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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14화 (11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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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한참을 뒤척인 끝에 잠이 든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금 순백의 공간에 서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더는 이 상황을 단순한 꿈이라며 가볍게 여기기가 힘들어졌다.

    “왔나?”

    그리고 이런 나를 어김없이 금발 적안의 미청년이 나타나 반겨주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그는 의문을 표했다.

    “평범한 꿈이 아니군요.”

    “그건 어제도 느꼈잖아.”

    “처음하고 두 번은 완전히 느낌이 다르죠.”

    “됐고. 왔으면 앉아. 이 케이님이 널 수련 시켜 줄 테니.”

    그러면서 격 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어떻게 당신이 제 꿈속에 있는 거죠? 저는 당신을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응?”

    “아니, 그전에 이게 꿈이 맞긴 한 건가요?”

    내 거부 반응에 그는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왜 그렇게 허둥대? 어제까지만 해도 ‘저 좀 강합니다.’ 하면서 건방 떨던 자식이.”

    아니, 허둥대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존재를 인지한 적도 없는 마지막 마도 황제가 수련시켜 주겠다며 나타났는데.

    “당신 칼바트 케이어스 맞아요?”

    “······.”

    내 물음에 그는 말을 잃었다.

    한참 뒤에서야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답을 했는데.

    “알아챘냐?”

    결과는 긍정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서 그렇게 당황했구만. 그래서 이름 밝히지 않으려 한 건데.”

    “당황한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이 꿈속에 나오니 놀라죠. 어차피 처음에 이름을 밝혔어도 꿈속 엑스트라가 편한 대로 설정 가져다 붙이는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나는 양반다리로 칼바트 황제 앞에 마주 앉았다.

    “내가 죽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4만 년 정도요.”

    4만 년이란 시간에 그는 놀라기보다 뜻밖이라며 의아하단 반응을 보였다.

    “4만 년이나? 아아, 그래서 드래곤들이 없어진 거구만.”

    “무슨 뜻이에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설명을 요구했는데, 그는 가볍게 말했다.

    “요컨대 드래곤이 멸종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뜻이지.”

    “드래곤은 당신이 저주를 걸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에요?”

    “죽어가는 와중에 그런 쪼잔한 짓을 왜 해? 그냥 가는 거지.”

    “네?”

    뭔가 드래곤들의 이야기랑 다르다.

    테라시아와 마그누스도 직접 겪은 게 아니긴 하지만, 그렇게 알고 살아왔을 텐데?

    “뭐 내가 그런 짓을 안 해도, 드래곤들에게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 수야 있지.”

    “아 진짜···. 설명 좀 자세히 해주면 안 돼요?”

    내가 확 짜증을 부리자 보이지 않은 기운이 날아와 눈두덩이를 후려쳤다.

    “악!”

    “그건 내 역할이 아니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다.”

    신에게 도전한 황제라면서 생각보다 품위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르다니.

    “엄살피우지 마. 그다지 아프지도 않으면서.”

    툭하면 마그누스 엉덩이를 걷어차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닌가?

    “자, 그럼 수련을 시작하자.”

    “수련할 기분이 나게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찜찜한데 어떻게 수련이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왠지 영문도 모르고 무대 위에 대본 없이 올려진 느낌이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진중하게 말했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어쩌면 훨씬 전부터 나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거쳐 온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너는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거다.”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설마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유만으로 강해지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이 수련이 나를 위한 것 같냐?”

    “후, 알겠습니다. 저야 여기서 더 강해지면 좋죠. 혹시 속성으로 가능합니까?”

    “속성이 어딨어? 네 노력 여하에 달렸지.”

    어찌 된 상황인지는 몰라도 조금이라도 더 능력치가 높은 편이 만약을 대비하기 수월하겠지.

    더구나 마족과의 사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 마족과도 이일 관계있는 일은 아니겠지?

    “칼바드 황제 폐하라 부를까요?”

    “아니. 그냥 케이라 불러라.”

    “알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가볍게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너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냐?”

    뜬금없는 물음.

    하지만 중요한 내용이기도 했다.

    당장 떠오르는 내 문제점은 하나뿐이다.

    “뱃속의 기운이 통합되지 않은 거요?”

    “그래, 맞아. 막강한 코어를 두 개나 갖고 있는데, 드래곤 하트 때문에 메인 코어인 소우주가 제힘을 발휘 못 하고 있지.”

    그는 내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팔을 달라고 했다.

    “제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뇨?”

    “드래곤 하트 제어에 힘을 쓰고 있어서 그렇다.”

    “아···.”

    소우주를 이룬 코어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융화 특성을 지닌 천년초의 기운이다.

    그 천년초의 기운이 드래곤 하트를 유지 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제힘을 발휘 못 하는 모양이다.

    “일단 두 개의 힘을 하나로 융합하기만 해도, 상당한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야.”

    “제가 융합을 시도해보긴 했는데, 쉽지 않던데요.”

    나라고 왜 따로 나눠진 기운을 하나로 뭉칠 생각을 못 해봤겠는가.

    시도는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네가 드래곤 하트를 따로 운용해서 그런 거잖아. 네가 사용하는 9클래스 마법의 근간이 되는 게 드래곤 하트인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이어진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뭐긴? 9클래스 마법 기능을 없애는 거지.”

    “네?”

    그는 내가 채 말리기도 전에 쥐고 있던 팔을 통해 자신의 기운을 흘러 넣었다.

    “자, 잠시만요.”

    쾅!

    그리고 그 기운은 드래곤 하트에 각인된 마법을 날려 버렸다.

    “끅!”

    나는 뱃속이 뒤집히는 기분과 함께 제대로 비명도 못 지르고 바닥을 뒹굴었다.

    “뭐 한 게 있다고 벌써 꿈이 끝나냐? 아, 혹시 너한테 데미지가 주어지면 그런 건가?”

    일전에 겪었던 것처럼 순백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동시에 정신도 아득해져 갔다.

    정말, 급작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지.

    ***

    42. 이상 현상

    마계, 이블 플래닛.

    군데군데 핏빛으로 반짝이는 자색은 이블 플래닛의 밤하늘을 대표하는 색상이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달 주변엔 행성의 잔해가 주변을 배회하고.

    눈부신 별들로 가득한 중간계의 밤하늘과 달리, 마계의 밤하늘엔 부서진 달 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블 플래닛에는 크고 작은 12개의 대륙이 존재하는데, 각 대륙을 12명의 마왕이 통치하며 서로를 견제했다.

    오우거를 닮은 노도의 마왕 가르도는 자신의 왕좌에 앉아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빌어먹을! 데이라 그 자식이 쓸데없는 짓만 안 했어도!”

    그에 가르도의 신하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몸을 떨었다.

    강자가 모든 것을 손에 넣는 마계의 시스템으로 인해, 마왕의 존재는 곧 무력을 뜻했다.

    가르도는 마왕 중에서도 가장 다혈질의 성격을 가졌기에 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만약 가르도가 화가 났다면 바짝 몸을 엎드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떻게 인간들이 가헬을 찾아낸 것이냐!”

    그에 가르도의 수하이자 참모격인 상급마족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가헬이 자리 잡고 있던 메이슨 왕국에서 언데드가 창궐하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펙션 워커에 공격당한 인간들이 그곳부터 조사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은 누군가가 가헬이 있는 방향으로 인간들을 유도했단 거군?”

    “예상인지라 확신할 순 없습니다. 다만 가헬과 함께 중간계에 침입한 마드라가 있던 엘도르 왕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그래서 신중한 마드라는 다른 나라로 거점을 옮겼습니다.”

    신중한 상급 마족의 태도에 가르도는 이를 갈며 답했다.

    “아마도 네 예측이 맞는 것 같다. 이것도 분명 데이라와 셀리나의 짓이 분명해.”

    억압의 마왕 데이라와 색욕의 마왕 셀레나.

    그 둘이 현재 가르도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는 마왕들이었다.

    “게이트를 열기 위해 제물을 쓰지 않겠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 여우 새끼들이 감히 나를 방해꾼으로 여겨?”

    “어떻게 조치할까요?”

    상급 마족의 물음에 가르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어떻게 해! 당한 만큼 돌려줘야지! 그 두 녀석의 수하들 위치를 파악해서 똑같이 조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르도는 왕좌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탄식의 마왕에게 연락을 넣어라. 전쟁이다.”

    그런 가르도의 행동에 처음으로 상급마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가 내뱉을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

    “네, 알겠습니다.”

    아무리 그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고 얼토당토않더라도, 결코 마왕의 지시를 거부할 순 없었다.

    “멍청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이야.”

    그런데 그때.

    가르도의 등 뒤에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 흑발 적안의 청년이었다.

    “너 이 자식 데이라!”

    가르도는 콧김을 길게 내뿜으며 핏빛 기운이 서린 대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이 이 상황에 마족끼리 전쟁이라니, 미친 것이냐?”

    검은색의 게이트를 열고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억압의 마왕 데이라였다.

    “네 녀석이 비겁한 수를 써서 중간계의 내 부하를 처치하지 않았느냐!”

    “네가 이따위 행동을 할 것이라 뻔히 예상이 되는데 그런 짓을 왜 하겠나!”

    데이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방으로 엄청난 기운이 퍼져나가며 상급 이하의 귀족들은 모두 뒷걸음질을 쳤다.

    “너와 창녀는 중간계의 토착종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복잡한 수를 쓰고 있지. 그래서 제물을 통해 게이트를 열려는 내 행동이 못마땅했던 아니냐.”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나, 귀찮은 방법을 쓰지 않아도 질 낮은 네 녀석의 부하들 정돈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지금 중간계에 내려보낸 내 부하가 누군지 잊은 것이냐?”

    “하,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이렇게 발뺌하기 위한 수단일지 어찌 알겠나?”

    “마치 발뺌하면 들어줄 상대인 것처럼 말하는군. 지금 네 녀석의 행동은 마족의 공멸을 부를 뿐이다.”

    가르도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태도로 무기를 그에게 겨눴다.

    “쯧.”

    별 수없이 데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두 사람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긴장감은 가르도가 먼저 달려들면서 깨지게 되는데.

    결국, 두 마왕 힘 대 힘의 충돌을 벌였다.

    쾅-!

    단 한 번의 충돌로 마왕성의 성벽이 터져나가고, 마족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핫! 언젠가 네 녀석과 한 번쯤은 붙고 싶었다.”

    호기로운 가르도의 외침.

    “역시 멍청하군.”

    “뭐?”

    하지만 가르도의 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따앙!

    “큭!”

    몸을 휘청하게 할 정도의 강력한 정신 공격.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태연하게 자신의 왕좌에 앉은 매혹적인 여성이 가르도를 향해 손 키스를 날렸다.

    푹!

    이어서 빈틈을 노리고 파고든 데이라의 검이 정확하게 그의 미간을 뚫고 뒤통수로 삐져나왔다.

    “규, 규율을 어기다니, 비겁한···.”

    가르도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규율은 마왕끼리 전투를 치름에 있어 일대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데이라는 차갑게 답했다.

    “지금의 마계에서 누가 규율을 따지겠나? 더 이상 우리에게 죗값을 무를 존재는 없다.”

    동시에 막대한 기운이 날아들며 가르도의 머리를 앗아갔다.

    “이김에 탐욕도 정리를 해야겠어.”

    “어쩔 수 없지.”

    가르도를 사살하고도 표정 변화가 없던, 데이라는 저 멀리 조금씩 분해되어 가는 달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

    이상현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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