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5화 (16/202)
  • 15. 시식회는 어떠세요

    “와아 사장님. 이거 직접 만드신 거예요?”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의 맛이었다.

    두 사람이 만든 김치는 장인이 만들었다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했다.

    양념의 간이며, 배추의 절인 정도며, 색깔과 향까지.

    아쉬운 게 전혀 없는 김치였다.

    “맛이 괜찮습니까? 요리사님이 드시기에도?”

    “괜찮을 정도가 아니죠. 완벽합니다.”

    조금의 과장도 섞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실 김치 하나만큼은 어디 가도 안 꿀릴 자신이 있거든요.”

    장난스럽게 대답했지만 말속엔 엄청난 자신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다들 한식당을 그리워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런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으니. 인스턴트나 어중간한 한식이 성에 찰 리가 없지.

    나 역시 이분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 정도 수준이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일 텐데.

    “회장님. 파나르 교민분들이 왜 그렇게 한국 음식을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네요. 두 분의 솜씨가 진짜 대단합니다.”

    “그렇죠? 이런 음식들 먹다가 집에서 제가 만든 음식 먹으려니깐 한 입 넣기도 쉽지 않더라구요. 하하하.”

    이렇게 되면 요리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대부분 교민들은 한 번이라도 꼭 와 봤을 거란 게 내 생각이었다.

    파나르에 사는 교민이라고 해 봤자 몇백 명 규모. 그것도 모두 한 도시에만 사는 게 아니었니, 돈을 버는 장사로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우리 두 분 돈 좀 벌게 해 주십시오. 요리사님.”

    “아이고 제가 뭘 알려 드릴 입장은 아닌데요.”

    “하하하 그래도 들어나 보겠습니다.”

    상섭과 민경은 웃으며 대답하고 있었지만 요리에 대해선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충분히 겪어 봤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오랜 경력을 가진 요리사들이 가게를 열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음식에 대한 철학과 고집을 꺾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음식들 만드는 방법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레시피가 있으면 더 좋고요.”

    “레시피 그런 건 없지요. 다 손맛이고, 감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런 건 초짜 요리사들이나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하며 눈이 마주친 상섭은 조금 미안한 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시피나 보면서 요리를 하는 초짜 요리사는 아마 날 보고 그런 거겠지.

    그렇지만 경험과 경력이 많을수록 감보다는 숫자와 가까워져야 했다.

    “그러면 팔던 메뉴들 만드는 방법 좀 알 수 있을까요? 전부 다 맛을 볼 수 없으니.”

    “음식 맛은 걱정 마시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뭐 좋아하는지나 알려 주고 가시죠 요리사님은.”

    상섭이 조금은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음식은 건들지 말라는 의미인데,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다른 결과를 원한다는 건가?

    겉으론 내가 손자뻘이니 한발 물러나 주는 쪽이 보기에도 좋았다.

    “그냥 들어만 보는 겁니다. 제가 한 수 배울 수 있게 좀 알려 주세요.”

    “흐음. 그런 거라면 뭐 알려는 드리지요. 근데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다 똑같은 맛이 나는 건 아닌 거 아시지요?”

    “물론이지요.”

    이 양반 끝까지 이런 식이네.

    옆에서 아무런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아내 민경도 같은 의견이라는 뜻이겠지.

    두 명의 고집스러운 요리사를 상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예전에 사용하던 메뉴판을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은 설명을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메뉴판에 있는 음식 사진을 보니 10년 전에 유행하던 식당처럼 올드해 보였다.

    “김치는 먹어 봐서 알 거고, 탕이나 국을 끓일 때는 무조건 멸치육수만 써요. 멸치랑 디포리 냄새가 진하게 우러나온 육수.”

    “볶음 요리 같은 건요?”

    “그런 건 미리 양념장 만들어 놓고, 주문 들어오면 매콤한 고추 좀 썰어 놓고 볶아 내지.”

    “고추는 무조건 다 넣으시나요?”

    “글치. 매콤한 맛이 좀 들어가야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니까.”

    “튀김 같은 건 안 하시나요?”

    “튀김은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일도 번거롭고.”

    상율과 민경은 서로 번갈아 가며 자신들의 노하우를 말해 주었다. 비법 레시피 같은 건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맛을 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인 것은 확실했다.

    “대충 어떤 식으로 음식을 하시는지 알겠네요. 기본적으로 음식을 잘하시는 분들이긴 하네요.”

    “젊은 요리사가 말로만 들어서 그런 거까지 알아요?”

    그래도 칭찬이라 그런지 상섭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어느 경계선쯤에 있는 요리 스타일.

    두 사람의 요리는 매콤하고, 간이 세고, 양념장을 아낌없이 듬뿍 사용하는 음식들이었다.

    “파나르 사람들도 가끔 오나요?”

    “처음 오픈했을 때는 제법 왔었는데 어느 순간 발길이 뚝 끊기더라구요. 여기 사람들 입맛이랑 한국 음식이랑 안 맞나벼.”

    입맛이 안 맞으면 맞춰 주면 되는 것.

    지금 상섭과 민경이 하는 음식들은 한국인들 중에서도 일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맛이었다.

    너무 맵고, 간이 센 음식들보다 양념이 적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맛들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나르처럼 매운맛을 거의 즐기지 않는 나라에서 팔릴 만한 요리가 아니었다.

    모든 음식이 너무 한국스러운 것도 문제였고.

    “사장님. 그러면 메뉴를 이원화하는 건 어떨까요?”

    “이원화? 두 가지를 팔자는 말인가요?”

    “네. 파나르 사람들을 위한 메뉴를 좀 따로 만들면 어떨까요? 조금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제안했지만 단번에 인상이 굳어지는 상섭과 민경이었다.

    아주 조금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변화는 무슨 놈의 변화를 더 해. 가게 내부를 이렇게나 싹 바꿨는데. 이것도 회장님이랑 주변에서 하도 바꾸자고 말을 해서 억지로 바꾼 거구만. 그리고 이원화하면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겠어요.”

    그럼 그렇지.

    가게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자 했을 때도 얼마나 고집을 부렸을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저 음식이 맛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파나르에서 한식당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벌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였다면 더 빨리 접었을 수도….

    “사장님 돈 벌고 싶지 않으세요?”

    “당연히 벌고 싶지. 그러니깐 이렇게 변하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이걸론 부족합니다. 더 바꾸셔야 해요.”

    “뭘 더 어떻게 바꿔요?”

    분위기가 살짝 과열되자 상율이 나서서 수습했다.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 했는데 상섭이 워낙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형님. 일단은 들어나 봅시다. 요리사님이 나이는 어려도 내공이 상당해요.”

    “내공이 있어 봤자지. 요리한 지 몇 년이나 된다고….”

    30년이다 30년! 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상율을 봐서 꾹 참았다.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더 잘 알겠지요. 그러니깐 이건 장덕수 요리사가 더 잘 아는 분야지.”

    “결국 음식은 손맛이여. 맛만 있으면 결국엔 찾아오는겨.”

    “조만간 올 거다, 올 거다, 하던 게 5년 아닙니까? 결국엔 맨날 오는 손님들만 받아 놓고선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요 좀.”

    참다못한 상율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덩치가 크고 카리스마 있는 상율이 열을 올리자 두 사람은 잠시 움찔했다.

    “이제 이 가게에 내 돈도 들어갔으니 나도 이런 말 할 자격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거야 맞지… 그럼 들어나 봅시다. 뭘 어떻게 바꿔 볼까요 요리사님.”

    아하 회장님도 여기에 투자를 했구나.

    그럼 그렇지. 회장으로서 교민들의 사업이 잘되는 건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는 없을 텐데.

    이제야 상황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요리사님. 편하게 의견 말씀해 보세요. 할지 안 할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편하게 제 의견을 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 역시 부담 가질 필요는 없었다.

    잘되면 인사 고과에 반영이 되니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남의 사업에 목숨 걸고 나설 필요까진 없었다. 잘못됐다간 괜히 원망을 들을 수 있으니.

    “일단 음식들이 맛은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두 분 다 요리 실력이 훌륭합니다.”

    “그건 맞지요.”

    “근데 두 사람의 음식은 한국인들만 좋아할 음식들이에요.”

    “흐음.”

    여기까진 본인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듬뿍듬뿍 들어가는 음식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한테는 완전 좋죠. 근데 파나르 사람들한테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부담스러워?”

    “네 조금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나르 사람들이 주로 먹는 향신료를 써 보면 어떨까요?”

    쉽게 이해 가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걸 단번에 수긍했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겠지. 아니 수긍했더라도 자신의 고집을 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가게 문 닫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요리사들도 많았으니.

    “탕 종류도 맑은탕과 매운탕, 볶음도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과 간장 베이스 양념 이런 식으로 좀 나눠서 팔아 보시라는 거죠.”

    하지만 이제 자기 혼자만의 가게가 아니었다.

    투자자가 생긴 만큼 고집을 꺾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치킨이나 새우튀김 같은 튀김류도 좀 추가하셔야 할 것 같아요.”

    “튀김은 느끼하고 별맛도 없는데….”

    “그건 두 분 생각이구요. 특히 치킨은 제일 유명한 한식 중 하나니깐 꼭 하셔야 해요.”

    “그래요 형님. 파나르 사람들이 말고기만큼 많이 먹는 게 닭고기인데 이건 팔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이라고 몇 년 전부터 말했는데….”

    상율도 답답했는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또….”

    “또 뭡니까?”

    “음식들을 조금 이쁘게 담았으면 좋겠어요.”

    “휴우 음식이 맛만 있으면 됐지….”

    “형님 또 또 그 소리 하신다. 두 분 음식 맛있는 건 다 안다니까요.”

    이건 나도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윤아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파나르 음식은 맛있지만 사진으로 남길 만한 건 없다고.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게 젊은 사람들이었다.

    파나르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맛도 좋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이쁜 사진까지 남길 수 있는 식당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찾아올 것이다.

    “모두 제 말이 맞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바꾸면 매출이 훨씬 오르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상섭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생을 요리하며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자기 식당이니깐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보는 젊은 요리사에게 이런 것 저런 것을 바꾸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게 괴로웠겠지.

    그렇지만 이것을 이겨 내야지만 더 나아갈 수 있다.

    “다른 건 알겠는데 몇 개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어떤 게 동의하기 어려우신가요?”

    “퓨전도 좋고, 파나르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거 좋다 이겁니다. 근데 맵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있고, 간장이 어울리는 음식, 고추장이 어울리는 음식이 있고, 마늘이 꼭 들어가야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 건데… 뭐든 원조가 결국엔 최고인데….”

    역시나 쉽게 고집을 꺾지 못하는 상섭과 민경이었다. 파나르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맛을 바꾸는 게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파나르 사람들도 정통 한식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면 꾸준히 찾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설령 진짜 그렇다 해도 그거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우리는 뭐 먹고 살아요.”

    의견의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변화는 필요했지만 변화만이 꼭 정답은 아니었으니까.

    나와 상율의 말대로 바꿔 봤지만 이전보다 더 반응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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