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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33화 (13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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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전체를 뒤덮은 이상 발광현상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 엄청난 마력수치.

    대한민국 대통령 박상호는 위성사진을 보며 말을 잃었다.

    “이걸 마법진으로 봐야 하나?”

    마법.

    지구에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논할 가치도 없는 가상의 설정이지만, 지금은 상상 속의 판타지라고만 볼 수 없다.

    전이되어 오는 마물 중엔 분명 마법형 몬스터도 있고, 이능을 사용하는 헌터 중에 마법진 같은 이펙트를 발현하는 능력도 적지 않았으니.

    현재 하와이를 비롯해 태평양에 위치한 섬에서 사람들을 피난시키고 있으며, UN과 미국에선 해당 영역의 접근을 막고 있다.

    10년 전 바다의 팽창으로 태평양은 지구의 전 대륙 면적을 합친 것보다 4배는 더 큰 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법진이 그 드넓은 태평양의 중심 대부분을 뒤덮고 있다는 것.

    덕분에 세계는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재앙의 전조라거나, 신의 재래라느니 자신들이 생각을 마구 떠들어댔다.

    확실히 태평양에 문제가 생기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지만,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비관적인 이야기만 쏟아내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각하, 유럽이나 아프리카로 상황실을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보고 도망치라는 건가?”

    이미 이상이 발생한 순간 한국을 빠져나갈 사람들은 전부 빠져나갔다.

    타이밍 좋게 중동 순방을 떠나는 정치인들과 소소한 유럽 경제 모임에 직접 참석하러 가는 재벌들.

    정부의 비상 대책위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고위 인사들은 모두 도망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망이 아니라 보다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지도부는 이미 상황실을 유럽과 중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고민조차 없었는지 굉장히 신속했다.

    이는 사전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속도.

    몬스터가 등장하는 이 시대에 나라에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놓은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 국민 입장에선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지지도가 바닥을 치는데, 한국을 떠나는 순간 내 정치 인생 끝난다. 여긴 자리를 지켜야 돼.”

    3년 전 서울에 나타났던 S급 마물 백의로 인해 그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미흡한 대처로 서울 시민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대화가 통하는 존재였건만 무작정 공격하는 바람에 사태를 키웠다며 극딜을 당했다.

    다행히 상대가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S급 마물이 날뛰었다면 피해는 전국으로 확산됐을 것이다.

    결국은 큰 피해 없이 사태가 끝났건만, 야당에선 이 건수를 놓칠 리가 없고, 그로 인해 광화문에 각종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그의 지지도는 꾸준히 떨어져 30% 중반을 기록하고 있었다.

    3년이 지나서까지 그 사태는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는데, 여기서 주변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꽁무니 빼고 도망친다면 지지도는 한없이 0%에 가까워질 것이 뻔했다.

    저게 대한민국을 위협할 정도의 문제라면 어차피 정치 인생 따윈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만약 큰 문제 없이 해결된다면 자신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론에 잘 휩쓸리긴 하지만, 적어도 위기상황에서 자신들의 곁을 지킨 인물을 잊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대, 대통령이라면 응당 국민들과 위기를 함께해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크게 떨렸다.

    “하지만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비서실장의 외침에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짚었다.

    “이미 되돌린 순 없네.”

    “······.”

    비서실장의 태도는 누가 봐도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부하들까지 위기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대통령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야속하단 반응을 보였으나, 그의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전략 기동함대에서 따로 들어온 보고 없나?”

    전략 기동함대는 3개는 기동전단으로 이뤄진 대한민국의 주력 함대다.

    이지스함 6척과 미니 이지스 구축함 3척, 이순신급 구축함 6척, 한국형 핵잠수함 2척, 디젤 잠수함 9척을 주요 전력으로 보유하고 있다.

    물론 다수의 신형 호위함도 있지만, 이번 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 전력 기동함대는 만약을 대비해 미해군 7함대, 일본 88함대, 중국 남해함대 등과 함께 필리핀해 태평양의 경계에 배치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함대가 협력하는 모습은 마물이 들끓는 시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아직 특별한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대통령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상황을 살폈는데, 세계 곳곳에서 폭동이 발생했다는 기사와 함께, 고위층의 탈출로 한국 국민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SNS엔 뻥튀기 가격에 비행기 티켓을 구한다는 내용과 물건 사재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잇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출근을 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있었으며, 피난 준비를 했다.

    태평양에서 발생한 발광현상에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경제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췄다고 볼 수 있겠다.

    “아직 회견장에 기자들이 남아있나?”

    “네, 그렇습니다.”

    이런 거 보면 기자란 족속들도 참 대단한 것 같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상황에선 할 게 지지도 올리는 일밖에 없군.”

    대통령은 상황실을 벗어나 회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많은 기자들 앞에서 마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처럼 감정에 호소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전 세계 모두가 힘든 만큼, 한민족의 성숙함을 보여주자고 말이다.

    덤으로 은근슬쩍 자신은 국민과 나라에 남은 반면 여러 핑계를 대며 해외로 떠난 정적들을 디스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카메라 앞에서 떠들었을까.

    “각하! 태평양에 이상이!”

    “아, 알겠네. 국민 여러분. 태평양에 이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사전에 고지받은 안전 지역으로 피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한마디까지 잊지 않는 대통령은 정말 뼛속까지 정치인이었다.

    상황실로 돌아오니,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투명했던 푸른 빛이 점차 짙어지기 시작한 태평양의 모습이었다.

    더불어 마법진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 징조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마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전해온 바에 의하면 현재 측정된 MP 값이 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

    전이를 통해 몬스터가 등장할 때 마력이 주변으로 방출된다.

    그래서 등장 시 측정되는 MP값으로 몬스터의 등급을 대략 유추할 수가 있다.

    보통 5급의 몬스터는 100이하, 3급이 1천, 1급이 1만 정도인데, 이건 완전히 급이 달랐다.

    국내에선 최대로 측정 가능한 마력수치가 100만임을 생각하면 예상조차 해본 적 없는 수치란 뜻이다.

    미국에서 MP 값이 1억까지 측정되는 장비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또 비싼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여긴 입장에선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가 1억이란 뜻이지 정확한 수치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냥 도망칠 걸 그랬나.”

    순간적으로 나온 속마음.

    그에 비서실장을 비롯한 부하들이 대통령을 째려보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그런데 그때.

    “가, 각하, 태평양의 섬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하와이가 미대륙으로 이동하고 있고, 마샬군도와 웨이크섬 등은 필리핀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뭐?”

    “어, 어? 호주를 비롯한 주변 섬들도 조금씩 인도양으로 이동을···.”

    마치 태평양을 청소하듯 주변의 섬들이 모두 해당 영역 밖으로 밀린 것이다.

    심지어 태평양이 더욱 넓어지면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이 멀어졌다.

    완전히 비어버린 태평양.

    “각하!”

    “알아, 나도 보고 있으니.”

    그리고 태평양을 뒤덮은 푸른빛이 한데 뭉쳐지며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그 형태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연상시켰다.

    상황실은 순식간에 침묵에 물들고.

    얼마 안 가 푸른빛의 형상에 다양한 색상이 입혀지며 거대한 대륙이 3D프린팅 처럼 차근차근 태평양 위로 생성되었다.

    “맙소사.”

    다행히 재난이나 지구 종말과 같은 상황이 닥치지는 않았으니 대통령의 도박은 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국제 정치의 판도가 복잡해지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대륙이 완전한 형태가 갖춰지고, 말도 안 되는 거대함에 지구의 주인이 바뀐 것만 같았다.

    신대륙의 면적이 6개 대륙을 합친 것보다 큰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위성탐색! 신대륙에 뭐가 있는지 봐봐!”

    “아, 알겠습니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각국의 정상들도 자국의 위성카메라를 최대로 확대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거대한 대륙이 막아선 것은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주인 없는 땅이 반겨 준다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붕괴로 대한민국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영토는 비좁았으니 말이다.

    “해당 대륙에서 대기권을 향해 수천 개의 인공 물체가 쏘아졌습니다.”

    인공 물체 수천 개가 대기권을 향해 쏘아졌다?

    그 말은 신대륙이 주인 없는 빈 땅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대통령은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탄도 미사일인가?”

    “그런 것 같진 않은···. 아, 놓쳤습니다.”

    “벌써?”

    하지만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지구인 여러분.]

    신대륙 곳곳에서 홀로그램처럼 영어와 한글이 섞인 문구가 떠오른 것이다.

    영어야 세계 공통언어나 다름없으니 이해는 되지만, 어째서 영어와 함께 다른 언어도 아닌 한글이 튀어나온 걸까?

    [저흰 다른 세계에서 지구로 이주해온 로이아스 대륙의 주민입니다.]

    “로이아스 대륙?”

    그것이 저 신대륙의 이름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로이아스 대륙 소속원들은 지구인들과의 마찰을 원치 않으며 평화를 위한 대화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건 지구의 원 구성인으로서 침략이라고 밖에 생각 수 없는 상황이었다.

    [1분 후, 로이아스 대륙의 이주 책임자의 영상을 송출토록 하겠습니다.]

    물론 당장 ‘침략자와 싸우자!’ 같은 반응이 나오진 않겠지만, 여러모로 혼란이 예고되었다.

    “아이고 머리야.”

    대통령이 머리를 감싸자 비서실장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략 기동함대가 현장에서 보내오는 영상이 오디오와 함께 출력되었다.

    [반갑습니다. 지구인 여러분 저는 로이아스 대륙의 이주 책임자인 연방 제국의 의장,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대공이라 합니다.]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금발 청안의 백인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째 익숙하다.

    “아!”

    상황실 한구석에 잠자코 있던 마물 대책본부의 본부장이 크게 소리쳤다.

    “백의입니다! 3년 전에 서울에 나타났던 S급 마물!”

    그에 대통령은 눈을 크게 뜨며 화면을 바라보았고, 그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정치생활에서 두고두고 자신의 발목을 잡게 만든 원인 제공자인데, 어찌 잊겠는가.

    [우선 사전 상의 없이 불쑥 이주하게 되어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희가 살던 세계가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통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영상 속 청년은 구구절절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했지만, 워낙 믿기 힘든 내용이어서 공감이 되질 않았다.

    해당 영상 어떻게 촬영했는지 일본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일반에 공개가 되었다.

    세계 종말이다 뭐다 해서 시끄럽던 상황은 지구 외 지적 생명체의 등장으로 발칵 뒤집혔다.

    *

    UN 뉴욕 본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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