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6화 (17/202)
  • 16. 시식회 1

    “그럼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상섭과 민경의 요리 실력이 완전 초짜도 아니었고, 파나르에서 식당을 운영한 경험은 오히려 나보다 길었다.

    무조건적으로 내 말이 맞다고 우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떻게요?”

    “두 분의 요리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닌 게 증명이 되었으니, 파나르 사람들의 취향을 조금 더 파악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바꾸자가 아니라 파악해 보자라는 말이 일그러진 상섭의 얼굴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다.

    상섭과 민경 역시 계속해서 자기 고집만 부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겁니다.”

    “사람들이요? 어떤 사람들?”

    “한국과 파나르 사람들 모두에게요.”

    이전의 식당이 한국인 교민들만을 위한 식당이었다면 새롭게 오픈할 식당은 파나르에 사는 모두를 위한 식당이 되어야 했다. 당연히 파나르인들의 방문도 많아져야 했고.

    “일종의 시식회를 해 보자 이 말이죠?”

    “네 맞아요. 누구의 말이 정답인지 알 수 없으니, 테스트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 보자는 거죠.”

    “음….”

    상율과 상섭, 그리고 민경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런 이유라면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기에 딱 적합한 방법이었다.

    “방식은 이렇게 해 보시죠.”

    “어떻게요?”

    호텔에서 신메뉴 테스트를 할 때면 항상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주방 직원을 제외하고 무작위로 호텔 직원을 선정해서 심사 위원으로 앉힌다.

    요리사에 대한 정보는 전혀 주지 않은 채 준비된 음식 몇 가지를 맛보게 한 뒤 평가한다.

    항상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정한 신메뉴들은 대부분 반응이 좋았었다.

    “한국인 교민 20명, 순수 파나르인 20명. 이렇게 모아 두고 사장님이 만든 음식이랑 제가 만든 음식을 먹게 해서 어느 쪽이 입맛에 더 맞는지 고르게 하는 거죠.”

    “음식은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게 하고?”

    “네 맞아요. 두 분은 이전처럼 두 분 스타일대로 음식을 만드시면 되구요. 저는 제가 생각한 대로 음식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세 사람 다 내 제안이 딱히 싫지 않은 눈치였다.

    상섭과 민경도 이렇게 해서 이전보다 장사가 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럼 시식 메뉴는 뭐로 할까요?”

    “음… 공정한 평가를 위해선 아무래도 통일하는 게 좋겠죠?”

    “그렇겠죠. 똑같은 메뉴를 정해 놓고, 각자 스타일대로 요리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렇긴 한데 하나 정도는 다른 요리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탕, 볶음, 밥류 그리고 자유 요리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오!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거 같네요.”

    한번 의견이 합쳐지자 일사천리로 가닥이 잡혀 가기 시작했다.

    “그럼 탕은 해물탕, 볶음은 제육볶음, 밥류는 비빔밥, 그리고 자유 요리는 각자 생각하기에 잘 팔릴 만한 메뉴로 어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러면 시식단 모집은 나한테 맡기시죠.”

    시식 메뉴가 결정이 되자 지켜만 보던 상율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가장 깊고 오래된 상율의 파나르 인맥.

    게다가 공짜로 음식을 맛보게 해 준다는데 40명쯤은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이것저것 준비해서 다음 주 주말에 시식회를 해 볼까요?”

    “네 좋습니다.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말씀드릴 테니 좀 구해 주시겠어요?”

    “말만 하시죠. 제가 다 준비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파나르 한식당 재오픈을 위한 시식회까지 개최하게 되었다.

    대결까지는 아니었지만 다수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준비해 봐야겠다.

    * * *

    “안녕하세요, 요리사님.”

    “어? 윤아 씨 오랜만이네요. 관저엔 어쩐 일이세요?”

    한창 일상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관저에 윤아가 찾아왔다. 최근에 만찬 행사가 없으니 마주칠 일도 없었다.

    “웬일이긴요. 일하러 왔죠. 관저에 있는 미술품 좀 세어 보러 왔어요.”

    관저는 공관장이 거주하는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외교 행사를 치르는 공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림이나 도자기 등 미술품 등을 진열해 두기도 한다.

    마치 작은 박물관처럼.

    “요즘 바쁘신가 봐요 요리사님?”

    “저요? 아니에요. 만찬 행사도 없어서 여유 있어요.”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이번 주말에 재밌는 거 하신다면서요?”

    “주말에요? 아아 시식회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초대받았거든요. 헤헤.”

    윤아는 연예인들 파티에라도 초대받은 사람처럼 자랑했다. 어떻게 알고 참여했는지.

    이런 일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윤아였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고 초대받으셨어요?”

    “제가 한인회 회장님하고 친분이 좀 있지요 후후.”

    “대단하시네요.”

    “그나저나 요리사님 자유 요리는 뭐로 하실 거예요?”

    누가 보면 행사 스태프라도 되는 줄 알겠다.

    진행하는 방식부터 종목까지 전부 꿰고 있었다.

    “음… 글쎄요. 아직 못 정했어요. 사실 치킨 할까 생각 중인데.”

    “오 치킨 좋죠. 예전에 그 식당에 가면 치킨이 없어서 엄청 아쉬웠거든요.”

    “저도 그래서 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어때요?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파나르 사람들의 취향을 물어볼 때 윤아만 한 사람이 없었다. 말이 잘 통하는 파나르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여기 사람들도 치킨 비슷한 음식을 많이 먹기는 하는데 튀긴 게 아니라 굽는 거라서요. 닭고기 자체를 좋아할 거 같긴 한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헤헤.”

    “샤슬릭 말하는 거죠?”

    “오 요리사님 샤슬릭 아세요? 저랑 안 먹어 봤잖아요.”

    “네 그냥 길 가다가 보이는 게 샤슬릭 가게라서 좀 알아봤어요.”

    파나르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저번에 먹었던 볶음밥인 플롭과 꼬치 요리인 샤슬릭이란 요리였다.

    양, 닭, 돼지, 소 등등 고기란 고기는 종류별, 부위별로 다양하게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굽는 요리였다. 특유의 향신료를 뿌려 구워 내는데 한국인들에겐 호불호가 좀 갈릴 듯한 맛이었다.

    “그거랑 비슷하게 만들면 먹을 거 같은데.”

    “알겠어요.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저는 오늘부터 굶을 생각입니다. 이번 주말을 위해서요.”

    “엥? 그건 너무 오버 아니에요?”

    “절대! 네버! 제가 그 식당도 단골이었고, 요리사님 음식도 먹어 본 사람으로서 이 시식회는 단순한 시식회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세기의 대결!”

    “풉. 대결은 무슨 대결이에요. 그냥 시식회에요 시식회.”

    “그냥 시식회라뇨! 저는 벌써부터 어떤 음식을 골라야 할지 머리가 깨질 거 같은데요. 보나 마나 둘 다 엄청나게 맛있는 걸 만들어 주실 거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두 사람의 요리 내공도 장난이 아니란 걸 직접 눈으로 봤으니.

    그때 먹은 김치 맛은 아직도 입에 맴도는 것 같았다.

    “여튼 주말에 뵐게요, 요리사님.”

    “네 주말에 봬요.”

    * * *

    “이제 가게가 다 완성되었네요?”

    “네 메뉴만 확실히 정해지면 이제 바로 장사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가게는 완전히 준비를 끝마쳤다.

    인테리어도 파나르에선 보기 힘든 디자인이었고, 의자며 테이블이며 전부 새 걸로 바뀌어 있었다.

    “남들은 그냥 다시 장사하는 줄 알겠지만 저희는 나름 목숨을 걸고 하는 겁니다.”

    상섭은 이 가게에 사활을 걸었다.

    그 나이에 타국에서 취직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좋아하는 음식을 하며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의도치 않게 시작했지만 이번 시식회가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요. 근데 저분은 설마 기자예요?”

    “하하 기자라고 해야 하나? 뭐 메이저 언론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그 같은 거 하는 사람입니다. 근데 영향력이 제법 있어요. 그나마 한국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로 모아 보려고 해서 불렀어요.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네 그러시죠.”

    홀에는 윤아를 포함해서 교민 20명, 파나르 사람 20명. 총 40명의 시식단이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커다란 대포 렌즈를 들고 있는 사람이 유독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첫 번째는 해물탕으로 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첫 번째 시식 음식으로 해물탕을 선택했다. 파나르엔 신선한 생선과 해물을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해물탕 맛을 내기에도 수월했다.

    “저는 원래 하던 대로 육수에 고추장, 된장 좀 풀고, 무, 양파, 대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매콤하고 진하게 끓여 낼 겁니다.”

    얼큰하고 진한 국물을 낼 수 있는 요리 방법이었다. 하지만 고추장과 된장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면 텁텁한 국물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면 저는 맑은 해물탕으로 해 볼게요. 들어가는 해물과 채소들은 똑같지만 소금이랑 국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끓여 볼게요.”

    치열한 대결이 아닌 만큼 서로 조리 방법에 대해 충분히 공유를 하며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자극이 적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저는 제육볶음도 비슷합니다. 고추장, 간장, 설탕, 고춧가루, 마늘, 대파, 양파 갈은 것 좀 넣어서 양념장 만들어서 볶아 낼 겁니다.”

    고추장에 고춧가루까지 듬뿍 들어간 상섭의 제육볶음의 색깔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빨갛게 물든 돼지고기 앞다리살.

    거기에 알싸한 마늘 향이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간장 없이 소금으로만 양념을 해 볼게요. 간 양파에 고춧가루, 소금, 물엿, 마늘, 후추만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어요.”

    “간장이나 고추장도 안 넣고요?”

    “네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깔끔하게 만들어 보려구요.”

    내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상섭이었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등의 장류가 들어가지 않으면 진한 맛이 나지 않을 텐데.

    “여튼 요리사님 음식 맛이 궁금해지네요. 저랑은 완전히 다른 방법을 쓰시네요.”

    “파나르 사람들이 어떤 걸 더 좋아할지 모르니까 시도해 봐야죠.”

    파나르 사람들이 양념이 많이 들어간 상섭의 음식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담백하게 만든 내 음식을 무조건 맘에 들어 할 거란 보장도 없었다.

    그냥 파나르 사람들 입맛에 한국 음식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 위해 시식회를 열었던 것이니까.

    “사장님 비빔밥엔 뭐 뭐 넣으실 거예요?”

    “저야 뭐 원래 하던 대로 넣을 겁니다. 호박, 시금치, 고사리, 당근, 양파, 계란 지단 이 정도 넣을까 합니다. 볶음 고추장 넣고 비빌 겁니다. 요리사님은요?”

    “저는 좀 다르게 해 보려구요.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넣어서요. 양념도 조금 다르게.”

    “어떻게요?”

    따뜻한 밥을 한가득 퍼 올리고, 준비한 재료들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매콤한 볶음 고추장 대신 달콤 짭조름한 불고기 양념으로 볶은 소고기, 상추, 오이, 파프리카, 양파까지.

    고명으로 올라가는 모든 채소는 숨이 죽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만 익혀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걸 올려 줄 거예요.”

    “이걸요? 음… 이게 비빔밥이랑 어울릴까요?”

    예상치 못한 소스 선택에 다들 놀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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