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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어내리자고 저 군대를 동원했단 말인가?”
새삼 아르비스 의장이란 자가 로이아스 연방 제국에 미치는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각하, 미국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라는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각하, UN사무총장이 사과를 종용하는 문서를···.”
이 내용이 각국에 알려지자, 오히려 로이아스를 담대하다 칭찬하고 중국을 깎아내렸다.
핵공격을 사주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전쟁의 명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모든 것을 유언비어라며 흘렀지만, 국제 사회에선 로이아스의 주장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이 대군을 움직일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시주석은 선택을 해야 했다.
굴욕을 감수할 것인가.
전쟁할 것인가.
“각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필요 없습니다! 녀석들은 지금 대 중국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전쟁은 해봐야 아는 일이 아닙니까!”
총리의 외침에 국방부장과 외교부장은 쉽게 맞는 말이라며 동의하지 못했다.
실제로 먼저 그들을 때린 것은 자신들이고 그 과정에 핵을 사용한 만큼,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순서였으니 말이다.
중국이 로이아스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며 불평해도 누워서 침 뱉기에 지나지 않는다.
주석의 아들이 아르비스 의장의 부인을 희롱한 것도, 불법 조업 어선이 침몰당한 것도, 도발을 위한 전투기가 격침당한 것도 모두 자신들이 초래한 일이 아닌가.
그것에 흥분해서 핵테러까지 감행했는데, 사과와 함께 주석자리를 내려오면 용서해주겠다는 말은 관용이나 다름없었다.
“가, 각하! 적 함대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들이 출격하고 있습니다!”
당황한 정보부 담당자의 외침에 주석은 신음을 흘렸다.
마치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것처럼 500대의 전투기와 300대의 큼지막한 전폭기가 물고기 떼처럼 전함 주변을 배회했다.
금방이라도 대가리를 돌려 아군의 병력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위용.
아무렇지 않게 날아다니는 전투기 하나하나가 F35를 능가하는 녀석들이라니.
로이아스 연방제국의 존재가 괴물로 느껴졌다.
듣기론 하이랜드 연합이란 곳의 기갑 항공전력은 로이아스 연방제국에 비견된다고 하던데···.
남쪽에서 로이아스의 함대와 대치하고 있는 중국의 3개 함대가 패닉에 빠져 계속 지시를 바랬다.
“다시 한번 묻지, 로이아스와 전쟁을 한다면 승리할 자신이 있는가?”
시주석의 물음에 국방부장은 잠시 머뭇거리고는 힘겹게 답했다.
“싸워서 이기라고 지시하신다면 당연히 이겨야죠. 하지만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더구나 잊으면 안 되는 게 저것이 로이아스의 전력이 아니며, 숨겨진 무언가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단순한 군사장비의 격돌로 로이아스 연방제국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군부의 리더로써 당연히 승리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시주석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들의 제안에 따르겠다 전하도록.”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시주석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우매함이란 이름의 안개가 말이다.
“주석각하!”
총리가 말도 안 된다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주석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해탈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롱하고 싶으면 조롱하라지. 오늘의 일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다.”
시 주석의 말에 상황실은 금세 숙연해지고, 몇몇은 대중국이 어째서 이런 굴욕을 겪어야 하냐며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시주석의 충실한 오른팔인 총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시주석은 그런 총리의 어깨를 두드리곤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피하는 국방부장과 외교부장에게 악수를 건넸다.
오래가지 않아 상황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기지.”
시주석의 부탁에 상황실의 모두가 눈물을 닦으며 크게 답했다.
“네!”
그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주석은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의사를 로이아스 연방 제국에 전달토록 했다.
아마 이 모습을 루이스가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랄 생쇼를 하네.’
분명히 가해자는 로이아스 연방 제국이 아닌, 중국이었다.
*
[깊이 고개를 숙인 중국 주석. 정말로 그가 바르삭에 테러를 지시했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용기다? 중국 주석은 테러리스트나 다름없는 존재. 그는 로이아스 연방제국의 군사력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기에 순순히 사과하고 나선 것이다. 어디까지나 주석은 핵 테러를 지시한 바르삭의 배후다.]
[주석의 처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가 비록 한 국가의 지도자였다곤 하지만, 핵공격을 테러리스트에게 지시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힘을 갖고도 관용을 베푸는 연방 제국. 이번 일을 계기로 로이아스 대륙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다.]
[압도적인 군사력. 하지만 로이아스 대륙의 하이랜드 연합도 연방제국에 비견되는 군사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변화할 국제 질서에 귀추가 주목돼···.]
이번 일로 중국을 향해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괜히 잡음을 키워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주석의 잘못보다 굴욕적인 사과를 불쾌하게 여겼다.
사과는 했지만, 그 사과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고 정작 해당 국가에서 불만을 갖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들은 분명 이 정당한 사과를 굴욕적인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어두운 방 안.
붉게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아 술을 들이켜던 시주석이 바뀐 집안의 풍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주석궁에서 지냈는데, 역시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 같군.”
지금 있는 방도 충분히 넓고 화려했지만, 아무래도 그는 이것만으로도 추락했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쾅.
그때, 방문이 예고 없이 벌컥 열리며 사내가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시 주석은 그 사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가 바로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바보가 되어버린 아들, 시껀깡이었기 때문이다.
“헤헤.”
뭐가 그리 좋은지 하루종일 웃는 아들을 보면 모든 고민이 쓸데없는 잡념으로 느껴졌다.
“이리 오렴.”
그래도 제 아비는 알아보는지, 시껀깡은 느릿느릿 그에게 다가왔다.
대체 어떻게 하면 멀쩡했던 아이가 이렇게 되는 건지.
그도 부모의 마음이란 것을 갖고 있는지라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턴 네 녀석의 치료방법이나 알아봐야겠구나.”
시 주석은 느릿느릿 다가온 시껀깡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푹.
“어?”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가슴을 불로 지진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눈을 부릅뜬 그가 있는 힘껏 아들을 밀치니 가슴에 날카로운 식칼이 틀어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무, 무슨.”
시주석의 의문에 스륵 몸을 일으킨 그의 아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큭, 드디어 네 녀석을 처리하는군.”
방금까지 바보였던 아들이 멀쩡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시주석의 가슴에 틀어박힌 식칼의 손잡이를 잡고 더욱 깊이 밀어 넣었다.
“컥!”
심장을 관통당한 시주석은 몸을 부르르 떨어댔고, 점차 움직임이 사라졌다.
그와 반대로 시껀깡의 웃음소리는 커졌는데, 광기 어린 웃음소리에 주석궁에서부터 그들을 챙기던 가정부가 달려왔다.
“도련님? 으아악!”
그런 가정부를 보며 시껀깡은 반갑게 말했다.
“봐봐, 아줌마. 내가 아르비스 대공을 처리했어! 이제 그년을 손에 넣을 수 있어!”
영문 모를 시껀깡의 말에 가정부는 손을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어차피 아버지가 처리해 주실 테니. 그런데 아줌마가 뉴욕까지 어쩐 일이야? 데리고 온 기억이 없는데?”
“도, 도련님. 어째서 주석각하를···.”
“그게 무슨 소리야?”
시껀깡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분명 아르비스 대공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어야 할 장소에 자신의 아버지가 위치 해있는 것이 보였다.
“······.”
순간 상황을 이해 못 한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피로 얼룩진 손.
“하, 하하. 뭐야 이거.”
시껀깡은 눈을 비비며 고개를 저었고 이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이! 씨발 새끼들아!”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겁에 질린 가정부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감히 나한테 수작을 부려? 아아악!”
분노로 가득한 외침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얼마 안 있어서 가정부가 시주석의 비서들을 데리고 왔다.
비서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정신을 차린 듯한 시껀강의 모습.
그러나 그 뒤로 식칼이 꽂힌 채 방치된 주석을 발견하고는 하나같이 기겁했다.
“각하!”
그들은 급히 응급조치를 했으나 소용없었다.
주석은 이미 요단강을 건넌 상태였으니.
“주석각하께서 덜떨어진 네 녀석 때문에 무슨 짓을 했는데! 감히 네가!”
그리고 시껀깡은 분노한 비서들에게 구속당했다.
“아, 아니야. 내가 아니야! 마법에 당한 거야. 로이아스 녀석들의 마법에 당한 거라고!”
“닥쳐!”
수석비서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내질렀고, 시껀깡은 바닥을 굴렀다.
“놔, 안 놔!? 내가 아니라고!”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봤자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시껀깡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으며, 중국에 대굴욕을 선물한 인물이었다.
또한 방금까지 미쳐 있던 사람이 지금이라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시껀깡은 그대로 공안에 체포되었고,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
“와, 시껀깡 이 강아지님. 루시엘라님 앞에서 몸을 배배꼴 때 알아봤는데 완전히 정신이 나갔네요.”
연방신문을 살펴보던 마그누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신문을 접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언제나처럼 엉덩이를 걷어차 줬다.
“이거 주인님 작품 맞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그 정신공격은 저주가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면 풀릴 거였습니다. 그런데 꽤 오래간다 싶었는데, 이런 장치를 해두셨군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묻는 마그누스를 보며 나는 실소를 흘렸다.
“맞아. 내가 핵테러까지 꾸민 그 인간을 용서할 리 없잖아?”
“어쩐지. 자비로움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주인님께서 그를 용서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었는데, 이런 공작이···.”
다시금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찬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중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녀석들이 괘씸하긴 하지만, 중국이 망하면 세계에 큰 혼란이 오는 만큼 우리의 활동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대공황이 닥쳐온다면 지구의 대부분 국가는 원인과 상관없이 우리 로이아스의 탓을 할 게 뻔하다.
그럼 차라리 이미지를 바꾸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 바르삭과 달리 중국 국민들은 잘못이 없으니, 괜한 피해를 발생시킬 필요도 없다.
그래서 주석과 그의 자식에게만 죄를 묻기로 한 것이다.
이번 일로 로이아스 연방제국의 영향력은 중국을 크게 넘어섰다.
더구나 바르삭을 문제없이 토벌한 데다가, 핵공격을 당하고도 관용을 베푸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미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지구 측의 인정을 받아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수월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주석이 이렇게 바로 죽으면 중국 측에서 의심하지 않을까요?”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증거가 없으니,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잖아? 오히려 전쟁을 멈추고 관용을 베푼 우리에게 헛소리를 한다면 배은망덕하다고 말하면 그만이지.”
“그래도 지구에서 두 번째의 경제력을 지닌 국가인데, 제재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우리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못해. 감히 제재할 생각을 하면 또 함대 출동시키면 되지. 싸우자는 뜻이니까.”
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이미 녀석들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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