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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함대 후퇴합니다.]
“응? 아아.”
거창하기 그지없는 ‘스타로드’라는 이름의 연방국은 안드로메다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60개가 넘는 유인 행성을 다스리는 강력한 국가다.
1차 충돌에서 나와 데이라, 마그누스의 활약에 힘입어 대패를 한 녀석들은 재정비를 통해 대대적으로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창조주로부터 받은 제안으로 인해 종종 정신줄을 놓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이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힘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상황은 끝나 있었다.
“오늘따라 무시무시하시네요.”
마그누스가 다가오며 엄살을 떨었다.
“그랬나?”
“어째 아르비스 대공께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력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데이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화를 못 느끼고 계십니까?”
보통 능력치의 변화는 스스로가 가장 잘 깨닫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특별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힘을 완전히 드러낼 만한 적수를 못 만났다고 생각할 뿐이지.
“확실히 능력을 사용하는 게 편해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두 사람은 의아하단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의 생각을 그대로 밝히는 건 너무 거만해 보이지 않겠는가.
사실 지금의 나는 거만 떨어도 될 위치긴 하지만,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함 바리사다로 돌아왔고, 브릿지에 들어서자마자 카메라를 들이미는 ‘안생일’ 촬영팀으로 인해 바로 인터뷰를 했다.
“과연 전신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오늘도 총수님 덕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는데요. 감상이 어떻습니까?”
나를 바라보는 김불녀는 얼굴은 꽤나 상기 되어 있었다.
이종족의 특성상 강한 인물을 좋아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 로이아스에선 나를 세계의 수호자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아무래도 새롭게 이주한 세상에 대해 걱정이 많았을 텐데 거침없이 세력을 키워가고 그 중심에 로이아스를 놓은 것이 나이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닐까 싶다.
지금 3일 간격으로 방송되는 안생일은 당연히 로이아스에서도 큰 이슈를 끌고 있다.
TV가 상당히 보급되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탄 것이다.
덕분에 로이아스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세계 출신인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딱히 변수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분명 스타로드 연방이란 세력은 강력하지만, 우리에 비할 수준은 아니죠. 머지않아 큰 규모의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면전 발생 시 어떤 결과를 예상하시나요?”
“필승을 확신합니다.”
아마도 이 대답을 원했겠지.
내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답을 하자, PD가 내게 아부하듯 작게 박수를 쳤다.
‘안생일’은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마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다음 촬영진과 출연진들의 위상은 이전까지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을 불행이라 여긴다.
하지만 내가 소속된 세력이 신변의 걱정이 없는 장소에서 전쟁을 벌이고 승리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쟁을 담은 방송의 내용은 굉장히 자극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물론 개중엔 전쟁 반대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들도 있었으나, 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총수님과 한 시대를 살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이런, 제가 피곤한 분을 너무 붙잡고 있었군요.”
센스있는 김불녀는 인터뷰를 길게 끌지 않았다.
솔직히 크게 피곤하진 않았지만, 지금 나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상태이다 보니, 그다지 인터뷰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불러 놓고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도 그럴 게 창조주라는 엄청난 위치를 제안받았다.
원래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 뒤를 이어 데이라의 인터뷰가 이어졌는데, 나는 마그누스에게 방에 가서 쉰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브릿지를 나섰다.
“응?”
방에 도착하니, 루나가 어째서인지 제방을 두고 내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이불 덮고 자야지.”
“으음.”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루나에게 이불을 덮어줬는데, 녀석은 응석을 부리듯 다가와 내 옆구리를 끌어안았다.
성격은 특이하지만, 아직 애는 애였다.
보통 딸이 사춘기가 되면 아버지와 멀어진다고 하던데, 내 자식들에겐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애초에 내가 어려워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10살이 넘도록 응석을 부리는 아이는 루나가 유일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가 내 딸이라니 새삼 신기했다.
모든 것이 가이아의 계획이었다곤 하지만, 나는 보잘것없는 취준생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우주를 누비는 권력자이자, 창조주란 지고의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정말 신기한 삶이다.
“창조주라···.”
나는 루나를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이 세상의 창조주인 유니버스의 제안은 분명 흥미롭다.
창조주가 될 수 있다는데, 흥미를 갖지 않을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오직 나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데.
그리고 내 가족들도 모두 신이 될 수가 있다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영원한 삶을 저주로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으로서 살아간다면 상황은 다르지 않을까?
신이 되어본 경험이 없기에 뭐라 답하기가 힘들다.
이번에도 내 이기주의에 가족들을 휘두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던 나는 결정했다.
“그래, 부인들과 상담해 보자.”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분명 유니버스는 내게 다른 사람에겐 발설하지 말라는 말은 안 했으니 상관없겠지.
*
스타로드 연합은 최종 결전에서 거의 1만 대에 가까운 전함을 동원했으며, 단번에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까지 들고나왔다.
이대로 전투가 진행된다면 엄청난 피해가 예고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들은 어차피 개인의 무력이 아닌 무기에 의지하는 존재들인 만큼, 위협이 되는 병기들만 사전에 제거하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콰콰콰쾅!
크기가 호주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 시설이 내부에서부터 파괴된다.
이미 녀석들의 무기에 대해선 포로로 잡은 함대장들로 인해 모두 꿰고 있는 상태다.
굳이 적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차근차근 녀석들의 최종병기를 제거했고, 보너스로 기함과 함께 강경한 대응을 펼치고 있는 군사령부 본부를 날렸다.
녀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나와 마그누스, 데이라지 우리의 함대가 아니다.
함대를 동원하면 더 수월한 싸움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도 피해를 받게 되는 만큼, 나는 안전을 확인하고 난 다음 함대를 투입했다.
[항복이오! 항복하겠소!]
일방적으로 피해를 요구하니, 그들은 끝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이미 내가 자신들의 본성을 제집처럼 드나드니 별수가 없었겠지만,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데르데르 행성에 이어 스타로드 연방은 국부은하 연합에 합류하게 되었다.
정전협상을 하는 자리에 내가 대표인 만큼 직접 참석했고, 스타로드 연방의 지도부는 나를 마치 사신처럼 여기며 어려워했다.
덕분에 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나는 과한 조건으로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세력의 이름도 그대로 사용하고, 군사력 복구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 탐사팀에 약 2천 대에 가까운 스타로드 연방의 전함을 합류시켰다.
그렇게 든든한 길잡이를 얻은 우리 국부은하 연합군은 순조롭게 탐사를 이어갔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스타로드 연방 외에도 라이벌시 되는 거대 세력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세력의 군사력과 기술력은 스타로드 연방과 비슷한 수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카트리아가 우리 은하의 7할을 파악하고 있던 것처럼, 스타로드 연방을 끌어들이니 안드로메다의 상당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거기에 또 다른 세력까지 끌어들이게 되면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질 테니, 어쩌면 우리 은하보다 두 배나 큰 안드로메다의 탐색이 훨씬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
67. 안정
“······.”
내 이야기를 들은 루시엘라, 실비아, 아이리는 하나같이 큰 눈을 깜박거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놀라운데, 그녀들은 오죽하겠는가.
루시엘라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대체 어디까지 나아가나 했더니, 드디어 끝을 찍는구나?”
그에 뒤통수를 긁적인 나는 슬쩍 다른 부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여보가 창조주가 되고 우리가 뒤따른다면 황가와 대공가를 믿고 따르던 신하와 백성들은 어떻게 하게?”
“스타로드 연방이나 카트리아를 강하게 압박하는 존재가 우리 여보님이잖아요. 그들이 반기를 들면 현재 지구의 힘만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이리와 실비아는 황제답게 자신의 안위보단 나라를 걱정했다.
“바로 창조주가 되기보단 일반적인 삶을 보내고 난 다음 떠나야겠지.”
“이거 영원히 코 꿰게 생겼네.”
아이리가 허탈하단 반응을 보이자, 나는 당황했다.
“나 좋다고 달려들 땐 언제고, 이건 뭔 반응이래?”
내 불만을 토로하자 아이리는 갑자기 배를 잡고 웃었다.
40세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려진 것 같은 외모를 가진 아이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성녀에서 신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내가 거절할리 없잖아?”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어차피 루시엘라와 아이리는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전적으로 네 선택에 따를 거야.”
그리고 예상대로 루시엘라도 내 결정에 따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실비아는 바로 그러겠다고 답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고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누구도 실비아에게 뭐라 할 사람 없어. 그냥 편하게 생각을 밝히면 돼.”
사랑이란 감정 속에 나를 남편으로 맞이한 루시엘라, 아이리와 달리 실비아는 전략적인 판단으로 내게 안겨 온 여자다.
물론 그 속에 애정이 하나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입장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른 부인들과 차별 없이 그녀를 대해왔고, 실비아 또한 이상적이며 부인으로 살아왔지만, 그 속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마음을 먹는다면 생각을 읽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그녀에게 힘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저도 따라갈 겁니다. 시작은 정략혼이지만, 지금은 두 분에게도 여보님에 대한 마음은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요.”
“부끄럽네.”
표현과 달리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나는 실비아와 가볍게 입을 맞췄고, 이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려볼 생각이야.”
그러나 부모님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신 같은 거창한 자리와 거리가 먼 분들이었으니.
“아이들은요?”
“이곳의 삶을 살게 하되, 명이 다할 때 제안을 해보려고.”
“그렇군요.”
부모가 벌써 자식의 명을 논하는 것이 웃기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녀들은 납득 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반응으로 인해 나는 점점 유니버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나는 확인하듯 그녀들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아?”
괜한 것을 묻는다며 미소 짓는 세 여인의 모습에서 나는 행복이란 감정을 짙게 느꼈다.
이제 내겐 누구 한 명도 없어선 안 된다.
그녀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안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