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28화 (12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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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루시엘라의 결혼식은 오랫동안 회자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루시엘라는 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귀부인들은 당시를 생각하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영지민의 결혼 문화에 변화를 주었는데, 우리가 입었던 복장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입었던 복장은 마드세인의 귀족들이 결혼식에서 입은 복장과 많이 달랐다.

    롱부츠 안에 짧은 바지를 말아 넣은 2차 세계대전의 당시 유럽군 장군의 군복과 비슷했다.

    다만 군복과 다른 점이라면 복장 자체가 화려하고 밝은 색상이란 것과 코트 대신 비대칭의 망토를 걸치고 있단 점이다.

    또한 브로치와 어깨 체인 등 금속 악세서리를 많이 착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루시엘라의 경우 오픈숄더 드레스에 면사포와 앙증맞은 화관 형태의 티아라를 썼는데, 보석을 제외하곤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했다.

    말 그대로 순백의 신부.

    마드세인에선 결혼식이라고 딱히 하얀색 복장을 갖춰 입지 않기에 굉장히 특색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의 결혼식으로 인해 새하얀 드레스가 신부의 상징같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평민들의 생활이 아무리 나아졌어도 한번 하는 결혼을 위해 비싸기 그지없는 복장을 구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눈치 빠른 양복점 중에 결혼식 복장을 대여해주는 업체가 생겨나 큰 인기를 끌었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예식장 문화까지 자리 잡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사실 결혼식 전부터 나와 루시엘라는 이미 부부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방도 함께 쓴지 1년이 넘었고 연인의 사랑도 많이 나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가 생긴 것은 결혼식을 올린 직후였다.

    루시엘라의 임신으로 인해 우리의 신혼 생활은 다른 부부들처럼 성욕에 불타오르는 뜨거운 애정의 연속이 아닌 서로 보듬고 아껴주며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 되었다.

    덕분에 루시엘라와의 애정도 더욱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부하들은 그저 후계가 생겼다는 소식에 환호하기 바빴지만 말이다.

    “두 여자와 언제 결혼할 거야?”

    그것은 우리가 결혼하고 6개월이 흘러 루시엘라의 배가 임산부의 느낌을 풍기기 시작했을 때, 내게 물어온 말이다.

    “아이 태어나고?”

    태연한 내 대답에 루시엘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마. 그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나도 알고 있지만,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인을 더 받아들인다는 것이 어색해졌다.

    나는 성녀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혼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루시엘라와의 신혼 생활로 실비아, 성녀의 결혼식은 계속 뒤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루시엘라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내 올 거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마도 루시엘라에게 미안해서 그동안 미뤄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해심 넘치는 루시엘라의 이야기에 슬슬 두 사람과의 결혼을 진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인간들과의 사랑은 길어 봤자지. 그 이후로 넌 내 거야.”

    내 도움을 받으면 성녀와 실비아도 수명이 길어지고 오랜 세월 아름다움을 유지 할 수는 있겠지만,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을 일이다.

    마스터, 대마법사라 해도 수명은 100세를 넘기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실제 내 수명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고, 루시엘라는 짙은 하이엘프 피를 물려받은지라, 1500년 이상은 너끈하게 살 것이다.

    그녀 입장에선 실비아와 성녀의 존재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로 느껴질 법했다.

    그렇게 나는 루시엘라와의 결혼 7개월 만에 실비아와 결혼을 하고, 2개월 후엔 성녀와 결혼을 했다.

    1년 사이 3명의 부인을 두는 망발을 저지른 것이다.

    하나같이 권력자를 부인으로 맞이한 나를 남들은 정략혼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리 복잡한 계산이 깔린 혼인이 아니었다.

    나중에 지구로 이전하고 인천에 계신 어머니께 세 명의 신부를 데려가면 등짝 스매쉬를 맞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한국에선 부인이 세 명이나 된다는 것이 비상식이었으니.

    성녀와 결혼 3개월 후, 루시엘라와 결혼하고 1년째에 드디어 내 첫 아이가 태어났다.

    엘프는 인간보다 출생 주기가 조금 더 길었다.

    그래서 1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하하!”

    루시엘라는 아이를 출산하고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다.

    왜냐면 리저렉션 한 번에 산후조리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법이 참 편리하고 좋다.

    내 첫 아이는 루시엘라를 똑 닮은 뾰족한 귀와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한 없이 엘프에 가까운 하프엘프였다.

    외모는 인간과 차이가 크지만 내게서 눈동자 색을 물려받으며 하늘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져 왠지 물 속성이 충만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나?

    요즘 연방제에 관한 제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어서 굉장히 바빴는데, 내 손가락을 꼭 쥐는 갓난아이의 모습에 모든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이름은 그걸로 할거지?”

    루시엘라의 물음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이지 않아? 보름달이 뜬 밤에 태어난 아이. 운명으로 느껴질 정도야.”

    “그놈의 운명은.”

    요즘 따라 운명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달고 사는 나였다.

    “네 이름은 ‘루나’다. 루나 덴 아르비스.”

    나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요즘 수련을 통해 깨우친 마나의 축복을 내렸다.

    마나의 축복은 드래곤의 전유물로 알려졌지만, 지금의 나는 인간의 몸을 가진 드래곤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테라시아보다 월등한 마력을 지녔기에 효율은 꽤나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루나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실비아와 성녀도 아이를 가졌다.

    특히 실비아는 내 아이를 갖고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짠해서 미안해졌다.

    두 사람은 내 부인이기 전에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다 보니, 신경 쓸 게 많아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이타루스에서 절대 권력을 지닌 성녀와 달리 실비아는 마음고생이 심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부인들을 차별 없이 대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또 임신함.”

    그런데 성녀와 실비아가 임신하고 세 달 만에 루시엘라가 둘째를 가지면서 부하들은 내게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덕분에 나는 정력왕이란 칭호를 얻었다.

    *

    [로이아스 연방제국 결성식]

    “이게 누구야? 정력왕, 아니 아르비스 의장님이 아니신가.”

    나는 하이랜드 대표로 결성식에 참석한 엘프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 별명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대륙 모두가 아는 별명인데 듣고 말고 할 게 있나.”

    엘프퀸이 고상한 척 입을 가리고 웃자 나는 혀를 찼다.

    하이랜드는 이번에 결성될 연방제국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실버 엘프들을 하이랜드 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내실을 다졌다.

    아마 하이랜드 연합과 로이아스 연방 제국은 경쟁자이자 협력자로 대륙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 생각한다.

    로이아스 연방제국에 참여하는 국가는 총 6개국이다.

    칼바도스, 위스워드, 케일론, 마드세인, 이타루스, 아크로스까지.

    이번 연방제국 결성과 함께 마드세인, 이타루스, 아크로스까지 제국 선포를 하면서 제국끼리 결성한 연방국이 되어버렸다.

    사실 마드세인은 이미 제국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타루스까진 이해할 순 있지만, 아크로스 대왕국은 제국이라 칭하기에 여러모로 손색이 있었다.

    물론 아크로스도 충분히 강한 국가다.

    이젠 보유하고 있는 기간트도 100대가 훌쩍 넘고, 제국을 제외하곤 상대 가능한 국가가 없었으니.

    포지션이 애매하긴 하지만, 연방 내의 다른 국가들이 모두 제국인데 홀로 왕국으로 남을 수 없다는 이유에 동의하여 아크로스의 제국 칭호를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아크로스까지 어부지리로 제국이 되면서 연방 제국은 명실상부 6개 제국이 결성한 국가가 되었다.

    대륙을 아우르는 거대국가의 탄생에 로엘 제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참여를 원했지만,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엘은 거리가 먼데다가, 가입하고 싶다고 모두 받아들이면 그냥 미드랜드를 한데 묶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6명의 황제와 그 황제들을 조율하는 의장 1명.

    그것이 딱 좋은 포지션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가 대륙을 관리하기 편할 것이다.

    괜히 머리가 쓸데없이 많아지면 관리만 힘들 테니.

    당연히 의장은 예정대로 내가 되었고, 의장직은 6개 국가에서 10년씩 번갈아 가며 수행하기로 했다.

    다만 6개 국가의 황제 중 5명이 동의하면 의장은 연임이 가능하고, 5개 국가의 황제들이 탄핵을 결정하면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탄핵과 연임 제도를 제의한 것은 다름 아닌 나다.

    나는 4개국 연합을 등에 업어서 탄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연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이면 내실을 다지기 충분한 만큼 문제는 없었다.

    연방정부의 수도는 칼바도스, 위스워드, 이타루스 세 개국의 국경을 접한 세이로 지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수도다운 면모를 갖추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에, 대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르비스 공작령을 임시 수도로 지정했다.

    다만 중앙정부의 힘이 되어줄 군대는 예정대로 세이로 지역에 배치하기로 했다.

    각국에서 최신예 기간트 20대를 차출하여 총 120대의 기간트를 중앙군에서 사용하고 이후 자체 생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의장은 소속 국가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지만, 소속 국가의 황제는 그 출병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경우 중앙정부로부터 경제적 제재를 받게 됨으로 의장에게 대항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의장은 세금을 조정할 수 있고, 소속 국가 간의 마찰을 감시하며, 무력개입을 할 수 있다.

    다만 황권에는 절대 개입을 할 수가 없는데, 이것은 각국의 고유권한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군사 증강이 시작되는 건가?”

    엘프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군대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도 병기를 활용한 최신 군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미 기간트 및 전투기 개발생산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방 중앙군을 중심으로 한 전함단을 구성할 생각이다.

    “하이랜드도 예정대로 진행 중인 것 같더군요.”

    “덕분에.”

    이번에 하이랜드는 실버엘프를 끌어안으면서 더욱 강성해졌지만, 군사력만 따지고 봤을 땐, 연방제국이 조금 더 우위에 있다.

    하지만 기술력은 하이랜드가 높았는데, 그 차이는 크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군.”

    “네.”

    엘프 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게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현생의 내 나이는 스물.

    나는 명실상부 로이아스 대륙의 운영자가 되었다.

    *

    48. 준비 완료

    “성공했군.”

    이젠 집만큼이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새하얀 공간.

    나는 드래곤 하트와 융합하여 더욱 색채가 짙어진 체내의 소우주를 살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의 감각에 소우주를 유영하는 9번째 서클이 또렷하게 잡혔다.

    꿈속에서 수련을 시작하고 4년 만에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항상 까칠하게 굴던 마도 황제는 비로소 자랑스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온몸에 힘이 넘쳤다.

    드래곤 하트를 통해 9클래스 마법을 사용하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각기 따로 놀던 힘들은 모두 일체화되어 온전히 내 것이 되었으며,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용량도 규모가 달랐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 증발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가볍게 손을 젓자 눈앞에 집채만 한 태양이 떠오르고, 양팔을 벌리니 태양이 무수하게 분할되어 하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손을 움켜쥐자 태양들은 순식간에 소멸했다.

    의지의 힘도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에이션트 드래곤의 언령이 이 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

    “생각보다 더 잘 만들어졌군.”

    “이정도면 마왕도 상대할 수 있을까요?”

    “충분하다. 아무리 강한 마왕이라 해도 1:1로 너와 다툴 수 없을 거다.”

    나는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로 내 역할은 끝난 것 같군.”

    마도 황제는 흰색 공간의 천장을 올려 보며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었다.

    준비 완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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