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80화 (180/186)
  • -------------- 180/186 --------------

    “······.”

    이건 환상?

    아니, 환상 같은 간단한 수법이 아니다.

    마법의 정점에 오른 내 이목을 완벽하게 속이고 바꿔버린 환경.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

    나는 그를 본 순간 어렵지 않게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수차례 느껴본 적이 있는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창조주님을 뵙습니다.”

    황제를 대하듯 최고의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고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최고의 예우.

    내 인사에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저희 로이아스 대륙인들을 거둬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현재 나는 로이아스 대륙 대표로 그를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니, 입에 발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나를 지켜봐 왔는지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어울리지 않는 말 할 필요 없다. 그건 가이아와의 약속이니, 네가 감사해 할 필요는 없지.”

    그는 자신의 피조물과 우리를 공평하게 대하고 있다.

    우리가 이 세계를 휘젓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지가 없지 않았는가.

    물론, 이번 만남이 제지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언제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너로 인해 세상이 꽤나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거든?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가 생겼어.”

    마치 광대에게 왕이 인심 쓰듯 내려주는 말 같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지금 우리의 행동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말은 언제나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이어진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너무 과하지 않나?”

    과연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그는 물론 그의 뒤에 위치한 여인의 표정을 살폈다.

    가이아에게 스승님이 연인으로 계셨던 것처럼, 이 세계 창조주의 반려인 걸까?

    그런데 내 시선을 느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속으로 혀를 찬 나는 즉시 결단했다.

    “알겠습니다. 탐사대를 밀키웨이(우리 은하)로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욘 없다. 나는 세계에 이 이상 관여할 생각은 없으니까.”

    의외의 대답.

    그러나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이 상황 자체가 세계에 관여하는 것 아닌가?

    “나는 창조주다. 이 세상의 주신. 너무 논리를 따지려 들지 말도록.”

    “헙.”

    이런, 생각을 읽은 걸까?

    내가 당황하자 그는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아, 생각을 읽고 있진 않으니 걱정 말아라. 애초에 읽을 수도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런 것 치곤 내 생각에 너무 쉽게 답하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판단하는 것만큼 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아무래도 그는 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너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함이다.”

    어떤 제안인지 몰라도 거절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너는 내가 창조한 이 세상의 규모가 어느 정도라 생각하지?”

    지구에선 은하계에 1000억개가 넘는 항성이 있으며,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항성의 수만큼 존재할 것이라 예측한다.

    하지만 카트리아는 조금 다른데, 은하계의 크기는 지구와 비슷하게 예측하면서도, 은하의 수는 100만개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들은 아주 먼 우주, 200억광년 정도의 거리에 거울판이라 불리는 지대가 있어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방대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밝혔다.

    당연히 지구도 그렇고 카트리아도 정확하게 우주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희미한 관측 내용을 갖고 예측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카트리아에선 100만개의 은하가 우주에 존재할 것이라 하더군요.”

    아무래도 과학적으론 지구보단 카트리아가 우위에 있기에 나는 그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답했다.

    그런데 창조주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물었다.

    “가이아의 세계는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데?”

    뜬금없는 내용에 의문이 들었지만, 사실대로 답했다.

    “4개의 은하가 존재했습니다.”

    “가이아는 겨우 4개의 은하를 운영했고, 나는 100만개의 은하를 다스린다고? 너무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그는 장난스레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내가 다스리는 은하는 10개가 끝이야. 위성은하 빼고 독립 은하가 말이지.”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지 지구에 관측된 은하의 수 만해도 몇 갠데.

    “나머지는 그냥 보기 좋게 펼쳐 놓은 이미지 같은 거다. 방대한 우주가 있기에 인간들은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고 신의 위대함을 떠받들거든.”

    결국 카트리아의 거울판 이론도 엉터리란 이야기.

    “거기에 추가적으로 시스템의 보조가 더해진 거지. 이미지로 만들어진 우주를 인간이 의심을 않고 진짜로 받아들이게끔. 실제로 이 우주는 원통형이야. 은하의 위치에 순서를 매긴다면 1번 은하 양옆으로 2번과 10번이 있지.”

    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바로 실수를 깨닫고 입을 막긴 했지만, 그것을 본 창조주는 신경 안 쓴다는 태도로 말했다.

    “백만은 물론 천억개의 은하도 만들 수야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도 머지않아 가이아를 따라가야 할 거야. 자네도 알지 않나. 창조주라고 해서 힘이 무한한 것만은 아니란 것을. 뭐, 인간의 입장에선 무한 또는 영원이란 단어에 한없이 가깝긴 하겠지만.”

    그런가?

    하긴 진화를 통해 오랜 세월 세상을 키웠다곤 하나, 이 우주는 가이아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을 창조주에게도 힘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여겼었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지긴 했는데, 그는 내게 제안할 게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창조주의 사정에 내가 끼어들 틈이 있는 건가?

    “그래서 말인데.”

    뜸을 들이는 창조주.

    드디어 용건이 나오려는 모양이다.

    “자네, 창조주 해볼 생각 없는가?”

    “네?”

    창조주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는 실례를 저질렀지만, 이번에 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지 못 하고 한참 동안 눈을 껌뻑거렸다.

    “큼.”

    결국, 창조주 뒤에 있던 여성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몹시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제안이신지라.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제게 창조주를 제안하신 거 맞습니까?”

    “맞네.”

    “그, 그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가능하니까 제안하지.”

    뭐지?

    인간 대표로 뽑혀 그의 뒤를 잊는 후계자 같은 게 되라는 건가?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지. 하지만 나라면 가능해. 자네만 좋다면 창조주의 권능을 깨우치게끔 도와주지.”

    내가 창조주를?

    스스로가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유적 표현이다.

    내가 진짜 창조주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자넨 기초가 닦여져 있어. 그리고 모르는 것 같지만, 가이아의 진전도 이어받았고.”

    “제가 가이아님의 후계자란 뜻인가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어디까지나 기초만 닦아준 거니까. 네가 몸속에 품은 우주가 그 증거지.”

    “우주라···.”

    창조주가 그렇게 말하는 거면 사실이겠지만,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정말 가이아의 진전을 이어받았고, 창조주도 될 수 있는 입장이라면, 왜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가이아님께선 저를 후계자로 안 만든 거죠? 그럼 자신의 세상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본인도 무리하지 않고.”

    “아마 시간이 허락했다면 가이아도 그렇게 했겠지.”

    “시간이 없었다는 겁니까?”

    “그래, 가이아가 내게 찾아오고 계획을 수렴했을 땐, 이미 상당 부분의 권능을 소실한 상태였으니. 지구 기준으로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쪽에선 더욱 많은 시간이 지났겠지? 대충 그녀의 상태가 예상이 되는군.”

    나는 가이아와 스승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애초에 가이아의 세상은 실패한 세상이야. 그 세상을 살리기 위해 창조주의 힘을 이어받는 것도 고통 아니겠나?”

    “안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리 있는 녀석이군, 더더욱 마음에 드는데?”

    그는 나를 내며보며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창조주의 시선.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지금 바로 답을 해야 할까요?”

    급작스러운 만큼 바로 대답하기가 힘든 내용이었다.

    “고민할 일인가?”

    원랜 그의 제안을 불가능한 것만 아니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바로 알겠다며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케일이 지나치게 크지 않은가.

    “좋아 시간을 주겠네. 한 달 정도면 충분하겠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민하고 나서 거절하면 더욱 큰일이 아닌가 싶다.

    “어째서 저를 창조주로 만들려고 하시는 건가요?”

    단순히 가능성이 있어서?

    아니면 도의적 차원일까?

    “당연히 따로 계획이 있지.”

    “계획이요?”

    “네가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면 그곳을 이 세계와 잇는 게 어떨까 싶어서.”

    “음.”

    “싫으면 거절해도 돼. 그런데 이편이 훨씬 재밌을 것 같지 않나? 굳이 내가 무리를 안 해도 세계는 확장하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란 뜻.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창조주는 가이아와 달리 행동이 가벼워 보인다.

    “만약 제가 창조주를 한다고 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되죠?”

    “나처럼 신족으로 만들어도 되고,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게 해도 되고.”

    창조주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성을 신족의 대표라 소개했다.

    “그럼 한 달간 고민해보겠습니다.”

    창조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그 신족을 바라보았다.

    그에 여성은 내게 다가오더니, 얇은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주신 유니버스]

    우주를 지칭하는 단어.

    아무래도 그것이 그의 이름인 듯하다.

    “혹시라도 네 쪽에서 나를 만나고 싶으면 그걸 이용해서 찾아와 그럼 바로 이 공간일 테니.”

    창조주 대면 프리패스 같은 건가 보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것을 아공간에 수습했다.

    “조금 진부하지만, 이왕이면 꿈을 크게 갖는 게 낫지 않을까? 그만한 힘이 있으면 창조주 한 번쯤은 해봐야지.”

    무슨 동네 편의점 차리는 것도 아니고, 말은 참 쉽게 한다.

    하지만 나는 무덤덤하게 인사를 올렸고,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참, 항상 뒤통수 조심해라. 내가 생각 못 한 이레귤러가 등장했으니.”

    “네?”

    그리고 주변 풍경이 새하얀 공간에서 영주성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의 그 영문 모를 소리는 뭘까?

    인상을 찌푸리자, 내 앞에 나타난 루시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은 공백이 아니다.

    그곳에는 암흑물질, 블랙홀과 더불어 각 은하에서 떨어져 나온 행성과 항성이 다수 존재하는데, 한 적색왜성을 공전하는 행성에는 놀랍게도 대기가 존재했다.

    아쉽게도 해당 행성과 항성이 위치한 천체는 서서히 블랙홀을 향해 다가가는 상태인지라 끝은 좋지 않을 터.

    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아주 좋은 은신처였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행성의 이름은 바로 ‘자카루스’.

    카트리아 행성에서 노예로 살아가며 복수심을 불태우던 배넌인의 이름이었다.

    “박사님···.”

    한 청년이 너른 꽃밭에 누워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온통 붉은색의 꽃은 노인의 색바랜 머리카락과 비슷했다.

    “저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이어진 청년의 물음에도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청년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치 반중력 마법을 사용한 듯 부드럽게 몸을 허공에 띄웠다.

    “마이닝은 박사님의 유지를 확실하게 이어받았습니다.”

    청년은 점점 고도를 높였고, 붉은 꽃으로 뒤덮인 작은 언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스스.

    그에 언덕을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원자단위로 분해가 되어 안개처럼 흩날렸다.

    붉은 꽃과 언덕은 물론, 그곳에 누워 있던 노인까지.

    “카트리아와의 전쟁 승률 100%. 하지만 지구를 비롯한 세력의 힘을 빌리게 되면 승률은 10%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그 이유는 아르비스 대공 때문.”

    청년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 약 30km떨어진 협곡으로 향했다.

    그 협곡에는 거대한 동굴이 숨어 있었는데, 안에서 수시로 기계음과 강력한 유독성 물질이 흘러나왔다.

    청년은 무덤덤하게 동굴에 들어서며 말했다.

    “곧이다.”

    *

    정면충돌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