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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왕은 말을 잃었다.
적들을 처지하는 게 쉬웠으면 이렇게 고생하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상대하기 꺼려지는 마왕이 누굽니까?”
“폭력의 마왕입니다. 모든 마왕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가장 강한 녀석이었죠. 다만 상대적으로 정신 공격에 능한 셀레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덕분에 지금의 상황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럼 제가 폭력의 마왕을 상대하죠. 두 분께서 기만의 마왕을 상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루이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강력하지만, 과연 인간이 폭력의 마왕을 해치울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바로 문제가 되는 적들을 해치우고 중간계로 넘어가도록 하죠.”
데이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루이스가 폭력의 마왕을 이기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
어느 정도 상대를 묶어 두기만 하면 기만의 마왕은 충분히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볼까요?”
루이스가 싱긋 웃음을 흘리자, 데이라는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그리고 데이라의 시선이 향하자 셀레나는 긴장감을 떨치며 다가왔다.
“폐하!”
“다녀오지.”
“부디 몸조심하시길.”
부하들도 이번 싸움이 마계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응원했다.
이어서 세 사람의 모습은 마왕성에서 사라졌다.
***
데이라의 텔레포트로 풍경이 바뀌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폐허나 다름없는 작은 도시였다.
“저곳입니까?”
“네, 적대 마왕들이 주요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마왕과의 전투에서 이기면 적군은 어떻게 되죠?”
“모두 죽입니다. 마족들은 절대 적대 마왕을 따르지 않거든요. 회유 자체가 불가능하죠.”
“살벌하군요.”
“그게 가장 깔끔합니다.”
“그럼 그동안 처리한 마왕들의 부하도 모두 죽이셨습니까?”
듣기론 기습으로 처리한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애석하게도 모두 처리하지 못했죠. 그래서 저희에게 죽은 마왕들의 부하 중 상당수가 저쪽에 붙어있습니다.”
확실히 이들의 상황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마왕들의 힘이면 힘, 세력이면 세력 여러모로 밀렸을 테니.
지금까지 이정도로 버틴 것만 해도 상을 줘야 할 판이다.
“아마 저희의 존재를 알아챘을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당장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내가 끼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어차피 처리될 마족들. 봐주지 않고 제거토록 하겠습니다.”
“네?”
의문을 표하는 두 마왕에게 양손을 펼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리고 그 양손을 맞잡으며 힘을 주자, 눈 앞에 펼쳐진 도시 전체가 일그러지더니, 압축되기 시작했다.
“허···.”
헛바람을 삼키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걸로 한 번에 정리가 됐으면 좋겠네요.”
마치 도려낸 것처럼 깔끔하게 구멍이 생긴 땅덩어리.
그 중심에 구슬이 된 검은 공간이 서서히 크기를 줄여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구슬이 깨지면서 두 사내가 날아올랐다.
“역시 이걸로 정리되길 바라는 건 마왕을 무시하는 거겠죠?”
“······.”
그런데 마왕은 처리하지 못 했어도, 그 밑의 부하들은 대부분 정리가 된 것 같다.
구슬에서 빠져나온 부하들은 열 명을 넘지 않았으니.
아마도 최상급 마족 외엔 몰살을 당한 모양이다.
점점 살인에 무감각해진 나라도 이렇게 간단하게 많은 생명을 앗은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아무런 죄의식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상대가 적대 진영의 마족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이젠 내 사고가 평범한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게 아닐까 싶다.
“뭐하는 녀석이냐!”
마왕으로 보이는 두 사내 중 한 명은 딱 봐도 다혈질로 보이는 근육 덩치였고, 나머지 한 명은 호리호리한 잘생긴 사내였다.
“외모대로라면 떡대가 폭력의 마왕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 반대입니다.”
“겉모습에 속을 뻔했군요.”
과연 괜히 기만의 마왕이 아니다.
외모자체가 기만이었으니.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나?”
폭력의 마왕이 차갑게 묻자, 데이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길게 대화할 것 없이 바로 가죠.”
짧은 시간에 내 성향을 파악한 걸까?
그의 제안에 나는 폭력의 마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뒤로 튕겨져 나간 상대를 향해 날아가며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그에 두 사람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떡대가 성을 내며 보이지 않는 공격을 내게 날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쇄도해 왔으나, 나는 그것을 가볍게 피하고는 레이피어를 뽑아 드는 폭력의 마왕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하!”
짧은 기합성은 음파가 되어 대기를 흔들었다.
전신을 압박하는 공격에 녀석은 레이피어를 크게 휘두르며 음파를 양분해 버렸다.
그러나 음파 공격 후, 그에게 날아든 것은 유도 미사일처럼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작은 태양 십여 개였다.
“귀찮은 스타일이군!”
녀석은 피하는 것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9클래스 마법인 뉴클리어 익스플로전 하나하나를 검기를 날려 막아냈다.
콰콰콰콰쾅!
조금 전의 폭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지각이 불안전한 상태인지, 마지막 대륙에 지진이 발생했다.
우린 하늘을 날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미친 듯이 요동치는 대륙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붕괴되어 사라지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밀려왔다.
“터프하군.”
하나하나가 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는 폭발이다.
하지만 폭력의 마왕은 말끔하게 그것을 뚫고 나오며 레이피어를 찔러왔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찌르기.
그러나 검격 속에 담긴 기운은 소드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완 비교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력한 공격인들 정직하게 직선으로 뻗어 오는 검격에 당하면 스승님께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나는 상대의 공격을 공격으로 맞받아쳤다.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것 같은 검격을 향해 관통을 위해 만들어진 마력 스피어를 날렸다.
전신주 크기의 붉은 마력 덩어리 셋이 레일건처럼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 적의 공격을 상쇄했다.
곧바로 마왕의 검이 공간을 뛰어넘어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가볍게 손등으로 쳐냈다.
이어서 투명한 칼날이 맹렬히 회전하는 거대한 쉴드를 만들어 마왕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카카카카칵!
“큭!”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에 기겁하며 검을 휘두르던 녀석은 급히 공간도약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나는 마왕이 만든 공간의 길을 무너뜨렸다.
내 방해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게 된 마왕은 바쁘게 검을 휘두르며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렸다.
검 하나를 들고 싸우는 모습이 마왕이란 칭호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정갈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였고 공간을 뛰어넘는 위력은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묘기였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냐.”
그의 물음에서 짙은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중간계에서 온 인간입니다.”
내 대답에 그는 불신하며 성을 냈다.
“개소리를!”
그리고 폭력의 마왕은 처음으로 특수한 능력을 사용했다.
그의 등 뒤로 검은색의 마력이 날개 형태로 솟아나더니, 수백, 수천 개의 깃털로 분리되어 플라잉 소드처럼 날아들었다.
카카카캉!
내가 두르고 있는 칼날 쉴드와 녀석의 공격이 부딪히며 요란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별것 아닌 공격처럼 보이지만, 깃털 하나하나에 담긴 기운은 샤를로트 공작의 플라잉 소드를 가볍게 상회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왕의 레이피어에 검붉은 기운이 압축되어 중첩, 또 중첩되기 시작하는데, 섬뜩하리만큼 무시무시한 힘이 한데 모였다.
나는 얼굴을 굳히며 여유로움을 지웠다.
“뒈져라!”
아무래도 날개 공격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 끌기가 아니었나 싶다.
거대한 대륙이라도 속수무책으로 두 쪽이 날 것 같은 막강한 공격.
나는 그것이 폭력의 마왕이 지닌 최고의 공격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녀석의 깃털 공격과 내가 만든 보이지 않는 칼날까지, 모든 것을 분쇄하며 날아드는 한점 공격.
쇄에에에엑!
마치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와중에 적의 그 공격만이 본래의 속도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검붉은 기운의 끝이 반짝인다 싶은 순간.
직선 상의 모든 것을 꿰뚫고, 내 가슴까지 관통했다.
나를 관통한 기운은 삭막한 하늘을 장식하는 단 하나의 별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뭐하는 녀석인진 모르겠지만, 내게 이런 위기감을 심어준 것은 근래 들어 네놈이 처음이다.”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나 잘난 듯이 혀를 찬 폭력의 마왕이 레이피어를 수습하며 고개를 돌렸다.
“······.”
그와 마주친 나는 눈을 껌뻑이다가 씩 웃어 보였다.
“무슨?”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한 순간.
내 신체는 붉은색의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온전한 모습으로 녀석의 눈앞에 나타났다.
“컥!”
그대로 마왕의 목을 움켜쥐고 부러뜨릴 심산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곤 해도 피륙으로 이뤄진 몸은 약점이다.
“신기한 공격이네. 그런데 나도 아무 준비 없이 모르는 상대와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빠각!
녀석의 목이 기이하게 꺾였다.
“끄악!”
하지만 마왕 정도 되면 목이 꺾였다고 죽진 않는지,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하면서 검을 휘둘러 내 팔을 갈라버렸다.
마왕은 재빨리 목을 치료했고, 나 또한 떨어져 나간 팔이 가루가 되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대, 대체 네 녀석은 뭐냐?”
녀석은 완전히 질린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인간이라니까.”
“인간이 그딴 게 가능할 리 없잖나!”
악을 지르며 검을 휘둘러온 녀석의 칼날은 자비 없이 내 몸을 난도질했다.
“이제 그만 끝내지.”
여지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 나는 안개처럼 녀석을 둘러쌌다.
“이이익!”
그에 미친 듯이 허공에 칼을 휘두르던 녀석이 손끝에서부터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기 시작했고, 마왕의 몸은 지우개로 지워지는 것처럼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마, 말도 안 되는.”
그것이 마왕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폭력의 마왕이 내뱉은 유언이었다.
몸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속으론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녀석의 궁극기는 꽤나 위험했다.
겉모습은 어느 만화처럼 신체를 양자화하고 다시 형태를 재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멋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리치나 드래곤처럼 주요 핵을 따로 분리하여 혼돈의 공간으로 피난을 시키고 신체를 계속 수복한 것에 지나지 않다.
마력도 엄청나게 잡아먹어서, 순식간에 절반이나 사라진 상황.
그래도 원인을 모르는 입장에선 내 전투가 꽤나 충격적인지, 신나게 치고받던 3명의 마왕이 손을 내려놓은 채 말을 잃었다.
폭력의 마왕이 어이없게 패하면서 전의를 상실한 기만의 마왕은 안색이 새까맣게 죽었다.
나는 굳어 버린 기만의 마왕을 구속하며 데이라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녀석은 뒤늦게 도망치려 했지만, 데이라가 재빨리 검을 휘둘러 기만의 마왕을 처치했다.
이어서 데이라와 셀레나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쉬고 계시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더없이 공손했다.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 내 존재감을 확실히 두 마왕에게 각인시켰으니, 마족들의 말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모두 제거했으니, 차원이동 준비에 전념하면 될 것 같다.
준비 완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