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프로젝트-33화 (33/105)
  • <-- 33 회: 4장 - 태양이 빛나지 않는곳(Where the Sun doesn't shine) -->

    똑......

    똑....

    똑...

    물방울 소리.....

    물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난......

    살아남은 것인가?

    "으음!...."

    난...

    난 지금 살아있다.

    몸이 뻐근해서 움직이기 어렵지만 몸이

    움직여지고 목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눈앞의 천장이 보인다.

    일어나서 봐보니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와있는듯 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기억이 나는것은 오직 갑자기 발생한

    지진 때문에 땅밑으로 떨어졌다는 것.

    일어나보니 이 컨테이너 박스안에 있는거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곳으로 옮겨노았다는

    뜻인데......

    !

    맞다!

    애쉴리!

    애쉴리 그랠로핀!

    그녀도 같이 떨어졌었지!

    같이 떨어진 애쉴리가 먼저 깨어나

    이 컨테이너 박스안에 자신을 넣고

    본인은 지금 어디로 나간듯 하다.

    꼬르륵...

    정신이 서서히 들며 허기가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빵 몇봉지가 보였다.

    식빵 봉지 말고도 참치 캔이나 라면,

    생수, 음료수, 술 등등 먹을게 널려있었다.

    도대체 저런것이 왜 다 여기 있는건지...

    레노드는 식빵 한조각을 꺼내 그것으로 허기진

    배를 체웠다.

    철커덕!... 드르르르륵!

    잘 먹고 쉬고있는데 들려오는 소리!

    이것은 분명 문을 여는 소리였다.

    컨테이너 박스의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스윽.

    다행히 허리춤에 핸드건이 차 있다.

    레노드는 재빨리 핸드건을 손에 쥐고

    컨테이너 박스의 문쪽을 조준했다.

    화 - 악!

    열려지는 문!

    철컥!

    레노드는 총알을 장전하고 총을 쏘려했지만

    이내 총을 거두었다.

    "엇!"

    그 이유는 바로 문을 연 주인이

    애쉴리였기 때문이다.

    "일어났군요 레노드!"

    "예."

    드르륵!

    철커덕!

    레노드를 반겨준 애쉴리는 일단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애쉴리는 상태가 좋아보였다.

    "하핫!.... 또한번 신세를 졌군요."

    레노드는 저번에 수지가 죽었을 당시

    기절해서 쓰러졌을때도 옆에 애쉴리가 있었던것을

    상기시켜내고 그녀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레노드는 참 많이 쓰러져요."

    그녀는 레노드에게 농담삼아 다소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하하..."

    레노드는 그녀의 농담에 쓴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 항상 여자에게 도움을 받는단 말인가?

    자신이 도움을 주긴 망정...

    "그런데 이곳은 어디죠?"

    분명 이곳은 컨테이너 박스 안.

    그리고 레노드가 정신을 잃기 전의 마지막 기억은

    지진으로 인해 지하로 떨어졌다는 것.

    일어나 보니 이 컨테이너 박스 안.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이곳은 땅 밑이에요. 그리고 이 컨테이너 박스는

    지진으로 인해 떨어진듯 한데... 눈에 우연히 띄여서

    보금자리 삼은것이구요."

    레노드는 애쉴리의 말을 들으며 목이 말라 온전히

    잘 있는 자신의 배낭에서 생수통을 하나 꺼내

    물을 한모금 마셨다.

    역시 지하라 그런지 공기가 쾌쾌해서 목이

    텁텁했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 땅 밑이라니.....

    "그런데 애쉴리는 어딜 갔다온거죠?"

    물을 다 마신뒤 애쉴리가 왜 밖으로 나갔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에... 그게..... 마냥 이곳에만 있을수 없으니

    레노드가 기절해 있을 동안 이 주변좀 살펴보았어요."

    "그저 지하일 뿐인데 뭐가 있었나요?"

    "운이 좋게도 길을 찾았어요."

    "정말요?!"

    애쉴리와 예기하던 도중에 그녀가 이 땅 밑에서

    길을 찾았다고 하니 레노드가 순간 굉장히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큰소리로 되물었다.

    그냥 대화할 거리나 만들려고 넌지시 던진 질문인데

    그에 대한 대답이 너무 아이러니였다.

    "제가 왜 레노드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 레노드의 반응에 애쉴리는 이번에도

    퉁명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농담을

    던졌다.

    새침한 애쉴리는 아무래도 날카로운 농담을

    많이 하는듯 했다.

    "그런데 몸은 좀 어때요?"

    그녀는 그런 농담을 던지면서도 레노드의

    건강을 물었다.

    마음은 왠지 정말 따뜻한 그녀였다.

    "움직일수는 있지만 좀 힘들어요.

    온몸이 쑤시고 뻐근한게 무겁군요."

    "그렇다면 레노드의 몸이 좀 나으면

    출발하죠."

    "아니, 저때문이라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괜찮아요."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는데...

    컨디션이 안좋으면 곤란해요.

    저 하나의 몸도 추스리기 바쁠 상황에 레노드까지

    도울수는 없을테니까요."

    말을 마친 애쉴리는 이내 조그마한 담요하나를

    덮고 구석에 누웠다.

    "벌써 자게요?"

    그런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봤다.

    그러자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투로 힘없이

    내게 지금은 밤이라 설명하며 눈을 감았다.

    "하늘을 막고있는 바위 사이로 들어와야 할

    햇빛이 보이지 않고 있어요.

    지금은 밤이라구요."

    그런데도 레노드는 계속 말을 걸었다.

    방금 일어나서 졸리지도 않거니와

    현재 상황에 대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상황 파악은 빨리 할수록 좋으니까.

    "밖은 안전한가요?"

    "예. 둘러보고 싶으면 요 주위만 살짝

    돌아보셔도 돼요."

    그녀는 레노드의 물음에 대답해주고는

    담요로 머리를 덮었다.

    좀 자게 내버려 두라는 투였다.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애쉴리에게 미안해진

    레노드는 코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했다.

    외출 준비라고 해봤자 컨테이너 박스 안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져 있는 가죽 자켓을

    입은게 전부였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 핸드건은

    필수로 챙기고 저번에 얻은 호신용 총도 챙긴뒤

    디지털 카메라를 한손에 쥐고 밖으로 나갔다.

    컨테이너 안은 애쉴리가 구해둔 낡은

    램프로 인해 그래도 꽤 밝은 편이였다만

    컨테이너 밖은 어두워서 도무지

    뭘 볼수가 없었다.

    그나마 위를 막고있는 바위 덩어리들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 때문에 이곳이

    지하이고 뭔가 동굴 같은 분위기를

    낸다는것만 간신히 알아볼수 있었다.

    레노드는 할수 없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어 그것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냥 다니기엔 이 지하동굴이 너무 어두웠다.

    손전등을 키니 역시 주위를 알아보기가

    훨씬 쉬워졌다.

    컨테이너 밖의 이 지하공간은 매우작았다.

    그래서 손전등의 작은 불빛만으로도

    이 공간을 가득 메울수 있었다.

    "콜록! 콜록!"

    손전등의 불빛에 빛추는 수많은 먼지 입자들.

    그 때문에 레노드는 기침을 몇번 해야했다.

    주위엔 별거 없었다.

    그저 조각난 돌멩이들과 큰 바위들이 널려있을뿐...

    아마도 애쉴리는 이런 바위들 사이를 자세히

    조사하다가 어딘가로 통하는 구멍 따위를

    발견한듯 했다.

    컨테이너 밖의 조그마한 공간을 한번 둘러본

    레노드는 느낌상으로 대략 30분 쯤 지나서야

    다시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잠그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애쉴리는 어느새 새근새근 자고있었다.

    레노드는 그녀 옆에 앉아서 가만히 그녀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쉴리는 정말 아기처럼 조용하게 자고있었다.

    할것도 없어서 애쉴리 처럼 그냥 잘까 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역시 몇일동안 잠들어 있다 깨어나서 그런지

    피로는 몰려오지 않았다.

    몸은 상당히 피곤하지만 정신은 밝았다.

    그래서 자고있는 애쉴리나 지켜보았다.

    사파이어 같은 푸른 눈은 눈꺼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루비와 같은 오동통한 입술은

    게곡물처럼 흐르는 금발 물결 머리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지금 까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못 느꼈었는데 이제보니 애쉴리는 뛰어난

    미인 이였다.

    도무지 세큐리티 리더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미인.

    왠만한 모델은 뺨치는 수준이였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슬슬 크리스티나가

    떠올랐다.

    후우~

    그녀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심성이 여려서 가슴앓이를 꽤나 많이 할텐데....

    분명 내가 죽었을줄 알고 눈물로 몇날 몇일을

    세웠을것이 분명하다.

    가엾은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살아 돌아가야만 했다.

    할일 없이 누워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기억났다.

    양 부모님과 친구들, 왠수 같았던 녀석들,

    선생님들, 이웃들...... 정말 많은 사람이......

    추억들도 하나씩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이불에 오줌을 싼 기억,

    친구들과 초콜렛을 훔치다가 걸려 된통 혼난 기억,

    소풍가서 불우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던 기억,

    숙제를 해오지 않아 선생님께 야단 맞은 기억,

    스쿨 마라톤 때 열심히 달려서 1위를 한 기억,

    너무나도 많은 추억들이 레노드의 머리속에서

    마치 파노라마 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런 사소한 추억들이라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레노드는 뼈저리게 느꼈다.

    평소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그 지긋지긋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행복하기

    짝이 없는, 황금같은, 아니, 황금 따위가 비교도 안될

    귀중한 시간들인지를 골수까지 느꼈다.

    자신을 괴롭히고 욕하던 사람들도 그리웠다.

    고생을 하면 사람 마음이 정말 많이 바뀌는구나 하고

    레노드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항상 하던 말도 생각났다.

    양아버지는 레노드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가 널 고아원에서 데려와 도와준 이유는

    널 믿기 때문이라고.

    네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면 지금의 나처럼

    다른 사람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내가 너를 도우면 너는 누군가를 도울것이고,

    그 누군가가 또다른 누군가를 돕고 하면 돕고 돕는

    사회가 만들어 질것이라고.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아름답게

    변화될것 같지 않냐고.

    마치 할아버지들이 미래의 손녀딸에게 주기위해

    사과나무 씨앗을 땅에 심는것 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행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그 씨앗이 바로 레노드라고...

    레노드는 어렸을적 부터 그 말을 듣고 자라서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도 최대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게 레노드의 마음이였다.

    만약 자신이 깨어나있고 애쉴리가 기절해 있었다면,

    애쉴리가 자신을 도운것 처럼 레노드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도 쭉 생각하다 보니

    특별히 기억나는 한 소녀가 있었다.

    수지.

    꼭 지켜내 보이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지만

    끝내는 지켜내지 못한 소녀.

    수지는 천국에서 아빠와 함께 잘 있겠지.

    믿기지는 않지만 아무튼 저번의 그 꿈인듯한

    공간에서 그녀는 레노드를 살려주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슬슬 졸려왔다.

    막 잠들려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반드시 살아남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의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해주기를...

    그 생각을 레노드는 몇번이나 거듭 하며 굳은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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