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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21화 (12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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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죽고 사망 보험금 안 나왔어요? 왜 아직도 장사하세요?”

    사망 보험으로도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긴 힘들겠지만, 생활 형편이 나아지기엔 충분한 금액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보험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충실히 들어놓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내 물음에 어머니는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 말했다.

    “그 돈을 어찌 막 쓰겠니. 차라리 일하는 게 상념에 빠지지 않아서 좋았다.”

    내 앞엔 어머니가 더 이상 팔지 않는 다고 했던 쫄볶이와 간이 산처럼 쌓인 순대가 놓여 있었다.

    “그렇군요.”

    꼼지락 거리시는 어머니의 굽은 손가락이 유난히 신경 쓰인다.

    “어머니, 잠시만요.”

    나는 마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보이지 않는 벽을 가게에 두르곤 어머니에게 리저렉션을 사용했다.

    마법 한 번에 축 처진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탱탱해지고, 굽은 손가락은 곧게 펴졌으며, 혈액순환이 잘 되는지 안색이 밝아졌다.

    “뭐, 뭐야? 이건?”

    돈 주고도 경험 못 할 회춘에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마법사거든요.”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짧은 대사에 어머니는 황당하단 반응을 보이셨다.

    나는 손 위로 불꽃을 피우고 얼음을 만드는 마법 쇼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가계가 낡은 것을 떠올리며, 클린 마법에 사물 회귀마법을 사용했다.

    덕분에 가게는 완전히 새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고, 어머니는 곧게 펴진 손가락과 주변을 번갈아 보며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셨다.

    “하긴, 이렇게 너와 이야기 나누게 된 것만으로도 꿈만 같은데, 무슨 일이 안 벌어질까.”

    그제야 나는 추억을 돋우는 음식을 크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내 정신 좀 봐.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분식이나 주고. 잠깐 기다려 나가서 엄마가 한우 사올게.”

    “이미 질 좋은 고기를 질릴 만큼 먹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래 보여도 저쪽 세계에선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이거든요.”

    “그, 그러니.”

    말만 아무리 해봤자 뭐하겠는가, 보여 주질 못하는 데.

    “그런데 왜 계속 존댓말이야?”

    이젠 부모님께 존댓말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그게 벽처럼 느껴지시는 모양이다.

    나는 옛날처럼 말을 편하게 했다.

    “나도 이젠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어머니는 또 눈물을 훔치시며 울먹이셨다.

    “앞으로 계속 같이 살 수 있는 거니?”

    “음···.”

    어머니 입장에선 당연한 물음이지만, 나는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왜?”

    “아마, 내일이면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내일이 아니더라도 돌아가야지.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지구가 아니니까.”

    내 말이 야속하게 느껴지는지, 어머니는 그럼 또 헤어져야 하냐며 내 손을 붙잡으셨다.

    “하지만 꼭 다시 올게. 한 번 왔으니까. 두 번도 가능할 거야.”

    나는 이 세계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지구엔 미련이라곤 어머니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저쪽 세상엔 남겨둔 미련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이곳에 어머니가 계신 만큼 저쪽에도 가족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음에 올 땐 며느리도 데려올 테니 기대해. 엄청 예쁘니까.”

    이미지 마법으로 루시엘라과 실비아를 보여 주었다.

    “저쪽은 일부다처, 일처다부가 가능한 곳이니까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

    그 후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로이아스 대륙에서 살아가던 이야기인데, 어머니는 전쟁 이야기에서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지구가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

    나는 여기서 어머니가 ‘뭐가?’라고 답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있을 때랑 완전히 다르지. 지구가 팽창했다고 하고, 마물이란 것도 나오는 데다가, 마물을 사냥하는 초능력자들도 있으니까.”

    어머니를 통해 그간 지구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듣게 된 나는 의문을 표했다.

    “혹시, 마물이란 게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 수 있어?”

    “잠깐만.”

    어머니는 낡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5등급: 고블린, 코볼트, 오크, 슬라임, 좀비, 스켈레톤 등]

    [4등급: 트롤, 다이어울프, 라이칸스로프, 라미아, 구울 등]

    .

    .

    .

    정보를 살피니 로이아스 대륙의 몬스터와 다를 바 없었다.

    “음.”

    아니, 생각해보면 이런 몬스터 설정은 원래부터 지구에 존재하던 것이다.

    그동안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지구에서 판타지 세상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들이 로이아스 대륙에는 그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몬스터, 이종족, 마법, 정령, 드래곤, 마족, 천족 등.

    물론 판타지에 관한 설정은 고전이나 전설에 따르는 부분이 많은 만큼, 지구도 한때 로이아스와 환경이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들끼리 같은 포맷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제이드가 지구에서 로이아스로 넘어오고 지금 내가 지구에 있는 것처럼 두 세계가 긴밀히 이어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떨쳐낸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인천은 안전해?”

    “일주일 전에 아랫동네에서 3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적은 있는데, 헌터들이 빨리 나타나서 크게 위험하진 않았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다.

    새삼 이 세계가 굉장히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 세상의 사람이고 나는 이제 아니다.

    그래서 곧 헤어져야 할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어머니만 괜찮다면 한가지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아니면 나랑 같이 갈래?”

    “뭐?”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 어쩌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래도 엄마만 괜찮다면 한번 같이 가는 방법을 시도해 볼 게.‘

    내 물음에 어머니는 머뭇거리셨다.

    10년 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다른 세계에서 돌아와 같이 가자고 하면 문뜩 나서기는 힘들겠지.

    어머니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있으니 말이다.

    “그곳엔 너의 다른 가족들이 있겠지?”

    “그야···.”

    결국, 어머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하지만 얼굴엔 나를 따라가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왜?”

    “엄마 친구들도 전부 여깄고, 할머니랑 이모, 삼촌들도 있잖아.”

    내가 로이아스 대륙에 남겨 놓은 미련이 지구보다 크듯,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씁쓸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생활은 어때?”

    “그냥저냥. 먹고 살만해.”

    어머니가 같이 안 가겠다면, 최소한 생활환경이라도 개선 시켜줘야지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무거운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 어머니가 내온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용돈 한 번 못 줬는데, 처음으로 효도 좀 하려고.”

    *

    한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시스템이 복잡하다.

    거금의 현금을 어머니에게 선물하더라도 출처가 불분명하면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자금적으로 어머니를 돕기 위해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마법의 존재로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세뇌 하나로 아무런 문제 없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신규 계좌를 만들고 아공간 속의 금괴를 팔아 세금신고와 자금 출처 확인까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금액이 60억 정도.

    마음만 먹으면 1조도 만들 수 있지만, 시간도 많지 않고, 금액이 너무 크면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길까 나름 자중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60억 만해도 평생을 놀고먹고 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에게 통장을 건네면서 말했다.

    “세금신고까지 전부 끝낸 금액이야. 편하게 써도 돼. 거기에 써 있는 전화번호는 내가 고용한 변호사니까. 문제 생기면 그리로 연락하고.”

    어머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체크카드가 든 통장을 살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겁나서 못쓰겠다.”

    충분히 이해는 되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이 없다.

    나는 변호사까지 불러서 어머니에게 통장이 안전하단 것을 알렸다.

    그 변호사는 내게 세뇌가 되어 있는 만큼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친부모를 모시듯 보호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같이 백화점에 들려 이것저것 비싼 물건을 사면서 계좌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자.”

    나는 어머니에게 체크카드를 넘겼다.

    그에 허탈한 웃음을 흘린 어머니가 고개를 내저었다.

    “평생을 노력해도 만지기 힘든 금액이···.”

    “거저 만든 거 아냐, 내가 갖고 있는 금 팔아서 만든 거거든?”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어머니는 알겠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니 반나절이 금세 지났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잠이 들었는데, 이곳이 다른 세계여서 그런지 모처럼 꿈속에 마도 황제가 등장하지 않아 숙면할 수 있었다.

    다음날.

    “갈게. 아무래도 처음에 나타났던 장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작별인사에 어머니는 내 뺨을 쓰다듬으며 훌쩍거리셨다.

    “아들, 다시 만나 기뻤어.”

    “나도 그래. 영영 못 만날 거라 생각했는데···.”

    “또 볼 수 있을까?”

    “확신은 못 하겠어. 하지만 노력해 볼게.”

    나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음이 심란하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머릿속을 정리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아직 2시간 정도 남았지.”

    그때 동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연구자료들을 모아봐야겠다.

    미안하지만 지금부턴 강탈의 시간이다.

    ***

    “가, 각하! 백의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런 젠장.”

    대통령은 화면에 떠오르는 CCTV영상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국회 도서관 아닌가?”

    “맞습니다. 물리학을 포함한 각종 공학 서적과 연구자료들이 순식간에 털렸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S급의 마물이 책 도둑질이라니, 대통령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의의 도둑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각하! 코어저장고와 이물 보관 창고가 백의에게 털렸습니다!”

    “각하! S기업 신소재 연구소가 자료들이 도난당했습니다!”

    “각하! 소형 코어 발전기가 도난당했습니다!”

    “각하! L사와 F사, P사의 자동차 30여 대가 도난당했습니다!”

    “각하! 압구정 G백화점의 상품들이 도난을!”

    “각하! 마트가!”

    “각하!”

    어째 점점 백의가 장난치는 것 아닐까 싶은 상황에 대통령은 결국 책상을 내리쳤다.

    “저 새끼가! 관광 왔나!”

    백의의 대대적인 강탈로 서울은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본인은 여유롭게 기념품을 챙기듯 대놓고 도둑질을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각하! 백의가 광화문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또 뭘 털려고?”

    “배리어를 두른 상태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현장조!”

    “현장조를 투입합니다.”

    잠시 긴장감을 잃긴 했지만, 상대는 도시하나 정돈 우습게 괴멸시킬 수 있는 괴물이다.

    대통령과 마물 대책 본부의 인원들은 다시금 조심스러워졌다.

    “현장 책임자가 백의에게 접촉했습니다. 오디오 연결합니다.”

    [반갑습니다. 이 세계의 존재시여, 저는 대한민국 마물대책본부의 조사부장 김현태라고 합니다.]

    현장 책임자의 인사에 백의의 시선이 똑바로 모니가 비추는 카메라에 향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인사에 지하벙커의 모두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짜 한국말을 하는군.”

    더구나 퉁명스러운 표정에서 그의 감정도 느껴지는 듯했다.

    대통령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난번엔 다짜고짜 공격을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도 워낙 경황이 없어서.]

    [괜찮아요.]

    [사과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오늘 제가 물건 가져간 거로 쌤쌤치죠.]

    오늘 강탈당한 것만 해도 가치가 엄청날 테지만, S급 마물이 날뛰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현장 책임자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무엇을 위해 이곳을 방문해 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고에요. 저도 모르게 갑자기 이쪽 세계로 보내졌네요.]

    [그렇다면 굳이 다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네, 그리고 어차피 저 금방 갈 거예요.]

    금방 돌아간다는 백의의 말에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런데 그때.

    백의를 중심으로 마물이 등장할 때 보이는 푸른빛의 이팩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다. 못 돌아가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쿨하게 손을 흔드는 백의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했다.

    [가, 가신 다뇨?]

    [혹시 나중에 또 오게 되면 그땐 오늘 가져간 물건에 대해 보상할게요. 그전까진 정부에서 대출해줬다고 생각하고 보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백의의 모습이 모니터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뭐야, 이거.”

    대통령을 비롯한 마물 대책 본부의 인원들이 하나같이 헛웃음을 흘렸다.

    S급 마물이 날뛰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만, 완전히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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