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7화 (8/202)
  • 7. 인정

    “안녕하십니까 한국 대사관 대사 김용수입니다.”

    “반가워요. 김용수 대사.”

    예의상 미소 짓고 있었지만 풍기는 아우라는 여전히 차가웠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요리사 장덕수라고 합니다.”

    “저는 행정원 임윤아라고 합니다.”

    장관의 옆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이 나와 윤아의 말을 전하자 급격히 굳어지는 장관의 얼굴이었다.

    그냥 인사한 것뿐인데 실수한 거라도 있나?

    그렇다고 하기에 그 시간은 득점도 실점도 할 수 없는 찰나였다.

    “내가 무슨 일개 직원들의 이름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요?”

    장관이 불쾌해하는 이유를 듣자 김용수 대사는 물론이고, 나와 윤아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들어가서 음식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거기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죄송할 짓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유 없는 사과를 건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당황해 빨개진 표정을 숨기기 힘들었으니.

    “예의라곤 밥 말아 먹었구만.”

    아무리 한 나라의 장관이라해도 이렇게 무례해도 되는가? 장관도 장관이지만 옆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김용수 대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은 철저히 을의 입장인걸.

    잠자코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 을의 입장이 오늘로써 마지막이 되길 바랐다.

    잠깐의 잡담 시간이 끝이 나고 본격적으로 만찬이 시작되었다.

    “지금이에요 요리사님.”

    윤아의 신호에 맞춰 만찬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감자전에 치즈 향을 더한 치즈 감자전부터.

    최대한 바삭함을 유지할 수 있는 서빙 타이밍을 위해 계속해서 윤아를 귀찮게 만들었다.

    “밖에 분위기가 어때요?”

    “아직은 완전 시베리아예요. 무서워 죽겠어요. 저 서빙하기 싫은데, 요리사님 저랑 바꾸실래요?”

    “윤아 씨 요리 실력과 제 파나르어 실력이 합쳐지면….”

    “파국이겠죠.”

    “그렇죠? 그러니깐 어서 이거 들고 나가세요.”

    긴장한 건 윤아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을 나서기 싫어하는 걸 겨우 설득해 내보낸 뒤 부지런히 다음 음식을 준비했다.

    “이번엔 닭고기냉채예요. 깨를 갈아 넣어서 중화시키긴 했지만 혹시 그래도 모르니깐 소스는 조금씩 추가해서 먹으라고 말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신경 쓸 게 많았다. 직접 나가서 먹는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려 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또 말 걸었다고 화를 낼 수도 있으니.

    “아 답답해.”

    뒷문이 있다면 몰래 나가서 반응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손님들의 표정, 포크를 집는 것만 봐도 음식 맛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요리사님 요리사님!”

    “네? 왜요 무슨 일이에요?”

    한창 만찬이 진행되던 중 뭔가 급한 일인 양 윤아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음식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나도 모르게 발 끝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소스 리필 좀 해 주세요. 겨자소스요.”

    “안 맵대요?”

    “그런 것 같아요. 다들 곧잘 먹는데요?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정말요? 좋게 바뀐 거겠죠?”

    “아까보다 더 나빠질 게 있었나요? 당연히 좋아졌죠.”

    분위기가 왜 바뀌었는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더 듣고 싶었지만 소스만 들고 서둘러 나가는 윤아였다. 아까는 나가기 싫다더니.

    “마지막으로 김치볶음밥이에요. 뚝배기 뜨거우니깐 조심하라고 꼭 말해 주세요.”

    말고기 비계를 이용해서 볶아 낸 김치볶음밥은 한국식으로 뜨거운 뚝배기에 담아 내보냈다. 지글지글 소리가 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매운맛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으니, 김치는 한번 볶아서 사용했고, 맘 편히 마늘도 듬뿍 사용했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볶음밥에도 김치 반찬이 나갔겠지만 곁들이는 반찬으론 플롭과 함께 먹던 양배추샐러드 맛을 재현해 봤다.

    “아 답답해 죽겠네.”

    준비한 모든 음식이 나가자 손님들의 반응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좋아졌다고 하는데 뭐 때문인지, 어떻게 얼마나 좋아진 건지 궁금해 죽을 것 같았다.

    원래라면 남는 시간에 주방 정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벽에 바짝 귀를 붙이고, 손님들의 반응에 집중했다.

    설령 그게 들려도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답답함은 조금 줄여 줄 수 있겠지.

    똑똑똑-

    “아씨 깜짝이야.”

    “요리사님 거기서 뭐 하세요? 밖에서 찾아요.”

    어느새 주방에 들어온 윤아가 벽에 귀를 붙이고 있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밖에서 나를 찾는다고? 왜?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저를요? 왜요? 뭐 음식에 문제 있어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는데 장관님이 요리사님을 보자고 했어요.”

    “파나르 외교부 장관이요?”

    나는 깨끗한 앞치마로 갈아입으며 서둘러 서빙되었던 음식들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오늘 음식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너무 평범했던가? 그래서 실망한 걸까?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손님이 요리사를 보자고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음식이 굉장히 맘에 들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거나 혹은 컴플레인을 걸기 위해.

    “아깐 일개 요리사가 어쩌고저쩌고 그래 놓고 갑자기 왜….”

    첫 만남에 일개 요리사가 인사를 하러 나왔다는 이유로도 불쾌감을 표현하던 장관이었다.

    하지만 음식이 맛이 없었다면 그런 일개 요리사를 다시 면전에 불러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방을 나서기 전 깊게 숨을 한번 들이켰다.

    “한 번 더 인사드립니다 장관님. 요리사 장덕수입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극도의 긴장감이었다.

    나는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베테랑 요리사였지만 이 상황에서 떨리는 다리까진 어쩔 수 없었다.

    “반가워요. 나는 파나르 외교부 장관 바누스입니다.”

    통역을 통해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자신을 외교부 장관이라 소개하는 남자.

    묻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이름까지 먼저 말해 준다. 장관의 표정은 다행히도 아까처럼 굳어 있지 않았다.

    식탁 주위는 온기가 느껴질 정도.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긴장된 표정을 억지로 가다듬고, 요리사로서 해야 할 질문을 던졌다.

    다른 걸 떠나서 나에겐 그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장덕수 셰프님. 바누스 장관님이 파나르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일해 달랍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긴장한 탓에 장관의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파나르에서 오랫동안 일해 달라는 게 무슨 의미지?

    “요리사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최대한 오래 일해 달랍니다. 여기에 자주 놀러 오겠다고.”

    “아 정말요?”

    통역이 장관의 말뜻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 주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 모습을 보자 김용수 대사를 비롯해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그제야 들이켰던 한숨을 내쉬고, 살짝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내가 좀 무례했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강하게 유감을 표하고 오라는 지시가 있어서 처음부터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참 유치했네요.”

    직접 나서서 아까 일에 대해 사과까지 하는 장관이었다. 조금 불쾌했던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앙금이 남아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음식을 먹고도 계속 투덜거렸다면 모르겠지만.

    “근데 이 김치볶음밥이라는 음식에서 익숙한 맛이 나는데 어떻게 만든 건가요?”

    다른 음식도 전부 맛있게 먹었지만 특히 김치볶음밥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장관이었다.

    게다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따뜻함을 유지해 주는 뚝배기도 신기해했고.

    “평소에 플롭을 즐겨 드십니까 장관님?”

    “당연하죠. 파나르 사람이라면 매일 먹는 거니까.”

    “이 김치볶음밥은 한국식 플롭입니다.”

    입맛에 맞추기 위해 김치의 매운맛을 없애고, 말고기 기름을 이용해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고 말하니 장관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요리사들의 머리는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여러 가지 요리에서 필요한 것들만 쏙쏙 빼서 적용할 수 있는 거죠?”

    모든 요리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겸손을 유지했다. 좋은 분위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으니.

    “우리 플롭도 이 뚝배기 같은 그릇에 담아 먹으면 훨씬 맛있겠어요. 그리고 다음엔 100% 한국식으로 한번 먹어 보고 싶군요.”

    “물론이죠. 드시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맘 편히 오시죠.”

    바누스 장관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식사가 끝났지만 아쉬움이 남아 있는 모양.

    “허허허 김용수 대사는 좋겠습니다. 이런 훌륭한 요리사의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으니.”

    “맞습니다. 당연히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을 3년만 있다가 떠나라고 했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맞습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에서 3년만 있다 떠나라는 건 정말 잔인한 결정입니다.”

    어느새 죽마고우라도 된 듯 파나르 정부를 욕하며,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

    공식적인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구두상으론 합의가 끝난 모양이었다.

    주파나르 한국 대사관의 정상화.

    조금이지만 이런 성과에 손을 보탤 수 있었단 사실에 뿌듯했다.

    “하하하 조만간 또 오겠습니다. 바쁘시다며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장관은 관저를 나서기 직전까지 웃음소리를 남기며 떠났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보며 불안했던 마음을 온전히 씻어 낼 수 있었다.

    휴우. 시작이 반이랬는데 다행이다.

    “장 셰프. 잠시 얘기 좀 할까요?”

    “네 대사님.”

    손님이 전부 떠나고, 약간의 취기가 올라온 김용수 대사와 마주 앉았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거라 예상해서 술은 계획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와인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장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은 장 셰프의 음식 덕을 확실히 봤어요. 고마워요. 그 말 해 주려고 불렀어요.”

    “아닙니다. 저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김용수 장관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주저하고 있었다. 입술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나는 오늘 확실히 느꼈어요.”

    “네?”

    “나는 그저 젊은 사람은 실력이 없다는 편견을 가진 꼰대라는 걸요. 내가 왜 현역 때 공관장을 한 번도 못 하고 퇴임했는지 알겠더라구요.”

    “아니 그렇게까지 자책하실 필요는….”

    과도하게 자신을 자책하는 김용수 대사를 보자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에요. 옛날의,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확실히 부족한 게 맞아요. 남 탓이나 하고, 현실을 부정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과거에 얽매일 정도로 패배자는 아닙니다. 나는 늦었지만 주어진 이 기회 제대로 잡아 볼 생각입니다. 장 셰프.”

    “네 대사님.”

    “우리 여기서 딱 3년만 잘 버텨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을 둘 다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나는 이제 100% 장 셰프를 믿고 일을 진행할게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날 바라보는 김용수 대사의 눈빛은 며칠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건 겪어 본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근데 장 셰프는 요리사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실력을 갖춘 거 보면 엄청나게 노력한 것 같은데.”

    내가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이라.

    회귀하기 전 요리사로서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은 딱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 원하는 것 역시 딱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저는 청와대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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