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20화 (1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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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에 이르러 지구는 더 이상 예전에 알던 세계가 아니다.

    2018년부로 지구의 환경에 변화가 생겼는데, 갑자기 바다가 팽창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수면과 대륙은 그대로, 오로지 바다의 면적만 넓어지면서 대륙 간의 거리가 굉장히 멀어졌다.

    2025년에 이르러 지구는 이전보다 2.5배나 커진 상태다.

    덕분에 우주에서 보면 물의 별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행성이 커지면 공전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달 역시 지구와 가까워지므로 해수면 높이에 영향을 줄 텐데, 어째서인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자전 속도가 그대로라면 지구의 면적이 커진 만큼 하루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자전이 빨라지면 중력에 변화가 생겨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이상 현상은 지구의 팽창에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전이라는 정체불명의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전이는 다른 세상의 생물과 문물이 지구에 등장하는 현상을 일컬으며, 마치 마법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여 그런 명칭이 붙어졌다.

    지금에 와서 전이는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발생하는 일상이 되었다.

    전이를 통해 넘어오는 것은 대부분이 생명체이며 하나같이 마물이라 불리는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처음 마물이 등장했을 때,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어디서 등장할지 모르는 마물들은 최악의 테러리스트나 다름없었고, 종종 화기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녀석들이 등장해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전이 현상은 사그라지긴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등장하는 마물도 강력해졌다.

    세계는 인간들에게 빠른 변화를 요구했고, 힘겹게 현상을 유지하던 국가들은 경쟁보다 국가의 안위와 생존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이 없는지, 전이의 최초 발생 1년 후부터 능력자라 불리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마물에게 특히 강력한 면모를 보이는 능력자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존력과 마물 토벌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덕분에 인간들의 생존환경은 많이 나아졌으며, 불과 5년 만에 세계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 중, 한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작은 땅덩어리에 과분할 만큼 강력한 육군이 갖춰져 있고, 능력자들의 수와 질도 상당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지라, 바다의 팽창은 마이너스로 다가왔지만, 어차피 그것은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이야기인지라 큰 단점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마물 대란에서 초기에 붕괴하는 바람에 잠정적 위협도 사라진 한국은 현재 북한지역을 수습하며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한국에 위협이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에 위험도 S급의 마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의는?”

    백의라 명명된 마물.

    그것은 루이스를 뜻했으며, 하얀색의 로브를 입고 있다하여 ‘백의’로 이름이 붙여졌다.

    “대기권으로 벗어난 후 여전히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마물은 능력치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1~5등급으로 표기가 되며, 숫자가 낮을수록 강력하단 뜻이었다.

    5등급은 화기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4등급부턴 미사일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반드시 헌터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녀석 S급이 확실한가?”

    “네, 공력능력만으로 최소 S급입니다.”

    일반적으로 1등급 이상을 재앙급의 마물이라 칭하는데, 지금까지 한국에 몇 번이고 1등급 마물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S급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소 S급이라니.”

    청와대에 위치한 지하 벙커.

    대통령은 마물 대책본부 본부장이 띄운 영상을 보며 이마를 감쌌다.

    영상엔 금발의 잘생긴 청년이 붉은 베리어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과 서울 상공을 화염으로 가득 채운 폭발 공격, 4대의 로봇을 부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체 이건···.”

    “일반적인 마물과 패턴이 전혀 다릅니다. 단순 공격력만 보면 지금까지 등장했던 어느 마물보다 강력할 겁니다.”

    “그래서 최소 S급이라 표현한 거구만.”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1등급의 몬스터가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극히 드문 확률로 규격 외의 존재가 등장했다.

    그런 마물들은 보통 S급으로 평가하는데, 1등급 마물만해도 재앙이라 할 수 있는 판국에 S급이 등장하면 반드시 국가적인 피해를 발생시켰다.

    지금까지 등장한 S급 마물은 총 5개체.

    녀석들은 도시 하나둘은 기본이고, 검은 공포라 불리던 S급 마물은 북중국과 몽골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런 녀석과 동등하거나 더 강할 수 있다는 뜻이니, 끔찍한 이야기다.

    “녀석은 체구도 작을 뿐 아니라 뛰어난 기동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겁니다.”

    화면 속에 보이는 모습만 봐선 절대 마물로 평가할 수 없었다.

    더구나 로봇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했다.

    “저 마물이 한국말을 했다지?”

    “······ 예, 그렇습니다.”

    “대화는 시도해 보았는가?”

    “죄송합니다. S급이라 생각 못 하고 사령관이 헌터들에게 무조건 사살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화면을 계속 바라보던 대통령은 혀를 찼다.

    그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마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마력코어는 신 에너지로 고가에 거래되는 데다가, 1급이면 로또나 다름없다 보니 다급하게 굴만했다.

    “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국 정부와 UN에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높은 지능과 기술을 지닌 상대를 무조건 마물로 지정했어야 했냐고요.”

    그때, 대통령 뒤로 조용히 다가온 보조관의 이야기에 대통령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항의는 결과론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그를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했다면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형 마물이 처음도 아니었다.

    “말할 줄 안다고 마물이 아니라고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등장한 인간형 마물도 각자의 언어가 있었으니, 문제는 아니지. 다시 등장하면 그땐 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물러가자, 대통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차라리 다른 나라로 가줬으면 좋겠군.”

    “동감입니다.”

    그에 마물 대책본부의 본부장도 동의했다.

    “하필 내 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는 나름 현명한 대통령이지만,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

    “오, 그럴싸한데?”

    한국에 살던 시절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나는 복장도 이미지 마법으로 감춘 채, 인천의 낡은 주택가를 둘러봤다.

    다행히 마법을 사용할 때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면 따로 마물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건물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살던 시절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이곳도 지구긴 지구인 모양이다.

    적어도 내가 살던 지구에선 로프 없이 빌딩 높이의 헬기에서 사람이 뛰어내리고 초능력을 펑펑 써대는 그런 세계는 아니지만 말이다.

    24시간의 유예시간을 떠올리며 그냥 하루를 때운다는 관광객 마인드가 되었다.

    잠시 동료들에 대한 걱정과 이곳이 환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에 대한 고민을 뒤로 미뤄두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니던 문방구가 눈에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응?”

    역시나 내가 살던 지구와 달라서 그런지, 가계 주인이 전에 알던 아저씨가 아니었다.

    주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가계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문뜩 달력이 눈에 띄었는데, 2025년 5월로 날짜가 맞춰져 있었다.

    내가 지구에서 죽은 게 2015년 경이고 마드세인에 열심히 문화를 전파 중인 제이드가 넘어왔을 때는 2018년이다.

    시간의 흐름이 엉망이다.

    가게를 스윽 둘러 보았지만, 돈이 없어서 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미안하다며 가게 주인에게 또 온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어?”

    마침 가게 안으로 들어오려던 사람과 딱 마주치고 말았는데, 상대방이 내 얼굴을 보곤 움찔 놀랐다.

    “분식집 아들? 그, 그럴 리가 분명 죽었는···.”

    나도 크게 놀라고 말았는데, 그는 다름 아닌 내가 알고 있는 문방구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딱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에서 10년은 흐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은 마치 귀신을 보는 듯했다.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없이 그를 지나쳤는데,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내게 있어 32년 전의 사람이다.

    비록 내 기억력은 범인의 수준을 가볍게 초월한 컴퓨터 수준이지만, 그는 나를 보고 자신이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저렇게 닮을 수도 있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뒤로한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네. 왜 이런 부분만 같은 거야?”

    지금까지 실컷 가짜 지구 같은 뉘앙스를 풍겨 놓고,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이 훅 치고 나오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내 걸음은 어느새 추억의 분식집으로 향했다.

    “······.”

    그리고 내 걸음이 멈춰선 곳엔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낡은 분식집이 위치해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동네 분식집.

    나는 그 분식집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에 들어서니, 잊고 지내온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생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흐릿해진 기억.

    하지만 회귀 후 마법의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자연히 상승한 기억력 덕분에 지금은 너무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심한 듯 나를 바라보는 여성은 틀림없는 전생의 내 어머니였다.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어머니는 내 모습을 못 알아봤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얼굴을 한 번 더 바꾸었기 때문이다.

    “뭘로 드릴까요?”

    “쪼, 쫄볶이 1인분이랑 순대 주세요. 간 많이요.”

    내 주문에 그녀는 어깨를 움찔거리고는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라, 우리 단골이던가? 그런데 어쩌지, 쫄볶이 더 이상 안 파는데.”

    “왜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녀석이 먼저 떠났거든. 그래서 다신 그걸 만들고 싶지 않지 뭐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다.

    마치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로이아스 대륙에서 던전을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상황이라니.

    분명 내가 알던 지구와 다른 듯하면서, 이런 부분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학생 왜 그래?”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얼굴은 다시 지구에서 생활하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것을 본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야? 가, 갑자기 얼굴이 왜?”

    내가 잘하는 짓인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키워주셨던 부모님을 앞에 두고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

    내 부름에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지원인 분명.”

    “교통사고 당해서 죽었죠. 저도 알고 있어요.”

    “다, 당신 뭐야!”

    어머니의 부정에 나는 얼굴을 잠시 루이스로 바꾸며 말했다.

    “지구에선 이지원이라 불리던 취준생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른 세계에서 환생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루이스란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분명 이지원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장난 하냐며 미간을 찌푸린 어머니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귀, 귀신인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시 이지원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이미지 마법을 사용했다.

    ‘엄마! 나 A대학 붙었어!’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네!’

    ‘이번엔 꼭 붙는다! 첫 월급 타면 빨간 내복 사줄게!’

    ‘응, 기대할게.’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는 영상.

    그것은 전생에서 나눈 어머니와의 대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얼굴은 더없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올려 보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불신보단 놀람이란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기억을 꺼내서 보여 준다니, 원리 따윈 모를 것이다.

    하지만 점차 변해가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그런 영문 모를 기술도 딱히 상관은 없는 것 같았다.

    “정말, 지원이니?”

    “네.”

    내 긍정에 그녀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엄지와 검지가 안쪽으로 구부려진 노동에 찌든 손.

    “이, 이게 설마 꿈은 아니지?”

    지금까지 이 상황을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닿는 순간 비로소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네, 저 맞아요.”

    *

    서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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