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27화 (28/202)
  • 27. 화상 회의

    “좋은 아침입니다. 장 셰프.”

    “네 좋은 아침입니다, 대사님.”

    기자단이 다녀간 후 김용수 대사는 한동안 행사를 잡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며, 음식이며 평소보다 고생했으니 나에게 휴식을 준 것도 있었지만 윤아의 말을 들어 보니 하루걸러 올라오는 대사관에 대한 기사를 읽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덤으로 번역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윤아의 하소연까지 들어 줘야 했다.

    얻어먹기만 하고 아무 기사도 올리지 않는 기자들도 있을 법한데, 그날 그 기자들은 적어도 직업 정신은 투철한 사람들이었다.

    일단 샤샤 거를 제외하고도 12개는 훌쩍 넘는 기사. 앞으로 더 올라올 수도 있는 거였고.

    “샤샤 씨의 안스타인지 뭔지에도 글이 올라왔던가요?”

    “아 안스타요? 물론입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글이 올라왔더라구요. 사진도 맘에 쏙 들구요.”

    “다행이네요. 다음에 나도 그거 한번 보여 줘요.”

    칙칙하기만 하던 샤샤의 안스타에 최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피드 하나가 업로드되었다.

    내용은 당연히 내 음식에 대한 칭찬. 아니, 나에 대한 칭찬이라 하는 게 더 정확했다.

    처음에는 읽기 민망할 정도로 극찬을 해 둬서 사진만 보고 넘겼는데 오늘까지 그 글을 30번은 넘게 읽어 본 것 같다.

    번역한 기사를 수십 번 읽는 김용수 대사의 맘도 이렇겠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둘 다 기사나 피드를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 몸속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근데 장 셰프.”

    “네 대사님.”

    “혹시 정장 같은 거 있어요?”

    “정장이요?”

    뜬금없이 무슨 정장?

    요리사들은 일이 고되기 때문에 출퇴근 땐 최대한 편한 옷만 찾게 된다. 근무 중엔 조리모를 써야 하니 항상 모자도 눌러쓰고.

    귀한 손님이 온다 해도 깨끗한 조리복을 입고 대접하지 정장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정장 같은 건 없다는 말이었다.

    “정장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

    “그럼 깔끔한 셔츠 같은 건요?”

    “그냥 남방 같은 건 있는데….”

    “사이즈가 달라서 내 걸 빌려줄 수도 없고….”

    뭐 때문이지? 내가 동행할 현지인 경조사라도 있는 건가?

    정장은 없다는 말에 김용수 대사는 적절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아! 그럼 조리복은 몇 벌이나 가지고 있나요?”

    “네 조리복은 입던 거 말고 새것도 아직 두 벌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럼 조리복을 입는 게 낫겠군요 차라리.”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건 확실해 보였다. 조리복은 흰색이니깐 장례식이나 엄숙한 곳에 가는 건 아니겠고.

    “오늘 오후에 대통령님을 만날 겁니다.”

    “네? 대… 대통령님이요? 우리나라 김채훈 대통령이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벤트였다. 갑자기 대통령이라니. 내가 그런 자리에 동행을 한다고?

    근데 김채훈 대통령이 오늘 파나르에 방문한다고 했던가? 그런 내용은 뉴스에서도 못 본 것 같은데.

    “네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에 화상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아… 회상 회의요? 휴우.”

    나도 모르게 다행이다라며 중얼거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화상 회의라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

    “장 셰프는 대통령님 처음 뵙는 거죠?”

    “아니요. 운이 좋게도 파나르에 오기 전에 한 번 뵈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겠군요.”

    나야 당연히 알다마다.

    하지만 대통령님이 몇 달 전 잠시 마주친 일개 요리사인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와 대사관 전 직원들이 함께 대통령님과 화상 회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장 셰프도 참석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라면 파나르 시간으론 12시. 12시부터 점심시간이지만 상위 기관의 스케줄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대사관에 올 때 제일 깨끗한 조리복을 입고 오세요. 그게 오히려 정장보다 낫겠네요.”

    차선책이었지만 오히려 더 맘에 들었는지 미소를 짓는 김용수 대사였다.

    아침부터 내내 싱글벙글한 표정의 김용수 대사. 그리고 이 시기에 잡힌 대통령과의 회상 회의.

    정확한 내막은 몰라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냥 회의라 하더라도 몇 번 더 내 얼굴을 비추는 게 유리했다. 이렇게 조금씩 청와대와 가까워지는 거지 뭐.

    아침부터 들뜬 맘을 겨우 가라앉히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빨리 끝내고 그나마 더 깨끗한 조리복을 골라야지. 넥타이를 고르듯이 새 스카프도 하나 꺼내야겠다.

    * * *

    파나르 대사관 회의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서기관님.”

    “아이고 우리 요리사님. 반갑습니다.”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며 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김준우 서기관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주었다.

    집들이 이후론 처음이긴 했지만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줄 알겠다.

    하지만 김준우 서기관이 왜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였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요리사님 덕분에 우리 대사관이랑 청와대랑 단독 회의가 잡혔어요.”

    “저요? 저는 한 게 없는데.”

    “없다니요. 이게 다 요리사님의 사찰 요리 덕분인데요.”

    보통 공관장 회의는 일 년에 한 번 한국에서 모든 공관장들이 직접 모여 진행하거나, 아니면 가까이 있는 나라들끼리 묶어서 화상 회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단독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라 했다.

    “제 생각엔 아마 특별 포상을 내려 주실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정말요?”

    준우는 대통령에게 직접 얼굴도장을 찍는 것도 좋지만 인사 고과에 영향을 줄 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이번 기자단 오찬에는 참석하지 않아 오늘 날 보자마자 고맙다는 표현을 끝도 없이 하고 있었다.

    “서기관님, 이제 그만 고마워하셔도 됩니다. 다 같이 준비해서 이런 결과를 낸 거죠.”

    “그래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보면 우리 장 셰프님 아니었으면 애초에 오찬 행사가 잡히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거야 맞는 말이지.

    김용수 대사가 날 절대적으로 신뢰했으니 샤샤와 그런 협상을 할 수 있었고, 그 바쁘시다는 기자단 전원을 초대할 수 있었으니.

    나의 공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풉.

    “자 그럼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준우는 긴장한 듯 한숨을 내뱉더니 떨리는 손끝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모니터의 화면이 잠시 멈추더니 뒤이어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파나르 대사관 직원분들. 대통령실입니다. 들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이 얼굴을 드러내자, 준우를 비롯해 모든 직원들이 인사는 힘차게 내뱉었지만 그 뒤론 긴장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가만히 듣고 있을 뿐.

    “오늘 이렇게 화상 회의를 진행하게 된 건 최근 파나르 대사관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함입니다.”

    예상대로 단독 회의가 잡힌 건 파나르 대사관을 칭찬해 주기 위함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시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 주신 김용수 대사님과 직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또 파나르 대사관이 이번 분기 최우수 공관으로 선정되었다는 것도 함께 알려 드립니다.”

    “오예.”

    최우수 공관으로 선정되었다는 말이 나오자 기쁨을 참지 못하고 터진 준우의 탄성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회의는 준우의 오예 덕분에 한결 가벼워졌다.

    “감사합니다. 본부와 청와대에서도 적극 지원해 주셨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용수 대사와 대통령의 형식적인 인사가 몇 마디 오간 후 대통령의 관심은 나에게로 쏠렸다.

    “요리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번에 직접 대면했을 땐 이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그땐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정이 불타오를 때라 그랬나.

    어쨌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서둘러 헛기침 몇 번을 한 뒤 대답을 이어 갔다.

    “어려운 상황이 많았는데도 오만찬 행사를 잘 치렀다고 들었어요.”

    “김용수 대사가 잘 이끌어 주고, 기회를 줘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 대사에 그 요리사군요.”

    “네?”

    대통령은 아리송한 말을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다음 나온 말이 앞의 상황을 전부 잊게 해 줬으니까.

    “최우수 공관으로 선정되면 그 분기 인사 고과 점수는 무조건 만점이란 건 알고 계시죠?”

    “예!”

    날 보고 물어본 것 같았는데 대답은 준우의 입에 튀어나왔다. 김용수 대사와 대통령은 그게 귀엽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해당 공관 직원들은 성과금의 최대치를 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정말요?”

    “와아!”

    성과금 최대치라는 말은 준우뿐만 아니라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매번 점잖고 차분하던 안지용 참사관 역시 이번엔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맘 같아서는 더 많은 걸 해 드리고 싶은데 그건 형평성에도 어긋나고, 또….”

    “괜찮습니다.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대통령님.”

    김용수 대사는 이걸로 충분하다는 듯 아쉬워하는 대통령의 말을 끊었다. 공무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받았으니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이번에 올라온 기사들은 한국 뉴스에서도 볼 수 있게 조취를 취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김용수 대사가 먼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준우는 거의 큰절을 하듯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렇게도 좋을까.

    첫 부임지라 넘치는 의욕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그나저나 장덕수 셰프?”

    “네 대통령님.”

    맨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는데 조리복을 입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대통령은 맨 뒤에 있는 날 기어코 화면 앞으로 불러냈다.

    “저번에 우리가 처음 봤을 때 장덕수 셰프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질문의 내용을 보면 역할이 바뀐 것 같지만 분명 대통령이 나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내가 한 말이니 나는 당연히 기억이 나지.

    지금도 그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중인데.

    “네 당연히 기억납니다.”

    파나르에서 돌아오면 이곳 청와대에서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었다.

    “나도 언젠가 장 셰프의 음식을 한번 먹어 보고 싶네요.”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몇 달이 지났지만 대답을 해 주니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내 임기 내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중에 청와대가 아니어도 나에게 맛있는 음식 한번 만들어 줄 수 있나요?”

    “무… 물론입니다.”

    그땐 어린놈이 그런 곳에서 수습 기간 3개월이나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을 했겠지. 여차하면 요리사를 바꿔 버릴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이젠 오히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먼저 내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내 목표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다가섰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이번 오찬의 주인공인 장덕수 셰프에게 선물 하나를 더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오찬의 주인공이란 단어도 놀라웠고,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말도 놀라웠다.

    김용수 대사는 나에 대해 어떻게 보고를 했길래 대통령이 날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 덕에 대통령은 나에게 아주 과분한 선물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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