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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24화 (12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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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계라니.

    이종족만 해도 놀랍건만 마족이 로이아스 대륙 소속인 것 마냥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 지도자들은 기겁했다.

    “일단 초면일 테니, 제가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비스 공작이 빙긋 미소를 짓자, 회의장에 먼저 자리를 잡은 정상들은 하나같이 움찔거렸다.

    그나마 칼바도스, 위스워드의 황제만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르비스 공작을 바라봤는데,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방금까지 큰소리를 치던 로엘 제국의 황제였다.

    “일단 여기 아름다운 여성분께서 하이랜드 엘븐킹덤의 여왕이신, 그리시아 하이엘븐 폐하십니다.”

    “반갑소.”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엘프퀸의 미모는 과연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보다도 타국의 지도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여기 계신 분은 거인족의 대전사이신 바일런 사이러스입니다. 참고로 거인족은 수인족이 신체를 변화하는 것처럼, 신장을 조정할 수 있으니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시길.”

    이어서 아르비스 공작은 드워프킹, 하플링킹, 수인족 의장, 다크엘프로 유명한 실버엘프 퀸을 소개했다.

    소개가 진행될수록 자신들이 지금 아르비스 공작의 농담에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으나, 그것도 엘프만큼이나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을 소개하면서 끝났다.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분이 리모트 랜드의 드래곤을 대표하는 골드일족의 테라시아님입니다.”

    “반갑군.”

    인자한 미소를 띠는 테라시아.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피보다 더욱 붉게 빛이 났다.

    그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위스워드와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 폐하께선 이미 블루드래곤인 마그누스님을 만나셨죠? 여기 테라시아님께서 그 마그누스의 아버님 되시는 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확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히 두 황제에게 시선이 향했고, 그 두 사람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두 사람의 태도에 반신반의하던 지도자들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인사를 올렸다.

    드래곤이 마음먹는 순간 제국이라도 쑥대밭이 되고 만다.

    거대 제국의 황제들이 고개를 숙이는데, 누가 감히 자리에 앉아 있겠는가.

    각국의 지도자들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뭔가 상황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인물 소개에서 하이라이트격인 존재가 남아 있었으니.

    “그리고 이쪽이 억압의 마왕과 색욕의 마왕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카르엘 공작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인간의 지도자들이여.”

    겉모습은 인간이나 다름이 없지만 그것은 필히 위장한 것일 터.

    최상급 마족의 등장에 대부분 표정이 검게 죽었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 아르비스 공작.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혼란스럽기 그지없군.”

    아르비스 공작과 마드세인 왕국이라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가 침착하게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감이 없는 상황.

    두 황제가 고개만 안 숙였어도, 농담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이랜드의 이종족뿐만 아니라, 리모트랜드의 드래곤과 다크엘프, 심지어 마족까지 회의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에 아르비스 공작이 가벼운 분위기를 깨고 진중하게 답했다.

    “여러분께선 모르셨겠지만, 로이아스 대륙에 많은 수의 마족들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마족은 지금 이 자리에도 한 명이 있지만, 모두 잠자코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일전에 인펙션 워커 사태를 기억하시죠?”

    “아, 승전기념 파티에서 발생한.”

    한 소왕국 국왕의 대답에 제국연합 황제들의 시선이 향했다.

    마드세인 왕국 입장에서나 승전이지, 그들에겐 패전 기념일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네, 맞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저흰 혹시 모를 마족의 침투를 의심하며 대륙적인 조사를 실시했죠. 그 결과 다수의 마족이 중간계에 넘어온 것을 확인하여 은밀하게 4개국 연합이 하이랜드, 리모트랜드의 이종족과 협력하여 마족들을 처리했죠.”

    “그래서 결과는?”

    “덕분에 10명의 마족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계를 위협하던 마족은 모두 처리된 상태죠.”

    “하지만 마족이 한 명 남아 있지 않은가.”

    “다른 마왕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중간계의 침략이지만, 카르엘 공작을 비롯한 두 마왕은 다릅니다. 그들 덕분에 마족의 탐색이 쉽게 끝났으며, 앞으로도 다른 마족들의 침입을 막아줄 겁니다.”

    그냥 한 번에 설명하면 되지 꼭 대화형식으로 주고받아야 하냐는 불만이 솟구쳤지만, 칼바도스 황제는 아르비스 공작의 이야기에 어울려주었다.

    “마왕들이 어째서 중간계를 위한 일을 하는 거지?”

    “곧 가이아 여신께서 창조한 이 세계가 멸망하거든요.”

    “뭐?”

    “두 마왕은 살아남기 위해 중간계와 협력하는 것을 선택했죠. 다른 마왕들은 협력이란 것을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현재 테라시아님과 두 마왕은 깰 수 없는 상호 불가침 계약을 나눈 상태입니다.”

    “······.”

    갑자기 튀어나온 세계의 멸망 이야기.

    그에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멸망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문을 표했다.

    주변 반응에 잠자코 있던 엘프 퀸이 말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 필요 없소. 아르비스 공작의 말 그대로, 지금 세계는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니.”

    엘프 퀸에 이어 테라시아가 답했다.

    “천계는 이미 멸망한 상태다. 현재 마계도 말기의 시한부나 다름없으며, 정령계와 중간계에도 이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 중간계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야.”

    드래곤이 내뱉은 말에도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이 미지근했다.

    단순히 믿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당혹스런 상황 속에 아르비스 공작은 동요 없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신 분들과 힘을 합쳐 로이아스 대륙을 다른 차원의 지구라는 세계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세상은 멸망해도 로이아스 대륙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아르비스 공작은 이전 계획을 밝혔다.

    기나긴 설명에도 모두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지구는 고도로 발전된 세계이며 군사력도 강력합니다. 아마 저희가 지구로 터전을 옮기게 된다면 큰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죠.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모든 설명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군.”

    로엘 제국 황제의 혼잣말에 아르비스 공작을 비롯한 이종족 연합과 4개국 연합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황제는 마른침을 삼켰지만, 끝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르비스 공작의 장단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네. 세상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든지 말든지 자네의 계획에서 우리 로엘 제국은 빼주게나.”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겪지 않은 것을 신뢰하지 않는 부류.

    사람의 좋지 않은 특성 중 하나다.

    그러면서 테라시아의 눈치는 보이는지 힐끔 눈알을 굴리지만, 굳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아르비스 공작이 하는 것은 제안이 아니었으니.

    “죄송하지만, 빠지고 말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로엘 제국의 황제를 비롯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던 다수의 지도자들이 얼굴을 굳혔다.

    아르비스 공작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이미 확정 사안이니까요. 거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할 말 없게 만드는 대답에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잠자코 있던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가 물었다.

    “만약 그래도 거부하겠다면?”

    “어리석은 지도자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볼 필요가 있습니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리할 뿐입니다.”

    “어, 어리석은 지도자라니!”

    로엘 제국의 황제가 옆에 누가 있는지를 잊고 버럭 소리치자, 성녀가 머리카락을 배배꼬며 말했다.

    “나가고 싶으시면 나가시면 돼요. 딱히 이곳에서 위해를 가하진 않을 테니까요. 대신 앞으로 발생하는 일은 본인이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성왕, 지금 협박하는 것이오?”

    “협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다시 살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아르비스 공작이 말을 더하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식의 동의를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동의가 아니네, 아르비스 공작.”

    “여러분 개개인의 의견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대륙은 어차피 차원 이동을 할 테니까요. 저흰 뜻대로 밀어붙일 겁니다. 그것이 로이아스의 미래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는 뜻인데, 이럴 거면 뭐하러 부른단 말인가.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통보를 위한 자리였군.”

    로엘 제국의 황제는 불평을 토하면서도 끝끝내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자기 목숨은 귀한 것이다.

    이후 어떻게 행동할진 알 수 없지만,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그들을 터치할 생각은 없었다.

    “자, 반대하실 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대부분이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으나, 로엘 제국의 황제가 입을 닫으니 아무도 이견을 표하지 못했다.

    “그럼 모두 동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힘으로 찍어누른 회의는 아르비스 공작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이제부터 함께 생존하기 위해 각국이 해야 할 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일단은···.

    ***

    46. 참교육

    가끔 보면 아무리 말로 좋게 끝내려 해도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 있다.

    일전에 시행한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으나, 순순히 요청대로 따르는 국가는 전체 32개국 중 절반 수준이 17개국뿐이었다.

    나머지 국가들은 대부분 뭉그적거리며 대세에 따르는 척을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따르는 ‘척’.

    진짜 바라던 대로 협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척’이라도 하면 경고를 줘서 능률을 올릴 수 있지만, 문제는 그런 애매한 녀석들이 아니다.

    [아르비스 공작이 마족과 손을 잡고 대륙을 전복하려 한다.]

    이런 쓸데없는 소문을 퍼트리며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녀석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확인 결과 소문의 근원은 남부 3개국이더군.”

    아인트 공작의 보고에 나는 혀를 찼다.

    “평소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이런 땐 쿵짝이 잘 맞는군요.”

    남부 3개국이라면 로엘 제국과 그리미아 대왕국, 슈엔다르 대왕국을 뜻한다.

    두 개의 대왕국은 정통적인 동맹관계고 호시탐탐 북진을 노리는 로엘 제국과는 적대적 관계다.

    비록 로엘 제국이 제국연합에 소속되며 기간트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지만, 그래도 명색의 대왕국은 대왕국.

    상대에게 결코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던 두 국가가 로엘 제국과 한목소리를 내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항의는 해보셨어요?”

    내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들은 그런 적이 없다는군.”

    아무래도 그들은 겉으로 직접 내색하지 않고 발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구나 요구엔 딱 잘라 거절하지 않고 온갖 변명을 가져다 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너무 구시대적인 대응이라서 웃겼다.

    “정상회담에서 로엘 제국의 황제가 한 건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나오는군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표면적으론 그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긴 힘든 상태인데.”

    이젠 완전히 자신의 집무실인 양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성녀의 물음에 나는 미소로 답했다.

    “선전 포고하죠.”

    참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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