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15화 (11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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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어먹을.”

    작게 내뱉은 욕설에 엘븐킹덤 왕성 회의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루시엘라가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

    “아니, 아니야.”

    그녀뿐만 아니라 마그누스도 슬쩍 내 눈치를 살폈는데, 아무래도 자고 일어나서부터 계속 저기압으로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게 만든 모양이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내부의 기운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그누스의 말대로 지금 내 상태가 어제와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 나는 9서클을 달성하여 9클래스 마법을 사용하던 것이 아니다.

    마법이 각인된 드래곤 하트를 덕에 사용 할 수 있던 것이었는데, 마법 각인이 사라지면서 드래곤 하트는 보조 배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나는 9클래스 마법을 잃어버렸다는 소리다.

    능력에 손실이 생겼다는 뜻.

    그러니 화가 안 나겠는가.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솔직히 전투력 부분에선 언령을 활용하면 9클래스 마법에 대한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잘 쓰던 능력이 사라지고 마력 소모가 큰 언령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능력치 하향이었다.

    케이는 이것이 미래를 위함이라지만, 마왕이라도 강림하지 않는 이상 부족할 것 없는 능력이었기에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별로 그다지 바뀐 거 없으니 신경 안 써도 돼.”

    마그누스의 의문을 반박한 나는 조용히 내부를 관조했다.

    꿈에서의 일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된다면, 그건 더 이상 꿈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마도 황제와의 시간은 현실이었다.

    스스스.

    확실히 드래곤 하트에 새겨져 있던 주문이 사라지자, 유동성이 더욱 높아지긴 했다.

    이 상태라면 케이의 말대로 드래곤 하트의 융합 작업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본래 코어와 하나가 된다면 언령과 마력 운용능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다만 두 개의 코어를 하나로 만든다고 해서 서클이 거저 생기진 않겠지만 말이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에이, 몰라.

    일단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자.

    그게 단순한 꿈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는 엘프 퀸과 함께 줄줄이 들어서는 인물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워프 킹, 하플링 킹, 거인족 대전사, 수인족의 의장.

    여기에 엘프 퀸까지 더해 하이랜드 5개 세력의 수장이 한데 모였다.

    특히 스스로를 거인족이라 소개했으나, 일반인과 다름없는 신장을 가진 남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인족은 신체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수인족의 짐승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루시엘라의 부연 설명에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소곤거리는 우리 둘의 모습을 다른 종족들은 살짝 불편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조용히 앉아 있는 마그누스 때문인지,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알겠지만 우리 하이랜드는 미드랜드를···. 아니,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아주 오래전엔 미드랜드와 하이랜드가 사이가 좋았던 시절이 있다고 들었다.

    한때 하이랜드에서 인간 문명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미드랜드는 그런 하이랜드의 도움을 감사히 여기고 칭송했다나?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지 않아 인간의 일방적인 욕심에 의해 깨져버렸다.

    인간들이 그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하이랜드와의 관계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제 파악 못 하고 하이랜드에 덤비는 최악의 선택을 했고, 된통 깨지면서 두 영역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다.

    그 이후로 하이랜드에선 미드랜드의 인간들을 신뢰하지 않고 경멸하는 성향이 생겼다고 루시엘라에게 들었다.

    “더구나 요즘 미드랜드에서 마도시대의 기술 복원에 열을 올리면서 위협적이라 생각하고 있기까지 하지.”

    충분히 납득이 되는 말이다.

    내가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들은 의외라는 모습들을 보였다.

    “같은 인간인 이웃 국가에서 군사력을 증강해도 위협인데, 다른 종족이면 오죽하겠습니까?”

    대체 그들은 인간을 얼마나 비합리적이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엘프 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과는요?”

    내 물음에 그녀는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만장일치로 적극 나서기로 했네. 특히 미드랜드와 협력하며 인간들과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란 생각이 들었지.”

    “뭐, 기본은 대륙을 위한 일이지만요.”

    “이번에 나를 비롯해 각 종족의 지도자도 직접 참여할 생각이네. 혹시라도 엉뚱한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대체 얼마만큼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

    미드랜드의 선조들이 몹쓸 짓을 했다고는 하지만 썩 유쾌한 모습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하이랜드를 뒤집기로 마음먹었으면 진작에 뒤집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한동안은 같은 편으로 지내게 될 테니.

    그래도 원하던 것을 얻어서 그걸로 만족해야겠다.

    “오스카 장로에게 들었네, 교역은 원한다고?”

    뜻밖의 물음.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양손을 깍지 끼며 답했다.

    “이번 협동 후에 판단하겠네.”

    “에이, 뭡니까? 괜히 기대했잖아요.”

    “이번 문제가 아무 사건 없이 해결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니, 나쁠 것 없지 않나?”

    그녀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는 협력체결의 기념으로 엘프 퀸에게 악수를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에 엘프 퀸은 머뭇거렸으나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일단, 원활한 조사를 위해 여러분께 미드랜드의 신분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휘자분들껜 임시 작위까지 내려드리죠. 수사하면서 곤란함을 겪진 않을 겁니다.”

    “수색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담당 구역을 나눠서 진행하죠. 굳이 섞일 필요는 없죠. 대신 통합 지휘통신부를 차릴 테니, 상주할 수 있는 정보 담당자를 정해주세요.”

    그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며 당부했다.

    “대신 모습은 여러분이 알아서 잘 숨기셔야 합니다. 종족특성이 드러내면 너무 눈에 띄니까요.”

    “우릴 바보로 아는가.”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이번 협업으로 하이랜드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네요.”

    “······.”

    그들에게 수색 부대를 꾸리게 하고 바로 그날 저녁 마드세인 왕국으로 이동해 4개국 동맹의 지휘부와 함께 작전을 짰다.

    “뭔가 신기하네. 인간과 하이랜드의 종족들이 함께하는 것을 보게 되다니.”

    이는 마족이란 공통의 적이 생겼기 때문이지만, 루시엘라는 이 상황 자체가 신기한지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이 힘든 거지 계기가 생겼으니 앞으로 관계를 개선토록 노력해야지.”

    나는 조심스레 긍정적인 생각을 밝혔다.

    그에 인간사회의 일원이 된 루시엘라도 공감했다.

    하이랜드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선 앞으로가 중요하다.

    *

    정령이 마기에 민감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존재가 정신체이자, 인간과 달리 자연의 기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령의 등급에 따라 탐색능력에 차이가 생기는데, 정령왕 계약자인 엘프 퀸의 경우 성녀를 넘어서는 탐색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성녀의 신성력에 비할 수준은 아니어도 그녀와 계약을 맺은 이프리트는 마속성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만큼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엘프퀸은 9클래스 급의 정령왕 계약자, 성녀는 일반적으로 8클래스급의 초인으로 취급받지만, 마족에 대해서 만큼의 9클래스에 준하는 전투 능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드래곤 둘이 더해지면 마왕 하나 정돈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요즘 꿈속에서 마도황제에게 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프를 먹은 상태에서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드래곤 하트를 유지했던 융화의 특성을 활용해. 본격적인 수련을 위해선 우선 두 개의 코어를 융합해야 한다.’

    ‘방대한 드래곤 하트를 안전하게 흡수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한 번에 너무 욕심내지 마라.’

    ‘서클의 운용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서 당황할 것 없다. 이는 네 특성에 맞게 변화했다는 뜻이니,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엔 편하다는 거야.’

    ‘마법을 실행만 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응용해라. 서클이 높아지면 해당 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지만, 사용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넌 너무 쉽게 강해져서 탐구심이 부족한 듯하다.’

    낮에는 마족 탐색, 밤에는 마도 황제에게 수련 받길 일주일째.

    미드랜드의 끈질긴 탐색과 하이랜드 이종족의 뛰어난 수색능력이 더해져, 우린 미드랜드에 숨어 있던 마족 셋을 더 잡아낼 수 있었다.

    -미드랜드 중부 네이아 왕국.

    “나는 노도의 마왕 가르도님의 수하인 마드라···.”

    -미드랜드 남동부 마가디슈 왕국.

    “나는 탄식의 마왕 가스토님의 수하인 중급 마족 그리드라고···.”

    -미드랜드 북부 하딘 왕국.

    “나, 나는···.”

    “그냥 죽어.”

    대체 몇 명의 마족이 대륙에 숨어든 걸까?

    발견 후 안전을 위해 나와 드래곤들이 직접 처치에 나섰는데, 대부분이 중급 정도로 내 기준에선 크게 위험하지 않은 녀석들이었다.

    “어떻게 마족이 이렇게 많이 넘어온 거지? 여러 마왕의 수하들이 넘어와 있는데, 서로 협력하는 느낌도 없고.”

    “아무래도 힘을 합쳐서 넘어오긴 했지만, 이후엔 독자 노선을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네이아 왕국에 있던 마족은 공작령의 영지 하나를 제물로 사용해 게이트를 열려고 했다.

    마가디슈 왕국에 있던 녀석은 마법사들을 꼬드겨 흑마법사 집단을 만들려 했으며, 하딘 왕국에 숨어 있던 녀석은 몬스터를 이용해 인간들을 공격하려 했다.

    “그나마 녀석들이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발견해 다행이야.”

    엘프 퀸의 감상에 나는 깊이 수긍했다.

    그런데 문뜩 드는 의문 하나.

    “인펙션 워커는 대체 누구 짓이지?”

    “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펙션 워커의 마드세인 왕성 습격 사건이 없었다면 우린 녀석들을 정리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마족에 대해 인지를 하게 되었고,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지며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니까.

    “적어도 마왕군을 대표해 중간계에 침투될 정도면 다들 머리는 돌아가는 녀석이란 뜻 아닌가?”

    오히려 인펙션 워커 사건은 마족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누군가가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닌지 생각될 정도다.

    마족 수색 동맹의 본부라 할 수 있는 아르비스 공작성의 회의실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내 의문에 하나같이 미간을 좁혔다.

    “만약 누군가의 수작이라면 그건 같은 마족의 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확실히 아무도 인지 못 한 마족의 등장을 미리 알고 이런 조치를 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없죠.”

    상황만 놓고 보면 마족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째서 같은 편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직 숨어 있는 마족이 더 있다는 뜻이네요.”

    “대체 얼마나 더 잡아내야 끝나는 건지.”

    조사하면서 가장 답답한 게 바로 이거다.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마족이 넘어온 지, 알 수가 없으니 잡아내고 또 잡아내도 끝을 알 수 없다는 점.

    “만약을 위해 섬을 포함해 오지도 조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래야죠.”

    마족들이 게이트를 열기 위해선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앞으로는 정보 수집에서 사소한 소문이라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폴시스 공작의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케일론 제국 북부에 위치한 라팔 군도의 섬 20여 개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케일론 제국 북부엔 로이아스 대륙 4대 만 중 하나인 카트리스 만이 있다.

    카트리스 만엔 수많은 섬이 위치해 있는데, 라팔 군도는 케일론 제국의 이빨처럼 생긴 최북단과 이어진 거대 군도였다.

    비록 몬스터가 많아 유인 섬은 아니지만, 날씨가 맑은 날엔 본토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 커다란 섬들이 사라지다뇨?”

    내 물음에 그는 뺨을 긁적였다.

    “하룻밤 사이 원래 없던 것처럼 증발해 버렸습니다. 따로 지진도 없었고요. 그래서 마족의 짓이 아닌가 하고 조사를 해봤지만,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그만한 섬들이 사라지는데, 자연적이라면 아무런 기미가 없을 수 없다. 지금 현재로썬 마족 빼고 생각나는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마족이 그 거대한 땅덩어리들을 증발시켰다면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하다.

    절대 8클래스 이하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마족의 짓이라면 왜 몬스터 뿐인 섬을 제거한 걸까?

    딱히 이상 징후도 없는 것을 보면 여러모로 의문이다.

    나는 말 없이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다.

    말은 안 해도 빨리 갔다 오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녀석이 못 알아챌 리 없다.

    그에 한숨과 함께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조사해보겠습니다.”

    이상현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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