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회: 2장 - 천국 대신 지옥(Hell instead of Heaven) -->
온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약간의 힘도 줄수없는 내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신이 빠질듯 말듯 하면서도 온 세상이
흐리게나마 보이고, 시끌벅쩍한 소리가
들려오니 나는 아직 죽진 않은것 같다.
이렇게 멀쩡히 생각도 하고 있으니 좀비도
되지 않았을터이다.
혹은 이미 죽고 영혼만 남은 상태일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좀비가 되면 몸을 통제하진
못해도 생각은 할수 있을수도 있고.
주위가 어두우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턱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몸이 가벼워지고
시야도 뚜렷해져갔다.
몸 상태는 최고고 상처도 없다.
뭔가.
죽은것인가?
아마도...
난...
죽은것 같다.
영화에서만 보던 영이 되버린건가?
영이라는게 정말로 존재했던 것이군.
현재 내 주위의 세상은 어느새
피로 모두 칠해진 그 끔찍한 한국이란
곳이 아니라 새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고요한 숲이다.
"좋군."
나뭇잎을 흔들거리게 하는 산들바람이
따스한 햇살이 섞여 내 곁으로 다가오자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
이곳이 어디인지 나도 모른다.
지옥은 아닌것 같고 천사들이 반겨주는
구름위의 천국도 아닌듯했다.
이곳은 그저 평온한 숲일뿐이다.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사후세계이로군.
천국도, 지옥도 존재 하지 않아.
아니, 이 멋진 장소가 바로 천국이나 다름 없군.
이때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친구.
그래...
이곳에도 친구를 만들어야겠지?
아무리 좋은 장소라도 혼자있으면 싫어.
특히 지금은 죽은 상태이니 영원한 고독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만약 이곳에 혼자 있는다면 지옥보다 고통스럽겠다.
아니야.
부정적인 생각 말자.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하자.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겠지.
레노드는 왠지모를 경쾌한 마음에 기분이 들떠서
허리를 쫙 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숲을 탐험했다.
"오지마세요! 되돌아 가세요!"
숲에서 한참을 걷고있는데 갑자기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하고 예쁜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날카로웠다.
목소리는 메아리를 치며 잠시동안 주위를 울렸다.
"으윽!..."
그리고 순간 광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레노드는 눈에 통증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되돌아가야만 해요..."
그리고 또한번 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노드는 눈을 천천히 떴다.
"엇! 수지야!"
눈을 뜨니 앞에 수지를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애에게 다가가려 했다.
혹시나 영원한 고독을 가질까 염려 했는데
수지가 나타나 주었다.
한국에서, 지옥에서, 절망 속에서 함께
웃으며 다니던 수지가 있다.
일단 영원한 말동무가 생긴 셈이다.
수지에게 달려가는 레노드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아마도 10년만에 딸을 다시 만난 아버지의
표정이 그러할 것이다.
"오지말아요!"
그런데 수지는 뒷걸음질 치며 레노드에게서 멀어졌다.
정말 황당한 일이였다.
"왜그래 수지야?"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수지는 뭔가 몹시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레노드를 쳐다보았다.
"뒤로 돌아가세요."
"뭐라고?"
수지는 계속해서 레노드를 되물리려 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어째서 나와 멀어지려 하는가?
난 너를 구해준 사람이고, 그것을 떠나서
생전에 그 지옥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주고 웃던 사이가 아니였던가?
"수지야?....."
딱딱히 경직된 얼굴로 수지에게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레노드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수지에게 갈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전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숲이 불에
타오르며 지옥으로 바껴져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살아날수 있어요.
아직 안늦었으니 어서요!"
"하지만..."
레노드가 불에타오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게 가만히 서있자 갑자기
수지가 달려와서는 레노드를 뒤로 세게
밀쳐냈다.
그리고 어느새 뒤에 절벽이 있었다.
수지는 뜨거운 불에 몸을 태우면서 까지
달려와 레노드를 절벽 아래로 밀쳐낸것이다.
"수, 수지야 너 이게 뭐하는 짓!...."
레노드는 눈알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떻게 된것인지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데
수지의 얼굴이 보이고, 수지의 눈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레노드 오빠.
비록 짧은 만남이였지만...
비록 끔찍한 지옥에서의 만남이였지만.
난 행복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해어져야해요.
오빠가 절 구해준것 처럼 전 오빠를
구하고 싶네요.... 잘가세요.
잘 가시고... 꼭 살아나세요......"
수지는 알수없는 말을 하며
얼굴에 미소를 그렸고 눈물에서는
끊임없는 투명한 눈물을 쏟아냈다.
레노드는 '수지야!' 하고 크게 그애를 불러보았지만
그애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파-앗!!!
"엇? 레노드!"
방금 눈을 떴다.
분명히 눈을뜨고 있었는데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엔 물결진 금발 머리가
잘 어울리는 푸른눈의 여성이 보였다.
"애, 애쉴리?"
"이제 정신이 좀 들었나요?"
레노드는 도데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방금전 상황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노드는 지금 푹신한 쇼파위에 있었고
애쉴리는 웃는얼굴로 자신에게 괜찮냐고
거듭해서 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허둥데는 내게
지금까지 뭐가 어떻게 된건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레노드는 그제서야 방금전 그 숲에서의 일이
꿈의 공간이였다는것을 알수있었다.
레노드가 깨어나기 전에 어떤일이 벌여졌냐면은,
일단 일행이 타고있던 버스가 간신히 코끼리에게서
풀려나 버스가 떨어지고는 그뒤로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었었다고 한다.
그 폭격은 미국에서온 지원 세큐리티들이
핸드케논이나 로켓런쳐등으로 폭발물을 퍼부어
이루어진것이라 했고 까마귀나 다른 여러
좀비들은 수면탄을 던져 잠재웠다고 한다.
좀비들이 잠을 안잔다고는 하나 약물을 이용한
강제적인 수면에는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수지는요?"
레노드는 방금전 그것이 꿈이였으니 하고
생각하고는 바로 수지를 찾았다.
지금 이 공간엔 수지가 없었다.
걱정이 밀려온다.
수지는 살았겠지 하고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다.
레노드의 물음에 애쉴리는 처음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가 떨어질때 그만......
머리가 쇳조각에......."
그녀의 대답에 레노드는 순간 온몸의 힘이
쫙 풀리는것을 느꼈다.
물론 고작해봐야 한 40시간 정도 같이 있었던
수지였지만....
그래도 그 40시간이 마치 3개월 같았던 길고 긴
시간이였던 터인데다가 자신이 직접 구해내고
돌봐주고 챙겨준 애라 슬픔이 느껴졌다.
슬픔의 친구인 눈물이 눈에서 고이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 있다가 레노드는 자신이 꾸었던 그 꿈을 애쉴리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레노드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아마도... 수지가 레노드를 구해준것 같네요."
그녀는 이상한 미신적인 말을 꺼내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레노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신을 믿지않는 레노드지만 왠지 그런것 같기도 했다.
그 꿈은 꿈이아닌 진짜 사후세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죽어있던 수지가 막 죽으려던 레노드를
구한것이고.....
"우습긴 하지만 아마도 그 꿈은 실제였을수도 있어요.
그럴거에요 아마."
...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그저 자신이 살아있는게 어색했고 현실감이 없었지만
분명 이것은 현실인것같았다.
수지야....
네가 날 살린거니?
어이가 없군.
마치 천국대신 지옥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나 할까나?
철컥.
레노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동안 시간을
흘러갔고 조금뒤에 지금 있는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