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70화 (17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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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로부터 620광년 떨어진 페르세우스 자리의 미르파크 항성계.

    카트리아 영역의 9번째 식민지란 뜻으로 ‘카트리아9’라 불리는 유인행성은 카트리아의 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광물들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다.

    카트리아9는 은하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공업시설들이 밀집되어있는데, 오염된 지역이 많아서 사람이 살기엔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오로지 다른 행성들을 백업하기 위해 존재하는 카트리아9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빈민이거나, 다른 유인행성에서 잡아들인 노예가 많았다.

    [충격! 카트리아 행성 연합의 패배. 지구에 항복하다.]

    “카트리아 녀석들이 전쟁에 패했다고? 하하핫! 가관이구만!”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남성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카트리아인과 전혀 닮지 않았으며, 지구인과도 외형이 조금 달랐다.

    머리색은 피처럼 빨갰으며, 눈동자는 흰자 구분 없이 모두 새카맣다.

    빼빼 마른 몸매에 이마에 세 번째 눈이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

    그는 배넌 행성의 주민으로 일방적인 침략에 살 곳을 빼앗기고 공업 행성인 카트리아9로 잡혀 온 종족의 후예다.

    그의 고향인 베넌 행성이 카트리아20이 되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카트리아의 침략은 할아버지 대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는 고향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베넌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약했다.

    하지만 남자는 누구보다 카트리아에 대한 원한을 강하게 품고 있었는데.

    그는 불합리한 시스템과 오염된 환경 속에 제 명을 못 살고 죽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저주했다.

    본래 수명이 150년에 달한다고 알려진 베넌인.

    하지만 이곳에서 노동자의 삶을 사는 베넌인은 수명이 50년을 넘기지 못했으며, 오로지 생식 활동을 위해 정해진 짝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자식은 낳는 순간 정부에 빼앗기고, 아이는 성장 주사로 5살 만에 어른이 되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공업시설에 투입된다.

    올해 나이가 40살이 된 베넌인, ‘자카루스’ 또한 그러했다.

    [카트리아 대의회는 전쟁의 패배로 지구를 중심으로 한 은하 연합에 참여키로 결정하였다. 또한 카트리아에서 노예로 부리고 있는 5개 종족을 해방, 본래의 보금자리로 돌려 보내는 계획이 수립되어···.]

    어둠으로 물든 공간, 어스름한 빛을 내뿜는 디스플레이 속의 뉴스를 살피던 그는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 네 녀석들은 내 손에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자카루스 낮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본래 그가 일하던 공장은 브레인 캡슐이라는 AI관련 핵심부품을 제작하던 곳이다.

    브레인 캡슐의 제작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높은 기술력과 지능을 필요로 하는데, 그는 강제로 심어진 기술과 재능, 배넌인의 특성이 더해져 탄생한 쓰레기 더미 속의 천재였다.

    그는 자료를 조작하고 관리자들을 속여 카트리아12에 비밀 연구소를 만들었다.

    카트리아12는 사람이 살기에 최악의 조건이지만, 원하는 재료도, 장비도 그가 원하는 대로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새로운 무기를 연구하기엔 최고의 별이었다.

    그가 원하는 재료의 양이 점점 많아졌지만, 매일 카트리아12의 이상을 체크하는 프로그램은 ‘문제없음’이라고만 답을 했다.

    만약 사람이 손수 재고를 확인하여 이상을 파악한다면 어렵지 않게 데이터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겠지만,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는 곳에서 그의 범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자카루스는 아무 방해 없이 자신이 원하던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카트리아의 기술을 이해하고 배넌인의 특성을 더해 만들고 있는 무기.

    그는 자신이 만든 기계라면 신을 깃들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했다.

    “마이닝.”

    [어서 오십시오. 자카루스 박사님. 지시하신 카트리아 에너지 드라이브의 자료 수집이 끝났습니다.]

    “좋아.”

    자카루스는 더없이 순박한 표정으로 자식 쓰다듬듯, 마이닝이라 이름 붙여진 원형 코어를 어루만졌다.

    “마이닝 수고스럽지만, 추가로 채굴할 게 있다.”

    [지시하십시오.]

    “지구와 카트리아의 대한 자료. 특히 이번 전쟁에 관한 것과 지구의 승리요인을 중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명령을 이행합니다.]

    그는 마이닝이 수집한 에너지 드라이브의 자료를 살피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

    “아무리 그래도 외계인과의 관계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리하시다니요.”

    중국대사의 말에 지구군의 총수로서 직접 UN에 출석한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문제 될 게 있습니까?”

    “무, 문제 될 게 없어 보입니까? 아르비스 총수님의 위치와 힘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총수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서 회의를 하고 있지도 못했겠죠.”

    잘 아는 사람이 왜 귀찮게 구냐는 표정을 짓자, 그는 이마에 힘줄을 만들며 말했다.

    “하지만 지구의 명운이 걸린 미래의 계획을 혼자서 정하시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습니다.”

    “지구군 참모들과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그 참모진엔 미국과 러시아, 한국을 비롯한 지구측 6개국 담당자와 로이아스측 4개국 담당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회의가 아니라 통보였잖습니까? 로이아스측 참모들이 무조건 찬성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 시켰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중국 대사의 말에 나는 그런 적 없다는 태도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사실 그러긴 했지만.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긴장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쟁에도 흐름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총수인 제 역할이고요. UN에서 여러분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그랬다간 자칫 카트리아에서 우리 본진인 지구에 기습이라도 가하면 어쩌려고요?”

    “그건 추측 아닙니까?”

    “뭐, 다짜고짜 지구를 공격하는 것은 너무 간 추측이지만, 지구를 인질 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대답에 UN사무총장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끼어들었다.

    “총수님 이런 식이면 대화가···.”

    아무래도 그는 내가 적당한 말을 내뱉고 있을 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뜬금 없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흔들렸다.

    내가 엄청 부담스러운 데도 반박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이 웃기다.

    “우리 지구군은 로이아스 대륙과 미국, 러시아, 한국, 인도, EU, 일본으로 이뤄졌으며, UN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독립 조직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냐는 표정들.

    아무래도 이들에게 현실이란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지구군은 소속 국가들의 평화를 위해 싸운 것이지, 아무 상관 없는 나라들을 위해 싸운 게 아니란 뜻이죠. 즉, 이 자리에 있는 태반의 국가들은 우리 지구군이 보호해 줄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 열을 높이고 있는 중국도 말이죠.”

    “그게 무슨?”

    중국대사와 UN사무총장을 비롯해 회원국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트리아와 협상을 하고 싶으면, 직접 싸워서 승리를 쟁취한 다음 하세요. 그들과 싸워 이긴 것은 우리 지구군 소속 10개국이지, 여러분이 아니니까요.”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순식간에 시끄러워진 UN총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로 카트리아와의 정전협상도 지구군 이름으로 했지, 지구 공동체나 UN 같은 명칭으로 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번 승전을 통해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을 테니 괜히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마세요.”

    “자, 잠시만요! 총수님!”

    그리고 UN총회 회의장에서 등을 돌려 출입구로 걸음을 옮기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아, 마지막으로.”

    문을 열며 나가려던 찰나 뒤늦게 생각 난 게 있다는 듯 걸음을 멈췄다.

    “주제 파악들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조소를 흘리며 회의장을 벗어났다.

    *

    [분명 화가 나긴 하지만, 총수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죠.]

    [하지만 이번 전쟁은 지구 전체의 위기였습니다. 이렇게 너흰 상관없다며 잘라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맞는 것인지 의문이군요.]

    [아니, 지금 사회적 문제를 따질 때입니까? 이번 전쟁은 어디까지나 지구군이라 명명된 신생 국제연합에서 치른 거지 세계가 힘을 합쳐 치른 것이 아니잖아요.]

    [정확히는 로이아스가 처리한 거죠.]

    [아뇨, 우주로 군대를 보낼 여력이 안 되는 가입국들은 자금원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도왔습니다. 같은 취급해선 곤란하죠. 그런데 이제 와서 숟가락을 얹으려 하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가입을 권유했을 때, 무시해 놓고 이제와서 이권을 나눠 갖고 싶다고 지구군 주변을 기웃거리다니요. 어불성설이죠.]

    TV를 통해 UN총회에서의 일을 놓고 토론을 하는 방송을 보았다.

    그중 한 명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해줘서 속이 시원했다.

    나중에 선물이라도 보내야지.

    미국을 포함해 지구군에 소속된 지구측 국가들은 내 발언을 반겼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에선 차별은 두되 다른 국가들을 도태시켜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한국과 인도, 일본은 확실한 구분을 짓는 것이 맞다며 내 말을 지지했다.

    어쩌다 보니 아시아와 서구권 국가가 의견이 나뉘었는데, 이번 일에 대한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지구군의 총수인 내게 달려 있었다.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이브릴의 물음에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나도 다른 국가들을 도태시킬 생각은 없어. 하지만 호구처럼 퍼줄 생각도 없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브릴.

    나는 엘븐티를 마시며 답했다.

    “당장 전리품인 3개의 유인 행성은 70%의 땅을 우선 가입국에 분배하고, 나머지 30%는 후발 가입국에 비싸게 판매할 생각이야.”

    “그렇군요.”

    “어차피 비가입국들은 저항하지 못해. 자기들이 어쩔 거야. 우리가 우주 개발하는데 무단으로 끼어들겠어. 행성을 점거할 수 있겠어.”

    이번 전쟁으로 우리 로이아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군사력은 유명무실해졌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외교적 해결뿐인데, 나는 UN을 통해 더 이상 협의할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아둔 상태였다.

    내가 원하던 것이 권력 집중형 지구 연합.

    이 상태로 시간이 지속 된다면 UN은 점점 힘을 잃고, 지구군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은하연합 소속의 이름을 달고 우주에 진출할 수 있는 지구인은 어디까지나 지구군에 가입된 국가들일 테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네.”

    내 힘을 생각하면 복잡하게 여길 필요가 없지만, 원하는 대로 방향이 진행되니 굉장히 기분 좋다.

    “그러다가 경제 제재라도 해오면 어쩌시려고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우리 연방 제국의 화폐인 로얄의 가치가 급등했다.

    그리고 로얄의 급등으로 금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럼 우린 경제 제재보다 무서운 제재를 가하면 되는 거지.”

    “이제 더 이상 타국의 편의를 봐주시지 않는군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지. 우린 분명 기회를 많이 줬어.”

    단호한 내 반응에 이브릴은 이견 없이 수긍했다.

    “하지만 어차피 당장 우주에 진출하는 건 아니야. 아직 우린 여력이 되지 않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기술력을 키우고 군사력을 키우고, 지구의 질서를 정리하는 일.

    앞으로 몇 년은 내실을 다지는 데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우주 진출은 그다음 이야기다.

    다음 세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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