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37화 (13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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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사님들께선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이어서 미국 대통령, UN사무총장, 중국 주석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대사들은 회의의 참관인으로 물러나고 작은 원탁 테이블엔 우리 로이아스 대륙의 책임자들과 지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그 세 사람만이 둘러앉았다.

    “표정들이 굳으셨군요.”

    내 물음에 미국의 마이크 대통령이 태연하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유엔에 들어설 때 벌어진 일 때문이 놀란 게 진정이 안 된 모양입니다.”

    과연 그것뿐일까?

    나는 진실의 눈을 가진 엘프퀸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사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나마 회의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엘프퀸이 입을 열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겉모습만 봐선 한 세력의 총 책임자란 직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앳돼 보이고 상큼했기에 대사 중엔 은은한 미소를 짓는 사람도 많았다.

    “저에겐 한가지 특수 능력이 있습니다. 이건 스위치처럼 온오프가 가능한 액티브 능력이 아닌 패시브 형태이니 오해 말았으면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UN사무총장이 능력에 대해 물었다.

    “진실의 눈이란 겁니다.”

    어째 이름만 들어도 무슨 기능인지 알 것 같지 않은가.

    그에 지구 측 대표자 세 사람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진실과 거짓이 바로 구분 가능하며 현재 기분과 몸 상태를 알 수 있죠. 예를 들면 중국 주석께선 불쾌감을 느끼고 계시고, 미국 대통령과 사무총장께선 혼란스러워하시는군요.”

    그 정도는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지만, 그녀의 물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미국 대통령께선 만성 위염을 갖고 계신 걸로 보입니다. 지금 꽤나 통증이 심할 듯한데 잘 참고 계시군요.”

    “허···.”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인지 깜짝 놀라는 미국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두가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치료해드릴까요? 제 능력이면 부작용 없이 치료 가능하고 10년은 젊어지실 수 있는데.”

    내 제안에 그는 눈을 껌벅거리고는 회의장 한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비서를 바라보았다.

    비서가 꽤나 마음이 맞는 상대인 모양이다.

    그에 비서는 고개를 저었지만, 대통령은 마른 침을 삼키며 답했다.

    “호, 호의를 거절해선 안 되겠죠. 부탁드리겠습니다.”

    겁은 많아 보여도 대통령답게 시류를 읽을 줄 아는 인물 같다.

    아마 그 딴에서는 이질적인 기운을 몸소 받아들이는 것이 되니, 모험이나 다름없는 대답일 것이다.

    “각하!”

    비서가 깜짝 놀라며 다가왔지만 그는 괜찮다며 손을 들었다.

    나는 씩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아르비스 대공의 마력을 사용한 부활이란 축복이 그에게 내려졌다.

    화아아악!

    순식간에 피로가 사라지고 혈액순환이 활발해지면서 얼굴색이 밝아졌다.

    뿐만 아니라 세월의 여파가 담긴 주름이 많이 펴지고 피부에 윤기가 돌면서 정말 10년은 젊어진 모습이 되었다.

    “이, 이건.”

    “저는 로이아스 대륙 최고 마법사 중 한 명입니다. 치료 마법 한 번이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으스대는 내 모습에도 대통령은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믿기지 않는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몸 상태의 변화는 외관으로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가 가장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군요. 이런 근래 컨디션은 처음입니다. 10년 전 아닌 청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보이지 않는 잔병을 많이 겪죠. 이는 곧 수명 감소로 이어지는 만큼, 몸 상태가 한번 리셋되었으니, 수명이 늘어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뭘요,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랫도리의 기능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

    그것도 덩달아 치료가 되었으니, 아마 성욕도 상당히 돌아올 것이다.

    기적을 옆에서 본 사람들은 나를 보며 하나같이 마른 침을 삼켰지만, 모르는 척 엘프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실의 눈 덕분에 제 앞에선 떠보기, 거짓말, 사실 왜곡이 통하지 않으니,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엘프 퀸은 정치인이라면 모두가 꺼릴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대였다.

    그녀의 발언에 세 사람은 곤란한 기색을 보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조금 전 테러에 저희 미국 측 요원의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쉽게도 해당 인물이 자살하면서 배후에 조사하진 못했지만, 관리소홀로 인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뭐야, 그런 거였나?

    우리가 태연하게 있자 그는 의문을 표했다.

    “솔직히 그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라서 별로 놀랍지는 않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주변 탐색을 제대로 안 했겠습니까? 당연히 내부에 협조하는 인물이 있었겠죠.”

    만약 이 공격에 미국 대통령까지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면, 전적으로 미국 측의 공격으로 생각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표적엔 미국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내부의 스파이가 있었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다.

    “그건 그렇죠.”

    내가 그것도 모르겠냐는 식으로 말하자, 그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엘프 퀸이 끼어들자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

    발뺌해도 소용없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우리가 빤히 바라보자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더니, 중국 주석과 사무총장을 바라보았다.

    그에 중국 주석은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였다.

    “모든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니, 정말 상대하기 힘들군요.”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대통령과 주석은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에 잠자코 있던 사무총장이 말했다.

    “이번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며 성명을 발표한 곳이 있습니다. 여러분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 공개를 막고 있지만, 어차피 며칠 내로 알려질 사실이기도 하죠.”

    “성명 발표요?”

    “네, 신 이슬람연방 국가라 칭하는 바르삭에서 침략자를 벌했다고 밝혔습니다.”

    딱히 벌 받은 기억은 없지만, 테러를 저지르고 범행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을 전생에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분명 제가 가진 지구 관련 자료에 IS라 불리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그런 짓을 많이 했다고 쓰여 있던 것 같네요.”

    내 말에 그와 대통령은 작게 감탄사를 토했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IS를 아시는군요? 그럼 설명이 쉽겠습니다. 그 바르삭이 바로 IS를 전신으로 한 중동 최대의 세력이거든요.”

    IS를 전신으로 한 중동 최대 세력?

    “11년 전 세계가 격변하며 지구가 팽창하고 마물이 전이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 중동과 아프리카죠. 그 혼란을 틈타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온 것이 바르삭입니다.”

    한국에 살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틈새에 끼어 있어서 잘 모르는데, 중동은 군사력이 굉장히 높은 지역이다.

    이스라엘과 터키, 이집트, 사우디, 이란 등 어느 국가도 만만히 볼 수 없다.

    지구 상에서 가장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풍기는 이 지역이 큰 피해를 입을 정도면 대체 무슨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

    더구나 이스라엘은 영국과 함께 미국 최고의 동맹국이 아닌가.

    나는 가만히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럼 그 녀석들을 치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테러집단을 내버려 둘 필요 없잖아요?”

    내 물음에 그는 곤란한 기색을 비쳤다.

    하긴 그들이라고 이유 없는 녀석들을 방치했겠는가.

    “능력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물의 위협으로 인해 머나먼 중동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리고 겨우 안정을 되찾고 인간형 마물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미국이 진심으로 정리하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어진 대통령의 말에 나도 바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땐 녀석들이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손에 넣은 상태였죠.”

    “아아.”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억압의 마왕 데이라가 조용히 물어왔다.

    “핵무기의 위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그러고 보니 엘프퀸에겐 설명했지만, 그와 로엘 제국의 황제에겐 설명을 안 했다.

    나는 간단히 말했다.

    “아마 9클래스급 마법 수준이 아닐까 싶군요. 강력한 건 드래곤 브레스 수준이고요. 지구에 그런 무기가 만발 넘게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데이라와 로엘제국의 황제가 눈을 크게 떴다.

    “바르삭이 핵무기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데요?”

    “대략 30기 정도 될 겁니다. 이스라엘의 보유량이 80기인데, 저희가 50기는 수거를 했거든요.”

    말하는 것을 보니 이스라엘은 완전히 무너진 모양이다.

    “음···.”

    30기라.

    그 정도면 문제없이 해결 가능할 것 같은데.

    “세 분께서도 위험했지만, 이 공격은 저희를 노린 거였습니다. 저희가 해결해도 될까요?”

    내 물음에 세 사람은 절대로 안 된다며 크게 손을 내저었다.

    특히 중국의 반대가 심했는데,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직 로이아스는 지구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지구의 구성원을 공격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테러리스트보다 우릴 믿을 수 없다는 뜻인가?

    “주석께서도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테러리스트를 두둔하는 거죠?”

    “당신들의 무력사용을 용인할 만큼 신용하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부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마왕 데이라는 그런 주석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째 처음 만났을 때보다 주석의 태도가 퉁명스러워졌다.

    “혹시 자신의 신변이 위험했던 게 우리 때문이라 생각하는 걸까요?”

    엘프 퀸을 향한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일본의 경우 정부는 싫지만, 국민에겐 그다지 악감정이 없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도 정부지만 왠지 그 나라 국민 자체가 별로인 느낌이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달까?

    물론 이는 나만의 생각이다.

    하지만 주석은 내가 생각하는 중국인의 표본 같다.

    덕분에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단 표정으로 대통령과 사무총장을 바라보았다.

    “자자, 저흰 다 같이 위기를 넘은 동료들이 아닙니까. 우리도 테러리스트에게 죽을 뻔한 만큼 얌전히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 일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죠.”

    방금까지 적의 핵무기 때문에 쉽게 치기 힘들다며?

    자신이 말하고도 잠깐 사이 까먹은 걸까?

    나는 한 번도 그 공격을 위협이라 생각한 적 없지만, 미국 대통령의 태도에 어깨를 으쓱이며 일단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의외로 이번 미국 대통령은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로이아스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드디어 시작된 본회의.

    가장 먼저 대통령은 로이아스 대륙을 다른 곳으로 이주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대통령께선 신을 믿으십니까?”

    뜬금없는 내 물음에 그는 얼떨떨하게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뭐, 일단 크리스천이긴 합니다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했다.

    “지구가 팽창하고 전이와 함께 능력자들이 생긴 이유는 저희 로이아스 때문이 아닌, 바로 지구가 포함된 이 우주의 신께서 그리 만든 겁니다.”

    “······.”

    안다. 그들 입장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거.

    하지만 예전에 비해 이상한 현상이 많이 발생하는 만큼 무조건 신의 존재를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 지구에 발생한 일들은 저희들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에 지속적인 전이도 불가능하고 행성을 이리 사정 좋게 팽창시킬 수 없죠. 이런 건 신이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대륙을 통째로 이주할 능력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주석은 현재 지구에 일어나는 사태의 범인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국 대통령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눈치를 줬지만, 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것도 저희의 신, 가이아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더불어 가이아님과 이쪽 세계의 신 사이에 모종의 협의가 오갔고 그에 대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인 거죠.”

    뜬금없는 신 이야기에 그들은 미간을 찡그리며 듣다가 물었다.

    “아르비스 대표께선 신이란 존재를 만나 보셨습니까?”

    나는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지막에 딱 한 번뿐이지만 뵐 수 있었죠. 그리고 제 부인 중엔 그 신을 받들던 성녀도 있습니다.”

    “그 말은 세상의 이주는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란 뜻이군요.”

    “그렇게 되죠.”

    조금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핵심은 찰떡같이 전달되었다.

    그들이 신에 대한 이야기를 안 믿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불가능하단 뜻이니.

    “이미 지금의 상황을 갖고 왈가왈부해도 소용없습니다.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 최선이죠.”

    어차피 빼도 박도 못하니, 우릴 인정하라는 말이었다.

    교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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