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회: 3장 - 그들이 모이기 전의 과거(The past before they assemble) -->
적막감이 도는 한국의 밤거리.
이미 환경 오염이 될대로 된 세상이라
달빛이 밤을 비추어 주기에는 힘들지만
그나마 전봇대들 덕에 밤거리가
그럭저럭 밝았다.
허나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북적거리는 인파도 없고 꽉꽉 막힌
교통 체증도 보이질 않는다.
대신 거지 몰꼴의 주민 몇명과
잔뜩 겁먹은 한 소년이 있을 뿐이다.
그 소년은 커피빛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목구비 형태를 보아
동양이나 아프리카 쪽 사람이기 보다는
인도 사람인것 같았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야시 레디.
지금 지옥에서 해메는 불운의 소년이다.
야시는 사실 인성 교육을 위해
어쩔수 없이 한국에 온것이였다.
법보로 유명한 해인사에서 인성교육
중이였고, 또한 성격이 다소 안정적이게
되었다.
허나 이 소년의 어머니인 알차나 레디가
예상치 못했던 일로 인해, 야시의 성격은
지금 안정적이기 보다는 극히 불안정하고
소극적이게 바뀌었다.
바로 최악의 바이러스인 K 바이러스 때문이다.
흔히들 K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좀비라고 부른다.
이 좀비들은 사람도 잡아먹는 식인 괴물이다.
야시는 해인사에서 인성교육 도중
결국 나중에 탈출을 시도했다.
아마도 자신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다소 공포를 느꼈을 터이다.
허나 이것은 야시의 큰 잘못이였다.
그나마 안전한 해인사에서 나오니, 한국은 이미
K 바이러스에게 지배당한 상태.
어머니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좀비들만 거리에
가득하다.
다행히 좀비들이 달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린 야시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는데...
그것도 언제까지일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작은 마켓에
들어와 있다.
24시간 마켓인데... 맞는 말이기는 하다.
24시간 풀로 오픈되어 있으니까.
허나 24시간 동안 있어야 할 직원은 없다.
음식은 모두 무료다.
다만 거리의 좀비들을 피하고 음식들을
가져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을 뿐이다.
3일동안 아무것도 못먹고 다닌 야시는
소보루 빵 하나를 입에 물고 마켓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빵과 우유가 잔뜩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유통기한이 긴
캔 음식을 많이 찾는다만 어린 야시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하고 먹기 간편한
빵들을 많이 가지고 나온 것이다.
헌데 이상한 점은, 야시가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데도 좀비들이
야시를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야시가 입고있는 청조끼
때문이였다.
야시는 최근에 어떤 남자의 시체에서
이 청조끼를 가져온 것인데,
바로 주머니가 많고 밤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헌데 그 청조끼에 찌들어 있는 좀비의
혈액들이 지금까지 야시를 보호해 주고
있던 것이다.
아직 좀비들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많이
없다만, 이 상황에서 보자면, 좀비들은
절대로 같은 좀비들을 헤치지 않는다.
그 뜻은 즉 좀비들은 어떤 방법으로
서로를 알아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이 바로
좀비들의 혈액에 있는 냄새인것이다.
개미들이 서로의 냄새를 알아보는 것 처럼.
물론 그저 피가 쩔은 청조끼라 언제 까지
그 효과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장담 못하지만
야시는 현재 그 누구보다 더 안전한 상태다.
그래도 야시는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좀비들이 달려들까
겁나서 달리지 못했다.
탕 탕 탕!
조용한 밤거리에 갑작스레 총성이 들린다.
걸어가다가 전봇대에 박고, 뚜껑 열린
하수구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멍청한 좀비들이
쏜것은 분명 아닐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근처에 사람이 있다.
어린 야시도 그정도는 추측이 가능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절대 달리지는 않았다.
침착하기 보다는 겁에 쩔었다는게
옳은 말일 터이다.
탕 탕!
또다시 들려오는 총성.
총성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 졌다.
이내 멀리 사람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들과 가까워 졌다.
사람들의 수는 대략 10명 남짓이였다.
복장을 보아 모두 세큐리티들이였다.
세큐리티들은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며
길을 막는 좀비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었다.
야시는 세큐리티들에게 곧장 달려가지는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아 드디어 누군가를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꽉차게 떠올랐다.
누군가가, 그저 모르느 사람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데 어이 없게도 세큐리티들이 야시에게
총을 겨누었다.
야시는 너무 놀라 할말을 잃고 멈춰 섰다.
"으으으....."
쏘지 말라고 외쳐야 하는데 말이 안나왔다.
사람이 진짜로 죽을 위험에 노출되면 몸이
경직된다고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피하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어의없게, 그것도 같은 생존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나 하고 생각하는데 한 세큐리티가
한손을 들어 올렸다.
까칠해 보이는 수염이 밥송이 처럼 튀어나온
근육질의 세큐리티 였다.
"이봐. 손에 든 봉지 안보여? 저 녀석 생존자라고."
그 밤송이 세큐리티가 말했다.
"리더. 하지만 입가에 붉은게... 조끼에도....."
"입에 빵같은걸 물고 있잖아! 자세히 보면
저 붉은것은 젤리 같은거라고.
좀비가 빵 먹는거 봤나? 세큐리티라면
생각을 신중히 해야지! 조금만 늦었어도
귀한 생존자가 죽을뻔했잖아!"
"아아... 죄송합니다."
밤송이 세큐리티, 그가 세큐리티들의 리더인듯
싶었고 이내 그 리더가 야시에게 다가왔다.
"네 이름이 뭐니?"
그의 물음에 야시가 말을 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뒤의 세큐리티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모두들
야시를 조준하고 있었다.
야시는 현재 경직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총에 겨냥된 적이 없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세큐리티들의 눈빛이 차츰 날카로워
질 때 쯤에 야시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야... 야, 야시요. 야시 레디."
야시가 통성명을 하자 세큐리티들은 긴장을
풀고 야시에게 겨냥하던 총구를 다른곳으로
돌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시? 인도 이름이군. 그래 야시.
이제 걱정 말라고. 이 맥스더 아저씨가
꼭 널 엄마 아빠에게 데려다 줄테니까."
야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