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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17화 (11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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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비스트 드래곤이 뭔데?”

    “생긴 건 거대한 샤벨타이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나는 비스트 드래곤이라 해서 드래곤의 다른 버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저희와는 완전히 종이 다릅니다. 녀석을 드래곤이라 칭한 이유는 드래곤 만큼 강력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 거죠.”

    “드래곤 만큼 강하다고?”

    “아마 녀석 정도면 고룡은 아니어도 테라시아에 버금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필 9클래스 마법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녀석과 싸워야 한다니.

    “신화시대면 마도시대 이전인데, 아직도 살아 있을까?”

    “미궁 속에선 살아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미 아타락스 섬 지하는 다른 세계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런 곳을 기어 들어가라니···.

    나는 안 주머니에서 검은 구슬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 짤랑거렸다.

    “야, 진짜 여기 있는 거 맞아?”

    [나보다 성녀나 엘프퀸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녀석의 말대로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엘프퀸과 성녀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마기가 느껴집니다.”

    “여기 원래 마기 깃들어 있는 거 아니죠?”

    “아니, 마기보단 짙은 마나가 느껴지는군.”

    성녀에 이은 엘프퀸의 이야기에 나는 혀를 차며 함께 자리한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뭐, 이정도 전력이면 비스트 드래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진 않겠죠.”

    나와 마그누스, 테라시아, 엘프퀸, 드워프킹, 거인족 대전사, 성녀, 폴시스 공작, 에클로 공작까지.

    단언컨대 중간계 최강의 파티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만약을 위해 마도시대의 기간트도 호위로 끌고 왔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도 없겠지.”

    솔직히 마왕을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정말 든든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가죠.”

    내 말에 일행은 군말 없이 미궁의 입구로 향했다.

    ***

    마계 이블 플래닛.

    “남아있는 마왕 녀석들은 뭘 하고 있지?”

    억압의 마왕 데이라의 물음에 곁에 앉아 있던 색욕의 마왕 셀레나가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을 올려 보며 말했다.

    “새로운 마족을 중간계로 내려보낼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

    “멍청한 새끼들.”

    분통을 터뜨리는 데이라를 보며 셀레나는 공감한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마왕들이란 걸까? 끝까지 협력이 되질 않네.”

    “단순히 녀석들이 멍청한 거야. 중간계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야, 드래곤이 단 두 마리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어떻게든 되고 있어?”

    “전혀.”

    데이라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 카르엘이라면 분명 제 역할을 해줄 테니.”

    “후우. 녀석을 믿지만, 너처럼 태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셀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텅 비어버린 하늘은 가리키며 말했다.

    “이젠 달도 완전히 사라졌네.”

    “곧 이 땅도 완전히 사라지겠지.”

    “하필 내 대에서 세계의 종말이 찾아올 줄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이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거다.”

    셀레나가 언급한 종말.

    그건 당금 이블 플레닛만이 아닌 그들의 세계에 닥친 문제였다.

    이미 이블 플래닛이 속한 우주는 행성이 거의 다 소멸한 상태이며 남아있는 것이라곤 곧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작아진 태양과 이블 플래닛뿐이었다.

    때문에 데이라가 이렇게 초조해하는 것이며, 절대 손잡을 리 없는 마왕끼리 힘을 합친 것이다.

    그리고 막상 함께하다 보니 둘 사이에 애정이란 것도 생겼지만, 그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 속에서 느끼는 애틋함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세계를 떠나고 싶어.”

    “그래, 마왕이건 뭐건 일단 살고 봐야 하니.”

    현재 이블플래닛에 남은 마왕은 열두 명 중 겨우 다섯.

    모두 증발하기 시작한 자신의 영역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마왕끼리의 전투로 사망했다.

    데이라의 영역도 현재진행형으로 증발 중인지라 셀레나의 땅에 얹혀살고 있는 상태다.

    다른 마왕들은 그런 데이라를 보며 기둥서방이라 조롱하지만, 어차피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세상 따위에 미련은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이블 플래닛에서 도망쳐 중간계에 정착하는 것.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선적인 목표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왜냐면 중간계라고 해서 마냥 안전한 곳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중간계는 중간 기착 지점이고 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최종목표였다.

    “그러고 보면 마도 황제란 인물도 참 대단해. 하프 드래곤 주제에 훨씬 안전한 중간계에서 세상의 종말을 먼저 깨달았었으니.”

    “결국, 본인은 드래곤에게 참수를 당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 마도 황제 안배 덕분에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지.”

    씁쓸한 미소의 데이라를 보며 셀레나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가이아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셀레나의 한탄에 데이라는 이를 갈았다.

    “그 빌어먹을 년이 다 같이 죽자 식으로 방해를 안 했으면 좋으련만.”

    “어쩌면 이미 소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가이아가 이 세상에 간섭을 안 한 지 굉장히 오래됐으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그렇게 두 사람은 붕괴하는 이블 플래닛에서 서로에게 등을 기댄 채 중간계의 소식을 기다렸다.

    “폐, 폐하!”

    “응?”

    그때 데이라 진영의 최상급 마족이 급히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하의 모습에 데이라의 표정이 굳고 옆에 있던 셀레나까지 덩달아 긴장했다.

    “차원의 미궁에 드래곤을 비롯한 중간계의 존재들이 출입했습니다.”

    “뭐라?”

    데이라와 셀레나는 눈을 크게 뜨며 기겁했다.

    “녀석들이 어떻게 그곳을···?”

    “탄식의 마왕 파블레스의 파편이 인간에게 붙들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카르엘 경이···.”

    상황의 전말을 알게 된 데이라는 분노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빌어먹을!”

    “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뒤틀려져 도망도 불가능해진 상황이라 합니다.”

    그에 입술을 깨문 셀레나가 데이라의 부하에게 말했다.

    “비스트 드래곤은 작업이 끝났나?”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적들에겐 드래곤 두 마리와 드래곤급의 존재가 끼어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어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데이라는 차갑게 말했다.

    “안배를 사용해도 좋으니, 카르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유적을 사수하라고 지시해라.”

    “네!”

    그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해당 마족은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탄식을 해치운 게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이야.”

    데이라와 셀레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

    미궁이란 칭호에 걸맞게 던전 입구에서부터 미노타우르스를 비롯해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어중간한 몬스터는 근처도 못 오고 소멸하고 말았는데, 덕분에 막힘없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로이아스 대륙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킹 바실리스크가 바실리스크 무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킹 바실리스크 코어는 굉장히 귀중하니, 잘 보관하도록.”

    모처럼 판타지 세상에서 모험하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감각을 자극해왔다.

    “이 기운은 뭐죠? 이것도 마기인가요?”

    내 물음에 일행은 의문을 표했다.

    “무슨 기운 말이지?”

    “네?”

    테라시아의 반응에 나는 성녀를 바라보았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로아이스 대륙의 일반적인 환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녀에 이어 마그누스가 한마디 했는데, 나만 납득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분명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음···.”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모두는 이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기분 탓이라며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나란 존재가 가벼운 상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혹시 점점 기운이 강해지고 있는가?”

    테라시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기운이 강해지고 있는 건 아닌데, 거슬릴 정도입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다시 기운을 느껴보려 했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이 파티의 리더는 자네일세. 자네가 결정하게.”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을 품은 채 계속 나아갈 건지, 아니면 멈출 건인지 내게 정하라는 뜻 같았다.

    잠깐 고민해봤지만 역시 마족의 존재를 무시할 순 없었다.

    “괜히 신경 쓰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계속 나아가야죠. 어차피 마족을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요.”

    [그래야지, 이곳에 있는 마족은 이번에 파견된 마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지. 그러니 쉽게 생각해선 안 되네.]

    품속에 넣어둔 유리병에서 탄식의 마왕이 말했다.

    “넌 동포를 팔아먹고 미안한 느낌도 없냐?”

    [동포라니, 녀석은 내 육신을 죽인 마왕의 수하다. 동료의식 따윈 있을 수가 없지.]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강한 녀석인데?”

    [최상급 마족이다. 억압의 마왕 심복이지.]

    뭔가 엄청 강할 것 같은 느낌.

    “그걸 왜 지금 말해? 최상급 마족이면 어느 수준인데?”

    [중간계로 치면 그랜드 마스터, 9클래스 마법사에 해당한다. 그래 봤자 드래곤보단 약하니, 큰 위협은 아닐 테지. 물론 마계였다면 웬만한 성룡보다 강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우리의 전력을 생각하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갑자기 높아진 공략 난이도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다른 마족들은 전부 중급이면서 왜 그 녀석만 최상급인 거야?”

    [다른 마왕들은 중급 둘이나 상급 하나를 내려보냈지만, 억압의 마왕은 색욕의 마왕과 힘을 합쳐 최상급 한 놈을 내려보냈지.]

    자기들 딴에는 어떤 제한이 있는 모양이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명확한 목표가 있는 느낌인데? 굳이 이 유적을 차지한 것을 봐도.”

    [원래 데이라가 뒤에서 음모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지.]

    마왕 중에 착한 놈이 어딨겠느냐마는 그나마 녀석이 다른 마왕들과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녀석을 다시 안 주머니에 때려 박은 나는 동료들과 함께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미궁이란 곳은 특별할 것 없는 동굴 형태지만, 내부가 굉장히 넓었다.

    그리고 미궁이란 컨셉에 맞춘 건지 갈림길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우리에겐 흔적을 찾는데 능한 존재들이 있기에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생성된 마족의 흔적을 추적하면 되는 것이니.

    보통 이정도 미궁을 공략한다면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애를 먹고 길을 찾고 탐색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몬스터가 달려들건 말건 모조리 가루로 만들며 앞만 보고 달렸기에 공략에 의미가 없었다.

    덕분에 일반적이라면 탐색 완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던전도 순식간에 돌파했다.

    “꽤 많이 내려온 느낌인데?”

    던전 탐색 2시간여 만에 주변의 온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대략 지하 500m는 내려온 것 같군.”

    “진짜 엄청나게 큰 던전이네요.”

    “그래도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군.”

    “네.”

    그의 말대로 멀지 않은 곳에서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비슷한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경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기운도 여전히 느껴졌는데, 나는 애써 모른척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우리의 눈앞에 자연 동굴이 아닌 잘 다듬어진, 벽면과 함께 거대한 금속 재질의 문이 나타났다.

    마도시대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든 상태.

    아직까지 비스트 드래곤이 생존해 있는 것처럼 어떤 장치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비스트 드래곤의 방이군.”

    “안에서 마기도 느껴져요.”

    어떻게 마족이 비스트 드래곤을 상대로 무사히 함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몰래 빠져나가는 길이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바로 가죠.”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지체할 것 없이 거대한 금속 재질의 문을 여니, 새하얀 빛이 우릴 덮쳤다.

    동시에 아까 전부터 내 신경을 긁던 기운이 엄청난 기세로 밀려왔는데,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곤 동료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아무래도 이 기분은 내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니 말이다.

    “모두 조심···.”

    [임시 점프를 실행했습니다. 24시간 후 점프 상태가 해제됩니다.]

    하지만 내 경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상한 메시지 음과 함께 지하 미궁이어야 할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인물 동상 두 개가 놓인 기다란 광장이다.

    거대한 건물들이 가로수처럼 광장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으며,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엔 각자의 목적이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

    마드세인 왕국에 있는 마력 자동차를 모두 합쳐도 이정도나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차량이 주변 차도를 달리고, 쉴 새 없이 정보를 토해내는 전광판이 시선을 잡아끈다.

    [미세먼지 농도: 나쁨]

    [오후 한때 소나기]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마력자원 협력기구가 결성되어.]

    [미래를 위한 투자, 잠깐의 노력으로 당신의 미래는 크게 바뀐다. 광화문 성형외과]

    미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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