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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69화 (16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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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바뀌는 환경

    새하얀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소파 하나.

    한 사내가 그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음···.”

    그렇게 그가 영화 감상하듯 지켜보던 우주 전쟁의 영상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고, 빠르게 결론이 나자 팝콘이 든 바구니를 바닥에 탁 내려놓으며 아쉬움을 표했다.

    “카트리아 녀석들이 상대가 되질 않는군.”

    “이걸로 은하는 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군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그의 비서격인 여성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깜짝이야, 언제부터 거깄었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무미건조한 그녀의 대답에 ‘유니버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카트리아 정도면 제법 재밌는 장면을 연출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어.”

    “그의 힘은 신의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단순히 진화를 통해 성장한 피조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죠.”

    “그야 그렇지.”

    “오히려 저만한 힘을 갖고 이 세상을 들쑤시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자기도 눈치가 보이겠지. 원래 이 세상의 구성원이 아니었으니.”

    상대는 유니버스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이는 가이아와의 만남이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더욱 흥미로운 유니버스였다.

    “어때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여성은 담담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싸우고 싶지도 않지만, 설사 싸운다 하더라도, 열에 여덟아홉은 제가 지겠지요.”

    “이런, 내 힘을 가장 짙게 물려받은 너라도 말이야?”

    실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쓸데없는 물음으로 심력 소모를 하는 그의 모습에 여성은 의문을 표했다.

    “어차피 주신님의 한마디에 가루가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신족이 나서서 뭔가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그렇지. 애초에 신족을 이런 일에 쓸 수도 없고.”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홀로그램 화면 속의 루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에 유니버스는 뭘 그런 것을 묻냐는 투로 심플하게 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

    “그렇습니까?”

    “응, 난 창조주이자 관찰자야. 녀석이 내 세상을 파괴하려 들지 않는 이상 제재할 이유가 없지.”

    “그런 것치곤 지구에 이레귤러를 너무 많이 집어넣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냥 취미 생활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여성은 당부하듯 말했다.

    “너무 일을 크게 벌이지 마세요. 주신님의 취미생활에 뼈 빠지게 일하는 건 저희 신족이니까요.”

    “그러라고 만든 녀석들인데.”

    유니버스가 불평하듯 중얼거리자, 그녀는 유니버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알았어. 알았어.”

    “이번 전쟁으로 지구측과 카트리아측 담당자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요. 이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규칙이 완전히 바뀔 거 아닙니까.”

    이미 지구의 질서는 로이아스의 존재로 흔들리고 있던 상태.

    하지만 지구 측 세력이 된 로이아스가 카트리아 마저 굴복시킴으로써 지구뿐만 아니라 두 영역의 매우 큰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야근 확정이군.”

    “어느 분의 취미 생활 덕분에 말이죠.”

    유니버스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탁탁 내리쳤다.

    아마 지금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존재는 그뿐일 것이다.

    “이야,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제발 자제해 주세요.”

    “뭐, 고민 좀 해볼게.”

    ***

    정전을 위해 마주한 카트리아 행성 연합의 의원들.

    하나같이 새하얀 머리색과 피부, 감정에 따라 눈동자 색이 변하는 그들을 보며, 연예인 시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를 향해 내무총괄 주노가 물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인간입니다. 구조상 지구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요.”

    “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런 힘을···. 그럼 뒤에 네 분도 인간입니까?”

    정전협상을 나에게 미뤄두고 카트리아 식의 다과를 즐기던 두 드래곤과 마왕에게 시선이 모였다.

    “아뇨, 인간은 아닙니다. 인간보다 월등한 수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 능력치를 지닌 특별한 종족이죠.”

    그는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고, 곧 눈동자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감정에 따라 눈동자 색이 변하면 생각을 감추기가 힘들 것 같다.

    카트리아란 종족은 오만할지언정 이 세계의 어느 종족보다 솔직할 수밖에 없는 신체적 특징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저희는 원래 다른 세계 출신입니다. 이 우주와는 창조신도 다르고 아무리 빠른 우주선과 워프를 해도 갈 수가 없는 다른 차원에서 왔죠.”

    이미 지구엔 전부 알려진 사실.

    이들도 알고 있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내 입으로 직접 우리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의 멸망과 함께 지구로 도망쳐 온 이주민입니다.”

    비록 그 이주민들이 겨우 몇 달 사이 지구를 장악해가고 있지만 말이다.

    카트리아도 우리가 없었다면 패배를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운이 없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반면 지구인들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이번 전쟁으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본래 카트리아의 대의회 인원은 9명이라고 들었다.

    그중 5명이 1~5군 사령관인데, 현재 자리에 있는 의원의 수는 6명 뿐이다.

    5명의 군사령관 중 3명이 전쟁에서 죽은 것이다.

    현재 대의회 구성원은 군사령관 2명과 행정총괄 4명.

    더구나 군사령관들은 하나같이 나를 귀신 보듯 바라보았다.

    사실 말이 정전협상이지, 패전에 따른 그들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그들 입장에선 함대를 맨몸으로 때려 부순 존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엄청난 공포일 것이다.

    “원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는 분위기.

    하지만 나는 물음에 물음으로 답했다.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말씀하시죠.”

    아는 것이 적은 만큼 일단 그들이 생각한 한도를 들어 보기로 했다.

    제대로 된 협상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

    그러나 이쪽은 승자며 그들은 패자다.

    우린 마음만 먹으면 카트리아를 없애는 것도 가능했다.

    내 물음에 내무총괄은 다른 의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정한 대가는 이와 같았다.

    “태양계와 근접한 유인 행성 3곳과 지구에 과학기술을 단계별로 전수하고, 카트리아의 무조건 개방과 군사력에 제한을 두겠습니다.”

    나쁘지 않다.

    금전적인 보상도 좋긴 한데, 이들과 우리 지구 사이엔 물질의 가치가 다른 부분이 많은지라, 온전한 보상이라 보기 힘들었다.

    금은 우리에겐 굉장히 비싼 귀금속이지만, 이들에겐 별다른 가치가 없는 중금속이며, 마음만 먹으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의 가치를 훼손시킬 이 사실은 되도록 숨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괜찮군요.”

    “그렇습니까?”

    나는 이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튀어나오려던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더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그들의 눈동자가 다시금 노란색으로 변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해당 보상이 적정선이겠지만, 무리를 하면 더 줄 수도 있음이 눈빛으로 드러났다.

    “그, 그럼. 유인행성 2개를 더.”

    “아뇨, 어차피 당장 다른 행성을 다스릴 여력이 안 되는 만큼, 저는 제도적 보상을 원합니다.”

    “제도적이라뇨?”

    심상치 않은 대답에 그들의 얼굴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우리가 같은 소속으로 엮이는 거죠. 지구&카트리아 연합 또는 ‘은하 연합’ 같은 이름으로 말입니다.”

    “네?”

    하나같이 놀란 표정들.

    하지만 내무총괄이란 인물은 우리가 이런 제안을 해올 수도 있다 여겼는지, 입술을 깨물 뿐 다른 의원처럼 허둥대지 않았다.

    이미 잠깐의 대화를 통해 카트리아엔 대표가 없지만, 그가 대표 격의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뿐인 연합이 아니라, 연합 의회를 신설해 양 진영 간의 교류를 극대화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눠 미래지향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죠.”

    좋게 말하면 미래지향적 체제.

    툭 까놓고 말하면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냥 빨대를 꽂고 두고두고 빨아먹겠다는 뜻.

    내무 총괄의 눈빛이 주황색으로 변했다.

    그것이 짜증이란 감정임을 알고 있는데, 분노를 뜻하는 붉은색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밀어붙이면 될 것 같다.

    “잘 생각해보시죠. 제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여러분과 저흰 적이 아닌, 동료가 되는 것이죠. 그다지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은데요.”

    카트리아인들의 수명은 인간을 기준으로 300년 정도.

    사실 이는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는 수명일 뿐,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면 더 오랜 시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제도적으로 300년 이상 사는 것을 죄로 치부한다.

    때문에 카트리아인은 나이를 먹어갈 경우 300살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다.

    수명이 제도로 정해져 있다니 신기하다.

    “이 멤버들은 족히 수 천년을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계속 저희 눈치 보면서 사실래요?”

    이 멤버 중 수명이 가장 짧은 인물은아마 나일 거다.

    개인 능력치야 어쨌든, 이 몸뚱아리 자체가 인간이니 말이다.

    물론 이미 수차례의 바디 체인지를 겪고, 천년초를 먹으면서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특수한 드래곤과 마왕보단 오래 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루시엘라와 함께 생을 마감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삶에 미련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결론은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다.

    내 말에 카트리아 의원들이 조용해졌다.

    “군사력은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시면 됩니다. 딱히 줄이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행성도 3개면 충분합니다. 다만 여러분께선 지구를 가족이라 생각하시어 보유한 기술의 수준을 카트리아에 맞출 수 있게끔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거 협상이라 해서, 배상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무거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우린 전쟁을 치룬 사이다.

    일방적으로 침략을 받은 것은 이쪽이니, 그들은 가타부타 말을 늘일 처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택을 종용하는 물음.

    이쪽에서도 많이 봐줬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의원들을 한 명 한 명씩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죠.”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하나같이 움찔대며 엉덩이로 뒤로 빼는 의원들.

    하지만 나는 그들 중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내무총괄 주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에 대해 아십니까?”

    “손을 맞잡아 인사를 나눈다는 것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손을 잡는 게 악수 형태가 아닌 팔씨름 형태였다.

    잘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은근히 허당끼가 있는 걸까?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이로써 지구는 간접적으로 은하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다.

    물론 지구의 내실은 빈약하기 그지없고, 전적으로 로이아스에 의한 성과긴 하지만 말이다.

    행성 세 개를 얻고 기술협력과 함께 침략을 했던 우주인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였다.

    해당 소식이 지구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반가워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주 가관인 반응이 몇 개 있었는데.

    개중엔 우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을 잊었는지,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굳이 외계인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냐며 나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정치인이나 언론들이 있었는데, 결국 국가의 제재를 받으면서 조용해졌지만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제 살만해지니, 누가 무서운 존재인질 잊은 모양이다.

    앞으로는 정신이상자 같은 반응을 보이며 우릴 공격하는 존재도 인간이라며 대우해 주지 말고 그냥 두들겨 패야겠다.

    ***

    바뀌는 환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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