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25화 (12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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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벼운 대답에 아인트 공작은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선전포고의 명분이 약한네만?”

“저희는 정치할 여유가 없습니다. 명분은 나중에 따지죠.”

지금 우린 정치질하자고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반응에 의외로 호전적인 성향의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폴시스 공작도 이견이 없다며 동의했다.

아크로스의 동맹책임자로 참석한 왕태자가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으나, 4개국 동맹에서 내 발언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만큼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여왕폐하.”

내가 마지막으로 결재를 바라듯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그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4개국 동맹의 이름으로 남부 3개국에 선전포고를 해주세요. 개전은 선전포고 다음 날입니다.”

아인트 공작은 더 이상 반박할 생각이 없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원한다면 이름을 빌려줄 수도 있네.”

하이랜드를 대표하여 내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던 엘프퀸의 말에 날름 받아들였다.

“그럼 하이랜드의 이름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이랜드가 그렇게 나서니 실버 엘프도 동참하겠다며 나섰다.

사실 개전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나와 마그누스가 나서서 수뇌부를 날려버릴 생각이니.

아마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이건 다른 국가들을 향한 경고이자 본보기였다.

“그런데, 의외로 칼바도스와 위스워드 제국이 착실하게 우리의 요구에 따르는군요.”

폴시스 공작의 의문에 나도 동의했다.

그 둘은 정통적인 군사 대국의 황제들임에도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개인적으로 피의 군주라 불리던 칼바도스의 황제를 굉장히 싫어했지만, 지금에 와선 말이 통하는 상대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갖고 싸운다면 굉장히 상대하기 힘든 스타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최선의 선택을 한 거죠.”

“칼바도스 황제와 위스워드 황제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지. 자네라는 변수를 만나 좌초되었을 뿐.”

아인트 공작도 두 황제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리고 아인트 공작이 슬쩍 나를 비롯한 4개국 동맹 수뇌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두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지만, 이김에 응어리를 없애고 두 국가를 품으로 끌어안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끌어안다뇨? 설마 동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모습을 보이자 아인트 공작은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의견일 뿐이니 무시해도 좋네. 하지만 만약 두 제국과 함께 동반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엄청 많지. 잠정적 적대 세력인 제국동맹이 사라질 뿐 아니라, 말 그대로 6개국에 의해 대륙이 운영되는 것이니까.”

“음.”

내가 반발하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4개국 동맹 수뇌부의 시선이 모였다.

나는 내 생각을 밝히기보다 폴시스 공작에게 물었다.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앞으로 대륙이 하나로 뭉쳐야 할 텐데, 두 제국이 더해지면 강제력이 더욱 강해질 테니까요.”

현재 미드랜드의 영향력을 숫자로 따지면 4개국 동맹과 제국동맹이 약 9할은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야 두 세력이 그 영향력을 양분하고 있지만, 하나로 뭉쳐진다면 대륙 경영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수준이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요? 이미 이번 정상회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4개국 연합의 영향력만으로 대륙 운영이 가능해 보이는 데요. 만약 이번 일로 로엘 제국을 뒤집는다면 더욱 그렇고요.”

아크로스 대왕국 왕태자의 이야기에 성녀가 말했다.

“테라시아님과 이종족의 수장들께서 참석했기에 그런 분위기가 나올 수 있던 것이죠. 아무리 4개국 동맹이 잘났어도 대륙 전체를 커버할 순 없는 일입니다. 특히 이번 일로 우리의 존재는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을 테니까요.”

지당한 말이다.

나는 아인트 공작의 의견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저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비록 한때 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만큼 여유롭지 않으니까요.”

이번에도 아크로스를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의 의견이 같자, 왕태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반대하진 않겠습니다.”

반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동맹국의 태자를 기죽일 필요는 없으니, 나는 그에게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실비아 여왕은 따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나와의 결혼이 결정되고 굳이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는 반응이 없어진 그녀였다.

여왕 입장에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 건은 아인트 공작님께 맡기죠. 공작님께서 4개국 동맹의 대표로 두 제국과 협의해주세요.”

“맡겨주게나.”

꽃중년에서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아인트 공작이었으나, 열의만큼은 젊은이들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어째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미드랜드의 정치 이야기는 끝인가?”

그때 엘프퀸이 은근슬쩍 다가와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내 물음에 그녀는 특유의 퉁명스런 표정 대신 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루시엘라와는 언제 결혼하는 건가?”

“네?”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그건 왜요?”

무슨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이미 루시엘라는 엘프사회에서 추방당했다.

딱히 루시엘라와 결혼한다고 해서 엘프들과 필요 이상으로 엮인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런, 루시엘라에게 못들은 모양이군. 추방은 없던 일로 했다. 앞으로 루시엘라는 언제든지 하이랜드에 드나들 수 있네.”

너무 속셈이 너무 뻔히 보이는 노골적인 이야기에 미간을 좁혔다.

“딱히 이런 식으로 엮이려 하지 않아도 저는 여러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생각입니다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나. 대륙이 지구로 이주하고 나면 하이랜드는 필연적으로 미드랜드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인보단 그나마 미드랜드인이 나으니. 그래서 만약의 사태를 막기 위해 인간의 대표자인 너와 엮이려는 거다.”

숨김없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생각을 밝힌다는 것이 대단하지만, 루시엘라가 이용당하는 것 같아서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아크로스 왕국의 왕태자는 엘프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외에는 모두 잠자코 이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힐끔 실비아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녀 역시 엘프 퀸의 행동이 유쾌하지 않은 듯 보였으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예정을 당길 생각이었어요. 이번에 로엘 제국의 일을 해결하고 난 다음, 바로 진행할 겁니다.”

내가 불편한 표정을 짓자, 엘프 퀸은 너무 그러지 말라며 나긋나긋 말했다.

“녀석도 결국 미우나 고우나 내 조카다. 어차피 몇 년만 더 지나면 추방을 취소할 생각이었으니, 그 기간을 당긴 것이라 생각하도록.”

“조카요?”

“그래 내겐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루시엘라의 친모거든.”

전혀 몰랐다.

그동안 루시엘라가 신경 쓰일까 봐 엘프 이야기는 묻질 않았기 때문에.

“루시엘라는 엘븐킹덤의 여왕이 될 수도 있는 신분이다. 녀석의 입장에서도 가문 없는 떠돌이 엘프로서 자네에게 시집을 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되는데?”

하이랜드 최대 세력인 엘븐 킹덤의 국력은 제국동맹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세력의 왕위 계승권을 가진 인물이라면 신분에서 실비아에게 꿀리지 않는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네요.”

엘프 퀸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에 성녀는 불만스레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하던가, 꼭 이곳에서 해야겠습니까?”

문제 될 것 있냐는 엘프 퀸의 모습에 성녀는 혀를 차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성녀가 집무실을 나서자, 실비아가 무표정하게 나를 올려다보고 엘프 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인기가 제법이야.”

나는 뒤통수를 긁적여야 했다.

지구를 다녀오고 나서 유독 감정 표현이 강해진 성녀.

그녀와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

[4개국 동맹 선전포고 전문]

[하이랜드 연합 선전포고 전문]

[실버엘븐 선전포고 전문]

“이, 이런 미친.”

로엘 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앞에 배달된 전문을 보며 당황했다.

전문에는 내일부터 개전이라는 내용과 무조건 항복 외에 협상은 없다고 써있었다.

“전쟁의 명분이 고작 유언비어 배포와 조약 불이행이라니?”

누가 보면 장난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자신은 전문의 내용대로 그들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고, 마족에 관한 소문도 퍼트렸지만 설마 겨우 이게 전쟁의 명분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이 정도는 국제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전쟁이라니.

애초에 마족을 끌어들인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회의장에서 했던 경고가 단순한 엄포가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길들이기라는 건가.”

상대의 의도를 그렇게 이해한 로엘 제국의 황제는 이를 갈았다.

그런 황제를 옆에서 지켜보던 재상이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재상은 조약을 지키진 않더라도 굳이 그들을 자극할 만한 소문은 퍼트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진언했다.

하지만 황제는 슈엔다르크, 그리미아 대왕국과 뜻을 모아 꼬장을 부리는데 열을 올렸다.

황제의 불필요한 감정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다니, 이런 코메디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당장 사과를 하고 조약을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해야 합니다.”

전문에는 항복 외엔 협상이 없다고 했지만,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황제는 재상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현실주의자인 동맹국의 두 황제와 달리, 그는 철저히 특권과 권위의식에 찌든 존재였다.

황제는 로엘 제국이 대륙의 중심 권력에서 멀어졌단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황제의 모습에 재상은 작게 이를 갈았다.

“일단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에 협조 요청을 하게나. 그리고 4개국 동맹엔 명분을 인정하지 못하겠단 항의 서한을 보내고.”

“그건······. 네, 알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황제는 로엘 제국에서 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존재였으니.

재상은 황제의 지시를 부하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동맹국인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에선 도움을 줄 수 없다며 항복을 종용하는 대답이 돌아왔고, 4개국 동맹에선 항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는 이 사태를 없던 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황제는 심각하게 슈엔다르크, 그리미아 대왕국의 국왕들과 통신을 나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

슈엔다르크와 그리미아는 재상이 제안했던 대로 사과와 함께 조약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상대는 무조건 항복 외엔 전쟁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겨우 이걸로 진짜 항복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폐, 폐하!”

그때 군무대신이 헐레벌떡 대전에 들어서고,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케일론 제국군 함대가 이트라 섬에 집결하고 있으며, 마드세인과 이타루스, 아크로스의 기간트 200여대가 프리우스 왕국에 집결했다고 합니다.”

“······.”

황제뿐만 아니라 재상도 말을 잃었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상대는 전쟁할 생각이 충만했다.

프리우스 왕국은 로엘 제국과 한배를 타게 된, 두 대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였다.

당연히 그곳에 200대의 성능 좋은 4개국 연합의 기간트가 배치되니, 슈엔다르크와 그리미아가 난리 나는 것은 당연했다.

“폐하···.”

“어차피 항복은 오늘 하나, 내일 하나 같으니, 정말 녀석들이 침공하는지를 보고 결정하세.”

결국, 아무런 해법 없이 하루를 보낸 로엘 제국은 개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폐하! 4개국 연합의 병력이 진군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날 다행히 자신들을 위협하던 군대는 움직이지 않았고, 황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후, 역시 위협이었던가? 다시 한 번 4개국 연합에 사과와 함께 조약 이행의 뜻을 전달하게.”

“알겠습니다.”

애석하게도 로엘 제국의 황제는 루이스의 성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참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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