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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에요.”
내가 뜬금없이 허공을 응시하자, 보고를 올리던 연방 정부의 경제부 부장인 타일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따라 나를 향한 은밀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이 세계의 관리자 혹은 신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단순한 관찰인지, 아니면 감시인지는 몰라도 딱히 간섭을 안 하는 것을 보면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계속하죠.”
“네, 현재 미국과 중국, 한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가에서 본격적으로 로얄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약 3000억 달러, 아무래도 국제 금값이 폭락한 지금, 가치가 떨어진 로얄을 사두는 편이 이득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신뢰도가 올라갔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님 투기인 건지.”
본격적으로 로이아스 국가와 지구 국가 간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가치가 재평가된 건지, 연방제국의 화폐를 쉬쉬하던 국가들이 앞장서서 로얄을 사들이고 있었다.
분명 로얄은 금본위제 화폐인 만큼, 안정성은 높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신뢰도가 확립되지 않아서인지 금보다 시세가 살짝 낮았다.
그래서 화폐를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현재로썬 손해인 상황이다.
로이아스에선 금값과 로얄의 값이 같은데, 해외에선 로얄의 값이 금값보다 싸게 형성되어 있어 차익을 노리고 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봤자 수익률은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제재를 하고 있진 않지만,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로얄이 주요국가에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니.”
이건 우리가 이 세상에 자리를 잡는데, 필요한 비용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사업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외화의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아직 무역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미국, 유럽, 한국에서 포션의 유통이 허가됐습니다.”
“그거 잘됐네요.”
내가 사용하는 부활과 함께 로이아스 의료산업의 주축이 될 포션의 유통.
이미 포션은 WHO의 사전적격성 평가를 통과하여 유통허가를 기다리던 상황이다.
포션은 원가 자체가 상당하지만 그만큼 판매가가 높은지라 분명히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포션을 연고와 희석하여 섞으면 기존과 비교가 되지 않는 상처 치료제가 되고, 피부를 잘 깎아낸 후 사용하면 흉터까지 바로 지울 수 있다.
특히 포션은 지구의 의학에서 크게 빛을 발한다.
절개에 대한 부담이 없고 어떤 종류의 수술을 진행 하더라도 즉시 퇴원을 가능하게 해주니까.
솔직히 포션에 보험이 적용된다면 모든 병원의 환자실은 문을 닫거나 축소해야 할 것이다.
대신 포션은 원가가 비싼 만큼 치료용으로도 비싸게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포션 원액은 병원 납품용으로 사용되고, 시판용은 희석되어 보편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모르긴 몰라도 엘븐티에 버금가는 매출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의학 시장은 거대하다.
힐링, 리커버리 등의 마법 아티팩트가 보급되어 팀킬을 하지 않는 이상 포션의 가치를 위협할 만한 물건은 지구에 없다.
“그리고 EU와 하이랜드 간의 환경 정화산업이 체결될 예정이라 합니다. 규모가 1천억 유로 수준이라는군요.”
현재 환경 정화가 가장 필요한 곳은 중국인데, 그들은 우리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진 몰라도 정작 환경 정화산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안 하면 지들 손해지 뭐.
하이랜드는 인구수는 적지만, 수익 창출의 수단이 많아서 추후 로이아스 연방 제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 1인 GDP로는 따라갈 수 있는 국가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
뭐, 원래부터 하이랜드는 미드랜드와 달리 소수 정예란 느낌이 강했으니, 오늘내일 일도 아니다.
“이블킹덤은 뭐하고 있나요?”
“이블킹덤은 자신들이 보유한 재화를 금으로 바꿔 리모트랜드에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도와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더군요.”
마족들이 인도와?
상당히 의외다.
남부연합은 호주, 동남아를 주축으로 고루 관계를 쌓고 있고, 우리 로이아스 연방제국과 함께 포션 등 많은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캐럿 납치사건처럼 가끔 돌발 사태가 발생하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상황.
비록 캐럿 사건 때 함대를 움직이고 일본의 허가 없이 수사관을 파견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국가들이 많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기에 조치가 너무 과했다고 지적받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누구를 건들더라도 로이아스인은 절대 건들지 말라는 교훈이었다.
설마 한 사람 납치당했다고, 연방제국에서 두 개 함대, 하이랜드에서 네 개 함대를 파견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더구나 해당인물을 구출하기 위해 그 나라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모습은 각국의 지도자들을 고개 젖게 만들었다.
“요즘 해외에 대사관이 설치되면서 이민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선 그래도 지구 측이 살만할 텐데.”
그러나 지구의 지도자들과 달리 평범한 국민들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나선다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로이아스 대륙이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땅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번 행동은 어디까지나 본보기였지, 하이랜드를 제외한 로이아스 대륙의 인권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닌데.
애초에 봉건제도란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 인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민주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봉건제도 속에서 살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이민을 하겠다는 사람은 모험심이 투철하거나, 판타지 세계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평화롭네요.”
내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리 말하자, 타일러는 뜬금없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
“그냥,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리니까요.”
“캐럿양의 납치 소동으로 함대가 출동한 게 불과 3일 전인데요?”
“그건 위기 축에도 못 끼죠. 캐럿양에겐 미안하지만, 세계 멸망의 위기를 겪고 나서인지, 이번 납치 소동은 물론 바르삭 사태까지 그다지 위기라는 느낌은 없었죠.”
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힘을 지금까지 제대로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싸웠던 적중에 가장 강력했던 존재는 폭력의 마왕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온 힘을 다해 그를 제압했다고 보긴 힘들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위기심을 심어 줬던 것은 성왕국 내전에 끼어들었던 샤를로트 공작과 천공성 사태 때 처음 조우한 드래곤 그랑기슈였다.
모두 내가 미숙하던 시절에 겪은 일들로 지금은 재롱 잔치 수준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위기였다.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위기감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세상의 안위가 걸린 일이 테니까요.”
맞다, 분명 좋은 일이다.
내가 순순히 수긍하자, 타일러는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음···.”
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버 파워를 손에 넣고 겪어 본 적 없는 위기감.
이 힘은 꼭꼭 숨겨두고 쓰지 않는 것이 베스트라 할 수 있지만,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 이 힘을 제대로 쓸 날이 올 것만 같다.
“아마 머지않아 위기감을 느끼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내 대답에 타일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저, 정말입니까?”
“그냥 느낌이 그렇다고요. 느낌이.”
갑자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 테라시아가 우주에서 보고 온 것과 연관이 있다.
“저, 전하의 느낌이라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거 아닙니까?”
“무슨 뜻인가요?”
하지만 대충 긴장 풀라며 내뱉은 말에도 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에게 있어서 내 감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은 모양이다.
“그래서 갑자기 군사력 증강 계획을 앞당기신 거군요!”
이제야 납득했다는 그의 모습에 나는 괜한 말을 했다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대충 웃어넘긴 게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내가 아무런 지시를 안 했음에도, 연방 정부가 준전시 상황에 돌입한 것이다.
[아르비스 의장 전하께서 세계에 큰 위기가 올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하셨다!]
겨우 이런 명분으로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이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연방정부의 수뇌부들은 마치 신탁을 받은 신관들처럼 이전보다 더욱 강화된 군사계획을 쏟아냈다.
덕분에 위성으로 우리 군대의 상황을 살피던 미국이 깜짝 놀라 어째서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냐고 물어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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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카트리아 행성 연합
우주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까?
지구처럼 생명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가진 별이 또 있을까?
우주에 관심이 없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
아직 생명체의 존재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우주에 지구와 비슷한 스펙트럼을 가진 행성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닌, 그저 예측에 불과한데도 인간들의 제2의 지구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
글리제581.
천칭좌 방향으로 20광년 떨어진 이 적색왜성엔 생명체가 살 수도 있을 것이라 알려진 두 개의 행성이 있었다.
글리제581d와 글리제581g.
글리제581d는 지구의 7배 질량을 지닌 차가운 행성이다.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지만 골디락스 존에 입성해 있는 만큼 액체 형체의 바다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다가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는 뜻이다.
글리제581g는 애매한 글리제581d와 달리 지구와 아주 흡사한 환경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되는 별이다.
지구의 3~4배 정도의 질량을 지녔으며 대기와 바다가 있고 대륙이 존재할 것이 확실시되는 별.
그래서 사람들은 글리제581g를 가리켜 슈퍼 지구라 불렸다.
하지만 이 두 별의 존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연구팀에 의해 존재를 부정을 당했다.
아무리 탐색을 해도 두 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며, 다른 빛을 행성으로 오인한 가상의 존재였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져 결국 두 별은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지구인들이 모르는 사실.
그건 바로 글리제581d와 글리제581g가 실존하는 행성이며, 고도로 발달 된 문명을 지닌 곳이란 점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지구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행성이 알려지는 것이 꺼려 의도적으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해당 문명은 글리제581g에서 탄생하여 진화를 거듭했으며, 지금은 글리제581d를 넘어 은하계 전반에 영역을 확대했다.
이들의 명칭은 카트리아.
글리제581g로 알려진 별의 명칭이 카트리아 행성이었으며, 이들은 글리제581d를 비롯해 여러 무인 행성들을 개척하여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카트리아 행성 연합이라는 거대 세력이다.
카트리아 인은 지구인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신이 그렇게 설정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존 방식도 인간과 매우 흡사했다.
다만 외형적으로 지구인과 다른 점이라면, 백색증을 지닌 인간처럼 모든 것이 새하얗고 키가 크며 눈동자 색이 감정에 따라 바뀐다는 점이다.
카트리아 행성 연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