

    “당연하죠. 이런 상황 나도 겪어 봐서 알아요. 외교관이면 당연히 향수병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은근히 맘고생 하는 직원들이 많아요. 내 식구 내가 제대로 챙겨야지.”

    외교적으로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할 때보다 더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김용수 대사였다. 나도 그런 반응에 덩달아 신이 나서 꼼꼼하게 만찬을 계획했다.

    비어캔 치킨은 물론이고, 커다란 폭립에 통삼겹살까지. 준우의 아들에게 제대로 된 캠핑 요리를 선보일 작정이었다.

    “그리고 마당에 텐트 몇 개 쳐 놔 줘요. 김준우 서기관 아들이 놀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제가 말해 놓겠습니다.”

    김용수 대사와 나는 아침마다 회의까지 해 가며 준우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 *

    퇴근 후 준우의 집.

    “대사님이 서기관님 가족들 관저로 초대하는 거 흔쾌히 허락하셨으니깐 걱정 마세요.”

    “네 들었습니다. 잘 말씀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럼 비어캔 치킨 만드는 덴 문제없는 거죠?”

    “당연하죠. 그건 제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깐 그날 와서 좀 도와주는 척이나 해 주세요 아드님 몰래.”

    “네 감사합니다.”

    준우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직 젊긴 해도 지금 나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데, 그런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럼 직접 만드실 메뉴 하나를 배워 볼까요?”

    “네 뭘로 할까요? 기왕이면 이것도 닭 요리면 좋겠는데.”

    “그러면 찜닭 어떠세요?”

    “오 찜닭! 좋습니다. 우리 아들이 비어캔 치킨을 알기 전에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찜닭은 그래도 기름에 튀기는 치킨보다 맛을 내는 게 조금은 수월하고, 양념 비율만 알고 있으면 초보자라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준우의 요리 실력은 초보자라는 말도 과분할 정도.

    그래서 나는 평범한 요리 수업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

    “서기관님, 섭섭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벌써 섭섭한대요?”

    “어쩔 수 없어요. 다 서기관님을 위한 일입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밑밥을 깔고 시작했다. 찜닭이 아무리 간단하다 해도 준우를 응원하며, 다독여 가며 가르쳐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랐고, 준우의 실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아예 생각이라는 걸 하지 마세요.”

    “네?”

    “그냥 알려 주는 건 무조건 외우세요. 고시 공부 해 보셨으니깐 그건 잘하시겠죠?”

    “그… 그렇긴 한데.”

    “무조건 외우세요. 그리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이 정도는 이래도 되겠지? 안 됩니다. 이 정도는 덜 넣어도 되겠지? 안 됩니다. 아셨죠?”

    “네….”

    그렇게 준우에게 물 한 방울도 오차가 없도록 레시피를 외우게 했다.

    설탕의 기능이 뭔지, 간장은 언제 넣어야 하는지 이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먹을 수 있는 찜닭을 만들도록 하는 것.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았다.

    미리 양념을 만들어 두라고 할까도 싶었지만 아들과 함께 만들 거라길래 그건 포기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똑같은 것만 연습을 시켰다.

    “맛이 어때요?”

    “와 대박. 이거 진짜 제가 만든 게 맞나요?”

    이렇게 하니깐 되긴 되는구나. 며칠을 연습하니 꽤 먹을 만한 찜닭이 나오긴 했다.

    주입식으로 가르쳐서 그런지 썩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신이 난 준우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어때요? 요령만 알면 할 만하죠? 요리에도 나름 코드라는 게 있어서 그것만 지켜 주면 먹을 만한 음식은 만들 수 있어요.”

    “요리는 과학이라더니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과학이 접목되는 요리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전보단 훨씬 나아진 상황이긴 했다.

    며칠 사이에 요리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칼을 쥐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능숙해진 준우였다.

    저 정도만 해도 큰 발전이었다.

    “좋아요. 이대로만 나오면 희망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이고 무슨 스승입니까.”

    연신 고개를 숙이는 준우였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내가 없이도 알려 준 찜닭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저 기도를 해 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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