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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83화 (18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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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주란 것을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단 일반적인 인간의 삶을 끝내고 난 다음 말이다.

    애석하게도 부모님은 내 제안을 거절하셨다.

    실제 자식의 능력에 대해 감이 잘 안 잡혀서, 창조주란 것을 허무맹랑하다 여기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로이아스에 계신 두 분과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서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죽어서까지 내 발목을 잡고 싶진 않다는 것이었다.

    절대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고 설득을 해봤지만, 부모님들은 묵묵히 고개를 내저으셨다.

    역시 부모 마음이란 것은 어디나 같은 것 같다.

    나도 이젠 부모가 된 입장이라서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달라붙은 루나를 매단 채, 바리사다의 브릿지 한 곳에 서서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형님.”

    그런 내게 마그누스가 여자의 모습으로 스스럼없이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왔다.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중2병이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그간 많이 정신을 차린 녀석은 이제 둘도 없는 내 협력자가 되었다.

    여전히 나와 아르비스 가문의 인척이 아닌 인간은 무시하는 성향이 있지만 말이다.

    “왜?”

    녀석은 슬쩍 내게 달라붙어 있는 루나를 바라보곤 우주로 시선을 돌렸다.

    “고민 있으십니까?”

    “그렇게 보여?”

    “네.”

    즉답을 하는 마그누스를 보니, 몇 년 동안 가까이 지낸 게 폼은 아닌 모양이다.

    나중에 녀석과 테라시아에게 창조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너 말이야. 드래곤 후손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떨 것 같냐?”

    뜬금없는 내 말에 마그누스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그냥 어떨 것 같냐고.”

    그에 녀석은 의외로 감흥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요.”

    “왜?”

    “전에 세계도 아니고 모든 게 변했으니, 굳이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요?”

    정말 여러모로 성숙해졌다.

    이것도 나의 영향일까?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괜히 마그누스의 뺨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고민은 그게 아니잖아요?”

    마그누스는 나를 올려 보며 항의했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그냥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 크게 고민이랄 것도 없어.”

    “그렇습니까?”

    “아, 하나만 더 묻자.”

    나는 의문을 표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너는 에리스가 수명이 다하면 어쩔 생각이야?

    이번에도 뜬금없지만, 마그누스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니 간단히 답할 수 없는 물음인 모양이다.

    “글쎄요. 생각해본 적이 없군요.”

    테라시아에게 듣기로 마그누스는 변변한 유희 한번 없이 드래곤으로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괴팍한 성격을 가졌던 것이겠지.

    즉, 에리스가 마그누스의 용생의 첫 연인이란 뜻이다.

    지금 표정을 봐도 그렇고, 흔들리는 기운도 그렇고, 드래곤인 녀석이 상당히 동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쉽사리 답을 못하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과 에리스라면 알콩달콩 오래오래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수명문제 해결해 줄게 걱정마.”

    “그게 정말입니까?”

    “뭐, 에리스의 허가도 필요하고 너는 완전히 나한테 코가 꿰겠지만 말이야.”

    에리스와 함께하는 것은 좋지만 나에게 코가 꿰인다는 부분에서 좁혀지는 미간이 너무 눈에 띄었다.

    녀석에게 한마디 하려던 순간.

    돌연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그누스는 갑작스런 내 반응에 크게 당황했지만, 나는 빠르게 외쳤다.

    “방어!”

    콰아아앙!

    활성화된 마력에 언령이 더해지면서 순식간에 바리사다를 감싸는 배리어가 생성되고, 곧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브릿지에서 보이는 우주의 풍경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뭐야!”

    [지구군 소속 21분함대, 22분함대 소멸! 카트리아 소속 62소함대 소멸!]

    공격을 인지 못 한 마그누스는 기겁하며 소리쳤고, 나는 얼른 함장에게 지시했다.

    “배리어 펼쳐요! 또 옵니다!”

    내 지시에 함장은 지구군 함정에 강제 명령을 내렸다.

    그에 지구군 소속 전함들에게서 앱솔루트 쉴드가 일제히 펼쳐졌다.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함에서 전체 컨트롤을 한 것이었다.

    콰아아앙!

    브릿지를 통해 보이는 우주의 풍경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나 싶더니, 다시금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크로운 소속 17분함대 소멸! 카트리아 소속 51분함대 소멸!]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격은 권능 단계의 수준인지 9클래스의 앱솔루트 쉴드를 너무도 쉽게 박살 내 버렸다.

    “무슨 공격입니까?”

    마그누스의 외침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잘 모르겠어.”

    “네?”

    만능으로 느껴지던 내게서 어중간한 대답이 흘러나오자 녀석은 더없이 놀라며 크게 당황했다.

    “안 되겠다. 내가 다녀올게. 위험하다 싶으면 오기부리지 말고 알아서 피해라.”

    여차하면 기함을 버리고 도망치란 뜻이었다.

    나는 여전히 등에 붙어있는 루나를 두고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를 대동한 채로 텔레포트를 했다.

    청색의 불꽃을 내 뿜는 항성의 빛이 널리 퍼지는 광활한 우주.

    루나의 손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꼭 잡고 있어.”

    끄덕.

    상당히 놀랐는지, 루나는 내게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루나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판이다.

    나는 아군 함대를 향해 뻗어가는 거대한 에너지를 확인하곤 진행 방향에 결계를 설치했다.

    쿠웅!

    덕분에 그 강력한 공격들은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나는 에너지가 발산된 근원을 향해 블링크를 했다.

    해당 공격은 꽤나 먼거리에서 이뤄진 저격공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공상과학 영화에서 볼법한 워프게이트 같은 장비가 아무런 호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그런데 어째 그 장비가 눈에 익었다.

    “카트리아의···.”

    놀랍게도 카트리아에서 신형 하울용으로 개발 중인 장거리 양전자포였다.

    이제 개발 막바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 온전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단 말인가.

    더구나 마력 탐색을 흐트러뜨리는 기능이 달려 있는 듯 한데, 그건 아직 카트리아에 없는 기술이었다.

    놀람도 잠깐, 양전자포가 다시 발사되려는 기미가 보이자 나는 얼른 그것을 폭파시켜 버렸다.

    이어서 주변을 탐색하는데, 양전자포 외에 아무런 위협도 발견하지 못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피해 수준은?”

    [지구군 전함 12척, 카트리아군 전함 31척, 크라운군 전함 15척이 당했습니다.]

    겨우 두 번의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단순히 우연일까?

    다른 세력의 무기인데, 우연히 카트리아에서 개발 중인 무기와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순간 나는 체이스와 크라운 행성을 공격했던 소형화된 하울을 떠올렸다.

    카트리아를 향한 복수를 꿈꾸는 베넌인 자카루스가 용의자로 있는 사건 말이다.

    그러나 도망자 신분에 카트리아의 최신 기술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그의 짓이라면 베넌인 자카루스가 단독으로 카트리아의 연구개발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더구나 카트리아에서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양전자 포는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다.

    그건 양자화 기능을 가진 적을 상대하기 위한 병기였다.

    “그런데 녀석은 이미 소형 하울을 운영한 경력이 있지.”

    하지만 소형 하울의 존재가 그의 존재를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 등에서 꼼지락대는 루나의 기척과 함께 잠시 잊고 있던 충고가 떠올랐다.

    ‘아 참, 뒤통수 조심해라. 내가 생각 못 한 이레귤러가 등장했으니.’

    창조주 유니버스의 경고.

    지나가는 투로 말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창조주의 말이 대수롭지 않을 리 없다.

    [전하! 전방에서 대규모 함대가 광속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스타로드 연방에서 빅토리아 은하제국의 함대라는군요.]

    “그래요?”

    공교로운 타이밍.

    하지만 연관성을 찾기엔 양전자 포의 공격이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 더 좋은 활용방법이 있을 텐데, 전함 몇 제거하자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짓을 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모든 상황을 유추하기엔 추리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

    나는 루나를 데리고 바리사다로 돌아가려다가 멈칫했다.

    “루나야 잠깐 지구에 가 있어.”

    “응?”

    이곳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루나를 계속 등에 메달고 다닐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전투 중에 바리사다에 홀로 두기엔 상황이 너무 꺼림칙하니, 잠시 전선에서 떨어뜨리기로 했다.

    나는 바로 데이라와 마그누스에게 금방 지구에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 워프게이트를 열었다.

    워프게이트를 통하면 이동에 큰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적군이 등장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대로 워프게이트를 통과한 나는 시녀를 부르려 했지만, 뜻밖의 풍경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분명 내가 설정한 좌표는 아르비스 대공령 영주성의 개인 연구실이다.

    평소 루시엘라가 성 여기저기에 식물을 많이 심어놔서 항상 예쁜 꽃이 피어 있는 장소인데,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은 연기를 토해내는 폐허의 잔해뿐이었다.

    “집이야?”

    영주성이 분명했다.

    내가 실수로 다른 곳이 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소품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으니.

    폭삭 주저앉은 영주성 뿐만 아니라 발테르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위를 올려보니, 푸른 빛에 둘러쌓인 하늘에 구멍이 뚫려 조금씩 수복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푸른 빛은 내가 지구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방어시스템 아이기스였다.

    9클래스의 앱솔루트 쉴드로 도배한 그곳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루시엘라!”

    나는 급히 통신 장비를 통해 루시엘라를 찾았다.

    [어?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 갑자기 파밀리아 행성으로 전이됐는데?]

    “하아, 다행이다.”

    그리고 통신을 통해 루시엘라의 신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안도했다.

    “혼자야?”

    [어머님, 아버님, 아이들도 같이 있어. 어? 콘스탄틴경과 스텔라 경도 있네.]

    내 측근이 지니고 있는 오리하르콘 반지엔 위기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태양계의 이웃 항성계 무인 행성에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비밀 대피처를 만들어 놓았다.

    행성 자체는 물도 없고 공기도 없는 메마른 사막의 땅이지만, 내가 만들어 놓은 제주도 크기의 대피처는 마법을 이용해 지구나 다름없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오리하르콘 반지가 아니어도, 우리 영주성과 마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브로치엔 지하벙커로 텔레포트 되는 기능이 있어서 모두 무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바로 워프통신 날리야지. 놀랐잖아.”

    [지금 막 하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점점 고도를 높였다.

    이어서 발테르시 전역을 눈에 담았는데, 마치 융단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모든게 폐허로 변해 있었다.

    이 영지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간 영지민들을 얼마나 아꼈던가.

    너무도 가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영지가 공격당했어. 일단 루나도 그곳으로 보낼게.”

    [그래.]

    나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는 루나의 팔찌를 활성화 시켰다.

    “엄마한테 가 있어.”

    끄덕.

    그리고 루나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지금 루나 도착했어.]

    바로 루시엘라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연락할게, 잠깐 그곳에서 쉬고 있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심해.]

    “응.”

    이어서 통신을 끊은 나는 차갑게 말했다.

    “나와 이 새끼야.”

    아무도 없는 폐허를 향해 내뱉은 혼잣말.

    “알고 계셨군요.”

    그러나 아카데미였던 폐허더미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오며 내 말에 답했다.

    상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불쾌함을 표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녀석이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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