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무 큰 거물이
“여기 들어간 고기 이거 무슨 고기예요?”
볶음밥에 큼직하게 썰어 넣은 고기는 잡내도 없고, 오래 조리했는지 씹을 때마다 부드럽게 찢어졌다.
굉장히 맛있는 고기거나, 요리사의 실력이 좋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요리사님.”
“네?”
“니 사람 고기 묵어 봤음매?”
윤아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포크 끝을 나에게 겨누었다. 이런 시답잖은 농담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 처음이니까….
“그… 그럼 이게 설마 사… 사람 고기란 말이에요?”
들고 있던 숟가락을 최대한 살며시 떨어뜨리며 장단을 맞춰 줬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었으니까.
“풉. 고마워요. 이런 거 받아 준 사람 요리사님이 처음이에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왜 안 받아 줬는지 직접 당해 보니 이해가 되네요.”
“아 뭐예요… 창피하게.”
“여튼 여기에 들어간 고기는 말고기예요.”
“말고기요? 볶음밥에 말고기가 들어가요?”
한국에서는 말고기가 흔하지 않았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나 먹어 볼 수 있는 음식.
먹는 방식도 육회나 샤브샤브 등으로 먹지, 볶음밥으로 먹는 건 처음 봤다.
“파나르에서는 말고기랑 닭고기를 제일 많이 먹어요.”
“말고기를요? 비싸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말이 흔하지 않아서 그런지 가격 또한 꽤 비싼 고기 중 하나였다.
윤아는 내 질문에 말없이 창밖 너머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 하세요?”
“저기 보세요.”
윤아의 손끝에는 높고 거대한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단번에 보이진 않았지만 잠시 집중하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들이 보였다.
“설마 야생마예요?”
“아니요. 주인이 있는 말이긴 한데 여기서 그만큼 말이 흔해요. 그래서 말고기를 많이 먹고.”
동물원이나 테마파크는 가야 볼 수 있는 말들이 그냥 뒷산을 떠돌고 있으니 신기했다.
볶음밥에 들어간 말고기는 특유의 냄새도 없어 먹기 좋았다.
“근데 이 음식 이름이 뭐예요?”
“이거는 플롭이라고 하는데, 파나르 사람들이 평소에 제일 자주 먹는 음식이에요.”
“그럼 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볶음밥류는 거의 다 좋아하겠네요.”
“아마도요?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재료는 조금 달라도 비슷한 조리법을 활용하면 입맛에는 맞을 것이다.
나중에 만찬 메뉴를 구성할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근데 이거 기름이 엄청 들어간 거 같은데.”
“맞아요. 그래서 기름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근데 생각보단 안 느끼하죠? 거기 옆에 있는 양배추샐러드랑 같이 먹으면 더 좋아요.”
기름기가 많은 거치곤 그리 느끼하지도 않았다.
볶을 때 쓴 기름이 그냥 식용유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네요. 신기하다. 안에 마늘도 들어갔나 봐요?”
“네 그래서 한국인들 입맛에도 맞아요. 어떻게 한번 먹어 보고 다 아세요?”
“그야 뭐 요리사니까요?”
말고기와 당근 그리고 마늘 말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데 맛의 밸런스가 훌륭했다.
특히 볶음밥 옆에 채 썬 양배추로 만든 샐러드가 플롭의 느끼함을 제대로 잡아 주고 있었다.
소스도 그냥 식초, 설탕, 소금이 전부인 샐러드.
“플롭 맛이 괜찮으세요?”
“너무 맛있어요. 근데 이 샐러드도 좋지만 김치 한 조각만 있으면 딱 좋겠네요.”
고소하지만 살짝 느끼한 플롭에 푹 익은 묵은지 한 조각이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면 깍두기라도.
아니다. 시원한 동치미 한 숟갈도 좋겠다.
아쉬웠지만 그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왜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런 나를 윤아가 아무 말 없이 뻔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우리 아빠처럼 말해서요.”
“뭐가요?”
“울 아빠도 이거 드실 때 맨날 김치 있으면 좋다고 하시거든요.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럴 수도 있지.
한국인이라면 밥 먹을 때 김치 한 조각 먹고 싶을 수도 있지.
조금 억울했지만 나이 든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튼 파나르 음식이 참 맛있네요.”
“벌써 그런 말 하시면 안 되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파나르 음식도 종류가 엄청 많거든요. 진짜 맛있는 거 많아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윤아가 들뜬 만큼 나 역시 들뜰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한국 음식은 내가 다 만들 수 있으니, 맛집 친구가 소개해 줄 파나르 음식들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 * *
“식사 맛있게 하세요, 대사님.”
“고마워요, 장 셰프.”
대사관 요리사는 외교 행사가 없을 땐 공관장들의 일상식을 담당했다. 원하지 않으면 거절해도 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맘도 있었고, 만드는 김에 내 밥도 같이 만들어서 먹으라고 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내 끼니를 챙기는 일이었다.
“장 셰프 잠시 앉아 볼래요?”
“네 대사님.”
아침 식사를 마친 김용수 대사가 식탁으로 나를 불러 앉혔다.
드디어 기회가 온 걸까?
“조만간 만찬 행사가 잡힐 것 같아요.”
“정말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온 거니까.
동시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손님이 오실 예정인가요?”
“저… 그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김용수 대사였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인 국회 의원이라도 오는 걸까?
“파나르 외교부 장관이 올 거예요.”
“네? 외교부 장관이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거물급 손님이 오게 되었다. 빨리 만찬 행사를 치러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내 첫 만찬 손님으론 너무 과한 게 아닐까?
한두 번 부담이 적은 손님을 치른 다음이라면 좀 더 좋겠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장관이라는 타이틀이 좀 무겁다 느껴질 수 있지만 내가 파나르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나고 부딪힐 사람이에요.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거고.”
대사관 입장에서도 주재국의 대통령이나 총리를 제외하곤 만날 수 있는 최고위급 인사였다. 그렇지만 가장 자주 만나야 할 사람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같은 계열의 사람이니까.
불편하고, 부담스러워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근데 걱정되는 문제가 하나 있어요.”
“무슨 문제인가요?”
장관이라는 직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고위 공무원의 의전이야 까다롭고 복잡하겠지만 결국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만 김용수 대사가 걱정하는 건 장관의 태도였다.
“아마 우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파나르에서 내전이 터진 후 세계 각국의 공관들은 전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반란군의 화력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빨랐기 때문에 순식간에 파나르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래서 우리 대사관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대사관 철수를 결정했고, 파나르 정부는 자신들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았다고 오해해서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죠.”
“그때 한국 대사관만 철수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 전엔 우리랑 그리 큰 인연이 없었으니….”
“만만한 게 우리다 이거네요.”
김용수 대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이 직접 나서서 겨우 3년의 시간은 벌어 놨는데, 그 후로 대사관을 정상화시키는 건 제 몫이에요.”
예전처럼 기간의 제한 없이 파나르 대사관을 주재시키기 위한 협상을 하기 위해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는 것이었다.
“근데 말로 설득할 자신이 없네요. 내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테니.”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그래도 해 봐야지요.”
“그래야죠.”
나 역시 첫 만찬 행사의 손님이 예상보다 거물급이라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협상을 해야 하는 김용수 대사보단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혹시 장관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긴 공무원들은 정년이 없어서 70살이 한참 넘었어요.”
“외교부 장관이면 그래도 해외 문화에 좀 익숙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오랜 시간 외교부 장관 자리에 있었다면 외국 음식이나 문화에 익숙할 터. 메뉴를 짤 때도 좀 더 넓게 구상해 볼 수 있었다.
“아니요. 나도 직접 겪어 보진 못했지만 다른 나라 대사들 소문에 의하면 아주 꽉 막힌 걸로 유명해요. 음식도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아예 숟가락을 놓아 버리기까지 한다더군요.”
“그럼 아예 파나르 음식으로 준비해 볼까요?”
“장 셰프 파나르 음식 할 줄 알아요? 평생을 여기서 산 사람을 만족시킬 만큼?”
그건 당연히 아니지.
얼마 전에 맛집 친구와 먹어 본 플롭 한 그릇이 전부였다. 그리고 자기 나라 관저로 초대해서 다른 나라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오히려 결례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한 거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번엔 최대한 무난한 메뉴로 준비해 봐요. 그게 그나마 리스크가 적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때 보니깐 부침개나 전 이런 거 잘하는 거 같던데, 감자전 같은 거 해 보면 어때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잖아요.”
“아 감자전이요? 알겠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그 말을 끝으로 나와 김용수 대사는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왔지만 하루하루 쉬운 게 없었다.
대사관 요리사라는 거 역시 만만치 않네.
“70살이 넘는 할아버지들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알고 있는 한식 메뉴들을 머릿속으로 전부 끌어모았다. 정통 한식부터 퓨전 한식까지 떠오르는 메뉴의 가짓수는 엄청 많았지만 그중에서 한두 개 골라내는 게 어려웠다.
너무 많이 알아도 오히려 골치 아프네.
이래선 끝이 보이질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감자전 하나라도 정해졌다는 게 위안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파나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한식으로 표현할 만한 음식을 찾아봐야지.”
얼마 전에 갔었던 파나르 음식 전문점에서의 기억을 가만히 곱씹었다.
시각은 물론이고,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촉각 그리고 냄새,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
기억해 낼 수 있는 건 전부 기억해 냈다.
“그 음식엔 말고기 그게 포인트였는데.”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말고기가 듬뿍 들어간 볶음밥 ‘플롭’이었다.
기름밥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상하게 느끼함이 적었던 그 음식.
은은하게 마늘 향도 나서 그런지 한국인들도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근데 먹을 때도 느꼈지만 그냥 화려한 기술로 볶아 내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오묘한 맛이 아직 혀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뭔가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거 같은데.
짐작이 가는 게 있었지만 직접 만들어 봐야 알 것 같았다.
나중에 시장 가서 찾아봐야지.
“말고기만큼 많이 먹는 고기가 닭고기랬지?”
윤아의 말에 따르면 말고기는 플롭과 몇몇 요리에만 사용하고, 닭고기는 거의 모든 음식에 사용한다고 했다.
플롭을 거의 맨날 먹으니, 말고기가 제일 많이 소비하는 고기가 된 거고.
“샐러드로 활용할 만한 한식은 냉채가 무난하겠다.”
한식이지만 손님에게 제공될 때 코스 형식으로 제공되어야 했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눌 시간도 필요했고, 중간중간에 와인도 한잔해야 했으니.
냉채는 그럼 닭고기를 써서 만들어 봐야겠다.
겨자소스가 조금 강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나라만 겨자를 먹는 것도 아닐 테니.
매운맛만 잘 조절하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메뉴가 정리되고 있었다.
평범한 음식이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평범한 요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이야말로 경력과 관록에서 나온다.
그것이 내가 제일 잘하는 거기도 했고.
그렇지만 평범하기만 한 음식으로 김용수 대사를 도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걱정이 많아졌다.
“근데 그건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내 예상이 맞다면 나중에 내 요리에도 써먹으면 되니까.”
시장에 가면 꼭 확인해 볼 게 하나 있었다.
가장 자주 먹는 플롭에 꼭 들어가는 재료라면 아마 따로 파는 곳이 있을 테니.
그걸 활용하면 아무리 낯선 음식이라도 익숙한 맛을 낼 수 있다.
* * *
다음 날 시장으로 가 곧바로 정육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