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2화 (13/202)
  • 12. 부산 돼지국밥은 이런 거지

    “첫 번째 음식으로 아구찜 대신 코다리 콩나물찜 나왔습니다.”

    “코다리 콩나물찜?”

    아귀는 파나르에서 전혀 취급하지 않는 생선이었다. 수산업자들을 닦달하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다른 생선으로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었으니까.

    “네 맞습니다. 다들 아구는 당연히 아실 테고, 코다리가 원래 어떤 생선인지는 아십니까?”

    “동태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동태를 바닷가의 찬 바람에 말려, 저장해 두며 먹는 음식이죠.”

    음식 얘기가 나오자 잠시 집중하는 듯했지만 몇 명은 그래서 어쩌라는 표정이었다.

    특히 마산이 고향인 한인회 회장 상율의 표정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실망한 것 같았다.

    “동태는 여기 파나르에서도 흔하디흔한 생선이에요. 아구가 귀한 거지. 우린 그게 혹시나 있을까 기대하고 온 건데… 흐음.”

    회장은 서둘러 말끝을 흐렸다.

    음식을 기대하고 온 게 아니라고 큰소리쳤는데, 얼떨결에 본심이 나와 버렸다.

    특히 마산 토박이였던 상율은 말린 아구찜이라고 적힌 메뉴판을 보고는 무시할 수 없었을 거다. 설령 파나르에 아구가 없다는 걸 알아도 자신만을 위해 만든 초대장이란 게 느껴졌을 테니까.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귀와 동태는 완전히 다른 생선이죠.”

    “거짓말했다는 걸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시네요.”

    “근데 회장님 고향이 마산이시라면서요?”

    내 입에서 오랜만에 듣는 고향이 튀어나오자 상율은 반가우면서도 놀란 듯했다.

    “그렇긴 한데 마산 떠난 지 한참 됐습니다.”

    “아마 아구찜이 마산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 중 하나죠?”

    아귀찜이 아니라 아구찜.

    예전에 하도 듣다 보니 나 역시 아구찜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더 감기는 것 같았다.

    “마산에 아구찜이 유명한 건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근데 그 아구찜을 맛보게 해 준다 해 놓고, 이건 그냥 동태 아닙니까?”

    “그냥 동태가 아니라 동태를 말린 코다리입니다.”

    내가 힘주어 ‘동태를 말린 것’이라 말하자 상율의 동공이 좌우로 흔들렸다. 내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원래 원조 마산 아구찜은 말린 아구를 쓴다죠?”

    “흐음.”

    “반건조한 동태를 코다리라고 하는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고향의 맛을 보여 드리기 위해 3일동안 더 코다리를 말렸습니다. 아주 바짝.”

    상율은 애써 외면했지만 어릴 적 먹던 아구찜 맛이 벌써 입 안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음식으로 돌아가는 시선을 막는 것까진 힘들어 보였다.

    “바짝 말린 아귀를 물에 불려서 사용하면 생아귀보다 더 쫀득하고, 풍미가 훨씬 좋은 아구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상율은 어느새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파나르엔 아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태는 흔하죠. 제가 직접 말려서 만든 이 코다리찜이 마산 아구찜 맛을 아주 생생히 떠오르게 해 줄 겁니다. 일단 성의를 봐서라도 한 입만 드셔 보세요.”

    “흠. 말이야 쉽지요.”

    상율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한국 다른 도시의 아구찜 전문점에서도 원조 아구찜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파나르에서 그 맛을 느낄 리가 만무했다.

    “어찌 됐든 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잡담을 많이 나누는 건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습니다. 식사부터 하시죠.”

    상율이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자, 김용수 대사가 나서서 남아 있는 딱딱한 분위기를 마저 녹여 버리려 노력했다.

    “그래요 회장님.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까지 체면 차릴 겁니까? 한동안 이런 매콤한 음식 먹고 싶어서 우리끼리 얼마나 한탄을 해 댔습니까.”

    “어허 이 사람아.”

    “맞습니다 회장님. 여기까지 온 건 대화로 잘 해결해 보려고 온 거 아닙니까? 식기 전에 빨리 식사하시죠.”

    김용수 대사와 옆에서 군침만 삼키고 있는 임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상율은 그제야 젓가락을 들었다.

    아귀가 아니라 코다리라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대신 파나르에선 보기 힘든 길고 굵직한 콩나물과 매콤한 양념이 듬뿍 올라가 있어 겉모양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으음.”

    매콤하고 자극적인 양념장 냄새 사이로 올라오는 진한 바다 냄새.

    생선은 말리면 풍미나 향이 강해진다. 그 느낌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었다. 비록 아귀가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한식.

    슴슴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음식도 좋지만 오늘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절실히 당겼다.

    “하아.”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저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맛이었다.

    체중 조절을 위해 며칠간 물도 마시지 않는 복싱 선수들이 계체량 검사를 마치고, 소금 몇 톨을 집어 먹을 때 이런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상율은 체면상 첫 번째 젓가락엔 콩나물 몇 가닥만 올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본 코다리찜은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피 맛을 본 뱀파이어들처럼.

    “이거 정말… 정말 맛있네요.”

    “아구가 아닌데도 입맛에 맞으세요?”

    “물론입니다. 생아구찜보다 이 말린 코다리찜이 오히려 내가 기억하던 맛과 오히려 더 가깝네요. 이 맛을 파나르에서 먹게 될 줄이야.”

    짜지도 않은지 밥도 없이 상율과 한인회 임원들의 젓가락은 멈출 줄 모르고 코다리찜을 향했다.

    메인 메뉴로 코다리 콩나물찜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회장인 상율을 유혹하기 위함이었다. 한식이 절실히 그리울 때, 누구라도 고향의 맛을 거부하긴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일반 사람 정도는 어떤 음식이라도 맛으로 만족시킬 자신은 있었다.

    동태와 아귀는 다른 생선이지만 말린 생선 특유의 식감을 내는 것이 고향의 맛에 더욱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할 수 있었다.

    이번 초대장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 고향의 맛을 담았던 것이다.

    “요리사님. 이거 너무 맛있는데 밥도 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두요. 이 메뉴판에 적힌 돼지국밥도 너무 기대되네요.”

    “정구지 무침 듬뿍 넣어서 먹는 돼지국밥. 오늘 그것도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정구지가 뭔지 알아들은 사람들은 신이 나 있었다. 뚝배기째로 끓고 있는 돼지국밥에 정구지 무침을 듬뿍 넣고, 매콤한 다대기 한 가득 넣어서 먹는 부산 경남의 돼지국밥 맛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방으로 돌아가 준비해 둔 뚝배기를 차례대로 가스에 올렸다.

    파나르에서 돼지 잡뼈는 거의 헐값에 살 수 있었으니, 아낌없이 듬뿍 넣고 진하게 돼지국밥을 만들 수 있었다.

    국밥도 국밥이지만 내가 좀 더 공을 들인 것인 밑반찬들이었다. 정구지 무침과 함께 곁들일 반찬들.

    “정구지 무침과 소면, 생양파와 청양고추, 석박지와 겉절이, 그리고 와사비 양파절임과 매콤한 다대기까지.”

    부산의 돼지국밥 상차림을 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국 마트가 없어 비슷한 양념들을 찾느라 아시아 마트를 며칠이나 뒤졌는지 모르겠다.

    “우와. 여기가 파나르야 부산이야?”

    “서부 터미널 앞에 자주 가던 국밥집이랑 상차림이 완즈이 똑같은데?”

    “거뿐 아이라 부산에 돼지국밥 파는 집이면 어딜 가도 다 이리 나오지.”

    “하하하 근데 여기는 부산도 아인데 이리 똑같이 나오면 어쩌노?”

    고향이 경상도인 사람들은 익숙한 상차림에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새콤달콤하게 만든 양파절임까지 나온 사실에 놀란 듯했다.

    국밥의 고기를 건져 양파절임에 찍어 먹는 맛은 누구나 즐기는 맛이 아니었다. 와사비와 양파가 고기의 느끼함을 살짝 잡아 주고, 중독성을 더해 주는 마법 같은 그 소스.

    “어쩌기는 어쩝니까. 양끄 묵으면 되는 거지요.”

    “얼래? 우리 요리사님도 부산 출신입니까?”

    어색하게 흉내를 낸 내 사투리마저도 반가운 모양이었다.

    고향이 부산이 아닌 사람들도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간이 세고 자극적인 경상도 음식들이 입에 맞았을 거고.

    “근데 아쉬운 게 딱 하나가 있구만.”

    금세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임원 중 한 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어서 말을 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나였다. 무슨 말을 할지 그의 국밥 그릇을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새우젓은 아쉽게도 파나르에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땐 한국에서라도 꼭 공수해 놓겠습니다.”

    “이야 요리사가 아니라 귀신이네 귀신이야. 나는 원래 새우젓으로 국밥 간을 맞춰 먹는 사람이라서요.”

    대부분 사람들은 다대기를 듬뿍 넣어 국밥이 뻘개져 있었다. 하지만 말을 꺼낸 남자의 국밥은 여전히 허여멀건한 상태.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추는 취향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소금으로만 간을 해 먹고 있었다.

    말로는 아쉽다 해도 끊임없이 숟가락이 입을 향하고 있었다.

    “회장님 그럼 기존에 진행하던 정기 회의를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용수 대사는 음식이 나온 이후론 별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대사관과 한인회의 관계는 정상화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시죠. 일단은 오늘 참석한 8명이 전부지만 앞으로 한인회 인원이 늘어날 겁니다. 곧 다들 파나르로 돌아올 테니까요.”

    “좋습니다. 인원이 많아지는 건 환영입니다. 오히려 파나르 정국이 안정되고 있다는 증거죠.”

    ‘그때는 오해였다’, ‘섭섭한 맘을 풀어라’ 등의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깊었던 감정의 골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게 바로 대사관 요리사의 역할.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뿌듯해지는 맘을 나 역시 숨기기 어려웠다.

    “대사님 매주 정기 회의는 관저에서 하면 안 됩니까?”

    “그거 아주 좋은 방법인데요?”

    “하하하 우리 요리사 죽일 작정이십니까? 오늘 만찬 준비하느라 콩나물도 직접 기르고, 코다리를 밖에 널었다가 들여놨다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

    “콩나물까지 직접 키웠어요? 어쩐지 굵직하더라니.”

    정성을 쏟았다는 건 음식을 맛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지만 콩나물까지 직접 기르고, 며칠을 준비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었다.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미안함에 남자는 괜히 머쓱해졌다.

    “요리사님이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내공이 장난 아니네요.”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훌륭한 대사님 옆에 대단한 요리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금 오글거리긴 했지만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어쨌든 굳게 닫혀만 있던 마음을 고향 음식이라는 묘책으로 풀어냈으니, 김용수 대사의 입지는 단번에 올라갔다.

    “그나저나 대사님. 저희 가기 전에 요리사님 얼굴 한 번 더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요. 저도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잘 먹어서요.”

    “오히려 우리가 주방으로 가서 인사드려야지요.”

    성공적으로 식사가 끝이 나고 한인회 임원들은 열심히 설거지 중이었던 나를 기어코 밖으로 불러냈다.

    예전에 호텔에선 종종 주방장인 날 불러내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항상 후배를 대신 보냈었다. 그냥 대놓고 칭찬을 받는 자리가 어색했어서.

    “자 모두들 요리사님을 향해 박수!”

    “짝짝짝.”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색한 상황이 발생했다.

    요리사를 향해 박수라니.

    이런 건 원래도 익숙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몸이 베베 꼬이기까지 했다.

    “요리사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네? 저요? 25살입니다.”

    “딱 좋네 딱 좋아.”

    “뭐가 딱 좋아요?”

    “우리 딸이 올해 19살이거든. 6살 차이면 딱 좋은 거 아니야?”

    “너무 나갔네 이 사람.”

    하하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완전히 사양하겠습니다.

    “농담은 그만하고, 우리 요리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파나르 한인회 회장 김상율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요리사 장덕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만 했을 뿐이었는데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단번에 정리시키는 상율의 카리스마었다.

    키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사람 자체에 느껴지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다. 오랫동안 회장을 역임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보시다시피 오늘 준비해 주신 음식 너무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드셔 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파나르가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한식당이고, 한국 마트고 전부 문을 닫아 버려서 이런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상율은 고집을 부린 것에 대한 반성이라도 하듯 잠시 동안 침묵했다.

    “대사님한테 들었습니다. 오늘 만찬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셨는지요.”

    “원래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사님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덕분에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겸손하십니다. 두 분 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쓴 건 맞지만 음식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결과도 좋았으니 나 역시 만족스러웠고.

    “이제 파나르는 빠르게 안정이 될 겁니다. 이미 많은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구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위험한 상태가 계속되면, 파나르에서 3년을 버티는 것도 힘들 수도 있을 테니까.

    “저희 한인회는 앞으로 100% 대사관에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율은 김용수 대사의 눈을 한번 쳐다본 뒤, 손을 뻗어 나에게 악수를 권했다.

    김용수 대사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 듯 옆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이게 뭡니까?”

    상율이 건넨 손을 잡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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