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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39화 (13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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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을 내보내게.”

    뒤를 돌아보니 중국 주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기절한 아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미 그의 등장은 알고 있던지라 나는 놀라지 않고 말했다.

    “어디부터 보셨죠?”

    “처음부터 봤습니다.”

    “잘 됐군요. 이일은 저희 측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하도록 하죠. 자식분 관리를 잘하셔야겠습니다.”

    나나 경호원이 때려도 문제는 없었겠지만, 불쾌감을 느낀 당사자 루시엘라가 뺨을 때린 것이기에 자업자득이라 볼 수 있다.

    더구나 이곳엔 증인도 많았으니 말이다.

    내 말에 그는 짧게 혀를 차고는 S급 능력자인 경호원들의 조인트를 날렸다.

    사과 한마디 없이 지나치는 그의 태도를 보며 역시 중국이랑은 친하게 지내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불쾌한 경험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오히려 사과를 건네온 것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나마 미국 대통령이라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미국에서 미안할 게 뭐 있겠습니까?”

    이번 일로 중국과의 관계는 정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보통 외교에 개인감정을 끌어들이면 안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감정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나뿐 아니라, 엘프퀸, 마왕, 로엘 황제도 거만한 중국의 태도를 거슬려 했다.

    그들도 중국과 어울릴 이유는 없었다.

    앞으로 로이아스가 중국과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거다.

    이후 우리는 중국 주석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며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호의적인 국가의 대사들과만 어울렸다.

    “실은 제가 로이아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명주를 가져왔습니다. 이 세계 술을 맛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오, 그거 좋죠.”

    더불어 그 호의적인 국가의 틈새에 한국 대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

    파티가 끝나고, 나는 UN주재 한국 대사를 따라 그의 개인실로 향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동욱 한국 대사가 건넨 악수를 받으며 널찍한 소파를 차지하고 앉았다.

    “혹시 다른 분들께선 기분 나빠하지 않으실까요? 아르비스 대공 전하께만 만남을 요청해서···.”

    저자세를 취하는 그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답해줬다.

    “로이아스 대륙에서 제국연방의 세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공 전하께서 그 연방의 최고 책임자시고요.”

    “세력마다 특징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금력과 인프라, 기술력, 군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연방제국과 하이랜드가 비슷한 수준이고, 마왕이 포함된 이블킹덤은 아직 온전한 국가는 아니었지만 특출난 군사력을 지녔다.

    그리고 남부연합의 경우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인구수만큼은 대륙 최고를 자랑했다.

    “대한민국은 로이아스 대륙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소극적인 타국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수용할 의지가 있습니다. 또한 연방제국에서 원하신다면 국책으로 인건비와 기자재값을 더한 원가만으로 연방 제국의 산업 인프라 개발에 뛰어들 의지도 있죠.”

    사실 인건비를 받는 순간 이득이 없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마진을 챙기지 않고 개발원가만 받겠다면 우리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다.

    어쩌면 타국에서 비슷한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가장 먼저 이런 제안을 해오는 국가가 한국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더 바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연방 제국의 인프라 개발사업을 수주하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다.

    그로 인해 일자리가 넘쳐날 테고, 로이아스에서 얻은 국민의 소득은 한국 사회에 흡수될 테니.

    하지만 한국이 이리 성급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 양측간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는 도박처럼 느껴질 게 분명했다.

    그는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이마를 긁적였다.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 아직 로이아스 대륙을 신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선뜻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로이아스 대륙과의 관계를 초기에 다져 주변 국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함입니다.”

    “주변국이라면 중국과 일본을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나는 턱을 짚으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붕괴로 예상치 못한 통일을 이룰 수 있었죠. 사실 통일이랄 것도 없습니다. 평양과 함흥, 신의주 3개 도시를 차지하고 난민이 된 북한국민을 수용하여 보호하는 것뿐이니까요.”

    내가 한국인이었을 때는 감히 꿈도 못 꾸었던 통일이 단 몇 년이 지나 이뤄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지금도 열심히 북한지역을 수복하고 있는데, 만포와 나진이란 북한 최북단 도시들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이 태클을 걸고 들어왔습니다. 북한지역의 점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서요.”

    그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돼서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은 그렇다 쳐도 일본은 한국의 동맹 아닙니까?”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일본은 동맹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꺼리는 족속이거든요. 마물의 등장과 맞물려 일본의 쇠퇴는 가속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꾸준하게 힘을 키워나가고 있으니 배가 아픈 거죠.”

    하여간 괜히 쪽발이가 아니다.

    그리고 일본도 일본이지만 중국도 역시라 할 수 있겠다.

    “세계는 마물과 여러분의 등장으로 혼란스럽지만, 저흰 빠르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업 전반에 걸친 협력과 더불어 두 국가 간의 강력한 동맹을 원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방제국의 가치는 미국 그 이상이다.

    6개 제국이 합쳐진 국토면적만 해도 유라시아를 넘는 수준이고,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한없이 작은 나라였다.

    때문에 한국과 깊게 엮여서 이득이 될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우리에겐 한국 정도가 상대하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

    기술력도 높고 일부 첨단산업은 미국에 버금가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 미국보다 다루기도 쉬운 만큼, 가장 먼저 전략적 동맹관계를 수립한다면 미국 같은 패권 국가가 아닌, 한국 정도의 상급 국가를 염두하고 있기도 했다.

    “산업 인프라? 통신? 로이아스 대륙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강력하게 동맹을 원하는지, 그는 꾸준히 대한민국을 어필했다.

    “뭐, 좋습니다. 저도 시간 질질 끄는 사람들에게 놀아날 생각은 없으니까요.”

    시원스런 내 대답에 그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해왔다.

    *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 위원회의 위원인 시껀깡은 멍하니 호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병에 걸린 닭처럼 기운이 없었으며, 눈빛이 몽롱한게 정신상태를 의심케 했다.

    시껀깡은 루시엘라를 처음 본 순간 반하고 말았다.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머리카락.

    물기를 가득 머금은 에메랄드빛 눈동자.

    행동 하나하나는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으며, 고혹적인 자태엔 기품이 넘쳤다.

    그녀다.

    이 세상에서 내 짝이 될만한 사람은 그녀뿐이다.

    루시엘라를 본 순간 시껀깡은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비록 그녀는 다른 남성의 부인이었지만, 그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대 중국 주석의 후계자가 아닌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존재였다.

    루시엘라의 아름다움에 취한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로이아스 대표의 숙소가 어디지?”

    시껀깡의 물음에 그의 경호책임자인 S급 헌터가 답했다.

    “이 호텔입니다. 몇 호실인지는 안 알려졌지만요.”

    그에 시껀깡은 좀비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그녀를 만나봐야겠어.”

    얻어터지고도 그녀에게 집착하는 시껀깡의 모습에 경호원은 잠시 말을 잃었지만, 이내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렸다.

    “주석께서 자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아, 괜찮아. 말만 그렇다는 거 알잖아. 아버지는 나라면 껌뻑 죽으니까.”

    “하지만 어딨는 줄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차피 호위가 지키고 있을 거 아냐. 돌아다니면 티가 나겠지.”

    시껀깡이 집착하는 여성의 미모는 그도 보았기에 잘 알고 있다.

    감히 천상의 여인이라 해도 될 정도.

    하지만 중국 대표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상태에서 이러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

    더구나 상대는 로이아스 대표의 부인이 아닌가.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로이아스의 분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질타를 받고 말 것이다.

    “놔.”

    하지만 경호원은 감히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중국 내에서 시껀깡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으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다른 경호원들을 한데 모은 그는 시껀깡과 함께 호텔을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딱 봐도 지구 양식이 아닌 정복 차림에 롱소드 두 자루를 허리에 찬 인물들이 지키는 곳을 발견했다.

    테러를 당하고도 겁이 없는지, 그들은 최상층 로얄 스위트룸을 사용하고 있었다.

    철컥, 철컥.

    그런 이들에게 한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이 앞으론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들이 로이아스의 기사라 불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

    복도를 지키고 있는 기사의 수가 10명, 마법사가 5명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시껀깡과 경호원에게 집중되었는데, 막상 따라오긴 했지만 뭐라 해야 할지 몰라 경호원들은 문제 제공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파티장에서 있던 일을 사과드리기 위해 루시엘라라고 불리는 분을 뵙기 위해 왔습니다. 저는 공산당 중앙군사 위원회의 위원인 시껀깡이라 합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상대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과는 받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돌아가시지요.”

    당연하지만 만나고 싶다고 해서 응해줄 만큼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최소한 주인께 보고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껀깡이 항의하듯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여전히 웃는 낯으로 답했다.

    “나중에 사과를 전해드리죠. 여러분은 이만 돌아가시면 됩니다.”

    이어서 그가 강렬한 기운이 풍기자, 시껀깡의 경호원들은 주춤거리며 긴장했다.

    상대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느꼈기에 경호원들은 긴장했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시껀깡은 도리어 반발하며 앞으로 한발 다가갔다.

    “그렇게는 못 하겠소,”

    “그럼, 저흰 당신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어디 해보시지, 나는 중국 주석의 아들인 시···.”

    빡!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상대가 파리 쫓듯 내저은 손짓에 맞고 공중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어서 시껀깡이 철퍼덕 떨어지며 흰자위를 보이자, 경호원들이 나섰다.

    “그만 이 멍청한 돼지를 데리고 돌아가시오. 이 이상 도발을 한다면 로이아스 연방 제국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당신들을 제거하겠소.”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경호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물었다.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것 없지. 의장기사단 소속 콘스탄틴 로이드 제르갈 공작이라 하오.”

    그들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서야 했다.

    “놔, 이 새끼들아.”

    하지만 그사이 기절했던 시껀깡이 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호원들을 밀쳤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콘스탄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근성은 있군.”

    “감히 대 중국 주석의 아들을 때려?”

    콘스탄틴은 더 이상의 경고 없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그에 중국 측 경호원들도 무기를 꺼내 들었고, 호텔 복도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푸른 빛과 함께 청발 적안의 소녀가 나타났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중국측 인사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파티장에서 로이아스 측의 호위로써 자신들과 대치했던 소녀였으니.

    “마, 마그누스님.”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사내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수습하자, 중국 측 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콘스탄틴이 쩔쩔매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고,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마그누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미에 취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걸 보면 매혹이 루시엘라님의 능력처럼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뭐라는 거야?”

    “거기에 오만함과 안하무인 성격이 더해져 이런 모습이 되는 거겠죠.”

    시껀깡이 이를 갈며 으르렁대자, 마그누스는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이대로 두면 귀찮을 테니,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요.”

    이어서 마그누스의 붉은 눈동자가 빛을 발하자 이상함을 느낀 경호원들이 나서려 했지만, 몸이 굳어져서 움직여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팍!

    “컥.”

    시껀깡의 고개가 뒤로 제쳐지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그리고 마그누스는 비웃음과 함께 나타났을 때처럼 푸른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헉! 허억! 허억!”

    아무래도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던 모양이다.

    마그누스가 사라지고 나서야 구속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쉰 경호원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위, 위원님. 괜찮으십니까?”

    그나마 최측근 경호원이 힘겹게 시껀깡에게 다가갔는데, 어쩐지 상태가 이상했다.

    “헤헤, 헤헤.”

    웃음과 함께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껀깡의 모습에 경호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

    교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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