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원자가 한 명
“막내야! 바쁜데 얘는 또 어디 갔냐? 야 장덕수!”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 호텔 주방에 서 있다.
내가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그 호텔의 주방.
너무나도 오랜만이었지만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저 평소보다 조금 오래 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너 또 어디 갔었냐?”
“아… 죄송합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다녀왔습니다.”
하루 종일 서 있어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파도 쉴 틈이 없는 주방. 단 1분이라도 앉아서 쉬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계는 화장실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습관적으로 화장실 핑계를 대고 있었다. 예전 막내 생활을 할 때처럼.
“어휴 실력이라도 없었으면 진작에 잘랐을 텐데, 막내가 잠시라도 없으면 주방이 마비가 되니 참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증말.”
회귀 전 나보다 어린 주방장은 내 뒤통수를 슬쩍 툭 치고는 다시 칼을 잡았다. 지금은 은퇴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이땐 카리스마가 엄청났구나.
‘오랜만이네요 주방장님.’
서울 H호텔 한식당의 막내 장덕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요리를 하겠다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무작정 호텔 주방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열정적이고, 빠릿한 일 처리 덕분에 남들은 몇 년 걸리는 정직원 자리를 1년 만에 낚아챘다.
그중에서도 눈치 하나만큼은 특출났다.
나는 실력은 모자라도 눈치 하나로 먹고살던 그때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 행사 치르느라 수고했다. 자 다들 한잔해.”
“수고하셨습니다.”
“막내는 오늘 좀 덜 수고했다. 인정하지?”
오늘 한식당은 500명에 가까운 단체 손님을 치렀다. 경험이 부족한 막내 한 명이라도 부지런히 손을 거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막내가 갑자기 한참 동안이나 사라졌었으니.
아마도 그 미스터리한 현상 때문이었겠지.
“완전히 인정합니다. 그래도 주방장님! 급똥은 대통령이 와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인정하기 싫네. 요 입만 살아 가지고.”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해도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보니 막내 시절의 말투며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호텔 사람들은 전부 나를 좋아했었다. 나 역시 이 사람들을 믿고 의지했었고.
열심히 살았다고, 그리고 착하게 살았다고 준 선물인 걸까?
“그래도 덕수가 있어야 주방이 잘 돌아가니 어쩌겠습니다. 자 대신에 이거 많이 먹어라. 너 주려고 내가 일부러 챙겨 왔어.”
남자는 나에게 검은 봉지에 싼 곶감을 잔뜩 건넸다.
오늘 연회에서 쓰다 남은 것을 챙겨 온 것 같았다.
“이거 먹고 변비 걸리라는 말씀이신 거죠? 화장실 핑계로 자리 비우지 말라고?”
“역시 우리 막내 눈치 하나는 빨라. 그러니깐 잔말 말고, 빨리 삼켜.”
“예 알겠습니다!”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릴 수 있는 곶감을 일부러 챙겨 온 건지 우연히 상황이 맞아떨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는 막내였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근데 덕수야. 너는 앞으로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냐?”
“네? 저요?”
취기가 오른 주방장이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내가 요리사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해 줘야 하나?
아니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의 계획을 말해 줘야 하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저는 대통령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엥? 대통령 요리사?”
“네 저는 청와대에 들어가 한식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청와대도 모자라 한식 담당? 꿈도 크셔.”
언뜻 보기에 주방장은 나의 터무니없는 꿈을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사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주방장이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좋아하는지를.
“청와대까지 가서 남의 나라 요리를 할 순 없잖아요. 저는 아무리 그래도 한식이 제일 좋더라구요.”
“짜식 그거 하나는 맘에 드네.”
“다른 건 맘에 안 드십니까?”
“응. 전혀.”
모든 요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한식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지금처럼 호텔 주방장이 되는 것도 좋지만, 나의 원래 꿈은 청와대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대단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 그것이 꼭 해 보고 싶었다.
“그래 지금처럼만 해라. 넌 언젠가 꼭 기회가 올 거다.”
“감사합니다. 주방장님! 제가 청와대 가서 주방장님을 꼭 초대하겠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그 첫 번째 기회가 곧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날 청와대까지 이끌어 줄진 모르겠지만 가깝게 해 주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내가 만들어 갈 자신이 있거든.
그땐 용기가 없어 포기했지만, 이제 다시 기회가 온다면 충분히 청와대까지 갈 실력과 자신이 있었다.
* * *
“퇴직한 지 한참 지난 분에게 이런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이 늙은 사람이 아직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대통령 김채훈은 이미 3년 전에 외교부에서 정년퇴직한 김용수와 독대 중이었다. 그에게 파나르 특임 대사를 부탁하기 위해서.
“아시다시피 파나르에 가려는 실력 좋은 현직 공관장들이 없어서… 면목이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아직 창창한 현직들은 거기보다 선진국을 선호할 거고, 퇴직을 앞둔 사람들은 가족 때문에 위험한 곳은 주저할 거고. 공관장 한 번도 못 해 보고 퇴직한 늙은이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중앙아시아의 파나르는 석유를 수입하는 것 말고는 한국과 큰 인연이 없었다.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하지만.
물론 파트너십을 강화하면 석유 수입에 있어 더 유리해지지만 여태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 파나르에서 1년 전 내전이 일어났다.
정부군 못지않게 부유한 반란군의 엄청난 화력 덕분에 파나르에 주재한 대부분 나라의 공관들이 빠르게 철수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그런 파나르 대사관을 가장 먼저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3년만 잘 버텨 주세요. 그러면 그 뒤는 저희 정부와 기업들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먼 길 가시는데 뭐 필요한 거라도 없으십니까? 개인적으로 근사한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데.”
“괜찮습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저에겐 이 공관장 자리도 과분합니다.”
“그럼 업무 보실 때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서포트해 드리겠습니다.”
퇴직을 했음에도 자신의 부름에 돌아온 사람이었다. 김용수를 파나르로 그냥 보내기엔 맘이 영 불편했다.
“그럼 괜찮은 요리사 하나 붙여 주십시오. 제 능력이 부족하니 음식 덕 좀 봐야지요. 만찬 행사도 제대로 치르고, 끼니도 잘 챙겨 먹을 겸. 중견급 요리사로요.”
“중견 요리사요? 알겠습니다. 연륜 있고, 경력도 풍부한 중견급 이상 최고의 요리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해외의 한국 총영사관 또는 대사관엔 전문 셰프가 한 명씩 상주한다. 관저에 초대된 각국 인사들에게 수준 높은 한식을 제공하는 셰프.
맛있는 음식은 무거운 자리의 분위기를 쉽게 풀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보직이다.
특히 파나르 같은 곳은 더욱더.
원래라면 당연히 요리사도 채용되는 게 맞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파나르의 상황이 너무 어수선하고, 대사 외에 불필요한 인원은 비자도 쉽게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대통령 재량으로 밀어 넣어 볼 수 있었다.
“비서관님. 경력 많고, 실력 있는 제대로 된 요리사로 알아봐 주세요. 위험하지만 그만큼 더 큰 보상도 해 드린다 하세요. 앞으로 파나르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서울, 부산, 대구, 광주 할 거 없이 전국에 있는 특급 호텔로 공문이 내려왔다.
파나르에 파견될 대사관 요리사를 채용하는 내용. 그것도 경력 많은 중견 요리사로.
“미친 거 아니냐? 지금 여기 가라는 건 죽으라는 말이지. 돈 몇 푼 벌자고 목숨을 걸 요리사들이 어딨다고.”
“그니깐 말이다. 게다가 중견급에서 자원해서 갈 미친놈이 어딨냐? 어떻게 얻은 호텔 정직원 자리인데.”
언론에서 워낙 떠들어 대서 그런지 파나르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산유국의 반란군은 부유했다.
그들의 무기는 질도 차원이 달랐다. 덕분에 배부른 반란이라는 오명도 있었고, 몇 년 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차례였던 파나르를 급격하게 불안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때의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호텔에 남기로 결정을 했던거고.
* * *
“저… 주방장님.”
“그래 덕수야. 웬일로 조용하나 했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주방장은 대답했다. 젊었을 적 나는 대단히 호기심이 많았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궁금한 건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여기 지원한다는 말 하러 온거지?”
주방장이 벽에 붙은 공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여기에 가고 싶은지 알겠는데, 너는 안 돼.”
“왜요?”
주방장 역시 말없이 다시 공고를 가리켰다.
거기엔 경력 많고, 중견급 이상 요리사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땐 겁이 났던 것도 있었고, 애초에 자격 조건이 맞지 않아 지원하지 않았었다. 거기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막내가 떠나지 않아 모두가 좋아했었지.
“그래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해 봐. 내가 지원하는 것까지 나서서 말릴 순 없지. 그치만 어차피 넌 평생 내 손아귀에서 못 벗어날 거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주방장님이 싫어서 여기 가려는 건 아닙니다. 아시죠?”
“아이구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방장은 재능 있는 막내의 앞길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오래 같이 일하고 싶은 맘은 절실했다.
덕수는 분명 대한민국 최고의 주방장이 될 재목이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갑니다. 지원만 하면 무조건 붙을 거거든요.’
* * *
“주방장님! 저 합격했습니다.!”
“뭐라고? 덕수 네가 파나르 대사관 요리사에 합격했다고?”
“네 지원자가 저 혼자였어요.”
나 빼고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당시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중견급 요리사를 구하지 못했다. 억지로 파나르에 간 요리사는 결국 김용수 대사처럼 70살이 넘은 은퇴한 여성 요리사.
체력이 달려, 금세 돌아왔다는 소식까진 들었지만 그 후론 알지 못했다.
‘나는 이제 체력이 달려서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젊어진 내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진짜 소화가 되는지 쇳덩어리를 요리해서 씹어 먹어 보고 싶을 정도.
체력 걱정 따윈 완전히 집어치워도 될 문제였다.
* * *
“대통령님. 이번에 파나르 대사관에 채용된 요리사가 도착했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난데없는 회귀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경력이 한참 부족해도 단독 지원자였던 내가 뽑힌 것까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과의 독대라니.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였으면 일개 직원을 직접 청와대로 부르는 일 따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만큼 파나르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증거.
“이런, 생각했던 것보다 요리사가 훨씬 어리시군요. 중견급으로 뽑으라 했는데….”
‘대통령님 원래는 저랑 동년배….’
예전의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대통령이 날 보고, 너무 어리다고 곤란해하고 있다.
기뻐해야 할지 당황해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장덕수입니다. 경력은 비록 부족하지만 먼저 가서 고생하고 계시는 김용수 대사의 업무를 최대한 서포트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패기 있는 젊은 요리사인 척 목소리를 높였다. 긴장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기까지 했고,
“하하하, 100%는 아니지만 패기 있는 젊은 요리사도 나쁘지 않군요. 힘들겠지만 잘하고 돌아오도록 해요. 제가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보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였다.
지금 이곳은 청와대.
나는 이곳에서 꼭 한번 요리를 해 보고 싶었다.
“대통령님,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당돌하게 입을 열자 대통령보다 옆에 선 비서관의 눈빛이 빠르게 나를 경계했다.
“뭔가요? 말씀해 보세요.”
한 번 더 젊은이의 패기 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짧은 시간 최대한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
3년 후엔 오늘 했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거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이.
“파나르에서 돌아오면 이곳 청와대에서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