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6화 (7/202)
  • 6.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생각했던 재료는 내 예상대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기를 취급하는 가게는 단 한 군데도 예외 없이 구석에 허연 덩어리들이 쌓여 있었다.

    허연 덩어리들의 정체는 말고기의 지방.

    고기로 먹을 수 있는 말고기 부분은 전부 떼어 내고 남은 비곗덩어리였다.

    “플롭? 플롭?”

    내가 하얀 비곗덩어리에 관심을 보이자 상인들은 내 생각이 맞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 말고기 비계로 플롭을 만든다는 것을.

    “그래 일반 식용유로는 그런 맛이 날 리가 없지.”

    미묘했지만 일반 식용유로 만든 요리에선 그런 감칠맛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돼지비계를 식용유처럼 사용해 전을 굽거나 요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짜장면을 만들 때도 돼지비계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일반 식용유보다 훨씬 고소하고, 풍미가 좋아진다.

    “이걸로 김치볶음밥을 만들면 되겠다.”

    비빔밥을 할까 했지만 기름에 볶아 낸 쌀 요리가 조금 더 익숙할 것 같아 김치볶음밥을 선택했다.

    그리고 더 입맛에 맞출 만한 비법도 방금 찾아냈고.

    “좋아 이 정도면 밸런스도 나쁘지 않고, 무난하겠다.”

    감자전과 닭고기냉채, 그리고 말고기 비계로 볶아 낸 김치볶음밥까지.

    내 첫 만찬 행사의 메뉴가 결정되었다.

    이제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

    큰 변수만 없다면 오히려 맛을 내는 건 더 자신 있었다.

    * * *

    만찬 날 당일.

    “안녕하세요 요리사님!”

    “어? 윤아 씨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첫 만찬 날 긴장감에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저 오늘 웨이트리스 겸 주방 보조 하러 왔어요.”

    “웨이트리스요? 그런 것도 해요?”

    윤아는 대사관 직원 중 파나르어를 가장 능숙하게 구사했다. 현지 직원들이 한국어를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덕분에 통역 전문 직원을 따로 채용하지 않고, 윤아가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네 예전에 알바로 몇 번 해 본 적 있었는데 재밌더라구요. 조금 힘들긴 해도 돈도 더 주니깐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죠.”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재밌다니깐 나쁠 것 없지.

    나 역시 소통이 잘되는 웨이트리스와 일하는 게 훨씬 좋았고.

    소수의 손님일수록 서빙 타이밍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윤아는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파트너였다.

    “일단 주방 보조부터 시작하시죠.”

    “예 셰프! 시켜만 주십시오.”

    이상하게 시작부터 굉장히 적극적이다.

    나에게서 떨어질 콩고물 같은 건 없는데. 아무리 일을 잘해도 팁 같은 걸 줄 생각은 없었다.

    “근데 오늘 만찬 메뉴는 뭐예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윤아는 오늘의 메뉴를 물었다. 마치 1교시부터 급식 메뉴를 묻는 고등학생처럼.

    “감자전, 닭고기냉채 그리고 김치볶음밥이에요.”

    “우와아아아… 하하하.”

    형식적으로 튀어나온 감탄은 짧게 끝이 나고, 허탈한 웃음이 그 뒤를 이었다.

    “왜요? 뭐예요 그 영혼 없는 환호성은?”

    “아 뭐 그냥 생각보다 메뉴가 무난하네요? 오늘 오는 손님이 외교부 장관이라고 하던데.”

    괜한 모험을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나도 아주 독특한 음식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는 거였다.

    “근데 음식들은 손님들한테 나가기 전에 다 한 번씩 시식해 보고 내는 거죠?”

    “아 그거였구나.”

    “뭐가요? 귀한 손님이니깐 당연히 우리가 먼저 맛보고 서빙해야죠. 기미 상궁 뭐 그런 거?”

    시작부터 메뉴를 궁금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에게 원하는 콩고물이 이거였구나.

    “이유야 어떻든 시식 당연히 해야죠.”

    “예스!”

    만찬에 직접 참여할 순 없으니, 이렇게라도 시식 음식을 맛보려는 윤아의 속셈이었다.

    “이건 닭고기냉채 소스인데 한번 맛보실래요?”

    “소스만요?”

    “네 일단은요.”

    소스만이라는 말에 아쉬워하는 티가 났지만 본분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흠흠 콜록콜록.”

    “어때요? 많이 매워요?”

    윤아는 발효된 겨자소스를 입에 넣자마자 기침을 해 댔다. 약하게 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매운맛이 남아 있는 모양.

    “저는 한국 사람이라 익숙하니깐 괜찮은데 외국인들은 좀 놀라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근데 이 정도는 넣어야 맛이 나는데.”

    “저는 맛있어요. 간도 딱 맞고….”

    냉채 소스는 자체는 만족스럽게 완성되었다.

    매운맛을 없애기 위해 소스를 다시 만드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 그렇게 해 보자.”

    겨자소스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줄 방법이 떠올랐다.

    볶은 깨 한 줌을 집에 믹서기에 넣어 곱게 갈았다. 원래는 들깨가루를 사용하면 더 좋겠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니.

    “이번엔 야채랑 닭고기도 같이 먹어 보세요.”

    삶아진 닭고기에 간장, 마늘, 참기름 그리고 간 깨가루를 넣고 잘 버무려 준 다음 냉채 소스와 먹으면 매운맛을 중화시켜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란 정신으로, 구하기 힘든 들깨 대신 통깨를 사용했다.

    소스까지 버무려 제대로 된 닭고기냉채를 윤아에게 권했다. 맛보는 건 잘할 수 있다고 했으니.

    “맛이 어때요?”

    성격 급한 내가 몇 번이나 물었지만 윤아는 한참이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때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윤아는 그저 말없이 버무린 냉채를 씹기만 했다.

    콜록대며 먹던 겨자소스가 이제 맵지 않은가?

    한 입, 두 입.

    윤아는 접시 바닥에 붙은 채소 한 가닥도 놓치지 않고, 전부 집어 먹더니 심지어 그릇을 입에 대고 후루룹거리기까지 했다.

    “맛… 있나 보네요.”

    백 번의 말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윤아는 입가에 묻은 겨자소스를 닦으며,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죄송해요. 대사관 직원으로서 체면을 지켰어야 하는데.”

    “하하하 괜찮아요. 여기가 만찬 자리도 아닌데요.”

    그래도 아쉬운 듯 한 번 더 입맛을 다신 윤아가 말했다.

    “진짜 맛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겨자소스가 강력하게 톡 쏘는데, 갑자기 고소한 깨맛이 들어와서 제 코를 보호해 줬어요.”

    “깨가 코를 보호해 줬다고요?”

    “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균형이 잘 맞아요.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느낌? 근데 그 병도 맛있고, 약도 맛있고.”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맛 표현이었다.

    맛보는 걸 잘한다는 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어쨌든 맛있다는 거니깐 다행이었다.

    “이제 또 뭐 만들 거예요, 요리사님?”

    “네?”

    “빨리 시작하시죠!”

    시식을 끝낸 윤아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져 있었다.

    마치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웅장한 엔진 소리를 뿜어내고 있는 슈퍼 카처럼.

    “가… 감자전이요. 감자전을 만들 거예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윤아는 씻어 놓은 감자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대령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빨리 만들어 보세요.”

    “뭘요?”

    “감자전 만든다면서요. 만들어서 또 맛봐야 할 거 아니에요?”

    오늘 만찬에 초대된 손님이 이분인가?

    윤아는 시식용 음식으로 배를 채울 기세였다.

    “감자의 반은 채 썰어서 쓰고, 반은 갈아서 쓸 거예요.”

    “오 쫀득쫀득하게?”

    “네 맞아요.”

    이제 윤아는 척 하면 척이었다.

    내가 뭔가를 집으려고 몸을 조금만 틀어도 눈치채고, 그 물건을 나에게 건넸다.

    세상에 이런 인재가 여기에 있었다니.

    내 가게가 있다면 주방 보조로 스카우트하고 싶을 정도로 눈치와 몸놀림이 빨라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웨이트리스보다 주방 보조에 적성이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이렇게 평범한 감자전을 만찬에 내도 될까요?”

    “제가 만드는 감자전은 평범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만드는 감자전과 달라요.”

    그냥 썰고, 갈아서 굽는다고 다 같은 감자전이 아니다.

    똑같은 재료를 쓰고도 내 음식의 맛은 다르다는 말을 반평생이나 듣고 살아왔다.

    그것이 바로 손맛의 차이랄까?

    “외국 사람들이 요리사님 감자전 맛이 다른 걸 어떻게 알아요. 다른 감자전을 먹어 본 적도 없을 텐데.”

    “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 손맛은 아주 평범한 재료로도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도 비교 대상이 있어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겠지.

    “파나르에 감자전 비슷한 요리가 없을까요?”

    “감자를 엄청나게 먹기는 하지만 감자전이랑 비슷한 요리는 못 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처음 먹어 본 평범한 한국식 감자전도 충분히 맛있다고 느낄 것 같은데.

    괜히 말을 꺼내서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윤아 씨. 파나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이 뭐가 있어요?”

    “음식이요?”

    “음식도 좋고, 재료도 좋고 뭐든 자주 먹는 거요. 한국 사람들이 김치나 삼겹살 좋아하듯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윤아는 당황한 듯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양파나 감자도 많이 먹고, 말고기… 그리고 또 맞다! 치즈! 치즈를 엄청 먹어요.”

    “치즈요? 종류는요?”

    “그냥 치즈라고 하면 안 가리고, 다 좋아해요. 집에서 캔디처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구요.”

    집에서 직접 치즈를 만들어 먹을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식감으로 치즈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숙성시켜, 그 풍미를 즐기는 것이 확실했다.

    “치즈라….”

    일단 반죽을 준비해 두고, 냉장고와 냉동고를 뒤졌다.

    그 정도로 치즈를 자주 먹는 나라라면 어디서 선물받은 치즈 조각이라도 있겠지.

    “있다.”

    꽤 오래된 것 같았지만 냉동고 구석에서 파마산 치즈 한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냉장고에서 잡내가 조금 섞이긴 했지만, 오히려 숙성이 되어 풍미가 더욱 풍부해져 있었다. 어차피 생으로 쓸 것도 아니라 엄청 신선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건 모짜렐라가 아닌데 괜찮아요?”

    “꼭 모짜렐라여야 하나요?”

    왜 갑자기 모짜렐라라는 단어가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파마산이라서 오히려 좋았는데.

    “감자전 위에 치즈 뿌려서, 이렇게 쭈우우욱 늘어나게 만들려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아 피자처럼?”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전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올리면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아질 테니.

    하지만 나는 그런 올드한 방법을 쓸 생각이 아니었다. 내 나이에 맞게 좀 더 세련된 요리법을 써야지.

    “아니요. 더 맛있는 방법이 있어요.”

    더 맛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윤아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오늘따라 유독 음식에 집착하는 거 같은데.

    “근데 윤아 씨 원래 이 정도로 먹는 걸 좋아해요?”

    “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요. 파나르 음식 먹을 땐 이 정돈 아니었는데.”

    생각해 보니 첫날 관저에서 김치전을 먹을 때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식당에서 플롭을 먹을 때 모습이 전혀 달랐다.

    한국 음식을 먹을 때 유독 집착하고 있었다.

    “파나르에 이제 제대로 된 한식당은 하나도 없고, 저랑 저희 부모님 둘 다 요리엔 영 재능이 없어서요. 원래도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맛있는 한식이 좀 그리웠거든요.”

    “아아 그랬구나. 몰랐네요.”

    “이제 좀 자제할게요. 요리사님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요 사실.”

    “자제 안 해도 돼요. 제대로 맛봐 주세요. 아까처럼 정신을 놓지는 마시구요.”

    이유를 알았으니 시식용이라도 찔끔찔끔 만들 순 없었다.

    프라이팬에 감자전 반죽을 가득 올려 구워 내기 시작했다. 거의 피자에 가까운 크기로.

    차르르르르르-

    갈색빛이 돌기 시작한 감자전은 딱 보기에도 바삭함이 느껴졌다. 입천장이 까지더라도 지금 꺼내 뜨거운 감자전을 맛보고 싶었다.

    “잠시만요.”

    나는 거의 다 익은 감자전의 가장자리에 파마산 치즈를 갈아 뿌려 줬다.

    “이게 뭐예요? 왜 위에 안 뿌리고, 옆에다가 뿌려요?”

    “잘 봐요.”

    뜨거운 팬의 열기에 녹은 치즈 가루들은 마치 눈꽃처럼 피어나더니, 감자전 가장자리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달라붙은 치즈들은 몇 초 지나지 않아 갈색으로 변해 맛깔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와아 이거 꽃이다 꽃. 치즈가 꽃처럼 피었어요.”

    이번엔 내가 의도한 대로 제대로 표현했다.

    치즈로 꽃이 피는 모양을 표현하고 싶었으니까.

    “이것도 맛보세요. 아니 배부르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파사사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으로 가져가는 윤아였다. 맛있게 먹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와아 이런 감자전은 처음 먹어 봐요. 모양도 너무 이쁘고, 치즈랑 감자전이랑 조화가 최고네요.”

    “그게 다인가요? 뭐 치즈가 감자를 보호해 줬다던가 그런 거…?”

    윤아의 입에서 멀쩡한 맛 표현이 나오자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어쨌든 칭찬이면 된 거다.

    그렇지만 윤아가 만족했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 * *

    “손님 오셨습니다.”

    관저로 들어오는 파나르 외교부 장관의 표정은 마치 얼음장 같았다.

    먼저 말이라도 걸었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

    장관이 들어서자 단번에 관저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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