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12화 (112/186)

-------------- 112/186 --------------

이어서 정체불명의 사내는 황당하단 투로 말을 이었다.

“얼씨구? 너 설마 신체 단련도 하냐? 근접 전투 상황에서 박투술이라도 하게?”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마스터인 수하들에게 신체 단련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귀신처럼 그런 것까지 집어내는 그를 보며 말을 잃었다.

“위급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신체 단련도 하고 있습니다.”

“바보냐? 그 시간에 차라리 배 속에 있는 것들이나 네 걸로 만들어. 천년초 덕분에 그런 기이한 형태가 유지되고 있는 거잖아.”

이마에 힘줄이 돋아난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우습게 여길 정도로 약하진 않는데요?”

“세상엔 네가 가진 힘만으로 어쩌지 못할 상황이 굉장히 많아. 너같은 녀석을 두고 우물 안 개구리라 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쪽은 상당히 강하시겠네요?”

“너보단?”

“대체 당신 뭡니까?”

꿈속에 등장한 상대에게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 행동만 봐선 거물 중에 거물이다.

“순백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네 꿈속이 이렇게 생긴 이유는 전투에 대비하기 위함이겠지?”

“네?”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내.

이어서 그는 내게 손을 까딱하며 말했다.

“덤벼봐. 실력 좀 보자.”

그의 제안에 나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참고로 이건 제안이 아니다.”

그가 금방이라도 무력을 사용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꿈은 아무래도 악몽인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나도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내 상태가 최선은 아닌 듯하지만, 자만에 빠진 너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건 가능할 것 같다.”

“이미 여긴 꿈이라 현실관 관계없을 것 같은데요?”

“글쎄, 그건 모르지. 내가 이렇게 나타났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

나는 그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분위기를 보아 절대 쉽게 생각해선 안 될 것 같다.

코어의 마력을 이용해 전신을 붉은 쉴드로 감싸고 양손엔 금방이라도 뿜어질 것처럼 막대한 마력이 깃들었다.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선다.

“정말 지나치게 현실적인 꿈이군.”

전투를 준비하는 내 모습에 그는 못 볼 걸 봤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와, 엄청 비효율적이네. 너 다수를 상대한 경험 없지?”

“상대가 당신 한 명이니까 이러는 겁니다. 저도 다수를 상대하면 이렇게까지 마력을 쓰진 않거든요?”

“뒤가 없는 녀석이군. 언제나 다음을 생각해야지.”

근래 들어 이렇게 훈계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누가 감히 아르비스 공작에게 이렇게 행동하겠는가.

“부디 그 자신감이 허풍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어깨를 으쓱인 그는 내게 손을 까딱였다.

“와라.”

그에 나는 거절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봐주는 것 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꿈속이 아니면 언제 전력을 발휘해 보겠는가.

내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그는 가만히 서서 나를 맞이했다.

“마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으니까 나름 위협적이긴 하네.”

우선 그의 태평한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야겠다.

내 몸에 두른 쉴드에서 수백 가닥의 붉은 가시가 레일건처럼 쏘아져 나가고, 손에 쥔 마력 덩어리가 9클래스의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으로 변모했다.

“실망이다. 이건 뭐 길게 갈 필요도 없겠네.”

“무슨?”

하나하나가 8클래스급의 위력을 지닌 붉은 가시들이 너무 쉽게 부서져 내린다.

그리고 손에 쥔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에 무언가가 간섭하는 느낌이 들더니 내 제어를 벗어나며 폭발해 버렸다.

“끄아아악!”

제로 거리에서 터진 뉴클리어 익스플로전.

당연히 데미지는 시전자인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순간적으로 몸에 두른 방어막에 마력을 최대한 쏟아부어 버텼지만, 그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 강해진 게 아니고만.”

쿵! 쿵!

물수제비처럼 튕겨 나간 나는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원래대로라면 즉시 소멸되고도 남을 데미지.

하지만 마력 쉴드 덕분인지, 아니면 꿈이라서 그런 건진 몰라도 팔 두 개를 잃은 것에 그쳤다.

“크윽!”

감각이 생생하다는 것을 보고 알아챘어야 하는데, 떨어져 나간 팔뿐 아니라 전신에서 밀려오는 통증이 엄청났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급히 언령으로 재생과 회복을 사용했다.

“대체···.”

새롭게 돋아난 양팔을 주무르며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향해 그 기분 나쁜 사내가 다가와 이죽거렸다.

“뭐긴 뭐야. 승부조차 되지 않았다는 거지.”

나는 말을 잃었다.

설마하니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한 꼴이니.

현생에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적이 있던가?

“꿈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합리화하긴.”

한참을 바닥에 앉아 바보처럼 헛웃음을 흘린 나는 바로 앞에 다가온 그를 올려 보았다.

“대체 뭘 한 겁니까?”

“폭주로 마법의 제어권을 잃게 만들었지.”

“그 말은 제 마법에 간섭했다는 건가요?”

“어.”

너무도 심플한 대답.

하지만 무슨 해킹하는 것도 아니고 마법 캐스팅 과정에 어찌 간섭한단 말인가.

“너 제대로 된 스승 없지? 능력치에 비해 너무 교과서적인 느낌인데?”

언령에 마력을 의지대로 사용하는 내가 교과서적이라니, 새로운 평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승이 없다고 확신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번 그의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나 같은 상대를 마주하면 그냥 죽은 목숨이군. 고작 그 실력으로 용케 살아 있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리모트 랜드의 드래곤이면 모를까, 이래 보여도 미드랜드엔 적수가 없거든요?”

“그 용대가리들이 문제인 거지.”

“현존하는 드래곤 두 개체와도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드래곤이 겨우 두 마리뿐이라고?”

“그렇다네요. 더구나 이젠 번식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둘이 사라지면 드래곤은 완전히 멸종이랍니다.”

“드래곤은 자가수정이 되잖아.”

“마도제국의 황제란 양반이 아주 강력한 저주를 걸었데요. 그래서 자가수정을 못하고 계속 수가 줄었다는군요.”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미간을 찌푸린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요?”

“왠지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그냥 제 꿈속에 등장한 엑스트라 아닙니까?”

“지랄하네.”

귀공자 같은 외모와 달리 상당히 입이 거친 인물이다.

나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물었다.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가 뭔데요?”

“뭐긴, 모지리 네 녀석을 수련시키기 위함이지.”

“네?”

현실과 똑같은 감각.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이 폭발했음에도 끄떡없는 환경.

여러모로 훈련하기엔 괜찮은 조건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꿈에서의 훈련이 현실에서도 도움이 될까?

깨어났을 때 전부 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그전에 내가 이 사람에게 왜 수련을 받아야 하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꼬우면 말던가. 강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차겠다고?”

“아뇨, 상황을 본인만 이해할게 아니라 제대로 설명을 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쿠우웅!

그때, 갑자기 새하얀 세상에 균열이 생기며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현실의 네가 깨어나려는 모양이다.”

“끝까지 마이페이스시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지.”

“꿈인데 나중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럼 이름이라도 알려 주시던가.”

“싸가지 없는 녀석.”

그의 말대로 꿈이 끝나려는 건지 새하얀 공간의 벽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케이라 부르면 된다.”

그리고 나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와중에 이니셜이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게이···.”

“케이라고 이 멍청한 놈아.”

*

“아.”

번쩍 눈을 뜬 나는 익숙한 천장에 한참 동안 눈을 깜빡였다.

손을 들어 살피니, 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마치 꿈속에 있었던 일들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안 그래도 너무 생생하다 보니 단순히 꿈으로 치부하기가 힘들 정도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으면 저런 일도 있는 법이지만 이건 정말···.

“으음.”

상체를 일으켜 세우니 옆에 누워 있던 루시엘라가 졸린 눈으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니, 조금 이상한 꿈을 꿔서.”

“그래?”

꿈이라는 이야기에 루시엘라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이불 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이마만 볼록 나와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침대 옆 테라스로 비치는 달을 바라보았다.

근래 들어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모든 게 괜한 생각이면 좋으련만.

그렇게 한참 동안 달구경을 하던 나는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달이 유난히 작게 느껴지네?”

뭐, 달이 가까울 때가 있으면 멀 때도 있는 거지.

곧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설마 방금 헤어졌는데, 또 그 이상한 녀석이 꿈에 나오는 건 아니겠지?

*

다음날.

어제 꾼 꿈 때문에 종일 컨디션이 안 좋은데, 그런 나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인물이 있었다.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나는 옆자리에 앉아 마른 침을 삼키는 루시엘라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우린 일전에 마도시대 유적인 정박장에서 얻은 거대 지휘선 알데바란에 탑승한 상태다.

처음 얻었을 땐 한쪽 날개가 뜯겨나간 반파 상태였는데, 수리를 마치고 온전한 형태가 되었다.

알데바란의 목적지는 루시엘라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바로 하이랜드다.

하이랜드로 향하는 이유는 마족의 탐색에 도움을 받기 위함인데, 수월한 대화를 위해 마그누스를 대동한 상태다.

사실 말이 수월한 대화인 거지, 마그누스는 압박을 위한 카드였다.

내 앞에서나 바보 취급이지, 녀석은 하이랜드의 이 종족들이 덜덜 떠는 드래곤이었으니.

“텔레포트가 훨씬 빠르지 않습니까.”

마그누스의 불평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이랜드 전 구역이 텔레포트 금지지역이라잖아.”

“게이트로 뚫고 들어가면 됩니다.”

“들어 오지 말라고 막아 놨는데, 거길 왜 뚫고 들어가. 사이 좋게 대화하기 위해 가는 건데.”

늘씬한 단검 형태를 한 알데바란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거의 전투기에 가까운 속도인지라 발아래 펼쳐진 산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럼 굳이 이걸 타고 가는 이유는 뭔가요?”

“뭐긴, 위엄을 위해서지. 이래 보여도 인간 대표잖아.”

내 대답에도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허세 지존인 네가 그딴 표정 짓지 마.”

나는 마그누스에게 딱밤을 날렸다.

그렇게 한창 하이랜드 영역을 날고 있는데, 우리의 앞에서 드레이크 무리가 나타났다.

드레이크의 공격 따윈 알데바란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기에 그냥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드래곤을 작게 축소 시켜놓은 드레이크를 보고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인간은 엘프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거든?”

뜬금없는 내 물음에 마그누스가 의아한 기색을 비쳤다.

“너, 저기 드레이크들 보면 예쁘다던가 잘생겼다던가 그런 생각 드냐? 막 결혼하고 싶다던가.”

내 물음에 마그누스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주인님께선 원숭이나 고릴라 보고 발정을 하시는지요? 세 번째 부인은 고릴라가 어떨까요?”

“아, 그런 느낌이냐?”

나는 웃으며 녀석의 뺨을 잡아당겼다.

“다 왔어.”

루시엘라의 이야기에 마그누스에게서 시선을 뗐다.

“알데바란 정지.”

[알데바란 정지합니다.]

알데바란엔 직접 조종할 수 있는 좌석이 존재하지만, 아직 정식 편제된 운용부대가 없다.

그래서 조종은 인공지능에 위임한 상태다.

“여기가 엘븐 킹덤이야?”

“응, 엘븐 킹덤의 수도 하이엘븐이야.”

내가 앉은 함장석 전면 화면을 통해 여러 방향의 영상이 출력됐는데, 가장 큰 화면에 고성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숲속에 저런 거대 도시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괜히 엘프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녹음과 호수 등이 어우러져 있어서 말 그대로 숲속의 도시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기계 문명이 존재했는데, 고성 위로 UFO처럼 생긴 원반이 공중에 떠서 회전하고 있고 상당수의 기간트와 마력포대가 배치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야?”

내가 원반을 가리키자, 루시엘라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침입자 알림 아티팩트. 외부에서 침입자가 발생하면 도시 전체에 추격명령이 전달 되거든.”

“그럼, 우리도?”

“아마 조금만 더 접근하면 울릴 거야.”

신기하네.

우리도 설치할까?

원리는 그렇게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위성의 초저공 버전 같은 느낌이다.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대화의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마그.”

내 호명에 녀석은 존댓말로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함의 밖으로 나서더니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꿈 (2)


0