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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만 보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교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철컥 철컥.
이어서 군인들이 교무실을 포위하듯 인간의 벽을 두르고 20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미인이 다가왔다.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교감이 손을 떨어대며 비굴하게 물었다.
그에 이브릴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데니스 학생의 보호자로 왔습니다. 마드세인 제국 이브릴 로이드 아르비스 후작입니다.”
방금까지 데니스에게 윽박을 지르던 지검장과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학생의 학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으며, 담임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오금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모님.”
그야말로 학인 사살.
이브릴을 향한 데니스의 호칭에 교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알고 있다. 이런 걸 싫어 한다는 것을. 하지만 너도 네 신분을 망각해선 안 돼.”
“······.”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숙이는 데니스.
그런데 문뜩 이브릴의 시선이 그의 손목을 구속하고 있는 은색의 수갑으로 향했다.
“수갑?”
이브릴의 의문에 경찰을 비롯해 수갑을 채우라고 난리를 피운 지검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정당방위라고 들었습니다만?”
냉기 가득한 물음에 경찰은 변명하듯 말했다.
“스스로를 지킬 정도의 무력을 휘둘렀다면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있지만, 데니스 학생의 경우 정도를 넘었습니다. 그래서 폭행으로 판단하여 현행범으로···.”
대한민국은 정당방위에 대해 굉장히 인색한 나라라고 듣긴 했지만, 그녀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막상 조카가 수갑을 차고앉아 있는 것을 보니, 울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한민국 경찰은 참 대단하군요.”
“네?”
“마드세인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다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 그들의 안색은 새하얗다 못해 시체나 다름없이 죽어버렸다.
“마드세인 제국 황태자의 팔에 수갑을 걸었으니, 선전포고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상한 경악성을 토해내는 사람들.
그녀는 불쾌하단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은하 연합의 최고의원이자, 신 지구 연합의 총수, 로이아스 연방제국의 의장이신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대공 전하와 마드세인 제국의 ‘실비아 데 로이드 마드세인’ 황제 폐하의 자제분입니다.”
거창한 소개.
하지만 과장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실제로 그의 부모는 거창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로이아스 대륙의 주축이 되는 국가를 다스리는 황제였고, 아버지는 지구를 넘어 은하에서 가장 잘난 위인이었으니 말이다.
[데니스 데 아르비스 마드세인.]
그것이 그의 풀네임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지검 지검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람을 일반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분.
“죄, 죄송합니다.”
“몰라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경찰, 학부모, 담임선생 할 것 모두가 비굴하게 용서를 구했다.
갑작스런 태세 전환에 데니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떨떨한 보였다.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죠. 지금까지 숨겼으니까.”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의 귀엔 비아냥으로 들렸다.
“수갑 안 풉니까?”
이브릴의 물음에 경찰들은 아차 하며 얼른 열쇠를 꺼냈다.
하지만 어찌나 손을 떨어대는지, 쉽게 구멍에 열쇠를 껴 맞추지 못했다.
결국 데니스 본인이 직접 언락 마법을 사용해 수갑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로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될까요?”
데니스의 물음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치국가인 이상 아무리 대단한 신분을 가졌다고 해도 문제가 있을 땐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지만, 상대는 국가란 규격을 초월한 신분을 갖고 있었다.
수틀리면 우주에서 맨몸으로 헤엄치게 만들 수도 있는 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대단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만 조용히 하시면 저는 계속 이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의견을 묻고 있지만, 그것은 닥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물론이죠. 입 닫고 있겠습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담임선생과 콩밥을 먹이겠다며 멱살을 잡았던 지검장에게 한 번씩 시선을 준 데니스는 이브릴에게 팔짱을 끼며 교무실을 벗어났다.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이브릴의 말에 데니스가 답했다.
“더 이상 괴롭혀 봤자 재미있지도 않아요.”
그대로 두 사람은 교무실을 벗어났고, 군인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끝났다.”
누군가의 혼잣말.
듣는 입장에서 무엇이 끝났다는 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
데니스의 기숙사 벽장과 연결된 아르비스 대공령의 영주성.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이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데니스는 이브릴과 함께 차를 마시며 물었다.
“여황폐하께선 알고 계신다. 하지만 오라버니껜 알리지 않았지.”
“뭐, 아버지께서 워낙 바쁘신 분이라는 거 잘 아니까요.”
루이스의 가족은 모두 아르비스 대공령에서 생활을 한다.
이것은 황태자인 데니스뿐만 아니라 이타루스와 마드세인의 여황제인 아이리와 실비아 또한 해당 되는 이야기였다.
업무는 다른 곳에서 보더라도 가족들은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잠을 자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가진 존재라 평가받는 루이스의 고집이었다.
또한 집안에선 호칭에 직위를 가져와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는데, 공식 석상이 아닌 사석에선 부모님을 폐하와 전하가 아닌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게 했다.
가족을 우선시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규칙.
하지만 같은 집에 살더라도, 밥 먹는 시간 외에 아버지인 루이스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원체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라버니께선 너와 나, 가족들을 포함한 이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리 바쁘게 움직이시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계의 영웅이자 위대한 존재시니까요.”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하셨다. 원하던 목적을 달성하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실 거야.”
부디 그때가 빨리 오길 바라는 것이, 가족들의 소원이었다.
“그나마 너를 비롯한 형제들이 워낙 착하게 자라서 오라버니가 일에만 열중할 수 있을 것이니,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네.”
이브릴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자, 그녀의 가슴이 눈에 들어오고 데니스는 얼굴을 붉혔다.
데니스는 어머니인 실비아와 성장해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머니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인물이 바로 이브릴이었다.
“그런데 고모님께선 결혼 안 하세요?”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하는 이브릴.
“갑자기 그걸 왜 묻는 거야?”
솔직히 이브릴의 마음을 데니스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형제 중 아버지와 외모적으로 가장 닮은 것이 데니스인데, 이브릴과 마주할 때면 왠지 자신을 통해 누군가를 비춰 보는 것 같았다.
“그냥요. 에리스 고모도 결혼한 지 꽤 됐잖아요.”
이유를 알면서도 묻는 것이 짓궂지만, 데니스는 애써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 때 되면.”
“남자를 따로 사귀어보신 것도 아니고, 동기분들은 모두 결혼하셨는데, 혼자 독신으로 살면 쓸쓸하지 않나요?”
이브릴은 똑똑한 데니스가 무슨 까닭에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 못 하고 쓴웃음을 흘리며 그의 볼을 꼬집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고모님의 짝으로 안성맞춤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한 이브릴의 눈동자엔 고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에 데니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요.”
“뭐?”
“아르비스 대공의 장남이자, 마드세인 제국의 황태자인 저 말입니다.”
결국 데니스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이브릴에게 양뺨을 잡혔다.
이브릴이 아무리 어려 보인다고 해도 나이가 32살이다.
로이아스로 치면 혼기가 한참 지난 나이.
“어차피 저흰 피도 안 이어져 있잖아요? 그리고 20살의 나이 차이도 아버지와 루시엘라님에 비하면 양반이죠.”
“너 제정신이니?”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이브릴의 모습에 데니스는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브릴은 웃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얄궂게도 지금 이 순간 데니스의 모습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그녀를 구해주었던 어린 대마법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
“드디어 완성되었군.”
나는 달 표면에 위치한 신 지구 연합의 군사 기지에서 취역 중인 전함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지구의 창이로군요.”
카트리아 내무 총괄 주노의 말에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답했다.
“카트리아의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던 전력입니다.”
“아뇨, 아르비스 총수님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전함의 이름은 바리사다.
5만 톤급의 순양함인데, 검처럼 생긴 장치 수백 개를 띠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요 무장은 중성자포 1문과 초전자기장 1문, 핵융합포 3문, 헬파이어 10문, 레일건 10문, 레이저 캐논 50문.
이 자체만으로도 카트리아의 모선을 상회 하는 괴물이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띠처럼 순양함을 둘러싸고 있는 검들이다.
그것은 기사와 연결하여 플라잉 소드처럼 운용할 수가 있는데, 자체적으로 양자화가 가능한 신병기다.
카트리아의 결전병기인 하울을 우리의 것으로 변형시킨 것이나 다름없는데.
양자화가 가능한 검으로 기사들이 플라잉 소드처럼 검술을 구사하면 공수에서 높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한다.
카트리아와 우리 아르비스 마탑이 공동으로 연구하여 인조 미스릴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인조라 해도 엄청난 제작비용이 들지만, 나는 지구형 결전 병기 제작에 이 인조미스릴을 아끼지 않고 투입했다.
결과 지구군의 바리사다는 외장갑이 통짜 인조 미스릴로 이뤄져 있어 굉장히 견고하고, 방어 마법의 효율이 좋았다.
방어막은 앱솔루트 쉴드와 와이드 배리어, 배리어까지 3단계에 걸쳐 설치되어 있으며, 자체적으로 앱솔루트 쉴드를 5겹까지 사용할 수 있다.
방어막 체계는 카트리아의 것보다 우리 쪽이 튼튼한 만큼, 순수 마법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자체 블링크와 텔레포트 기능이 있어서 가만히 서서 얻어터질 이유가 없다.
공격력은 물론 방어력에 기동성까지 고루 갖춘 병기였다.
“저보단 마그누스가 고생했죠.”
나는 파란색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예쁜 여성을 턱으로 가리켰다.
달 기지는 지구에서 제작하여 내가 텔레포트로 옮긴 것이다.
이 기지에서 가장 큰 시설이 바로 외부 정박장인데, 신 지구 연합 정복을 입은 마그누스가 그곳에서 귀찮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우리의 관계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처음엔 적으로 만났으나 어쨌거나 지금은 동료였다.
“한가지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됩니까?”
뜬금없이 실례되는 질문이라니?
나는 상관없다는 제스쳐를 취했고, 주노는 조심스레 물었다.
“마그누스 님이 총수님의 여동생인 에리스님과 결혼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처음 두 녀석이 손잡고 내게 찾아왔을 때의 쇼킹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그누스를 여성체로만 행동을 시킨지라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이다.
녀석이 중성체인 드래곤이라 다행이지,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나타났으면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여자끼리 결혼했는데 아이는 어떻게 생긴 거죠? 지구는 아직 우리 카트리아처럼 유전자 결합을 사용하진 않잖아요.”
더구나 마그누스와 에리스 사이엔 아이가 있는데, 에리스가 낳은 조카딸이다.
“마그누스의 종족인 드래곤이 중성이거든요. 필요에 따라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평소엔 서로에게 익숙한 여자의 모습을 하지만, 둘이 밤을···. 크흠, 여기까지 하죠.”
솔직히 결혼했으면 남자의 모습을 하는 편이 보기 좋다.
더구나 녀석도 처음에 만났을 때 남성체였던 만큼, 여성체에 목맬 이유도 없었다.
지금의 저 모습은 어디까지나 에리스의 취향.
내 동생이지만, 여러모로 특이한 녀석이다.
“그렇군요.”
카트리아에서 동성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지라, 오랫동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이젠 마그누스도 은하계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아르비스 가문에 소속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녀석으로부터 존댓말의 저주를 풀어 주었다.
물론 존댓말을 풀어줬다고 해서 내게 반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제 지구도 안정되었죠?”
“그렇죠.”
“최강의 무기 바리사다와 지구 전체를 보호하는 최강의 방패 아이기스를 마련했으니, 본격적으로 은하계 밖으로 진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뭐, 저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군요.”
예상외 사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