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7화 (18/202)
  • 17. 시식회 2

    “이걸 넣으면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섭과 민경은 못 볼 거라도 봤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내가 이것을 소스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고사리나 시금치 같은 나물에 고추장을 넣고 비벼도 충분히 맛있지만 파나르 사람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채소들이라서요….”

    “채소들은 맛과 식감을 살리기 위해 살짝만 볶아 주신 거예요?”

    “네 맞아요. 최대한 익숙한 채소 맛들을 살리기 위해서요.”

    “다 좋은데 이것들만 넣으면 너무 허전하지 않을까요? 고추장처럼 뭔가 강한 맛의 소스가 없으면 재료들이 다 따로 놀 것 같은데.”

    맞는 말이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고추장은 간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각각의 고명들과 밥의 맛이 따로 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잘 섞여서 어우러지도록.

    “그래서 마요네즈를 한 스푼 넣는 거예요. 위에 올리는 불고기로 간을 하고, 마요네즈 한 스푼을 넣어서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해 줄 거예요.”

    말로만 들어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마요네즈의 마법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매운맛과 짠맛을 적당히 중화시켜 주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을 어울리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재료였다.

    “음…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맛을 쉽게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걱정하시는 것보단 맛있을 거예요. 나중에 시식회 시작하면 두 분도 한번 드셔 보세요.”

    처음 시식회를 준비할 때 경쟁의 냄새가 풍겼었다. 비록 내 나이가 어리지만 대사관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고, 대화를 나눌수록 내공이 상당한 것을 느꼈을 테니, 맛으론 지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서로 몰랐던 사실을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자 그럼 다른 음식들은 거의 다 준비가 된 거죠?”

    “예 시작하면 따뜻하게 익혀서 나가면 됩니다.”

    탕, 볶음, 비빔밥까지 각자의 개성대로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유 요리.

    나는 가게 매출에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 확신이 든 메뉴를 선택했다.

    “두 분은 자유 요리 뭘 준비하셨어요? 저는 치킨을 준비했습니다.”

    “치킨이요?”

    튀김 요리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던 두 사람이었다. 번거롭고 쉽지 않은 요리지만 맛 하나는 최고인 튀김 요리를 빼는 건 아쉬운 선택이었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선 꼭 필요한 메뉴였기 때문에 난 치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네. 간장 양념이랑 프라이드치킨은 파나르식으로 좀 바꿔서 준비해 봤어요. 두 분은요?”

    내가 치킨을 준비했다는 말에 두 사람의 동공이 흔들렸다. 서로 두어 번 눈빛을 주고받더니 민경이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저희도… 치킨이요. 프라이드랑 양념 치킨.”

    “그래요? 두 분도 결국 치킨을 고르셨어요?”

    “네 사실 예전에 장사할 때를 생각해 보니 치킨을 찾던 사람이 꽤 있었거든요. 그땐 뭐 손님 한둘 놓치는 거 크게 신경 안 썼는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져서….”

    “잘 생각하셨어요. 식당은 손이 바쁘면 바쁠수록 장사가 잘된다고 하잖아요. 조금 힘들겠지만 분명 지갑은 두둑하게 해 줄 거예요.”

    “그렇겠죠? 근데 양념은 그렇다 쳐도 프라이드는 어떤 식으로 하려구요? 파나르식?”

    소스도 서로의 스타일대로 나뉘었다.

    나는 맵지 않고, 달콤짭짤한 간장 양념을 선택했고, 두 사람은 전형적인 빨간 양념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양념보단 치킨 자체에 중점을 두고 레시피를 만들었다. 양념 소스야 둘 다 팔면 그만.

    “샤슬릭을 먹어 보니깐 카레 향이 좀 나더라구요?”

    “카레요? 그 향을 카레라고 할 수 있지요. 엄밀히 말하면 카레는 아니지만.”

    파나르의 국민 음식 중 하나인 샤슬릭엔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다. 요거트로 닭의 잡내를 없애 주고, 커민, 강황, 후추, 마늘 등으로 밑간을 해 줘 구워 낸다.

    커민, 강황, 생강 등 각종 향신료를 합쳐 놓은 것이 카레 가루이니 닭에서 카레 향이 은은하게 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기본 프라이드치킨 반죽에 카레 가루를 조금 섞으려구요. 그렇게 만드는 치킨집 많잖아요.”

    두 사람은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요네즈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지만 카레 가루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하는 듯했다.

    “자 한번 해 보면 알겠지요. 뭐가 정답인지 모르니깐 사람들 입맛에 맡겨 봅시다!”

    이제 준비는 완료되었다.

    직원을 많이 채용하고, 재료를 최대한 많이 준비해 놓고 장사를 하고 싶지만 소상공인들은 그럴 수가 없다.

    최대한 호불호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해서 매출을 향상시켜야 했다.

    이번 시식회 한 번으로 딱 정답을 내릴 순 없겠지만 앞으로 생겨날 파나르의 한식당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정도는 수집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해물탕, 비빔밥, 제육볶음 그리고 치킨을 각각 2그릇씩 가져가시면 됩니다. 드셔 보시고 더 입맛에 맞는 쪽에다 투표를 해 주시면 됩니다.”

    색깔이 다른 접시에 상섭과 민경이 만든 음식,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들을 담아 시식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누가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좀 더 본인 입맛에 가까운 음식에 투표를 해 달라고 했다.

    투표지엔 왜 이 음식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와 함께.

    “꿀꺽.”

    마치 대회장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듯 식은땀이 흘렀다. 승자와 패자는 없었지만 내 음식에 대한 평가를 듣기 전엔 항상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30년 넘게 겪었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1시간 후.

    “거의 다 드셨죠? 그럼 5분 후에 투표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율의 외침을 끝으로 사람들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았다. 파티에 온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음식을 즐겼던 사람들의 표정엔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입맛의 차이였지 오늘 준비한 음식들은 전부 훌륭한 맛이었을 테니.

    “그럼 시식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아 주세요. 세 분도 이제 좀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상섭과 민경,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자 상율은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사람들 역시 너 나 할 것 없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오늘 시식회는 어떤 음식이 더 맛있고, 없고를 나누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한식당을 시작으로 파나르에 더 많은 한식당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시식회입니다.”

    상율이 입을 열자 좌석에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아까부터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주위가 조용해지자 더욱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개인 블로거치곤 꽤 전문적인 것 같은데.

    내 음식이 카메라엔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율은 화이트보드에 결과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해물탕입니다. 매운탕처럼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과 맑고 담백하게 끓인 해물탕의 결과는 바로!”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진하게 끓인 상섭의 해물탕과 깔끔하게 채수로만 끓여 낸 나의 맑은 해물탕의 대결이었다.

    “27대 13으로 얼큰한 매운탕의 승리입니다!”

    “오호.”

    이렇게나 많은 표 차이로?

    시작부터 의외의 결과였다.

    파나르 사람들에겐 많이 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럼 왜 얼큰한 매운탕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몇 가지 읽어 보겠습니다.”

    상율은 투표 용지 몇 장을 무작위로 꺼내 읽어 내려갔다.

    “맑은 해물탕은 맵지 않아서 좋았지만 생선의 비린내가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해물탕에 고수를 넣어서 먹으면 우리 파나르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파나르 시식단 중 하나의 의견이었다.

    국물이 많은 음식이라 양념의 맛이 그렇게 맵지 않게 느껴졌고, 미나리나 쑥갓 대신 파나르 사람들이 자주 먹는 고수를 넣어 주면 더욱 좋을 거란 의견이었다.

    “역시 두 분의 내공은 대단하십니다.”

    “허허허 사실 옛날부터 해물탕은 무난하게 잘 팔리던 메뉴였어요.”

    내가 두 사람을 치켜세워 주자 상섭과 민경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한편으론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제 한숨 돌린 듯했다.

    “무조건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닌가 보네. 나도 기억해 둬야겠다.”

    매운 음식은 적당히 매워야 한다는 상섭의 이론이 이번엔 맞아떨어졌다. 파나르 사람들이 아예 매운맛을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내 착각이었다.

    “두 번째는 제육볶음입니다.”

    두 번째 메뉴 또한 매운 음식.

    대신 상섭의 양념은 장류를 많이 사용했고, 마늘 또한 내 것보다 많이 넣어 음식을 만들었다. 이것도 매운탕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제육볶음의 결과는 바로 바로! 23대 17로 이 제육볶음의 승리입니다.”

    “오예!”

    이번엔 사람들이 나의 제육볶음에 더 많은 표를 던져 줬다.

    나 역시 고춧가루를 사용해 매운맛을 내긴 했지만 고추장, 된장, 간장의 사용을 극도로 줄였다.

    진한 장맛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고, 그렇게 만들면 매운 향이 입 안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이유를 몇 가지 읽어 볼까요?”

    “네에!”

    “반대쪽 제육볶음은 몇 개만 먹어도 너무 짜서 못 먹겠습니다. 그리고 둘 다 맵지만 이상하게 이 제육볶음은 매운맛이 입 안에서 사라지지 않아 많이 먹기 어렵습니다.”

    내 예상대로였다.

    파나르 사람들이 먹기엔 다소 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양념장이었다. 해물탕은 국물이 많아서 약간 매운맛이 첨가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제육볶음은 달랐다.

    “허허허 한국 사람들도 좀 세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네요.”

    “아무래도 경상도나 전라도 음식들이 좀 양념이 세니까요. 고향이 서울이나 충청도 쪽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이건 중간을 좀 찾아야겠네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입술이 튀어나왔지만 내가 설명해 주자 금세 수긍하는 상섭이었다.

    “세 번째로는 비빔밥입니다! 한식의 대표 메뉴이죠?”

    대표 메뉴인 만큼 들어가는 재료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었고, 조리법도 다양한 음식이었다.

    “비빔밥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아주 근소한 차이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소 모험적인 레시피의 선택이었다.

    파나르 사람들은 마요네즈를 국민 소스처럼 먹었지만 비빔밥이라는 생소한 음식에 넣은 마요네즈까지 좋아해 줄지는 의문이었다.

    나한텐 분명 맛있기는 했지만.

    “21대 19로 마요네즈가 들어간 비빔밥이 더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오? 정말?”

    “에? 밥에다가 마요네즈를 섞은 게 더 맛있다고?”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상섭과 민경도 마요네즈가 들어간 비빔밥이 이겼다는 것을 듣고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기분이 나쁜 것보다 본인들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조합이었으니.

    “나도 어디 한번 맛 좀 봅시다.”

    “저두요.”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요네즈가 들어간 비빔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하지만 괴상한 맛이 날 거라 예상했는지 첫 숟가락 위엔 밥알 몇 개만 올려져 있는 수준이었다.

    “와아 마요네즈가 이런 맛을 내?”

    “우리가 아는 그 마요네즈가 밥이랑 이렇게 잘 어울렸어?”

    “파나르 사람들에게 고추장만 사용하는 건 너무 매워서 그런 걸까?”

    “그랬을 수도 있어요. 이유를 한번 들어 보죠.”

    상섭과 민경은 마요네즈가 생각보다 밥과 잘 어울린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고추장보다 더 낫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인들 입장에선 아무리 봐도 고추장이 더 나은데.

    “왜 시식단이 이 비빔밥을 선택했는지 몇 개 읽어 보자면, 매운 게 싫은 건 아니지만 고추장소스는 입 안에서 매운맛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고통스럽다. 그리고 마요네즈만 넣은 것도 좋지만 조금 느끼하기도 하니 원래 비빔밥에 고추장 반과 마요네즈 반을 같이 넣어도 맛있을 것 같아서 마요네즈를 선택했다라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 손님들에게 기존처럼 고추장소스만 제공하고, 파나르인 손님이나 매운 걸 싫어하는 손님들에겐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함께 제공하는 방법.

    이 정도면 주방 동선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레시피였다.

    “자 이제 마지막 음식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음식은 우리 한식당 매출에 도움을 줄 만한 메뉴를 각자 선정해서 선보이는 자유 요리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메뉴가 같았습니다.”

    메뉴가 같다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지만 같은 음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이 시식회가 맘에 든 사람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엄청난 실력자들이 내놓는 음식들이기에 혀가 호강하고 있었다.

    “남은 그릇만 봐도 그 맛이 어땠는지 알 수 있겠네요. 치킨의 결과를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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