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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마드세인 제국의 수도는 세인이고, 연방제국의 수도는 세이로지만, 로이아스 대륙의 수도는 바로 아르비스 대공령이라 칭하죠.”
흥분하는 마르코의 모습에 A언론의 대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로이아스 대륙의 문화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아르비스 대공령이 제격입니다.”
A언론 관계자들은 그가 아르비스 대공이란 존재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비스 대공령은 내국인에게도 출입 심사가 철저한 만큼, 아마 철저히 검사를 받게 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추가 검사란 말에 움찔거리는 몇몇 기자들.
“물론이죠. 로이아스에선 로이아스의 법을 따라야죠.”
그러나 A언론의 대표자는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드르르르.
그렇게 A언론의 관계자 10여 명은 마르코의 뒤를 따라갔다.
“엄청 큰 장비네요.”
마르코는 끌차처럼 생긴 전동 보드 위의 큼지막한 상자 두 개를 보며 물었다.
“네, 카메라 렌즈입니다. 상자까지 무게가 20kg이 넘어서 저렇게 끌고 다니고 있네요.”
“카메라 렌즈가 그렇게 큰가요?”
마르코는 사전에 기자들의 장비에 대해 숙지한 상태인지라, 카메라 렌즈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알고 있는 렌즈와 매치가 되지 않는 사이즈의 상자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무려 5만 달러에 다다르는 대단한 녀석이죠. 최고의 영상을 위해 최고의 장비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군요.”
다른 촬영진들도 워낙 짐이 많기에 마르코는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이어서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아르비스 대공령의 중심인 발테르시에 도착했다.
웅성웅성.
눈 부신 빛이 쏟아지고 동시에 다양한 소음이 고막을 때린다.
“아르비스 대공령 발테르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텔레포트 관리자는 아리비스 대공령의 정복을 입은 마법사였다.
그는 마르코와 A언론의 관계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고, 그 뒤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오가는 고풍스런 도심의 풍경이 살짝 보였다.
“죄송하지만, 입국과 별개로 아르비스 대공령에선 프리패스가 없는 이상 엄격한 출입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출입 심사는 출입국 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소지품 검사는 더욱 철저하게 이뤄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도 커다란 렌즈 가방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가요?”
대포처럼 생긴 커다란 렌즈를 살피는 텔레포트 근무자들의 태도가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지구 측 장비는 모르는 것이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 A언론의 담당자인 마르코가 대신 답했다.
“카메라란 이미지 저장 장치가 있는데, 멀리 있는 풍경을 찍을 수 있는 렌즈란 이름의 보조 장비입니다.”
“이것은 다른 렌즈들과 사이즈 차이가 상당하네요.”
A언론의 대표자는 DSLR카메라에 렌즈를 연결하여 즉석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여주었다.
렌즈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받침대 없이는 혼자서 못들 정도였다.
“마법 없이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군요.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것 같아요.”
“이것보다 2.5배 더 확대해서 찍을 수도 있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 담당자는 알았다면서 렌즈를 다시 가방에 넣었고 그들을 통과시켰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길.”
“감사합니다.”
지붕 달린 야외 공연장 같은 텔레포트 관리소를 벗어나니, 제대로 된 대공령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A언론 관계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엄격한 신분 사회라고 들은 것 치곤 사람들의 행색이 상당히 부유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와 다른 양식의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얼굴에 배어 있는 여유로움과 자신감 넘치는 행동만 봐도 영지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마드세인 제국의 수도 세인만 하더라도 도시의 외관이 지구와 다른 화려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이곳 또한 그랬다.
대체로 유럽의 대도시를 연상시키지만, 군데군데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는 영상과 광고 문구들은 고풍스러움과 어울리지 않는 사이버틱한 느낌을 풍겼다.
하늘엔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은색 원반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고, 곳곳엔 기간트라 불리는 이족 보행 로봇이 아르비스 대공가의 깃발 달린 창을 들고 있었다.
“인간다우면서도 장엄한 풍경이군요.”
“그런가요?”
“네, 너무 멋진 도시입니다. 회색으로 가득한 지구의 대도시들과 달리 다양한 색채로 가득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A언론 대표자의 말에 마르코는 기분 좋게 웃으며 물었다.
“아르비스 대공령의 랜드마크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니면 자유롭게 촬영하시겠어요? 식사부터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아르비스 대공령엔 맛있는 식당이 많거든요.”
“식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영주성을 먼저 볼 수 있을까요? 로이아스 대륙을 운영한다고 알려진 아르비스 의장님의 자택을 가장 먼저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요.”
“물론이죠. 하지만 개인 생활 공간은 촬영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아마 추가로 허락을 받아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르코는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중앙 행정청에 들려 운전기사와 함께 마력 차량 한 대를 빌렸다.
그것은 버스에 트럭이 합쳐진 특이한 외형을 지녔었는데, 짐과 인원이 많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차량이었다.
뒤 칸에 짐을 싣고 언론사 관계자들은 내부 좌석에 탑승했다.
거대한 차가 움직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방금까지는 쳐다도 안 보다가 모자를 벗고 차량에 인사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는데, 마르코의 적절한 설명에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차량에 표시된 아르비스 공작령 귀빈 마크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죠. 여러분을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영지민들의 따뜻한 미소에 A언론 관계자들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표정을 되돌린 그들은 창밖의 풍경에서 눈을 뗐다.
마력 자동차는 전기차처럼 큰 소음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갔으며 내부 진동도 거의 없어서 실내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차량은 약 20여 분을 달려 목적지인 영주성에 도착했다.
“1층은 누구나 입장이 가능한 행정구역입니다. 2층은 공용 식당을 포함한 휴게시설과 파티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3층부턴 영주님의 공간입니다.”
“이 영지의 영주이신 아르비스 의장님께선 평소 연방제국 총괄 업무로 바쁘신 걸로 아는데, 평소엔 누가 이 성을 관리하시나요?”
“평소엔 아르비스 대공 전하의 첫째 부인이신 루시엘라님께서 관리하고 계십니다. 아르비스 대공 전하의 부모님도 계시지만 그분들께선 영지 업무엔 거의 관여를 안 하시죠.”
“대공가의 가족분들 모두 여기에 사시는 것 맞죠?”
“네, 아르비스 대공 전하께서도 업무가 끝나면 이곳으로 돌아오시죠. 연방 제국의 의장이란 자리는 기간이 정해진 선임제지만, 아르비스 대공령은 대대로 이어질 가문의 재산이니까요.”
A언론의 관계자들은 영주성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촬영하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A언론의 대표는 행정관들을 보며 말했다.
“정돈이 잘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다들 열과 성의를 다해 근무하고요. 아르비스 의장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 혹시 충성심이란 단어를 쓰면 불쾌하신가요?”
마르코는 당치도 않다며 손을 내저었다.
“충성심은 당연한 거죠. 저희 마드세인 제국인에게 있어 그분은 신과 같습니다. 아마 그분께서 맨몸으로 전장에 나서라고 명령하신다면 신념을 갖고 나설 사람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 겁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마르코는 자신의 대답에 상대방들의 반응이 냉담한 것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신과 같다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하시는지···. 감사합니다. 한 줌의 망설임마저 없애 주셔서요.”
“네?”
사람 좋아 보이던 A언론측 대표는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당신의 그 말은 신성 모독이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신성 모독이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이교도 자식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A언론 측 대표를 보며 마르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병사와 기사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느닷없이 소리친 그에게 쏠린 사이, 뒤쪽에 떨어져 걷던 기자가 커다란 케이스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초망원렌즈를 꺼냈다.
지름 30cm 높이 70cm.
겉모습은 이미 사용했던 렌즈와 다름이 없었지만, 그 용도는 전혀 다른 장비였다.
[활성화]
“대장!”
그가 렌즈 한구석의 스위치를 누르며 소리치자, A언론의 대표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며 끝부분을 눌렀다.
“죽어라! 이 침략자들! 알라를 위하여!”
“알라를 위하여!”
“테러리스트다! 막아!”
기사들이 이상을 깨닫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지만, 그들을 막기엔 늦었다.
녹색 프레임으로 이뤄진 커다란 렌즈가 증발하면서 새하얀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마르코는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핵폭탄은 보통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ICBM과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IRBM, 잠수함 탄도미사일인 SLBM 등 대형 탄두를 떠올리지만, 용도에 맞게 소형화된 핵폭탄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투기용 핵탄두가 있고, 그것보다 더욱 소형화되어 사람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핵배낭이란 것도 있다.
핵배낭의 정식명칭은 특수원자파괴탄(SADM).
냉전시대인 1960년대 미국에서 수백여 개가 생산되어 여러 국가에 실전 배치가 되었으며, 한때 주한 미군에도 배치되어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 장비였다.
크기가 작고 사람이 지니고 다닐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괜히 핵폭탄이 아니다.
작은 배낭이 TNT 수천 톤의 위력을 내며 얼마든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바로 그 핵배낭을 보유하고 있었다.
핵배낭은 기습 침투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사용하기 안성맞춤인 물건.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폭탄 중에서도 가장 수거에 열을 올렸던 것이 핵배낭이었다.
하지만 결국 몇 개가 바르삭의 손에 넘어가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바르삭 입장에선 대형 핵탄두보다도 소형 핵배낭의 보유가 전쟁 억지력이 높였다.
언제든지 테러에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핵배낭이 폭발하면 아무리 아르비스 영주성이 튼튼하다고 해도 가루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핵물질 반응이다. 영주님과 마그누스님께 알려라.”
텔레포트 게이트의 관리자는 앞서 나아가는 A언론의 관계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하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A언론에서 출입 심사 중에 거짓말을 한 사실이 아티팩트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그럼에도 관리자가 아무렇지 않은 척 A언론 사람들을 내보낸 이유는 사전에 영주로부터 그리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들의 영주인 루이스는 지구 측에서 문제를 일으키길 바라고 있었다.
로이아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본보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해당 사실은 바로 루이스와 마그누스에게 전달되었다.
“가족들을 한데 모으고 만약을 위해 네가 지키고 있어.”
“만약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마그누스의 물음에 루이스는 씩 웃으며 투명화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A언론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죽어라! 이 침략자들! 알라를 위하여!”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 루이스는 모습을 드러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새하얀 빛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한 핵폭탄이 마드세인의 상공으로 날려졌다.
콰아아앙!
머리 위 발생한 폭발음.
하지만 굉장히 멀리 떨어진 거리여서 폭발의 여파는 미미한 진동이 다였다.
“정화.”
루이스는 방사능에 대비해 영주성과 반경 500km를 정화했다.
방사능이 위험하다 한들 9클래스를 넘어 권능 단계에 들어선 그에겐 단순한 오염물질에 불과했다.
비록 광범위한 정화로 인해 마력의 소모가 컸지만,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바르삭의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루이스는 상큼하게 말했다.
“지구측에 입국을 허락함과 동시에 테러라니, 안 되겠네.”
“아르비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마르코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뭔진 몰라도 루이스가 자신들을 구해줬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두 감격한 모습으로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테러리스트들만이 어정쩡하게 서서 루이스와 대치했다.
“바르삭에서 연방제국 의장의 가족을 노리고 핵공격을 실시하다 인가?”
“······.”
루이스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테러리스트 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야말로 고맙다. 빌미를 마련해 줘서.”
테러리스트 대장은 자신들이 루이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바르삭 토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