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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인간계vs마계
그 후의 애기를 들어보자면.
경현은 애초에 총알을 맞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맞지 않았다는건 이상한가.
어쩄든 총알에 관통당하긴 했으니.
어찌된 일이냐하면, 총알이 피부에 닿는 순간 풍화를 해서 총알의 운동에너지만 없애고 상처는 별로입지 않았다고.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그 말에 바탕을 두었다나.
...경현주제에 머릴 굴리다니.
역시 인간은 진화하는 생물인가 보다.
"나참. 생각해보면 난데없이 큰일을 겪은것 같잖아."
"...뭐, 좋게 풀렸으면 된거지만."
전직시험은 캔슬되었다.
메튜가 봉인됨으로 인해 '7명의 사신이 모여야한다'의 조간이 깨졌다나 뭐라나.
앞으로 한달간은 다시 할 수 없다는 듯 하고.
칸과 크라이아도 힘을 잃지는 않은것 같다.
죽음의 패널티때문제 오늘은 접속하지 못하겠지만.
-그건 그렇고, 지금 우린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어떤 문제냐하면.
"그러니까... 제로스의 정체가 프리멀리포제서? 윌리엄 텔의 후손?"
"응. 몇년전에 실종되더니 여기서 이런일이나 하고있을줄은..."
모자를 벗어 드러난 제로스의 얼굴은 꽤나 핸섬했다.
생긴것부터가 시크한 인상인데, 왠지 호감이 든다.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봐, 공주. 막 알려줘도 되는거야?"
"시끄러워, 자유로운 영혼."
"...내가 이 말괄량이 공주에게 설교를 들을 날이 올줄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둘은 꽤나 친한 사이인것 같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니, 왠지 웃긴걸.
"애초에 네가 왜 여기있는거야?"
"뭘 하던 내 맘 아닌가?"
"아니지. 넌 내 전속기사잖아."
"...그렇군. 사퇴하지."
"죽을래?"
"이런 폭력적인 주군을 섬기는 내 마음도 좀 고려해줬으면 하..."
퍼억
그 직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제로스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으니까.
"....."
"....."
응.
왜인지 주먹을 말아쥐고있는 리아스는 못본걸로하자.
"그나저ㅇ나."
비교적 담담하던 경현이 리아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속기사라니, 그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애초에 윌리엄 가는 대대로 우릴 지켜왔으니까."
"대대로...?"
"따지자면 펜드래곤 쪽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쪽이지만."
점점 관계가 복잡해져가는걸 느꼈는지, 경현은 입을 다물며 대화를 끊었다.
그 묘한 침묵이 끊어진 것은, 좀 의외지만, 제로스였다.
"그나저나 너희들 탓에 완전히 계획이 틀어져버렸구나."
"네 잘못이라곤 생각안하는거야?..."
어이없다는듯, 트레스가 반문했지만 제로스는 개의치 않은 듯 했다.
...꽤나 철면피다, 이녀석.
"세상을 구하기 위한 일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건 당연한 일이며, 이미 역사에서도 수천번은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세상을 구해?..."
"뭐, 너희들이 알린 없겠지만. 라마르크라고, 내가 현재 돕고있는..."
"지금 뭐라고했어!?"
콰당!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제로스를, 리아스가 험악한 인상을 한 채 넘어트렸다.
제로스는 당황한 눈치고, 리아스는 상당히 흥분한 듯 하다.
-혼란스러운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왜 또 라마르크가 나오는 것인지.
그 작자는 어디에 안끼어드는 곳이 없는거냐.
"네가... 네가 왜 그녀석을 돕고있는거야?"
리아스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화내는것 같기도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본 제로스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아, 하고 신음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라마르크가 이런말을 했었지... 자신을 뒤쫓는 프리멀리포제서가 한명 있다고. 그게 너였나."
"대체... 대체 왜 그놈을 돕는거야!"
"오히려 내가 묻고싶군. 넌 왜 라마르크를 막으려들지?"
"당연하잖아!"
리아스는 제로스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그놈의 방식은 이상해!"
"이상하다고?"
"미래의 일을 막자고, 현재에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일... 그런게 용납될 것 같아!?"
제로스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생떼를 봐주는 것이 질렸다는 듯한, 그런 표정.
"...이래서 사람이란 존재가 어리석다고 하는거다, 공주."
"....."
"당장 앞일만 생각해. 정작 중요한 미래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어두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잖아! 미래의 멸망을 막으려고 했던게 현재를 멸망시키면, 그거야 말로 본말전도잖아!"
리아스의 말에 틀림은 없다.
제로스도 그걸 알기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잠시동안 침묵이 흐르며, 리아스가 제로스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리아스에게서 풀려난 제로스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사실 말이야."
어딘가 달관한 듯한, 허무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현재든 미래든, 중요하지 않은건 없어. 다만...."
마지막엔, 슬픈 목소리로.
"난 더 높은 가능성에 걸고싶은 것 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제로스는 갑자기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우린 그런 제로스를 쫓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저 침묵을 지키며-
"...뭐냐고, 정말..."
유난히 작아보이는, 리아스의 등을 쫓을 뿐이었다.
우울해진 리아스를 의식해서인지, 우린 마을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묘하게 떠들썩한 마을이, 왠지 짜증났다.
세상은 어느 한 사람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건 어릴때일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걸 깨닫고 나면, 어딘가 슬퍼진다.
사실 나라는 존재는 있으나 없으나구나, 하고 알아버리니까.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그것이 지금같은.
만약 '나밖에 하지 못하는'.
혹은 '내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만 하는' 그런 일이라면-
"드디어 찾았네요."
"....?"
순백의 차림을 한, 그러면서 왜인지 로브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가린 3명의 유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당연히 처음보는 사람이다.
애초에 한번이라도 만났던 사람이라면, 대충 목소리라도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누구야?"
방금 일도 있고해서 모두 분위기가 날카로워져있기에, 나오는 말도 자연히 곱진 않았다.
그에 화날 만도 할텐데, 그 3명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되려 예의바르게 인사할 뿐.
"처음뵙겠습니다. 데스마스터 여러분."
"....."
우리에 대해서 알고있다.
보통 이런 경우 좋은 일을 겪은 경험이 없었기에, 우린 일제히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저희는 디바인로드. 얼마안가 일어날 '대재앙'에 대해- 힘을 빌리고자 만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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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럴 의도는 없었는데 분위기가 괜히 암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