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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29화 (12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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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이제 앞으로 못 만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양팔을 벌리며 자기도 잘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다.

    “그건 가이아 여신만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이 이상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끝이라 생각하는 편이 타당할 거다.”

    “낭비라니···.”

    “낭비가 아니면 뭐겠냐. 내가 너의 능력치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이상은 신의 영역이지.”

    힘을 얻은 것은 좋지만, 처음으로 생긴 스승을 못 만나게 된다는 것은 씁쓸하다.

    그는 마도 황제란 칭호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격 없고, 가벼운 사람이지만 진심으로 따를만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죽은 나보다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더는 중간계의 상황을 가볍게 볼 수 없잖아.”

    그의 말대로 중간계에도 눈에 띄게 이상이 생기고 있다.

    그래도 아직 베이스 플래닛은 그럭저럭 유지 되고 있지만, 밤하늘의 풍경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정령계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정령들이 조금씩 로이아스로 이주하고 있다.

    중간계는 정령계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주한 정령들은 힘이 많이 약해진다.

    그나마 계약자를 가진 정령들은 본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자연 상태의 하급 정령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할 정도였다.

    듣기론 정령왕이 로이아스로 넘어오게 되면 하락한 능력치가 어느 정도 회복된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이전과 같긴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정신체인 정령에게 생사를 따지는 것이 애매한지만, 소멸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삶의 끝이었으니 말이다.

    의외인 것은 곧 끝날 거라 생각한 마계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

    태양도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이블 플래닛도 마왕들에 의해 하이랜드보다 작은 단 한 개의 대륙만이 가까스로 유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 끝이 얼마 안 남은 상태.

    내 힘을 가장 먼저 써야 할 곳은 아마도 마계가 될 것 같다.

    지금 동맹을 맺은 마왕들이 남은 마왕들을 억누르고 있는 상태인데, 그것도 한계인 것 같았으니.

    “시간이 다 됐군.”

    마도 황제 칼바트 케이아스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세상에 혀를 차며 악수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손을 강하게 잡았고, 그는 인생의 선배로서 말했다.

    “앞으로 너 같은 존재는 더 이상 탄생하지 않겠지. 너는 내 최고의 걸작이다. 자긍심을 갖고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검은색의 공간이 드러난 천정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듯 말했다.

    “한 번쯤은 다시 보고 싶은데, 시간 좀 만들지?”

    “네?”

    “아니다.”

    쓴 미소를 지은 마도 황제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어서 꿈속의 세상은 검게 물들었다.

    ***

    비로소 루이스의 9클래스가 완성되고, 제자의 꿈속에서 튕겨 나온 칼바트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의 공간 속에 홀로 존재감을 드러낸 작은 오두막집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뭐지?”

    마치 9클래스의 스페이스 오브 카오스의 공간을 보는 듯하다.

    울타리 없는 20평 정도의 작은 땅덩어리 위로 외롭게 솟아 있는 나무 한 그루가 10평 남짓한 오두막집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그때 오두막집의 문이 열리고 6~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은발의 작은 소녀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야, 케이.”

    ‘케이’란 호칭.

    자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단 둘뿐이다.

    방금 헤어진 제자 녀석과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존재뿐.

    그에 눈을 크게 뜬 칼바트가 당황하며 물었다.

    “너 설마, 가이아인 거냐?”

    칼바트의 물음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두막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하, 못 본 사이 꽤나 귀여워졌군.”

    칼바트는 오두막 입구에 서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가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는 너는 여전히 무례하군.”

    “무례하지 않으면 여신의 남자친구 역할은 어떻게 소화해냈겠나.”

    “그건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너를 이렇게 마주한 것도 변덕이라 할 수 있지.”

    “튕기긴, 결국 나를 잊지 못했던 것 아닌가.”

    “여전히 착각이 심한 남자군.”

    소녀의 모습을 한 가이아의 안내에 조촐한 나무 식탁에 앉은 그는 그녀가 내오는 차를 내려보며 표정을 굳혔다.

    “많이 약해졌군. 더 이상 창조주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야.”

    “그래, 거의 모든 힘을 시스템 유지에 쏟아부은 상태다. 나도 곧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겠지.”

    모든 것을 해탈한 듯한 그녀의 반응에 칼바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역시 나를 막았으면 안 됐어. 그럼 너는 어느 정도 힘을 보전한 채 지구에서 내 여자로 사는 거였는데.”

    그의 말에 여신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자신이 왜 제거를 당했는지 잊은 모양이군.”

    “하여간 꼰대 기질만 있어서.”

    “지구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너는 나만 챙기려 했다. 창조주로서 자식들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네가 내 뜻대로 따라줬으면 훨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를 희생시키는 계획에 따를 리가 있나. 나는 이기주의자라서 더 많은 생명보단 내 것이 중요하거든.”

    “잘났군.”

    칼바트는 차를 들이켜며 만족했다.

    “오랜만이군, 이 차.”

    가이아는 말없이 비어 있는 그의 잔에 더 차를 따랐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한참 후 칼바트가 물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고 싶나?”

    “뭐?”

    “너에게 앞으로 세 번 더 루이스의 꿈에 간섭할 힘을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 세 번의 힘을 아끼면 종말의 날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지. 결국 선택은 네 몫이다.”

    예상 밖의 선택지.

    칼바트는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당연한 걸 묻는군.”

    “그런가.”

    그는 그대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가이아 여신의 손을 잡았다.

    ***

    “루이스 자네···.”

    3일 만에 얼굴을 마주한 테라시아는 나를 보자마자 이상을 알아채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제야 어디 가서도 맞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아요.”

    “그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네만?”

    “테라시아님이 몰라서 그렇지, 저 엄청 맞았습니다.”

    테라시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내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드래곤이란 종족이 우스워지는군.”

    “드래곤이 진짜 사기죠. 나이만 먹으면 강해지잖아요.”

    “글쎄. 강해져 봤자 일 것 같은데.”

    허탈하단 반응의 테라시아.

    무뚝뚝한 그녀의 반응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실실거리다가, 더 이상 꿈속에 등장하지 않는 스승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왜 그러나?”

    “아니에요. 씁쓸한 기억이 떠올라서.”

    갑자기 분위기가 다운되자 테라시아는 큰 눈을 껌벅이곤 화제를 돌렸다.

    “마그누스가 자넬 보고 엄청나게 놀랐겠구만.”

    “하하, 어울리지 않게 기죽은 표정을 지어서 크라켄 사냥 팀으로 보내버렸어요.”

    “그렇군.”

    고개를 흔들며 씁쓸한 기분을 떨쳐낸 나는 그녀와 함께 연방제국의 수도 세이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로 향하며 말했다.

    “잠시 마계 좀 다녀올게요.”

    “억압과 색욕을 데려올 생각인가?”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그리고 이젠 그 둘이 문제를 일으켜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으니 상관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중간계의 조율자란 타이틀은 넘겨야겠군.”

    우리의 발밑으로 아르비스 공작령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세이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갈 생각이지?”

    “카르엘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요. 아마 오늘 중으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마계의 상황은 우리 측의 두 마왕이 상대측의 마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상태다.

    만약 그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마왕들을 막지 않았으면, 우리 몰래 중간계 어디선가 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

    억압의 마왕과 색욕의 마왕의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처럼 다른 마왕들이 손을 잡기 전에 재빨리 상대적으로 약한 마왕 하나를 더 제거함으로써 2:2의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남아있는 마왕들이 전투에 능한 녀석들이라 한다.

    정신 공격에 특화된 색욕의 마왕이 끼어 있는 쪽이 전력상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억압과 색욕은 오래전부터 중간계로의 진입을 원했지만, 그랬다간 자칫 중간계가 마왕들의 싸움터가 될 수도 있으니 막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와 함께 차원의 미궁을 관리하는 최상급 마족 카르엘이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지원을 가겠다고 나서니, 카르엘은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게이트를 준비했다.

    “로이아스 대륙은 내게 맡겨 주게나.”

    “잘 부탁드립니다.”

    이젠 완전히 동료로서 교감하는 테라시아.

    든든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기분 좋게 활기로 가득한 세이로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제 마계의 일만 해결하면 끝입니다.”

    “꽤나 바쁜 4년이었군.”

    ***

    마계, 이블 플래닛.

    마치 접시 위에 물을 얹어 놓은 것 평평한 바다 위로 떠 있는 단 한 개의 대륙.

    암흑의 공간 속에 기이하게 존재하는 대륙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허무의 공간에선 몇 년째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중간계를 침공하려는 ‘폭력’, ‘기만’의 마왕과 그들을 방해하는 ‘억압’, ‘색욕’의 마왕 간의 힘 싸움이 진행되어왔다.

    “인간 하나가 지원을 온다고 뭔가 변하겠어?”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색욕의 마왕 셀레나를 억압의 마왕 데이라가 진정시키며 말했다.

    “무슨 수가 있겠지. 아르비스는 중간계 최고 인사야. 그런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지원을 오겠다며 나설 이유는 없으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데이라 또한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중간계는 대륙 이동을 대비해 군사력을 급격히 확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엔 고위 마족이라 해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기술들의 존재에 크게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마왕이 생각하는 중간계의 전력은 자신들보다 한 단계 밑.

    아무리 높은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마왕이란 압도적인 존재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중간계에서 한바탕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이아스 대륙에 국한된 이야기지, 차원 이동 후 마주할 드넓은 세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영토를 원했다.

    중간계와의 협력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초석에 지나지 않았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곤 해도 그들은 어차피 마왕이었으니.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

    하지만 그것도 무사히 차원 이동을 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 두 마왕은 중간계나 다른 세계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팟!

    셀레나와 데이라는 반파된 마왕성에서 중간계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예정대로 게이트가 열렸는데, 그것이 중간계와 연결된 게이트란 생각에 당장에라도 넘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밀려왔다.

    비록 중간계의 드래곤과 꽤나 복잡한 계약을 나눈 상태인지라 상대방의 동의 없이 넘어갈 순 없지만.

    그런데 그때.

    게이트 안쪽에서 소름 끼치도록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에 기겁한 두 마왕은 뒤로 몸을 날렸고, 동시에 잘생긴 청년이 게이트에서 걸어 나왔다.

    “반갑습니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이군요.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대공입니다.”

    “다, 당신이 아르비스?”

    색욕의 마왕이 붉은 눈동자를 고양이처럼 가늘게 만들며 묻자, 루이스는 가볍게 답했다.

    “네, 색욕의 마왕 셀레나 님이시죠? 옆에 계신 분이 부군인 억압의 마왕 데이라 님이시고요. 동맹인 두 분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루이스의 말에 비로소 경계심을 푼 두 마왕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계의 전력이 자신들 보다 아래라는 생각을 철회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바로 눈앞에 등장한 청년 한 명으로 인해서.

    “경계해서 죄송합니다. 아르비스 대공의 힘이 상상 이상이어서.”

    “그렇군요. 저도 최근에야 이 힘을 갖출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가장 먼저 두 분을 위해 나서기로 했습니다.”

    “든든하군요.”

    데이라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바로 움직이죠.”

    “네?”

    “시간을 끌 필요 있습니까? 어서 마계를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셔야죠. 바로 방해가 되는 마왕들을 제거하죠.”

    준비 완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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