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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23화 (12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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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무슨 뜻이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가이아는 창조물들을 내팽개친 성격 나쁜 여신이다.

    내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마도 황제는 태연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지. 신에겐 신의 입장이 있는데, 내가 그녀의 계획에 따르지 않았거든. 당시 내 행동이 위험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야. 차원이동을 하더라도 다른 세계의 창조주와 마찰이 벌어진다면 로이아스 대륙의 피조물들은 모두 제거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아무래도 그는 자신의 제거를 지시했음에도 여신에게 별다른 악의가 없는 모양이다.

    “가이아에 대해 오해하고 있군. 이 장소가 누구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나?”

    “이것도 여신 덕분이란 건가요?”

    “그럼, 그리고 네가 그리 황당하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도 분명 개입하고 있을 거다.”

    “어째서 그렇게 복잡한 짓을.”

    “아마도 그녀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겠지. 세계가 붕괴하는데 창조주만 멀쩡할 리가 없으니. 가이아는 결코 자신의 피조물을 못 본 척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니야. 나의 경우는 벌을 받은 거고.”

    “······.”

    “너와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네가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온 지금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봐야겠지. 방해물은 없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니.”

    “네도 느끼는 게 있을 거 아냐? 지나치게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느니, 위기는 위기지만 타이밍 좋게 나타나는 해법이라든지.”

    붕괴의 장에서 피난처가 다름 아닌 지구란 점.

    팽창으로 넓어진 지구의 바다와 통째로 차원이동 가능하다는 로이아스 대륙.

    공교롭다고만 하기엔 모든 상황이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왜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냐. 설마 네가 잘나서 그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누군가가 개입해서 제게 기연을 선물했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야···.”

    내가 로이아스 대륙에 두 번째 삶을 살면서 손해를 본 것이라곤 없었고, 엄청난 이득을 독식했다.

    잠깐의 위기도 결국엔 커다란 이득으로 이어지니, 모든 것을 운으로 치부하기엔 형편이 너무 좋았다.

    이 모든 상황을 뒤에서 가이아가 백업했기 때문이라 말한다면 반박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마음 한구석에선 비로소 납득이 되었으니.

    무엇보다 환생과 회귀는 단순한 운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만약 신이 내게 무엇을 시키기 위해 그런 능력을 부여했다면 이해가 된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을 들은 마도황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빼도 박도 못하잖아. 여신은 길잡이로 널 선택한 거야.”

    “왜 저죠? 저는 정말 보잘것없던 평범한 녀석인데.”

    “결과적으로 최선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됐잖아. 네가 납득 하지 못해도 여신은 널 적임자라 생각했던 거지. 거기엔 네가 모르는 재능이 포함된 것일 수도 있고. 어차피 이유 따윈 가이아만이 알겠지.”

    지금까지 내가 얻어온 모든 이득이 준비된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힘이 빠졌지만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보다 마왕도 한발 걸친 건가? 지금의 전력으론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곤 해도 대륙을 지구로 옮긴 다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네. 제어가 힘들 것 아니냐.”

    그 두 마왕은 말이 통하는 자들 같지만, 역시 마왕이란 칭호를 가진 만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렇죠.”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뭘까?”

    그의 물음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강해지는 거요?”

    “그래, 결국 수련이 답이란 소리지. 이미 두 개의 기운이 융화의 단계에 들어갔으니, 온전한 9클래스를 갖추기만 하면 넌 마왕에게도 밀리지 않는 존재가 될 거다. 어쩌면 더욱 강해질 수도 있지. 가이아가 드래곤이 아닌, 인간인 너에게 이 역할을 맡긴 이유도 분명히 있을 거야.”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부담스러워 하자, 마도 황제는 내 등을 힘껏 후려쳤다.

    “왜 자꾸 때려요!”

    “응원이다. 이 녀석아. 그리고 스승이 사랑의 매를 들 수도 있는 거지.”

    내 불평에 그는 가볍게 넘기며 바닥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아마도 네 역할은 단순한 길잡이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마도 황제는 내게 부담감을 팍팍 심어주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수련의 강도를 높이도록 하지. 드래곤 하트의 백업을 받긴 했어도 넌 한때 9클래스 마법을 사용했다. 생각보다 9번째 서클을 만드는 게 쉬울 수도 있어.”

    “노력할게요.”

    *

    “저게 기간 설정이고요. 이게 이동 면적 설정. 우측이 현재 설정된 면적을 이동하는데 필요한 마력, 충전된 마력량을 표시한 겁니다.”

    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며 의문을 표했다.

    “가이아님이 남긴 안배를 실컷 체험 중인 상태거든요. 저도 모르는 사이 길잡이가 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따로 이야기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겠군.”

    그렇게 말하는 테라시아의 손목엔 내가 서울에서 기념품으로 챙겨온 값비싼 명품시계가 걸려 있었다.

    “네, 숨길 생각도 없어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날 내용인데요.”

    그 외에도 이 종족을 포함해 성녀와 폴시스 공작들에게도 시계가 걸려 있었다.

    어쩌다 보니 비싼 명품 시계들이 차원이동을 주도하는 파티의 증표 같은 게 되어버렸다.

    성녀는 시계뿐만 아니라 값비싼 다이아몬드 장신구를 내게서 받아냈고, 중2병의 마그누스는 선글라스가 마음에 드는지 실내에서도 계속 착용하고 있다.

    “하이랜드는 차원 이동에 이견이 없는 거죠?”

    내 물음에 스포츠카를 선물로 받고 친구가 된 드워프킹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어제 회의를 통해 누구 하나 반대 없이 같은 결론을 내렸네.”

    하이랜드의 콧대 높은 이종족들도 상황이 이렇게 되니, 더 이상 인간인 나와 어울리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지 못했다.

    이 방주의 키를 쥔 인물이 다름 아닌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주 가능한 인원이겠지.”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룻밤 사이 유적의 기능을 알아낸 내 말에 모두가 시선을 집중한다.

    그에 엄지를 치켜든 나는 씩 웃었다.

    “로이아스 대륙 전체를 지구로 이전시킬 생각이거든요. 누군가가 희생할 필요 없어요.”

    “그게 정말인가?”

    “네, 이 유적은 대륙 전체를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답니다. 대신 준비시간이 꽤 걸리는데, 대륙적으로 힘을 합치면 3년 안에 준비를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 감탄사를 터뜨리며 얼굴이 밝아졌다.

    특히 엘프퀸이 내색을 안 해도 걱정이 많았던 모양인지 눈에 띄게 안도했다.

    하지만 반대로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인간 진영의 성녀와 폴시스, 에클로 공작이었다.

    “대륙적이란 말은 인간들의 힘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거겠죠?”

    성녀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요.”

    모든 상황을 지켜본 하이랜드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다.

    하지만 상황파악이 안 된 미드랜드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렇다고 반대 의견을 내는 국가를 빼고 이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만약 이 결정에 반하거나, 뜸을 들이는 국가가 있으면 힘을 아끼지 않고 제압할 생각입니다. 윗대가리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까지 죽임을 당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 부분에선 다소 강압적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시간은 한정적이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을 리가 없으니.

    “혹시 하이랜드의 힘이 필요하면 말하게 협력해 줄 테니.”

    드워프킹의 말에 엘프퀸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감사합니다.”

    일단 최대한 설득을 해보겠지만, 어쩌면 중간계를 살리기 위한 이 일로 인해 다시금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는 일이다.

    ***

    세계의 종말에 대해 모르는 인간들은 예전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제국 동맹과 4개국 동맹의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평화가 이어지나 싶더니, 아르비스 공작이 미드랜드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의 요구는 미드랜드 국가의 모든 정상들이 참여한 회의이며, 느닷없는 제안에 각국에선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근래 들어 4개국 동맹을 중심으로 한 초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영문을 몰라 잠자코 있었다.

    아마도 그것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지만, 각국의 정상이 그의 신하도 아니고 당장 며칠 뒤에 만나자고 하면 만나야 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그에 4개국 동맹에서는 해당 회의에 참석할지 안 할지는 자유지만 이번 요청을 거부하는 국가는 불이익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제안에 응해야 했다.

    현재 4개국 동맹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제국 동맹뿐이지만, 지난 전쟁으로 제국 동맹의 세가 크게 꺾이면서 독주체제라 봐야 한다.

    제국 동맹에서 태클을 걸지 않으니, 다른 국가에서 어쩌겠는가.

    때문에 갑작스런 아르비스 공작의 제안에도 정상회담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정상회담의 회의장이 된 국가는 다름 아닌 마드세인 왕국.

    칼바도스 제국의 남부 4개 지역을 차지하면서 영토를 넓힌 마드세인 왕국은 언제 제국을 선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중립국가의 국왕들은 상관없지만 제국동맹에게 있어 마드세인 왕국은 적진인 만큼 부담되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타국에선 이를 아르비스 공작이 제국동맹의 기를 죽이고 회의를 주도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마드세인 왕국이 정말 많이 발전하긴 했더군요. 세인은 제국의 수도나 다름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르비스 공작과 여왕의 결혼식에서 제국 선포를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아마 머지않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마드세인의 힘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저는 이타루스까지 제국 선포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전쟁 억지를 위해 창설하기로 했던 세계 경제 연합과 국제 평화기구도 흐지부지된 마당에 왜 또 이런 자리를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드세인 왕국의 왕성 대 회의장에 둘러앉은 각국의 정상들은 옆자리의 정상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국 동맹의 황제들의 눈치를 살폈다.

    현재 제국 동맹의 황제들은 회의장에 이미 자리를 잡았지만, 4개국 동맹의 지도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다.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상황에 로엘 제국의 황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위스워드 제국과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는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적진으로 황제들을 불러들이고 이리 홀대를 하다니.”

    약소국들의 동정어린 시선은 로엘 제국 황제의 기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쾅!

    “불쾌해서 더 이상 못 있겠군. 나는 돌아가겠소.”

    결국 로엘 제국의 황제가 분을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나자, 회의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물들었다.

    “진정하시죠.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도 그렇소.”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와 칼바도스제국 황제가 말리자, 그는 더욱 발끈하며 소리쳤다.

    “두 황제께선 자존심도 없으시오? 어째서 우리가 이런 홀대를 받아야 한단 말이오!”

    “딱히 홀대도 아니지, 아직 참석을 안 한 것뿐이니.”

    자존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칼바도스의 황제가 그리 나오니, 로엘 제국의 황제는 황당함을 표해야 했다.

    “변하셨구려.”

    “그럴 수밖에.”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의 황제는 마그누스 사태로 아르비스 공작의 힘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상태다.

    드래곤이 가볍게 보지 못하는 인간을 어찌 무시하겠는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분위기가 더욱 냉각되어갈 때, 회의장의 문이 열리며 실비아 여왕을 포함한 4개국 연합의 수뇌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로엘 제국의 황제는 혀를 차며 제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정작 이 회의를 주도한 아르비스 공작이 보이지 않는군.”

    “귀빈들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니 기다려 주시죠.”

    로엘 제국 황제의 날 선 물음에 실비아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회의장에 빈자리가 몇 개 남아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귀빈이 또 누가 있단 말이오?”

    “보시면 압니다.”

    애매모호한 태도는 로엘 제국뿐만 아니라, 타국 정상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회의장의 문이 열리며 등장한 아르비스 공작과 그의 뒤를 따르는 인물들의 면면에 각국의 정상들은 모두 눈을 부릅떴다.

    “오늘 이 자리엔 리모트랜드와 하이랜드, 마계의 대표께서도 참석하게 되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엘프와 다크엘프, 드워프를 포함한 8명의 이종족들이 자리를 차지하자 회의장은 금새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하이랜드, 리모트랜드와 함께 은근슬쩍 엄청난 단어가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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