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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13화 (11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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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오오오.

    마그누스 녀석이 폴리모프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주변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새파란 천둥이 어두워진 하늘을 장식했다.

    이어서 완전한 드래곤의 모습이 된 마그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삐이이이이!

    동시에 엘븐킹덤 수도에 떠있던 UFO가 요란한 경보음을 냈지만, 원격으로 경보를 끈 건지 바로 조용해졌다.

    “확실히 말만 드래곤이 아니네.”

    아직 어린 축에 속하는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화면을 통해 비친 엘븐 킹덤의 수도는 완전히 난리가 난 상황.

    그런 도시를 향해 다가간 마그누스가 말했다.

    [오늘 다투자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엘븐 킹덤의 대표께선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면 합니다.]

    공손한 말투 때문일까?

    공포심 가득하던 시민들이 의아한 기색을 비치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이랜드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제가 엘븐 킹덤을 대표인 그리시아라 합니다.”

    마그누스는 여왕의 등장에 하늘에 머물러 있는 우리 쪽을 바라보았고, 알데바란도 고도를 서서히 낮추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내려오자, 엘프퀸의 얼굴에 의문이 깃드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드래곤의 눈동자가 향하자 엘프퀸은 마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인물처럼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알데바란과 마그누스를 성체 안쪽으로 안내했다.

    휘이이익! 취익!

    알데바란이 착륙함과 동시에 할 일을 마친 마그누스가 다시 인간 형태로 변모했다.

    마그누스의 존재가 어지간히 어려운지 엘프퀸을 비롯해 황급히 달려 나온 엘프 장로들이 영문도 모른 채 알데바란의 입구를 지키고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오랜만이네요. 여왕님.”

    루시엘라의 팔짱을 낀 채 등장한 웬 인간의 긴장감 없는 인사에 그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 녀석···.”

    “네 녀석이라뇨, 엄연히 드래곤을 대동한 미드랜드 대표한테.”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녀의 미간에 더욱 깊은 골이 생겼다.

    그리고 엘프 퀸의 시선이 루시엘라에게 향하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루시엘라는 제 부인 자격으로 참여했으니, 뭐라 하지 마세요. 이젠 하이랜드가 아닌 미드랜드 소속이니까요.”

    마음 같아선 이곳은 너희가 올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마그누스의 눈치를 보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루시엘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당연히 내 입장에선 엘프퀸 보다도 반가운 인물이 그였다.

    “안녕하세요. 장인어른.”

    “장인어른?”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그간 루시엘라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지, 적대감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결국 그렇게 관계가 발전한 건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차나 한잔하시죠?”

    내 제안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공식적인 석상이 아니면 마주 볼 일은 없을 거네.”

    그놈의 규율이 뭔지, 이럴 때 보면 참 답답하다니까.

    시선은 계속 루시엘라에게 향해 있는 주제에 왜 저리 답답하게 구는 건지.

    루시엘라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서로 얼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새다.

    마치 시선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부녀를 내버려 두고 여왕에게 말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겼으면 합니다.”

    “따라오시게.”

    우린 엘븐 킹덤의 심장에 입성했다.

    엘프의 시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건물 자체에서 피톤치드가 느껴지는 듯하다.

    “자유롭게 의논하시길.”

    잠시 후 서로 마주한 회의실에서 마그누스는 끼어들지 않겠다는 태도로 그리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위대한 존재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결코 네 녀석은 엘븐킹덤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엘프퀸의 차가운 이야기에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퉁명스럽게 답했다.

    “마족이 출현했습니다.”

    포장 1도 없는 본론에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뭐?”

    “중급 마족을 한 놈 정리했는데, 아무래도 대륙 어딘가에 마족이 더 숨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마족 탐색을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고요.”

    엘프퀸은 사실인지 묻기 위해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는데, 녀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루시엘라가 나를 거들고 나서자, 엘프퀸은 차갑게 말했다.

    “굳이 네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끼어들면 어때서요?”

    “······.”

    내가 왜 그런 걸 따지냐는 듯 핀잔을 주자 주변 장로들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 말투가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기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로이아스 대륙의 구성원이잖아요.”

    엘프 퀸이 장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에 조사를 하면서 마족을 탐색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프를 비롯해 능력이 되는 하이랜드의 종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합니다.”

    “처치한 마족이 어느 마왕의 산하인지 알고 있나?”

    이제야 제대로 대화할 생각이 든 모양이다.

    “노도의 마왕 가르드라 하더군요.”

    그녀가 노도의 마왕이 누군지 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마왕은 드래곤 이상으로 오래 살긴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바뀌고 현재 중간계에서 마계의 상황을 조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녀석의 낌새가 이상했어요. 죽음을 마주한 상태에서 마족이 더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걸 보면서 동료가 아닌 경쟁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마족이 의리가 없다곤 하지만 그렇게 멍청한 말을 내뱉을까 싶어서요.”

    “음···.”

    “뭐, 결국은 모두 예상에 불과하죠. 조사해야 알 수 있는 일이니까.”

    그때 잠자코 있던 루시엘라의 아버지가 물었다.

    “조사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가?”

    그에 나는 숨김없이 밝혔다.

    가장 큰 전력인 드래곤과 수십 명의 초인, 성녀를 필두로 한 고위 성직자까지.

    “하지만 너무 대대적으로 조사를 실시하면 녀석들이 깊숙이 숨어버릴 수 있으니, 적은 인원으로 넓은 면적을 커버할 수 있는 초인파티를 여럿 꾸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초인으로 꾸려진 탐색대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면 그때 대 인원이 투입될 것이다.

    “그 말은 이쪽도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을 투입해야 한다는 거군? 그것도 미드랜드로.”

    “그렇죠.”

    엘프들 입장에선 꺼릴 만하다.

    어쨌든 그들은 미드랜드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태고, 내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적진에서 활동해야 하니 말이다.

    “일단 하이랜드의 다른 종족들과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겠군. 요구는 잘 알았다. 하루만 시간을 다오.”

    “알겠습니다. 옳은 결정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하이랜드가 마족이 등장했다고 당장 벌 떼처럼 들고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지금도 내 동료들은 마족을 수색하고 있다.

    더구나 당장 내일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니,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알고 있다. 내키진 않지만, 오늘은 손님으로 맞이해 주지. 방을 내줄 테니 쉬도록. 혹시 원한다면 도시를 구경할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 주마.”

    “좋죠, 대신 안내역으로 오스카 장로님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여왕은 잠시 오스카 장로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

    엘븐킹덤의 엘프들이 거리를 거니는 나를 보며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음, 역시 도시치고 공기도 좋네. 삼림욕 하는 느낌이야.”

    지구에 비하면 이 세계는 공해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역시 인간들이 모여 살며 도시를 이루게 되면 공기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구 50만의 엘븐킹덤의 수도 하이엘븐은 마치 숲속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보아하니 엘프들도 장작떼고 공업용품 만들고 할 거 다 하는데,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도시 곳곳에 솟아난 큰 나무 보이지?”

    “응.”

    “그것 때문이야, 저게 드라이어드의 나무라 불리거든. 오염을 정화하고 주변 식물의 성장을 촉진 시키지.”

    “오!”

    자연 공기청정기라니.

    나는 묵묵히 우릴 지켜보는 오스카 장로에게 물었다.

    “드라이어드의 나무 묘목이나 씨앗 못 얻나요?”

    “애석하지만 그렇네, 하이랜드에서 반출이 금지되어 있어서 미드랜드의 엘프들도 구경하지 못하거든.”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계속 루시엘라와 함께 엘븐킹덤의 수도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역시 다들 엄청 예쁘네.”

    나도 외모론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엘프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 특색 없는 얼굴이 되어버린다.

    역시 괜히 엘프가 아니야.

    루시엘라는 내가 열심히 눈을 굴리자,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 그래도 루시가 제일 예뻐.”

    “알면 됐어.”

    이건 예의상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엄청나게 예쁘고 잘생기긴 했는데, 루시엘라처럼 딱 와 닿는 취향은 별로 없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다들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머리와 눈동자 색 빼면 구분하기가 힘들 것 같다.

    반면 루시엘라는 그녀만의 특색이 있었다.

    듣기로 그녀의 어머니가 왕가의 하이엘프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걸까?

    “저게 엘븐 실크죠?”

    “그렇네.”

    나와 루시엘라의 사이가 정말 좋아 보여서인지, 나를 대하는 오스카 장로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혹시 미드랜드와 교역하실 생각 없어요? 엘븐 실크나 엘븐 와인, 엘븐 티, 미스릴 실, 엘프의 병장기 등은 미드랜드에서 엄청 고가에 거래가 될 거에요. 미드랜드에서 원하는 거 뭐든지 구해다 드릴게요.”

    그동안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개인 재산을 너무 많이 푼 덕분에 천문학적인 재산도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간트,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병장기 등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산업기반을 갖춰놨기에 문제는 없겠지만, 만약 엘프의 상품을 구할 수 있다면 영지와 나라 살림에 더욱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내 제안이 갑작스러운지 그는 헛기침을 했다.

    “여왕폐하께 말씀드려보지. 하지만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고맙습니다. 이김에 하이랜드와 친해졌으면 좋겠군요. 여러분도 저희 신경 덜 써도 되니 좋잖아요.”

    “글쎄, 하이랜드에서 인간의 신뢰도가 너무 낮아 쉽지 않을 것 같군. 고위 인사 중엔 미드랜드를 적대시하는 강경파가 상당히 많거든.”

    인간이 신뢰하기 쉽지 않은 종족이란 건 인간인 나도 잘 안다.

    나 자신만 해도 경우에 따라 신뢰를 저버릴 수 있으니.

    하지만 인간 중에도 분명 선한 사람이 있고, 교류할 생각이 있다면 법적인 제도를 만들어 얼마든지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관계 개선을 위해서 한 발 내딛는 것이 중요한데, 하이랜드처럼 폐쇄 적인 곳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 엘프의 군사 장비는 구경 못 하나요? 예를 들면 기간트라던가.”

    내 물음에 오스카 장로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분명 마도공학 기술이 발전한 이곳이라면 예상외의 물건도 있을 법한데, 일반적인 생활에서 눈에 띄는 특별한 게 없다 보니, 은근슬쩍 물어본 것이다.

    “힘들 것 같군.”

    어차피 예상하고 물어본 것이라 실망은 안 했다.

    엘븐킹덤은 탁월한 풍경으로 여기저기 구경할 게 많았지만, 사실 풍경 빼곤 볼 게 별로 없었다.

    대장간과 몇 개의 잡화점을 빼면 외부인이 둘러볼 만한 공간도 거의 없고, 외식이란 문화 자체가 없는지 식당도 없다.

    내가 엘븐킹덤을 구경하면서 든 느낌은 좋게 말하면 군더더기 없다는 것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꽤나 지루한 곳이란 점이었다.

    그렇게 하이엘븐을 돌아다니던 나는 메인 광장을 포위하듯 세워진 무수히 많은 동상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저 동상들은 뭐에요?”

    “역대 지도자들을 기리는 동상일세.”

    보존기능이 걸린 동상들은 모두 같은 날 제작 된 것처럼 말끔했다.

    [하이랜드의 평화를 위하여. 엘븐킹덤 35대 국왕, 그리시아 하이엘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역시 현 여왕이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눈 그녀와 너무도 똑같은 모습.

    그나저나 4만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엘븐킹덤의 현 군주가 겨우 35대라는 것이 신기했다.

    한 명당 최소 천년이 넘는 시간을 왕좌에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이엘프의 수명은 일반 엘프보다 길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왕좌를 노리지 않는 건가 싶어서 신기했다.

    여긴 쿠데타 같은 것도 없나?

    [대륙의 패권을 위하여, 브릴란테 제국 12대 황제, 세르데인 알카서스]

    “어? 마도제국 황제의 동상도 있네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역대 지도자들을 기리는 동상들이라고.”

    그러면서 오스카 장로는 말없이 우리의 뒤를 따라 걷는 마그누스의 눈치를 살폈는데,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는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마도제국 황제들의 동상을 살피던 나는 얼마 안 가 그 자리에 굳고 말았다.

    “어?”

    [신의 권위에 도전하다, 브릴란테 제국 14대 황제, 칼바트 케이어스]

    그도 그럴게 마도제국의 마지막 황제라며 세워진 동상에서 뾰족한 귀만 빼면 어제 꿈속에서 보았던 사내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

    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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