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32화 (33/202)

32. 작전 성공

“이거 봐. 이거 무슨 물고기야?”

워크인이 나란히 있던 곳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서니, 이곳은 완전히 아쿠아리움이었다.

살아 있는 생선과 해산물이 가득한 어항들.

이 주방을 보며 이미 몇 번이나 놀랐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이제는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이렇게 철저히 요리사들을 위한 장소가 있었을까?

요리라는 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근데 그런 요리사들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다.

남는 식재료나 돈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마음껏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행복함을 숨기지 못했다.

“너 왜 자꾸 피식피식 웃어? 이 물고기가 웃긴 애야?”

“아니. 그냥 웃긴 생각이 나서 미안.”

괜히 찔렸는지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는 윤아였다. 웃기게 생긴 얼굴은 아니니까 걱정 마.

“이 물고기는 철갑상어네.”

“상어? 얘가 상어라고? 귀엽게 생겼는데?”

“엥? 이게 귀여워? 전혀 아닌데.”

진짜 상어처럼 크기가 크지 않아서 그렇지 귀엽게 생긴 물고기는 아닌데. 취향 참 독특했다.

어쨌든 철갑상어는 캐비어를 얻을 수 있는 생선으로 유명했다. 민물고기라서 생선 자체는 그리 맛있지 않았지만 캐비어만으로도 그 가치가 엄청난 생선이었다.

“얘가 그 캐비어 낳는 애야?”

“응 맞아. 아주 비싼 애지.”

“오호 이렇게 신선한 게 있는데 진짜 하나도 안 쓸 거야?”

살아 있는 철갑상어가 있다고 신선한 캐비어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캐비어는 소금에 절여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철갑상어와는 관련 없었다.

게다가 파나르 캐비어는 세계적으로도 품질 좋기로 유명한데 이 부자들이 이런 식재료에 눈이나 깜짝할까?

나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캐비어와 푸아그라, 송로버섯은 메뉴에서 제외해 버렸다.

부자들은 세계 3대 진미를 즐긴다는 사실이 너무 틀에 박힌 생각 같아서.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번에 절대로 캐비어랑 푸아그라, 송로버섯은 하나도 안 쓸 거야.”

“그런 거 없어도 우리가 준비한 게 진짜 먹힐까?”

몇 날 며칠을 함께 준비했지만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는 윤아였다. 걱정 마라. 부자들을 다루는 방법은 아무래도 이게 맞는 거 같으니까.

* * *

“그럼 지금부터 알렉스 회장님의 간단한 축사 후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많이 올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구나. 첫날에 가장 많은 손님이 온다곤 하지만 이런 생일 파티는 처음이었다.

“하루에 와인은 15병, 막걸리는 20병씩만 꺼내 놓을 거야.”

“좀 모자라지 않을까?”

모자랄 것이다. 모자라야만 한다.

그게 내 전략이었으니까.

대사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충분한 양을 만들어 놨지만 여기서 넉넉하게 내어 줄 생각은 없었다.

“윤아야 너 우리 막걸리랑 산머루 와인 마셔 봤어?”

“응 당연히 맛은 봤지.”

“어땠어?”

“솔직히 난 술맛 1도 모르는 사람인데 진짜 맛있더라.”

“그치? 그러니깐 많이 주면 안 돼.”

해발 3,000미터에서 눈이 녹아 흘러온 계곡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파나르의 쌀도 막걸리를 만들기에 아주 적합했고.

덕분에 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맛의 막걸리와 산머루 와인이 완성되었다.

“이번 파티에는 맛만 보여 주고, 국경일 행사에서 진짜를 보여 줘야지.”

“오….”

술의 맛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나왔다. 하지만 딱 하나 부족했던 건 숙성 기간. 파티에 가져온 술은 2주도 채 숙성시키지 못한 술들이었다.

먹걸리는 원주에 물을 덜 섞어 향과 알코올을 조절했다.

“일단 오늘하고 내일은 술만 계속 맛보여 주자.”

원래는 요리를 할 세 번째 날을 제외하곤 자유 시간이었다. 주변의 요리사들이 손이 부족하면 조금 도와주고, 구경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됐다.

하지만 나와 윤아는 산머루 와인과 막걸리를 잔에 담에 파티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무슨 와인이에요? 쉬라즈? 샤르도네?”

자신들이 선호하는 와인이 있는 듯 손님들은 레드 와인을 보면 품종을 물어 왔다.

윤아는 사람들이 묻는 게 뭔지도 모르고, 우리 와인이 그저 산머루로 만들었다는 것만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산머루? 그게 어디 와인이지? 이태리? 프랑스? 칠레인가?”

“한국의 와인입니다.”

“한국?”

우리의 입에서 낯선 포도의 품종과 전혀 예상 밖의 나라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내 예상대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품종도 처음 들어 보고, 한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지도 몰랐네. 한 잔 주세요.”

“나도 한 잔 할게요.”

와인의 품종이나 원산지들은 마치 백과사전처럼 줄줄 꿰고 있는 손님들이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와인에 마치 경쟁하듯 달려들었다.

이 파티에서 나온 술이란 것은 일단 싸구려가 아니란 의미였고, 그럼 내가 이 와인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는 심리였다.

그게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었고.

“이거 생각보다 되게 깔끔하고 맛있는데?”

“그러게. 근데 빈티지는 그렇게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진 않네. 몇 년산이죠?”

와인에 대한 지식이 단순히 허세는 아니었다. 빈티지가 짧은 와인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리는 손님들이었다.

“이건 만든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와인입니다. 역사가 길지 않은 와인이라 오래 숙성되면 될수록 얼마나 맛있는 와인이 될지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오….”

“아마 엄청난 와인이 탄생할지도 모르죠.”

“그럼 이것보다 더 숙성된 와인이 있습니까?”

2주밖에 되지 않은 와인도 이 정도로 입맛에 맞는데 제대로 숙성된 산머루 와인은 어떨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와인계의 다크호스가 될 만한 와인을 미리 알아봤다는 자신의 안목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파티에 준비한 와인은 전부 2주짜리 새 와인입니다. 연말에 있을 저희 대한민국 대사관 국경일 행사에 오시면 좀 더 깊은 맛의 산머루 와인을 드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나와 윤아는 수십 명의 호기심과 경쟁심을 자극해 놓았다.

일단 이 파티에서 취급했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맛도 괜찮았으니 이런 유니크한 와인을 먼저 즐기고 싶다는 부자들의 심리가 잘 먹혀들고 있었다.

“산머루 와인이랑 막걸리 인기 좋다. 생각보다 더 금방 팔리네.”

“맛도 맛이지만 이건 순전히 마케팅의 힘이지.”

“덕수야 너는 영업직을 했어도 잘했겠다.”

“그러려나?”

호텔에서 분기마다 매출 늘리라고 어찌나 압박을 해 댔는지. 내가 그래서 마케팅 책을 수십 권이나 읽었었지. 그게 조금 도움이 된 것 같긴 했다.

이튿날도 비슷한 페이스를 이어 갔다.

어제 왔던 사람들 중 다시 온 손님들도 당연히 있었고, 새로 맛보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방법으로 이게 한국 술이라는 기억을 각인시키기 위해 애썼다.

양이 적다며 컴플레인을 조금 받기도 했지만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술을 내는 건 예의가 아니란 말로 쉽게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현재로선 딱히 숙성이 더 잘된 와인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 * *

세 번째 날 아침.

“오늘은 우리도 음식을 준비해야 해.”

“에이 좋은 날 다 지나갔네.”

2일 동안 술을 내놓긴 했지만 그저 컵에 따르는 것 말곤 하는 일도 없었고, 그마저도 한두 시간 만에 동이 났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널널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준비한 음식을 선보이는 날이었다.

“돼지 5마리 좀 물에 담가 놔 줘. 핏물 빼야 해서.”

“으… 이건 네가 해 주면 안 될까?”

윤아에게 능숙한 주방 보조 역할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훌륭한 통역사로서 내 전략을 잘 전달했으니 지금부턴 내 몫이었다.

“오케이 산머루 와인이랑 막걸리 잘 팔아 줬으니깐 오늘은 나한테 다 맡겨.”

“그래도 정리 같은 건 할 수 있어.”

머리가 달린 돼지 만지는 걸 주저하는 윤아를 뒤로 보내고, 손질을 시작했다.

돼지의 핏물을 빼고, 각종 채소들과 향신료를 넣어 찌기 시작했다. 5마리 정도면 넉넉하진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볼 정도는 되는 양이었다.

“그러면 윤아야 이 돼지를 3시간 정도 찔 거거든. 잘 지켜봐 줘.”

“너는 어디 가게?”

“나는 밖에서 숯불 좀 준비하고 올게.”

얼마 전 관저에서 테스트한 바로는 애저찜을 한 번 더 구워 내도 충분히 풍미가 살아 있고, 육질도 부드러웠다. 모양 그대도 쪄 낸 새끼 돼지들을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 내 완성시키려 했다.

밖에 있는 화덕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여 준 뒤 다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피자며 바비큐며 많은 요리사들이 화덕을 이용한 터라 쉽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윤아야 소스 만드는 것 좀 도와줘.”

“알았어. 말만 해!”

쌈장에 간 마늘, 다진 양파, 쪽파, 사이다를 넣어서 쌈장 소스를 만들고, 된장에 참깨, 청양고추를 넣어 만든 된장 소스를 곁들일 생각이었다.

거기다가 비장의 무기가 담긴 소스를 하나 더 보태서.

“김치는 씻어서 좀 다져 주고, 토마토랑 양파, 청양고추 그리고 고수 넣어서 김치 살사 소스를 만들 거야.”

“김치 살사 소스? 이거 특이한데?”

쌈장이나 된장 소스도 맛있게 먹겠지만 조금 특색 있는 소스 하나가 있었으면 했다. 김치 역시 맛만 보여 줄 생각이었다.

“또띠아에 싸서 찍어 먹거나 올려 먹을 수 있게 만든 거라서 좀 상큼하게 만들었어.”

“이거 나중에 나도 좀 알려 줘. 대박이야.”

“얼마든지.”

애저찜을 싸 먹으라고 밀전병을 부쳐서 내어놓으려고 했는데, 양도 너무 많고 또띠아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라 그냥 그걸 활용하기로 했다.

올려 먹는 소스만으로도 충분히 한식의 향을 낼 수 있었으니.

“자 이제 돼지고기 꺼내러 가자.”

“후우… 가자!”

통돼지를 보는 게 그렇게 힘든가? 하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원활한 주방 보조 역할을 시키기 위해 윤아를 먼저 맛보게 해 줘야겠다.

“윤아야 이거 한번 먹어 봐.”

“내가?”

“응 네가 먼저 맛봐 봐 뭐 이상한 거 없는지.”

불편한 사람처럼 애써 젓가락을 들어 올리는 윤아였지만 고기가 한 점 입으로 들어가자 단번에 표정이 달라졌다.

“어때?”

“대박. 껍질은 이렇게 바삭한데 속살은 아예 녹아내리는 수준인데?”

그럴 줄 알았다.

어쨌든 내가 생각한 대로 애저찜이 아닌 애저구이가 완성되었다. 다리 한쪽을 뜯어 먹겠다는 윤아를 겨우 말리고 손님들 앞으로 가져갔다.

예상대로 내 음식의 맛이 어떻든 냄새와 비주얼로 손님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옆에 놓여 있는 소스들도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고.

우리는 음식 옆에다가 서둘러 산머루 와인과 막걸리를 담아 올려 두었다. 음식을 한 점 먹은 뒤 자연스럽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이 음식은 새끼 돼지를 이용한 만든 한국 음식으로서 옛날 왕들이 연회에 주로 먹던 음식입니다.”

왕들이 먹던 음식이라는 소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아마 3일 내내 나온 음식들이 전부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겨 먹던 음식들일 테니.

그럼에도 내 음식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이유는 바로 이틀 동안 공을 들여 놓은 입소문 때문이었다.

“미스터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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