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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22화 (12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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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해답

    텔레포트와 비슷한 듯하면서 묘하게 다른 기운에 휩싸인 다음, 눈을 깜빡이니 투박한 회색 투성이의 공간이 되었다.

    “돌아온 건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았고, 오래 걸리지 않아 함께 미궁 공략에 나섰던 놀란 표정의 동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사히 로이아스 대륙으로 되돌아온 모양이다.

    “아르비스 공작님!”

    성녀가 빠르게 달려와 내게 안겼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돌발행동에 나는 매우 놀랐다.

    “서, 성왕폐하.”

    지금의 나는 신분의 높낮이를 따질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성녀이자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이다.

    아마 그녀의 측근이 있었다면 입을 떨 벌리며 기겁할 만한 모습이었다.

    나는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비비적거리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얻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내 물음에 답한 것은 매달려 있는 성녀가 아닌, 폴시스 공작이었다.

    “혹시 다른 세계를 여행하셨습니까?”

    “네, 깜짝 놀라고 말았죠.‘

    “그게 이 유적의 힘이랍니다. 그리고 유적을 움직인 건 저자의 짓이죠.”

    폴시스 공작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한 곳을 가리켰는데, 그곳엔 깔끔한 가죽 갑옷 차림의 잘생긴 마족 청년이 서 있었다.

    내 시선에 마족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불쾌한 경험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피치 못하게 당신을 인질로 삼고 말았군요.”

    “음···.”

    지구에 다녀온 것을 불쾌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정확한 이야기는 이제 들어봐야겠지만, 이 마족 덕분에 마음 한구석에 담아 놓았던 불편한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특별히 화가 나진 않았다.

    “다행히 그리 싫은 여행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마족 주제에 친근하게 행동하는 것이 의아해서 테라시아를 바라보니, 그녀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 마족이 소속된 진영과는 평화를 유지하기로 했네.”

    마족과 평화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성녀를 내려보며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선물을 많이 챙겨왔습니다. 나중에 드릴게요.”

    그동안 떨어질 타이밍을 재지 못했는지, 내 말에 성녀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떨어졌다.

    “걱정 많이 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선물이어야 할거에요.”

    그에 웃음을 흘린 나는 테라시아를 바라보았다.

    “이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테라시아는 자신들이 알게 된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선 이 유적의 유례와 마족이 있던 이유.

    그리고 상상치도 못한 세계 종말 이야기에서 나는 헛바람을 삼켰다.

    “무슨?”

    천계는 이미 소멸했으며, 마계도 소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또한 마계의 뒤를 잇는 것이 정령계와 중간계란 이야기까지.

    모두 꿈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중간계도 현재 진행형으로 소멸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골드드래곤 테라시아였으니.

    “동쪽의 메사우스좌가 사라졌으며,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해도 꽤나 많은 별이 확인되지 않네.”

    테라시아에 이어 폴시스 공작이 말했다.

    “이미 예전부터 별자리의 손실이 보고로 올라왔더군요. 단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뿐이죠.”

    어쩌면 마드세인에서도 별자리에 관한 보고가 올라왔을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얼마 전에 저희 제국의 라팔 군도의 섬 20여 개가 소실됐다는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설마?”

    일전에 마족 탐사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케일론 제국 북부의 소실된 섬 이야기.

    그것을 마족의 짓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지만, 어쩌면 세계 종말의 흔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아마도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테라시아님께서 직접 확인하신 결과 리모트랜드에도 손실이 발생했다는군요.”

    나는 심각한 모습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껏 지구에서 돌아왔더니 세계 종말이란다.

    사건의 클래스가 다르지 않은가.

    “마도제국을 향한 척살 명령이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닌 세상에서의 이탈 때문이란 것임이 밝혀졌네. 그리고 이 유적이 마도제국의 방주가 될 예정이었던 물건이고.”

    테라시아의 이야기에 꿈속에서 만난 칼바트 황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왠지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더불어 칼바트 황제는 꿈속에서 자신이 죽고 4만 년이나 흘렀다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4만 년이나? 아아, 그래서 드래곤들이 없어진 거구만.’

    ‘무슨 뜻이에요?’

    ‘요컨대 드래곤이 멸종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뜻이지.’

    이제야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가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단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자신이 죽고도 그런 중간계가 4만 년이나 버틴 것에 놀랐던 거다.

    아마 중간계가 유지될 수 있던 이유는 드래곤을 비롯한 고위 종족이 사라졌기 때문일 터.

    이 세상을 컴퓨터라 치면, 드래곤처럼 종족 값이 높은 존재들은 데이터 용량도 크고 많은 메모리를 잡아먹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래서 최적화를 위해 제거한 것이겠지.

    천계가 이미 사라지고 마계가 뒤를 잇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중간계의 전력은 역대 최약이라 할 수 있는 수준.

    드래곤과 마도제국이 사라진 덕분에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유적은 아직 연구가 필요하네. 그래서 마계 최고의 탐구자라는 카르엘과 함께 이 유적을 연구하기로 했지.”

    “굳이 마족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들을 배제할 수도 없네. 카르엘이 아무런 안전장치도 안 해놨겠는가.”

    하긴 분명 그의 입장에서도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닐 테니.

    카르엘이란 마족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모시는 두 마왕과 그들의 세력을 보존시키는 것이라 한다.

    “마왕들하곤 직접 이야기해봤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두 명의 마왕과 협력한다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그래, 절대로 깰 수 없는 상호 불가침의 맹약을 나눴네. 덤으로 그들이 중간계에 침입한 다른 마족들의 정보를 넘겨준 데다가 다른 마왕들을 견제해 주기로 했어.”

    그럼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한다.

    카르엘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당혹스럽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저희도 필사적이죠. 부디 미래를 위해 협력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협력이 확정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내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테라시아님께서 충분히 재고하신 뒤에 협력하기로 결정하셨겠죠.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의 조율자시여.”

    인간의 조율자라니, 금칠이 심하다.

    나는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아공간에 처박아 두었던 탄식의 마왕 파블레스의 파편을 그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건 선물입니다. 편한 대로 처리하시죠.”

    [카, 카르엘?]

    다른 마왕들과 동맹을 맺게 됐으니, 녀석은 이제 필요 없어졌다.

    뜻밖의 선물에 카르엘은 다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파블레스 마왕님 덕분에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그가 없었으면 우리는 이 유적에 대해 몰랐겠지만, 분명 카르엘 입장에선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아르비스 공작 왜 이러는가?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지 않나.]

    마왕의 파편이 급히 구걸했으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와 협력하기로 하면서, 적대 세력인 너는 필요 없어졌거든. 여기까지 안내해줘서 고마웠다.”

    [자, 잠깐! 끄으아아악!]

    카르엘은 길게 대화 나눌 생각이 없는지, 마왕의 파편을 검은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그에 탄식의 마왕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병째로 소멸했다.

    “그런데 마계에 아직 남은 자들이 많을 텐데, 자기 사람만 챙기는 겁니까?”

    내 물음에 카르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마왕은 협력이란 것을 모릅니다. 말 그대로 마왕이란 단어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오로지 멸망하는 마계에서 도망쳐 중간계를 차지할 생각뿐이거든요. 앞을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긴 마왕과 협력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협력할 수 있는 마족이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한 느낌.

    “생각보다 동요하지 않는군요.”

    새삼스러운 마그누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충분히 놀랐거든. 너라면 안 놀라겠냐?”

    “하지만 표정이 너무 평온해 보이십니다.”

    “위기는 위기지만, 다행히 해결 방법이 있는 거잖아. 비록 그게 탈출이긴 해도.”

    어쩌면 이대로 영영 지구로 넘어가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내 입장에선 꼭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록 지구인들 입장에선 침략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이쪽엔 생존이 걸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유적이 제대로 작동할지 모르잖아요.”

    의외로 많이 놀란건가?

    마그누스의 약한 말에 나는 이종족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녀석의 뺨을 꼬집었다.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렇군요.”

    테라시아가 아직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냐며 내게 물었다.

    “다른 세계를 보고 왔겠지?”

    “아주 그리웠던 세계였습니다.”

    “그리웠다?”

    “네, 이 모든 상황이 운명이라고 생각될 만큼 말이죠.”

    내 시선에 그녀는 긴말 안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중에 전부 밝혀질 내용.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제가 여행한 세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마도 그곳이 저희의 피난처가 될 테죠.”

    모두는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

    “오늘은 왔군.”

    백색의 공간.

    이젠 진짜 스승님 같은 칼바트 황제가 나를 반겨주었다.

    “시간 개념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제가 하루 건너뛴 것을 아시다니.”

    “뭐, 그렇지. 그런데 어찌 된 거냐? 어제는 왜 만나지 못한 건지 모르겠군.”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차원의 미궁에서 임시 점프로 다른 세계 갔다 왔거든요.”

    “······.”

    예상치 못한 대답인지 그는 움찔거렸다.

    그리고 잠시 내 안색을 살피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상황파악을 한 모양이군.”

    “천계는 이미 멸망했다네요. 마계도 곧 끝이고, 정령계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모양입니다. 중간계에서도 이상이 감지되었고요.”

    “그렇군. 궁금한 게 많겠지?”

    이젠 숨길 생각이 없어졌는지, 그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단 반응을 보였다.

    “혹시 차원의 미궁 사용법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차원의 미궁 사용법이라···. 좋아, 알려주지. 다만 차원의 미궁은 사용법을 알아내도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자주 사용할 수도 없지.”

    역시 차원 이동은 쉽지 않겠지.

    그저 그런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

    마도 황제가 직접 유적을 사용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보다 확실한 설명서가 어딨겠는가.

    “차원의 미궁을 통해 한 번에 얼마나 이동시킬 수 있죠??”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얼마 안 된다면, 나도 인간인지라 최측근들을 우선적으로 챙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물음에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만든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는 거지? 충분한 준비만 갖춰진다면 로이아스 대륙이라도 통째로 옮길 수 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 지구인들 입장에선 원하지 않는 이웃일 테지만, 로이아스인들에겐 바라마지 않는 대답이었다.

    “후세에게 최고의 선물을 남겨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뭐, 원랜 내가 사용하려고 만든 거지만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네.”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있다.

    “혹시라도 그때처럼 여신이 저흴 방해하진 않겠죠?”

    만약 일을 실행시키더라도, 여신이 막아선다면 급하게라도 최소한의 인원만 챙기거나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진 않아.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거든.”

    상황이 다르다니, 혹시 그땐 카운트다운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여신이 막아섰다는 걸까?

    “애초에 내게 세계의 멸망을 알려 준 게 가이아였거든. 나와 마도제국이 끝난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그녀와의 약속을 어겨서지. 여신의 꼬장 같은 게 아니야.”

    해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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