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4화 (5/202)
  • 4. 파나르의 새 친구

    파사삭-

    고요한 식탁의 분위기를 깨는 소리였다.

    바삭하게 구워진 김치전을 씹는 소리였다. 부침가루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바삭함이 살아 있었다.

    “김치전 맛이 어떠세요?”

    아무 말 없이 김치전을 오물거리고 있는 김용수 대사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있는 재료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사람의 입맛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맛있네요.”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무심하게 맛있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또다시 젓가락을 가져가는 김용수 대사였다.

    윤아처럼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입맛에 맞다는 것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초짜는 아닌가 보군요.”

    “네 초짜요?”

    초짜라니. 도대체 날 얼마나 부족하다 생각했던 걸까?

    김용수 대사는 날 완전히 요리 초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 보니 주방을 관리하는 능력도 생각보다 뛰어난 거 같고, 비록 이 김치전 하나지만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은 거 같군요.”

    “감사합니다.”

    분명 칭찬인데 왜 이렇게 찝찝할까?

    차라리 빨리 속내를 말해 줬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덕수 씨가 파나르 요리사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언짢았던 게 사실이에요.”

    그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할 줄이야.

    “내가 현역 때 공관장 한 번도 못 해 보고 정년 퇴임한 외교부 비주류라서 이렇게 경험도 없고, 젊은 요리사를 보내 주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일종의 열등감이죠.”

    꼭 나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렇게 유치해진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본인도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해서겠지.

    “다른 공관장들에 비해 내 능력이 모자라니깐 음식으로라도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중견 요리사를 요구했던 거고….”

    자조 섞인 한탄을 늘어놓던 김용수 대사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어쩌겠는가.

    “제가 다른 요리사들에 비해 경험이 적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거 백번 이해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원했던 나이 많은 요리사이고, 그 누구보다 베테랑이니 안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괜한 시간 낭비였다. 회귀라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초짜 요리사는 아니니깐 너무 염려 마세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말은 고맙지만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고, 잘해야 합니다. 파나르는 다른 곳과 상황이 다르거든요.”

    아무래도 말로는 김용수 대사를 안심시킬 순 없을 것 같았다. 처음보단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연 것 같았지만 그의 표정은 줄곧 어두웠다.

    “미안한데 냉장고에 내가 생양파 잘라 놓은 거 있는데 그것 좀 갖다 줄래요? 밥 먹을 때 꼭 먹는 거라서.”

    “아 그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버렸습니다.”

    “그랬군요. 그럼 새로운 양파 하나만 준비해 줘요.”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김용수 대사는 습관처럼 양파를 찾았다.

    안색이나 눈 색깔이 나쁘지 않고, 음식 조절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걸로 봐선 당뇨가 심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만 이 나이가 되면 미리미리 건강을 챙기는 사람은 많으니까.

    “생양파 말고 이거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사 놨던 양파들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요.”

    아까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양파주스를 꺼내 왔다.

    차갑게 식어서 아까보다 단맛이 더 강해졌겠지.

    “윤아 씨도 한 잔 더 하실래요?”

    “네 저도 당연히 한 잔 더 콜입니다.”

    차가운 양파주스가 더 달콤하단 말을 기억한 윤아는 덥석 컵을 내밀었다.

    “이게 뭐길래 윤아 씨는 그렇게 신이 났어요?”

    “양파주스입니다. 대사님!”

    “양파주스? 그런건 처음 들어 보네요. 근데 난 주스는 안 먹는데.”

    역시나 당분이 들어간 음식은 경계하는 김용수 대사. 하지만 이건 100% 양파로만 만든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걱정 마세요 대사님. 이건 100% 양파로만 만든 거라 몸에도 엄청 좋아요.”

    “그래요? 그런 게 있어요? 신기하군요.”

    나를 대신해 윤아가 양파주스 홍보 대사를 자처했다. 윤아는 이미 한 컵을 더 비운 후였다.

    “음 이거 진짜 맛이 괜찮네요. 삼키기가 훨씬 수월하군요.”

    “생양파가 당연히 몸에 제일 좋지만 속이 쓰려서 오래 드시긴 힘들 겁니다.”

    “아! 맞아요. 우리 와이프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갑자기 동공이 커졌다가 다시 시무룩해지는 김용수 대사였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요. 사실 우리 와이프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항암 치료에 양파가 좋다 해서 내가 주구장창 생양파만 먹였거든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맨날 속이 쓰리다며 참 버거워했는데… 근데 이 양파주스는 달콤하고 삼키기도 좋네요.”

    애써 웃음을 짓는 김용수 대사를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그런 사연까지 있을 줄 몰랐다.

    “내가 주책이죠?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말까지 하고.”

    “아닙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때 힘들어하는 와이프한테만 억지로 먹인 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도 건강 좀 챙길 겸 생양파를 맨날 먹고 있는데 속이 쓰리는건 어쩔 수 없네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행동. 그 행동이 아무 의미가 없다 해도,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제가 양파주스는 항상 만들어 둘 테니 아침, 저녁으로 한 잔씩 챙겨 드세요.”

    “고마워요 장 셰프. 그럼 고맙게 마실게요.”

    어느새 나를 향한 호칭이 덕수 씨에서 장 셰프로 변해 있었다. 작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근데 장 셰프.”

    “네 대사님.”

    “내가 어리고 경험이 적다고, 장 셰프의 실력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아닙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는 장 셰프를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대사관에서 대단한 귀빈들을 상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먼저 이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김용수 대사가 없으면 내 자리 역시 사라지는 것이니까.

    “가장 중요한건 만찬 행사입니다. 거기서 장 셰프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나 역시 앞으로 맘 편히 귀빈들을 초대할 수 있어요.”

    애써 귀빈들을 초대했는데 수준 낮고, 형편없는 요리가 나온다면 만찬을 진행한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대사님께서 맘 편히 관저로 귀빈들을 초대할 수 있도록 빠르게 적응하겠습니다.”

    “하하하 젊은 사람이라 패기는 좋네요. 조만간 만찬 행사를 계획해 볼 테니, 우선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일단은 3개월간 잘해 봅시다.”

    “네? 일단 3개월이라뇨?”

    “아 못 들었나요? 처음 3개월간은 서로를 파악해 보는 수습 기간입니다. 그 후 상호간에 협의를 통해 정식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렇군요. 수습 기간이란게 있었군요.”

    말이 좋아 수습 기간이지 그냥 맘에 안 들면 잘라 버리겠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너무 걱정 말아요. 큰 문제만 없으면 정식 계약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오자마자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방 정리를 해냈다. 양파 단 하나만으로 맛 좋고, 몸에 좋은 음식도 만들어 냈다. 텅텅 빈 냉장고에서 바삭바삭한 김치전까지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걸로 내 실력을 증명하기엔 한참 부족했다.

    결국엔 귀빈들이 초대된 만찬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 외교 만찬 행사를 제대로 치러야만 나를 증명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윤아 씨 덕분에 잘 마무리했어요.”

    “요리사님도 어제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은 윤아의 도움을 받아 살 집을 구할 계획이었다. 파나르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으니, 이런 부분은 100%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아이큐도 확 올라간 상태로 회귀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확실한가 보다.

    “요즘 파나르 상황을 봐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좀 비싸더라도 안전한 지역으로 구하셔야 해요.”

    “네 윤아 씨만 믿을게요.”

    윤아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파나르 최대 번화가에 위치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월세가 비쌌지만 크기가 작은 원룸을 선택하는 걸로 방값을 아낄 수 있었다.

    어차피 이제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허리가 아플 일도 없었고, 혼자서는 큰 집도 필요 없었다.

    “나중에 돈 모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세요 요리사님.”

    “괜찮아요. 집이란 건 비만 피할 수 있으면 되죠.”

    “푸웁.”

    윤아는 내가 선택한 집이 맘에 들지 않는지 계속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내가 아끼고 싶어서 작은 집을 선택한 것뿐인데.

    가벼운 농담으로 윤아의 부담을 내려 줄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 밥 먹으러 가 볼까요? 요리사님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파나르에 왔으니, 당연히 파나르 전통 음식이죠. 아니면 집밥 같은 거?”

    “어젠 요리사님이 맛있는 걸 알려 주셨으니, 오늘은 제 차례입니다!”

    한식에는 빠삭하지만 외국 음식에 대해선 아직 모자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음식을 보면 심장이 떨리는 건 여전했다.

    “요리사님은 맛있는 음식 좋아하세요?”

    “저요? 왜 당연한걸 물어보시죠?”

    요리사에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냐니.

    당연한 거 아닌가? 질문의 의도가 뭐야?

    “그러면 이제부터 저랑 파나르 맛집 친구 하실래요?”

    “맛집 친구요?”

    나보다 한참은 어린 것 같은데 친구라니. 아니 태어난 연도는 같거나 비슷하겠구나.

    당황스럽지만 맛집 친구면 맛집을 함께 돌아다니는 건가?

    “우리 나이도 비슷한 거 같은데, 주말마다 같이 음식 먹으러 다녀요. 저 여기 친구 한 명도 없거든요….”

    “그냥 음식만 같이 먹는 거죠?”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요리사님. 파나르엔 1인분만 파는 곳이 잘 없어요. 그래서 혼밥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요리에 대해서 설명도 좀 해 주시면 좋고요.”

    생각해 보면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윤아의 능숙한 파나르어 실력과 동행하면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좀 더 수월할 테니.

    최대한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좋아요. 해 보죠 그 맛집 친구.”

    “오예! 나도 드디어 파나르에 친구 생겼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제가 쏠게요.”

    “괜찮은데. 같이 내요.”

    “친구한테 그냥 쿨하게 얻어먹으세요.”

    친구가 되었다는 이유로 얻어먹는 게 조금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내가 사 주면 되지.

    “일단 메뉴판 좀 볼까요?”

    “오늘은 메뉴판 보지 말고 저만 믿으세요. 요리사님 파나르 음식 처음 아니에요?”

    “그… 그렇죠.”

    파나르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윤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척척 주문을 했다.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가장 기본적인 파나르 음식을 보여 준다며 주문한 음식이 금세 서빙되었다.

    “짜잔.”

    “이게 뭐예요?”

    “파나르 사람들이 거의 매일 먹는 볶음밥이에요.”

    “볶음밥이요? 딱 봐도 맛있어 보이네요. 잘 먹을게요.”

    큼직한 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볶음밥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맛을 보지 않아도 맛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가 들어갔는지는 일단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난 후에 고민해도 될 문제였으니까.

    “근데 이건 무슨 고기로 만든 요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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