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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19화 (11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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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살기 위해 이런저런 조사를 벌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천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요. 마계는 그런 천계의 뒤를 잇는 상태고 정령계도 멀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정령왕 계약자인 엘프퀸에게 향했다.

    그에 엘프퀸은 이프리트를 소환했고, 피닉스가 아닌 인간형태로 소환된 이프리트가 답했다.

    [확실히 요즘 정령계에 이상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영역 여기저기 손실이 생겼으며, 눈에 띄지 않게 된 별들도 있지.]

    “그렇다면 정령계도 멀지 않았군요. 그래도 여러분은 정신체라, 중간계의 출입이 자유로우니 좋겠네요. 그러나 결국 중간계도 같은 운명이 될 겁니다. 그럼 모두 완벽한 소멸을 맞이하게 되겠죠.”

    마족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정령왕의 이야기에 모두가 당황했다.

    “실은 이상하다는 거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고위 종족은 개체 수가 줄어가고 가이아는 더 이상 세계에 관심을 보이지 않죠.”

    “무슨 소릴, 드래곤은 마도황제에게 저주를 받았을 뿐이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럼 가이아가 저주를 풀어줬겠죠. 전쟁을 부추긴 것은 그녀가 아닙니까?”

    핵심을 짚는 카르엘의 이야기에 테라시아도 말문이 막혔다.

    “분명 중간계에도 손실이 생겼을 겁니다. 별자리 확인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상대는 마족이다.

    이야기를 마냥 신용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점점 카르엘의 이야기에 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신음을 흘렸다.

    “그래서 아르비스 공작님께선 어디에 계신 거지?”

    가이아를 모시는 성녀 입장에선 믿고 싶지 않을 이야기.

    하지만 성녀는 세계의 종말보다도 루이스의 안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유적의 힘을 사용해 다른 세계로 보냈습니다.”

    경시할 수 없는 기운을 풍기는 성녀가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 같은 기세를 보이자 카르엘은 오해하지 말라며 크게 손을 내저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저를 공격하면 그를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성녀는 마치 커즈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잠자코 있던 드워프킹이 물었다.

    “성녀의 존재는 가이아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그건 저보다 성녀님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드워프 킹의 시선에 성녀는 딱딱한 표정으로 답했다.

    “신성력은 마력과 다름없습니다. 가이아께서 힘을 내려주신다기보다, 마법사처럼 적성에 맞춰 사용한다는 느낌이죠. 교단에 신탁이 내려오지 않게 된 지는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이래도 안 믿을래?’라고 말하는 듯한 카르엘의 태도에 마그누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네 녀석은 이 유적을 이용해 마족들을 안전한 세계로 옮기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게 제 사명이죠. 굳이 마계와 중간계가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왕들이 온전한 형태로 넘어오면 중간계 입장에선 큰 위협이다. 너희의 상황은 이해한다고 쳐도 신뢰가 부족하지.”

    카르엘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필하는 분들은 억압과 색욕의 마왕 두 분뿐입니다. 그 외엔 딱히 돌볼 생각이 없죠.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 두분의 세력만을 중간계에 불러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마왕세력 하나만 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두 개의 세력이라니 허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저희의 힘을 제한토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 말이 진실인지부터 파악을 먼저 하시고, 사실임이 확인되면 그때 가서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되도록 시간을 끌지 않았으면 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테라시아는 인간을 포함한 이종족들을 스윽 둘러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네 녀석의 처리는 뒤로 미뤄두지. 상황파악부터 하겠다.”

    테라시아의 결정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선 안 될 거다. 너의 목숨은 초로와 같으니.”

    “알겠습니다.”

    ***

    44. 서울

    졸지에 광화문 광장에서 마물 취급을 받으며 레이드를 당하고 있던 나는 황당함을 표했다.

    “이건 너무 한데.”

    불, 물, 전기, 바람은 기본으로 총탄에까지 알 수 없는 기운이 담겨 날아든다.

    언제부터 지구가 초능력자판이 된 거지?

    꿈도 이 정도면 개꿈이 아닌가.

    “그런데 감각은 심하게 리얼하네.”

    사용량에 따라 빠져나가는 마력.

    매연과 미세먼지가 가득 담긴 뜨뜻미지근한 공기.

    더불어 내가 미궁에서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운이 주가 되는 서울 풍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뒈져라!”

    콰콰쾅! 쾅!

    요란하게도 달려드는 사람들.

    개중엔 내 방어막을 흔드는 공격도 있어서 여러모로 거슬렸다.

    끼이이익! 탕!

    그때 저격용 탄환 하나가 집중공격으로 약해진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2차 방어막인 오토 쉴드에 부딪혔다.

    근래 들어서 코어 마력을 활용한 방어막이 뚫린 것이 처음인지라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이 진짜.”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내 이목을 속일 수 있는 환상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설픈 환상에 당할 만큼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신화시대의 유적이라면 내 이목을 완벽히 속이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환상도 이 정도로 완성도 높다면 현실과 다름이 없다.

    신체 이상이 현실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정없이 밀어붙여! 아무래도 녀석은 1급의 황금 고블린인 모양이다!”

    개개인의 공격력은 그다지 높다는 느낌이 없다.

    그럼에도 내 방어막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한몫하는 것으로 보였다.

    주변의 대기엔 마나가 존재했지만, 그 마나를 억누를 만큼 정체불명의 기운이 짙었다.

    “미르 클랜이다!”

    와아아!

    지금까지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시민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치자 자연히 내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처음에 등장했던 녀석들처럼 헬기 한 대가 날아왔다.

    하지만 이번 헬기는 조금 더 거대하고 화려했는데, 검은색 바탕에 금색의 용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헬기의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도 2명의 사내가 겁 없이 맨몸으로 뛰어내렸다.

    이상한 힘을 쓰는 사람들은 몸이 참 튼튼한 모양이다.

    “김광헌 헌터님! 성상민 헌터님!”

    새로이 등장한 그들은 지금까지 나를 공격하던 녀석들과 질이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에너지의 형태는 다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초급 마스터에 비견되는 수준.

    한국도를 쥔 녀석이 섬전처럼 검을 휘둘러 왔다.

    콰아앙!

    “헙!”

    내 수준에선 초급 마스터가 잘나 봤자,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엔 다른 녀석들처럼 이질적인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대로 방어막을 갈라버렸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헛바람을 삼켰고, 방어막이 날아간 틈을 노리고 녀석의 동료가 소총을 연사했다.

    아주 찰나에 이어진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투투투퉁!

    “뭐, 뭐야. 저건!”

    그러나 불쾌한 기운을 머금은 탄환은 내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1차 방어막이 찢기며 위험도가 급증한 순간.

    내 발밑에 검은 파장이 일며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공격을 못 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내가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상황을 지켜보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 이상 참을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차갑게 말했다.

    “그랜달, 안타레스, 샤벨, 이카로스, 쓸어버려.”

    내 지시와 함께 아공간에서 나타난 그랜달과 안타레스가 거대한 검을 휘두르고, 샤벨타이거가 맹렬하게 사방을 휘저었으며, 푸른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른 이카로스가 여기저기 마력포를 날렸다.

    “로, 로봇?”

    이곳은 내 추억을 자극하는 장소임이 분명하지만 같은 장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녀석들을 상대로 인심을 쓰는 것도 여기까지.

    마도시대의 기간트들로 인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던 적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했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공격은 마력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금속으로 이뤄진 기간트에겐 딱 수준대로 밖에 싸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헌터라 불리는 녀석들의 수준을 보면 가장 나중에 등장한 두 녀석이 초급 마스터 정도고, 나머지는 모두 익스퍼트 수준이다.

    그 정도 전력이면 자율 운전 기간트라 해도 충분히 쓸어 버릴 수 있다.

    꺄아아악!

    사, 살려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세등등하던 녀석들이 빌빌거리는 것은 통쾌하지만, 여기저기 숨어 있던 일반인 중에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직 이게 환상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그다지 유쾌한 모습은 아니었기에 오래 지나지 않아 기간트들을 돌려보냈다.

    대신 함부로 덤비지 말란 뜻으로 헬파이어를 여러 개 뭉친 다음 코어 마력으로 최대치로 담아 하늘로 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에 서울 상공에 핵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건물들의 유리창이 모조리 터져나가고 충격파에 지진이 발생했다.

    굉장히 높은 곳에서 폭발을 일으켰기에 건물들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서울 시민들의 얼굴에 공포심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이래도 덤빌 겁니까?”

    내 물음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이던 한국도를 쥔 헌터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통신 장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건 1등급 수준이 아니라고.”

    [혀, 현재 확인 중입니다. 새로운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 주세요.]

    “시간을 끌라니.”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공격 한 번으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을 알게 된 마당에 시간 끌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내가 이동하려 하자 다들 발을 동동 구를 뿐 전처럼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자, 잠깐!”

    그대로 수직상승을 거듭한 나는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까지 올라갔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했다.

    성층권, 중간권, 열권을 넘어, 푸른 지구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우주를 둘러보았다.

    지구엔 그나마 내겐 익숙한 마나가 존재했지만, 우주로 나오니 마나의 존재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를 가득 채운 것은 미궁에서부터 계속 느껴지는 그 기운.

    이건 마치 세상의 주를 이루는 것이 이질적인 기운이고, 마나가 떨거지 같다.

    단순히 지금의 상황을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것이 많았다.

    [임시 점프를 실행했습니다. 24시간 후 점프 상태가 해제됩니다.]

    미궁에서 마지막에 들었던 메시지.

    그건 대체 무슨 뜻일까?

    24시간 후에 상태가 해제된다는 것은 여기서 하루만 보내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그리고 왠지 점프라 하면 차원이동, 공간도약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지만 뭐하나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 24시간을 보내보자.”

    나는 다시 지구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원래 대륙하고 바다 비율이 저런가?”

    문뜩 지구를 바라보던 나는 거대한 바다 면적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대륙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육토에 비해 바다가 넓은 지구지만,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못해도 바다가 대륙보다 5배는 넓어 보였으니 말이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삼 달도 지구에 비해 굉장히 작게 느껴졌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헌터를 비롯해 이미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지구와 여러모로 다른 만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살던 동네에 가볼까?”

    나는 머릿속을 정리할 겸.

    방향을 인천 쪽으로 향했다.

    과연 내가 살던 곳과 같은 풍경일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향수를 느껴보고 싶었다.

    *

    서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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