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36화 (37/202)
  • 36. 철갑상어 요리

    힘도 힘이었지만 물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철갑상어의 자태는 무서울 정도였다. 저번에 수족관에서 봤던 철갑상어와는 사뭇 다른 느낌.

    이런 걸 보고 귀엽다고 한 윤아의 취향은 도대체….

    “좀만 더 당겨 주세요 대사님.”

    “그러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철갑상어는 일반 물고기와 달리 비늘이 없이 몸통이 미끌미끌하다. 미꾸라지의 큰 버전이라고 하면 되려나?

    뜰채로 건져 내려고 해도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녀석이었다.

    “됐다 됐다… 옳지!”

    “잡았어요?”

    “네 잡았습니다.”

    10여 분간의 사투 끝에 철갑상어 한 마리를 건져 냈다. 마수걸이에 이런 월척을 낚다니.

    이놈을 잡느라 힘이 빠져 낚시는 이걸로 끝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와아 진짜 무시무시하게 생겼네요.”

    “그렇죠? 좀 다르게 생기긴 해도 상어는 상어네요.”

    낚싯대 끝으로 철갑상어 머리를 툭툭 쳐 보았다. 보통 물고기라면 ‘통통’거리는 소리가 나야 정상이지만 이놈은 달랐다.

    마치 무쇠 투구를 두드리는 느낌.

    “장 셰프.”

    “네 대사님.”

    “철갑상어 손질해 봤어요?”

    바닷고기고 민물고기고 종류 상관없이 아무리 못해도 수천 마리는 손질해 봤을 것이다. 갑각류나 해산물은 물론이고, 설령 처음 보는 물고기라도 생김새만 보면 칼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감이 잡혔다.

    “어…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손질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요.”

    “그래요? 장 셰프도 못 하는 게 있군요.”

    어느새 나에 대한 이미지는 못 하는 음식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겨우 25살짜리 요리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 보면 김용수 대사의 머릿속에서 이제 내 나이는 완전히 지워진 모양이다.

    “듣기론 철갑상어를 회로도 많이 먹는다 하던데.”

    “맞습니다. 양식이 아니긴 하지만 이곳은 워낙 청정 지역이라 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철갑상어를 회로 먹으면 맛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김용수 대사는 괜히 꺼려지는 듯했다.

    나도 파나르의 철갑상어를 회로 먹어 본 적은 없었지만 일단 칼을 들었다.

    “에이 배 좀 아프면 회충약 하나 먹으면 되죠! 술안주로 또 회만 한 게 없지요.”

    “아… 참사관님.”

    노래를 멈추고 얌전히 있던 안지용 참사관은 가방에서 준비해 온 총각김치와 초고추장을 꺼냈다.

    낚시는 안 좋아한다면서 이런 건 또 준비했네.

    “애초부터 작정하고 오셨군요.”

    “낚시는 두 사람이 하면 충분하니깐 저는 양념이라도 챙겨야죠. 와사비도 있으니 걱정 마세요.”

    “하하하하.”

    어쨌든 한국식으로 회를 즐길 수 있게 되니 나도 김용수 대사도 나쁠 건 없었다.

    아무래도 민물고기라 조금은 비린내가 날 게 뻔했으니까.

    “일단 머리부터 자르고.”

    “어우 조심해요. 손 다칠 뻔했네.”

    철갑상어의 온몸은 미끌미끌하고, 머리 쪽은 철갑을 두른 것처럼 딱딱했다. 게다가 아직 팔팔했으니 단번에 칼을 넣는 게 쉽지 않았다.

    “쉽지 않네요.”

    “조심하세요. 정 안되겠으면 안 먹으면 되니깐 무리하지 말구요.”

    그건 내가 허락할 수 없었다. 겨우 생선 한 마리 따위에 굴복할 순 없지. 머리를 잘라 내니 손질을 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도마도 작고, 칼도 제 것이 아니라 그런지 영 불안하네요.”

    “허허허 장 셰프도 이제 좀 인간다운 면이 보이네요.”

    “그러게요. 주방에만 서면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을 사람 같다던데.”

    내가 주방에 선 모습을 직접 본 적 없는 안치용 참사관마저 저런 소릴 하는 거 보면 윤아가 아주 과장을 해 놓은 게 분명했다.

    “대부분은 딱 보면 각이 나오는데 이놈은 다르네요….”

    “괜찮아요. 어쨌든 이렇게 살점을 발라낸 것도 감지덕지지요.”

    울퉁불퉁 모양도 제각각이고, 두께도 전부 다른 살점을 보고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그치만 오랜만에 느껴 보는 초보자(?)의 마음이었다. 이놈은 내가 몇 마리 더 사서 정복하고 말겠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초장에 찍어 먹어야겠죠?”

    “그래도 처음은 철갑상어회의 순수한 맛을 먼저 즐겨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지용 참사관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아무런 양념도 소스도 없이 철갑상어회 한 점씩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그렇게 몇 번 씹더니 세 사람의 반응은 똑같았다.

    “퉤에.”

    “퉷.”

    “으엑.”

    살점은 쫄깃쫄깃하고, 색깔은 훌륭했지만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너무 심했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서 그런가?

    “식감은 쫄깃쫄깃해서 좋은데 맛은 영 별로네요.”

    “그러게요. 그냥은 못 먹겠네요.”

    나는 아예 먹는 걸 포기했는데 안치용 참사관은 준비해 온 초고추장에 와사비를 듬뿍 넣은 양념장을 만들어 기어코 철갑상어회를 먹었다.

    “이렇게 먹으니깐 먹을 만하네요. 드셔 보세요 대사님.”

    “이건 회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게 아니라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 먹는 수준 아닙니까?”

    “그럼 뭐 쫄깃쫄깃한 초고추장을 먹는다 생각하죠 뭐.”

    “하하하.”

    어쨌든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철갑상어회 맛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맑은 공기와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는 안주 없이도 술이 취하지 않게 해 주었다.

    훌륭한 맛의 쿠므스 덕에 안주는 조금 부족해도 상관없었고.

    “너무 좋네요 대사님. 저희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됩니까?”

    “안 참사관.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안 해요?”

    “저희 애들은 이미 다 커서 저 없는 게 더 편하고, 와이프는 대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는 김용수 대사였다.

    자식도 없다는 김용수 대사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무던해 보였다.

    “섭섭해할 상대도 있어야 섭섭한 거지. 나는 이제 그런 것도 없어요. 그니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요리사님은 아직 결혼 안 하셨죠?”

    “네 저는 아직입니다.”

    “그럼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도 아직이지만 또다시 그 사람과 인연이 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회귀한 지금도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미래의 아내가 될 여자는 한국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내 존재도 아직 모를 테고.

    “여자 친구도 없습니다.”

    “아하 그러니깐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된 거죠. 요리에만 올인했으니.”

    “하하 그런가요?”

    꼭 그런 건 아니다. 나도 일하면서 연애도 하고, 하고 싶은 건 어느 정도 하고 살았었다.

    저번에 한국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든 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서였다.

    “여튼 아쉽지만 계획대로 내일까지만 쉬다가 가시죠. 저는 내일 가 볼 데가 있어서요.”

    “에이 아쉽네요. 요리사님 너무 바쁘신 거 아닙니까 연휴인데?”

    나도 이곳이 너무 좋지만 하루 더 지내면 왠지 지루해질 것 같았다. 어차피 내일도 술이나 마시고 낚시나 할 게 뻔한데.

    조금 아쉬워도 내일 돌아가는 게 맞았다.

    * * *

    다음 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엄청 개운하네요.”

    “그니까요. 장 셰프 덕분에 잘 쉬다가 갑니다.”

    “에이 제 덕분이라뇨.”

    어젯밤 회는 그리 맛이 없었지만 남은 철갑상어 뼈로 끓인 매운탕은 꽤 훌륭했다. 그 매운탕으로 쿠므스 몇 병을 더 비우고, 아침까지 간단하게 먹고 차에 올라탔다.

    “근데 요리사님 아무리 공짜지만 쿠므스 너무 많이 챙긴 거 아닙니까? 저도 양심상 5병만 챙겼는데.”

    “아… 이건 제가 전부 마실 건 아니라서요.”

    알렉스가 실컷 마시고, 충분히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어제 아쉬울 것 없이 실컷 마셨고, 김용수 대사과 안지용 참사관 역시 5~6병씩은 따로 챙겼다.

    하지만 나는 박스에 쿠므스를 가득 담았다. 대충 새어 봐도 20병은 넘는 양.

    “어디 나눠 주실려구요?”

    “네 새로 오픈한 한식당에 좀 갖다줘 보려구요.”

    “아아 그땐 컨설팅해 준 곳이요?”

    시식회를 거쳐 새로 오픈한 한식당에 그 후론 가 보지 못했다. 김상율 한인회 회장님을 통해 소식을 들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특히 파나르인들의 재방문율이 높아진 게 제일 큰 변화라 했다.

    “이 쿠므스랑 한국 음식이랑 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어제 총각김치랑 밑반찬 몇 가지를 놓고 쿠므스 10병은 비운 것 같은 안지용 참사관에게 물었다.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냐는 말에 안지용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엄지만 치켜올렸다.

    하긴 어울리지 않았다면 그냥 술만 주야장천 마셨을 거다.

    “한식당에서 쿠므스랑 어울리는 메뉴를 추천해 주면서 팔면 더 많은 파나르인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한국인들에겐 막걸리를 대신할 수 있는 술이 생기기도 하구요.”

    한국 막걸리를 수입해 온다 해도 파나르에선 저렴한 가격으로 팔 수가 없다. 서민의 술, 비싸지 않은 술이라는 이미지의 막걸리를 한 병에 1~2만 원을 주고 먹는다는 건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쿠므스가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식당에서 이 쿠므스를 팔아 주면 저는 매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좀 자제해 주세요.”

    하루 사이에 쿠므스라는 술에 푹 빠져 버린 안지용 참사관이었다. 평소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렇게 질리지 않고 많이 마실 수 있는 술은 오랜만이라고 했다.

    적어도 몇 달간은 쿠므스를 종류별로 찾아 마셔 볼 거라 했다.

    “나중에 알렉스가 쿠므스병 귀퉁이에 조그맣게라도 한국어가 쓰인 라벨링을 해 준다면 한국인들도 많이 사서 마실 거구요.”

    “그건 내가 한번 제안해 볼게요. 내가 할 일 같네요.”

    김용수 대사도 재밌겠다며 직접 나섰다.

    나중에 사이다와 섞어서도 마셔 보고, 꿀이나 과일을 갈어서 넣어서 마실 수 있도록 한국의 다양한 막걸리 문화를 알려 줘야겠다.

    파나르에서도 쿠므스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술이니 다른 방식의 마케팅도 필요했다.

    그런건 알렉스보다 우리가 한 수 위인 게 확실했다.

    * * *

    한식당.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모님.”

    “아이고 덕수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왜 이제 왔어요?”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와서 그런지 식당 안은 손님으로 바글바글했다. 주말이라서 더 많은 것도 있었지만 평소에도 손님이 꽤 많이 늘어 기분 좋은 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죄송해요. 저도 요 근래 일이 좀 많았어요. 식당이 바쁜 걸 보니 기분이 좋네요.”

    “맞죠? 특히 파나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 줘서 좋아요. 젊은 사람들도 많고.”

    가게 안을 슬쩍 둘러보니 한국인들과 파나르인들의 비율은 딱 50:50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상적인 비율. 게다가 앳돼 보이는 파나르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사장님. 이거 받으세요 개업 선물입니다.”

    “아이고 이게 뭐야? 막걸리야?”

    “아니요. 쿠므스라는 술입니다. 아세요?”

    “알다마다. 요리 실력은 비슷할지 몰라도 파나르 생활은 우리가 한 수 위야 알지?”

    “당연하죠 하하하.”

    양이 그리 많지 않으니 손님들에게 한 잔씩 나눠 주거나 단골에게 내어 주며 한식과 잘 어울리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저 방 안에 있으니깐 저기로 들어가 봐.”

    “네? 무슨 방이요? 누가 있어요?”

    술을 정리한 상섭은 갑자기 날 안쪽 방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술만 건네주고 갈 생각이었는데 뭔가 착각한 모양이었다.

    “김준우 서기관 만나러 온 거 아니야?”

    “김 서기관님이 계세요?”

    주말이라 저녁을 먹으러 한식당에 온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약속이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곳에서 누굴 만나려고 하는가 보네.

    “저는 김 서기관 만나러 온 게 아니에요.”

    “그래? 혼자 와서 음식을 잔뜩 시켜 놓고 누굴 기다리는 거 같던데. 온 지 한 시간도 넘었어.”

    “그래요?”

    혼자 와서 많은 양의 음식을 시켰다는 김준우 서기관. 당연히 일행이 올 줄 알았는데 한 시간 넘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온 김에 얼굴이라도 비치고 가.”

    “그럴까요?”

    나는 준우가 있다는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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