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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장하네.”
“뭐가?”
치아가 보이게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펼친 아이리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창조주가 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우리 여보가 원한다면 몇 명이건 아름다운 이성을 만들어 취향대로 배치할 수 있을 텐데 부인들과 쭉 함께하고 싶다니, 낭만적이잖아?”
그녀의 말에 루시엘라는 당연한 거 아니냐며 고개를 끄덕이고 실비아는 얼굴을 붉혔다.
“아···.”
하지만 내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짧은 감탄사에 루시엘라가 도끼눈을 뜨며 뺨을 잡아당겼다.
“에, 에헤이! 농담이지.”
나는 장난이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내 뺨을 움켜쥔 섬섬옥수에 오우거 같은 힘이 실렸다.
그에 나는 두 손가락을 루시엘라의 콧구멍에 찔러 넣으며 빠져나왔다.
푹!
쌍권총의 총구를 입으로 후 불며 말했다.
“유희야 부인들과 즐기면 되는 일이지. 안 그래?”
그리고 세 여인을 한 번에 끌어안았다.
아이리는 괜히 내 엉덩이를 더듬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들의 체취를 만끽했다.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른 누군가를 필요하다 여길 만큼 부족함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린 모든 게 잘 맞는 부부였으니.
“변태 같아요.”
항상 나를 존중하는 실비아의 한 마디였다.
“루이스가 창조주가 된다면 어떤 세상을 만들 거야?”
루시엘라의 물음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 안 해봤네.”
창조주가 될 생각이 없냐는 제안에만 정신 팔려 내가 세상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다 같이 고민하면서, 함께 만들자.”
“내 취향이 반영되는 건가? 나쁘지 않네.”
루시엘라는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무 문제 없이 창조주가 된다면 말이지.”
***
안드로메다에서 스타로드 연방과 함께 세력을 분할하고 있는 빅토리아 은하제국은 난데없이 나타난 침략자가 스타로드 연방을 박살 내자 비상이 걸렸다.
빅토리아 은하제국 수도 소피아의 황성.
“이,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빅토리아는 수도인 본성과 황제 직할령을 제외하곤 귀족인 영주가 행성을 다스린다.
봉건제도가 그러하듯, 빅토리아 은하제국의 영주들도 자신의 별에선 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번 비상상황으로 은하 전역의 영주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황성에 집결했다.
그들은 황제와 함께 정보부에서 제공한 영상을 보며 하나같이 기겁했다.
그 영상에선 맨몸의 인간들이 스타로드의 전함을 특수한 에너지로 파괴하며 막강한 군대를 물리쳤다.
영상을 지켜본 대영주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정보부 부장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단 20일 동안 스타로드 연방의 군사력은 절반이나 날아갔으며 현재 침략자에 흡수되어 좋을 대로 부려지고 있습니다.”
“스타로드 연방이 단 20일 만에?”
빅토리아와 스타로드의 세력은 비등한 수준.
그 말은 빅토리아 또한 침략자들이 쳐들어오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이젠 스타로드의 함대까지 끼고 있으니, 침략자들의 군세는 더욱 강력해진 상황이다.
“우리 제국을 향해 다가오는 적의 군세도 군세지만 어디까지나 가장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함대가 아닌 저 세 사람입니다.”
정보부 부장의 말에 영주들은 하나같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적들의 정체는?”
“이웃 은하인 밀키웨이의 세력으로 판별되었습니다. 카키 별자리의 은하 말입니다.”
“카키 별자리라면 분명?”
“네, 과거 우리 제국에서 교신 신호를 보낸 적이 있는 곳입니다.”
“이런, 혹시 그 신호가 적을 불러들인 건가?”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카트리아에서 포착한 적 있는 안드로메다의 신호.
그것은 바로 빅토리아 은하제국에서 보낸 것이었다.
빅토리아는 스타로드와 한 은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사이인 만큼 제국의 무력과 기술에 자신감이 넘쳤으며, 세력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주변엔 많은 위성은하와 국부은하군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삼각형자리 은하가 있다.
때문에 그들은 밀키웨이로 교신 신호를 보내고도 거리가 멀어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설마 그곳에서 이렇게 쳐들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어찌 작은 몸에서 저리도 강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단 말인가.”
은하제국 황제의 의문에 정보부 부장은 쉬이 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보부 부장은 한참이 지나서야 힘들게 입을 열었는데.
“과학기술이 아닌 특수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은 과학적 근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어서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연히 문명이 발달한 빅토리아에도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상식적인 공상으로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들의 오락이었다.
“무슨 농담을.”
한 영주의 말에 정보부 부장은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주는 넓습니다. 우리의 상식을 기준으로 여겨선 안 되죠. 실제로 전투원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저 정도 에너지라면 관측이 되어야 정상입니다만, 방출되기까지 어디에 기운을 숨겨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음···.”
황제는 우주를 우리의 상식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부장의 말에 동의해야 했다.
확실히 우주는 상식이란 단어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니.
이 우주 어딘가에는 상상 속의 존재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동안 자신들이 너무 오만했던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의 능력에 취해 호적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발아래로 여겼다.
황제는 스스로가 신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으며, 귀족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 생각했다.
“현재 녀석들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고 있습니다. 아직 방파제 역할을 하는 중립행성을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 제국령에 들어서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착각은 이 상황이 되어서야 완전히 깨져버렸지만, 딱히 난관을 돌파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저 사람들이 황성에 찾아온다면, 막아낼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저 그들이 힘을 휘두르는 대로 당하기만 할 뿐.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래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모두 입술을 깨물 뿐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황제는 그런 신하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자신도 다르지 않았으니.
“현재로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입니다.”
왠지 그 세 가지 모두 예상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혹시나란 생각으로 모두의 시선이 정보부 부장에게 모였다.
“첫째 싸운다. 둘째 항복한다. 셋째 도망친다.”
“하아···.”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에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면 필패.
항복하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예측이 안 됐다.
그리고 도망을 치면 어디로 가겠는가.
다른 은하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고 한들, 그들이 다시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애초에 고향을 버릴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현실적으로 일단 사람을 보내 의중을 묻는 것이 먼저겠군. 어차피 저들은 스타로드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테지.”
그러나 의중을 살핀다 한들 결국 선택은 그 세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영주들과 빅토리아 은하제국 고위 관료들은 황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싸워야죠.”
“어?”
그런데 그때.
회의장 구석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하고, 동시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금속 슈트의 기사들이 황제를 보호하며 낯선 이를 경계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색이 입혀지듯 모습을 드러낸 인간은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다.
새파란 피를 가져 얼굴색이 창백하다 못해 푸른, 빅토리아 사람과는 살짝 느낌이 달랐지만, 그들도 청년의 외모가 나쁘지 않다는 비슷한 미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누, 누구냐?”
침입자가 영주와 황제가 모여 있는 회의장에 들이닥칠 때까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특히 그들은 오랜 세월 스타로드란 적대 세력과 싸워오던 종족이 아닌가.
“내 이름은 마이닝. 밀키웨이라 칭해지는 타 은하 출신의 존재입니다.”
마이닝.
채굴, 채광이란 뜻의 이상한 이름이 그들의 언어로 귀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름도 이름이었지만, 밀키웨이란 명칭이 그들이 조사한 새로운 적대 세력임을 알아채곤 하나같이 움찔거렸다.
“다, 당신은.”
정보부 부장은 누구보다 그를 보며 크게 놀랐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홀로그램으로 스타로드의 함대를 파괴하던 괴물 중 대장격의 얼굴이 출력되었다.
놀랍게도 마이닝이란 이름의 청년과 똑같은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맙소사.”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났다.
만약 이 괴물들이 황성에 쳐들어오면 막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벌써 그 상황이 발생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나를 죽이러 온 것인가?”
황제의 물음에도 청년은 여유롭게 웃으며 다가왔다.
반면 그가 접근할수록 귀족들은 뒷걸음질을 쳤는데, 기사들 빼곤 누구도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걸음을 멈춘 마이닝이 말했다.
“그와 저는 다른 존재입니다. 저는 마이닝. 그는 국부은하 연합의 최고의원이자, 지구 연합의 총수인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대공이죠.”
“뭐라?”
“얼굴만 같다는 뜻입니다. 정확하겐 제 모습이 그를 모방한 것이죠.”
다른 사람이란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어째서 이곳을 찾은 것인가?”
그래도 황제란 직위 때문인지 모두가 겁을 먹을 와중에 마이닝에게 말을 건네는 인물은 그가 유일했다.
“저는 여러분을 압박하는 세력에 적대적인 존재입니다. 때문에 여러분과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은 너무도 의외여서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여러분에게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존재는 바로 저 사람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아르비스 대공이란 자 말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마이닝과 똑같은 얼굴이 출력되고 있는 홀로그램에 향했다.
“당장 그자만 없다면 녀석들의 전투력은 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나머지 두 사람도 강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결전병기를 적절히 사용하면 충분히 견제 가능합니다. 그 둘까지 막으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죠.”
영상을 보면 루이스가 결전병기 위주로 파괴한 덕분에 수월하게 전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봐도 다른 두 인물(데이라, 마그누스)과 상당한 능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황제는 긴장을 풀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그 말은 당신이 그자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요?”
그에 마이닝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는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단독으로 격파하는 것은 힘들지만, 시간을 끄는 것이라면 가능하죠.”
“시간을 끄는 동안 우리가 나머지를 정리하란 것이군.”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전력을 얼마만큼 빠르고 수월하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나뉠 겁니다.”
길이 없던 이들에게 제시된 새로운 방향.
하지만 초면인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위험한 냄새 풀풀 풍기는 사람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여러분의 의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마이닝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며 루이스처럼 손가락을 튕겼다.
“컥!”
그에 회의장 안의 사람들은 마이닝을 제외하고 하나같이 머리를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바, 밖에 아무도 없느냐!”
황제는 급히 소리를 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회의실에 진공의 벽을 쳤습니다. 애초에 밖에서 내부의 이상을 알아챘으면 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빌어먹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밀키웨이를 향해 쓸데없이 신호를 발산한 덕분에 이렇게 기회를 손에 넣게 되었군요.”
실소를 흘리는 마이닝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고, 그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며 좀비처럼 비틀 몸을 일으켰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원래대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이닝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안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