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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뭐, 뭐냐?”
거대한 폭발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로엘 제국의 수도 상공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폭발 하나하나의 위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충격파로만 건물들이 무너져내리고 황성의 벽에 금이 갔다.
황제는 헬파이어도 이 정도의 위력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 1분에 걸친 기나긴 폭발 퍼레이드는 로엘 제국 수도의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빠트리기 충분했고, 아름답던 수도의 풍경은 대마법이 직격한 것처럼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개전을 축하하는 공연이 어떻습니까?”
언제부터 거깄었는지, 태연하게 황좌가 위치한 단상으로 올라오는 루이스를 보며 황제가 기겁했다.
“아, 아르비스 공작!”
“멈춰라!”
루이스의 난입에 마스터가 포함된 근위기사단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평소 든든하기 그지없던 근위기사단은 아르비스 공작의 손짓 한 번에 익스퍼트, 마스터할 것 없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사지가 뜯겨나갔다.
“끄아아악!”
몸통에 머리만 남아 비명을 지르는 기사들을 보며 겁에 질린 황제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단상에서 굴러떨어졌다.
“굳이 윗대가리의 뻘짓에 아랫사람들이 죽어날 필요는 없지.”
분명 팔다리가 뜯겨져 나가긴 했지만, 근위기사단 중 죽은 사람은 없었다.
루이스는 느긋하게 황좌를 차지하고 앉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에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허공에 떠오른 황제는 루이스 앞에 대령 되었다.
“왜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의 황제께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지 생각해보셨어야죠.”
“큭!”
황제를 무릎 꿇린 루이스는 느긋하게 재상에게 말했다.
“현 황제가 죽으면 국가의 전권은 누가 쥐게 됩니까?”
“다, 당연히 황태자 폐하입니다.”
그 물음에 황제는 기겁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마법으로 구속당한 그는 꿈틀대는 수준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루이스는 황제를 비웃고는 다시 재상에게 물었다.
“그 덜떨어진 황태자 말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누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게 나을 것 같습니까?”
마른침을 삼킨 재상은 슬쩍 국왕의 눈치를 살피고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꼬집으며 말했다.
“삼황자 전하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 폐하와 성향이 비슷한 현실적인 학구파죠.”
“10분 주겠습니다. 데려오세요.”
“아, 알겠습니다.”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청년의 지시에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단순히 황제가 인질로 잡혀있기 때문이 아닌, 루이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같은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들었으니.
***
나는 팔다리를 잃고 바둥대는 근위기사단을 죽이지 않고 지혈 후 기절시켰다.
앞으로 로엘 제국이 어떤 식으로 이용될지 알 수 없는데, 굳이 로이아스의 세력을 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근위기사단에는 무려 마스터가 4명이나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들의 심각한 부상은 어차피 언령 한 번이면 수복 가능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황실 대전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로엘의 대마법사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는데, 황실 최고의 전력인 근위기사단을 순식간에 정리한 덕분인지 누구도 감히 황제를 위해 나설 생각을 못 했다.
“폐하!”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충실한 신하임을 자처하는 다른 황실기사단이 떼 지어 달려왔다.
20명뿐이던 근위기사단과 달리, 100명이 넘는 황실기사단이 줄줄이 밀고 들어오자 그 기세가 사뭇 살벌했다.
하지만 그들도 오래 걸리지 않아 제압됐는데, 내 발아래서 쏘아진 붉은 가시에 핀셋으로 표본 채집된 곤충처럼 벽을 장식했다.
그로 인해 황실 대전은 곡소리로 가득 찼다.
놀라다 못해 질린 표정의 사람들은 모두 구석에 처박혀 바닥만 바라보았다.
“응?”
셋째 황자의 입장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을 하던 나는 바로 옆에 위치한 발코니 박살 내면서 날아든 철거인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기간트 전용 부유 장비를 만든 겁니까? 의외로 착실하게 연구를 했군요.”
로엘 제국의 황실 대전은 10여 대의 기간트가 뛰놀아도 될 만큼 넓었다.
현재 침입한 로엘 제국의 기간트는 총 5기.
로엘 제국의 주력 기종인 출력 24.0의 기간트였다.
익스퍼트급의 기사가 탑승하면 마스터에게도 밀리지 않을 성능이지만, 내 상대는 아니었다.
다시금 발 아래에서 뻗어 나간 붉은 마력이 주변을 휩쓸고, 기간트는 앞서 당한 근위기사단처럼 사지가 분해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황제라고 충성심 가득한 부하가 많군요.”
“아르비스 공작. 우리 이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 합세. 그, 그래. 항복! 항복하겠네. 로엘 제국은 4개국 연합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겠네.”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의 항복은 받지 않을 겁니다.”
황제가 눈물을 짜며 애원하자 나는 마력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삼황자 전하를···.”
내 지시에 삼황자를 데리러 갔던 재상이 헐레벌떡 대전에 들어서다가 난장판이 되어버린 광경에 기겁했다.
그리고 그건 재상의 뒤를 따라오던 청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벽에 달라붙어 곡소리를 내뱉는 황실기사단과 사지가 떨어져 나간 채 바닥을 피로 적시는 근위기사단.
꾸역꾸역 수은을 토해내는 기간트의 잔해는 공포심을 자극했다.
기다리던 인물이 도착하자 나는 고민 없이 손가락을 튕겼고, 무릎 꿇은 황제의 목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떨어져 나갔다.
데굴데굴 굴러간 황제의 목은 삼황자의 앞에 멈춰섰고, 고통에 일그러진 친부의 머리를 본 그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4개국 동맹은 당신을 로엘 제국의 전권대표로 인정합니다.”
황좌에서 일어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미소를 지었다.
*
로엘 제국의 황제와 슈엔다르크, 그리미아 대왕국 국왕의 사망 소식과 무조건적인 항복은 빠르게 미드랜드 전체에 퍼졌다.
“야 이 멍청아. 내가 언제 언제 왕성 날리랬어?”
내가 엉덩이를 걷어차자 마그누스는 항의하듯 말했다.
“날리면 안 된다는 말은 안 하셨잖아요.”
로엘 제국과의 전쟁에 내가 개입한 것처럼 그리이아는 마그누스가, 슈엔다르크는 엘프 퀸이 나서서 전쟁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깔끔하게 우두머리만 제거하고 항복을 받아낸 나와 엘프 퀸과 다르게 마그누스는 그리미아의 왕성 자체를 날려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타지에 나가 있던 왕태자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문제없이 종결되었지만, 산정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왕태자가 왕성에 없었기에 망정이지 같이 날려 버렸으면 상황이 복잡해질 뻔했다.
그래도 나름 좋은 경고가 돼서 더 이상 우리의 요구 사안에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끄는 국가는 없어졌지만, 그리미아 왕국에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심어준 것 아닌가 싶다.
“그래도 결과적으론 해결 됐으니 문제없지 않습니까.”
당당한 마그누스의 태도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근래 이종족들 앞에서 대우를 해줬더니, 자신의 위치를 잊은 모양이다.
“너 끝나고 벌 받을 줄 알아.”
오늘 회의 끝나고 손 좀 들고 있게 해야지, 안 되겠다.
똑똑.
“들어오세요.”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테라시아와 성녀, 엘프퀸을 포함한 멤버들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암묵적으로 정해진 각자의 자리에 앉은 우리들은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누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차원이동 준비에 대한 이야기다.
“마력 포션의 제조는 순조롭네. 현재 하루 150리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앞으로 원재료 수급이 더 원활해질 테니 생산량은 계속 늘어날 거야.”
“수은의 수집량이 상당합니다. 이대로라면 반년 안에 원하는 용량을 갖출 수 있을 것 같군요.”
“토르말린의 수집도 순조롭습니다. 드워프 탐색팀이 리모트랜드에 대규모 광산을 발견하면서 더 이른 시간에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에선 대안을 마련하겠지만, 아직까진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미드랜드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질 테니,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빨리 이 세계를 탈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차원 이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마력수집인데, 이것은 자연적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마력을 자연 수집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마력을 빠르게 충전하기 위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시간을 단축하고자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에 동맹 제안하셨죠?”
이전까지 회의 내용이 만족스럽다 보니, 자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시선을 받은 아인트 공작의 표정은 어두웠다.
“반응이 나쁘지 않네.”
두 제국의 황제가 실리주의자인 만큼 당연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표정과 대답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기간트 공동 개발을 원하고 있어.”
“네?”
말이 공동 개발이지, 그간 우리가 쌓아온 기술을 내놓으란 뜻이었다.
“동맹을 맺는다곤 하지만 국가가 통일되는 것도 아니고, 군사 기술을 날로 먹겠다는 건 황당한데요?”
그러나 이어진 아인트 공작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에 대해 칼바도스의 황제가 로엘 제국을 제외한 6개 국가의 연방제를 제안해왔네.”
“허.”
칼바도스, 위스워드, 케일론, 마드세인, 이타루스, 아크로스 6개 국가의 국토를 하나로 잇는다면 미드랜드 절반에 다다르는 거대한 땅이 된다.
로이아스 대륙의 절대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인트 공작의 대답에 4개국 동맹 소속의 모두가 놀랐다.
하물며 하이랜드 대표를 자처하는 엘프퀸과 실버엘프퀸까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4개국 동맹의 인물들도 그렇지만 이종족 입장에선 거대한 힘을 가진 인간 국가가 생기는 것은 꺼려질 테니 말이다.
당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연방제라니, 또 신기한 제안을···.”
동맹과 연방국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잔머리를 굴리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각 국가의 지위는 그대로 보장하되, 소속 국가들을 통솔하는 의장과 강력한 억지력을 지닌 연방정부를 만들자는군.”
“단기간에 떠올릴만한 생각이 아닌데요?”
“나야 모르지. 하지만 칼바도스 제국의 제안에 위스워드도 동의하고 있어. 더불어 의장으로 자네를 지목했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아인트 공작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이런식으로 되돌아올 거라 예측을 못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나는 4개국 동맹의 의장역을 수행하고 있는데, 칼바도스 황제가 제안한 연방 국가의 의장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쉽게 대답하지 못한 나는 실비아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의장과 중앙정부의 힘을 크게 키워야겠죠.”
“저도 괜찮은 것 같네요. 동맹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실비아에 이어 성녀가 동의를 했지만, 케일론과 아크로스의 대표들은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죠. 하지만 연방국가 참가에 대해선 황제폐하께 의견을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도 전권을 지니고 있다곤 하지만, 이것까진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군요. 우선 국왕폐하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국왕인 실비아, 성녀와 달리 그들은 전권 대사지만 실제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이 아니다 보니, 직접 결정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군요. 바로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케일론과 아크로스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군.”
엘프퀸의 이야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만약 연방제를 진행하게 되면 하이랜드와 실버엘븐도 참가하실래요?”
“무슨 농담을.”
엘프퀸은 내 제안을 염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거부했다.
“자네 정도의 인물이라면 인정하겠지만, 어쭙잖은 인간이 의장이라며 위에서 깝죽대면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인트 공작에게 말했다.
“일단 연방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네.”
“결국 자네도 대륙 최대 국가의 의장 자리를 원하나 보군.”
엘프퀸의 물음에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나쁘지는 않죠. 안 그래도 지구로 넘어가기에 앞서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으니까요.”
“지구와의 마찰을 대비하기 위함인가?”
“네, 이쪽이 어찌하지 못할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함부로 덤비지 못하겠죠.”
강력한 군대는 전쟁을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로이아스 대륙의 군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대국들을 연방으로 한데 묶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칼바도스의 황제는 허튼수작을 부릴 수가 없으니, 그의 제안이라고 어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